‘금융 정상화’ 시계는 돌아가는데, ‘혼선’주는 지표

입력 2021.06.06 (07:02) 수정 2021.06.0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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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부실채권 비율 '역대 최저'...0.62%
- "오염된 지표"...금융건전성 파악 어려워
- '한계 기업'·'자영업자'가 빌린 돈이 최대 취약 고리
- '금융 정상화' 코앞...부실 규모부터 정확히 알아야


빌려줬다가 떼일 확률이 높은 돈, 이걸 점잖게 말하면 '부실채권'이라고 합니다. 요즘 이게 정말 낮아졌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3월 말 기준으로 0.62%입니다.


부실채권 비율은 2018년 말에 0.97%이던 것이 2019년 말에 0.77%, 2020년 말에는 0.64%를 기록했습니다. 그게 0.62%까지 떨어졌습니다.

부실채권 비율이 낮아졌으니 지금 우리 금융 시스템은 견실한 걸까요? 코로나 19가 '없던' 시절보다도?

■'장밋빛' 부실채권 비율·연체율..."오염된 지표"

금융권에서 이 부실채권 비율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빌린 돈을 못 갚는 비율인 연체율도 마찬가지입니다. 3월 기준 0.28%, 지난해 12월에 이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 조치가 지속됐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대출이자 상환을 미뤄주고, 만기를 늘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코로나 19 사태 초기에 시행된 예외적인 규제 완화 조치는 하반기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그래서 '오염된 지표'라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우리 금융 시스템의 부실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부실채권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증가할수록 은행은 충격을 흡수할만한 돈을 더 모아둬야 합니다. 다른 기업이나 가계에 대출할 돈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정확한 부실 규모를 알 수는 없는 상태입니다. '혼선'이 오는 이유입니다.

■'금융 정상화'가 온다...풀어준 대출 조이기

우리 금융 시스템은 지금 코로나 19 출구전략을 찾고 있습니다.

초저금리 시대 속에 '돈의 힘'으로 온갖 자산 가격표를 새로 갈아치웠고, 그 아래로는 빌린 돈이 비정상적인 홍수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예외적인 규제 완화 조치도 조만간 '정상화'의 길을 밟을 겁니다. 유동성 홍수에 가려져 있던 우리 금융 시스템의 취약 고리가 그때 가서야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돈 못 갚을 기업 늘었다...40.9%

현재 가려져 있는 취약 고리로는 한계에 다다른 일부 기업과 자영업자가 꼽힙니다.

한국은행 3월 발표가 참고 거리입니다.

한은은 2,175개 상장 기업들에 기준치 3개를 제시했습니다. 이자보상배율, 차입금상환배율, 부채비율입니다. 이 기준치 중에 2개를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을 '주의 기업'으로 분류했습니다.


'주의 기업'이 빌린 돈의 비중, 이게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40.9%로 올랐습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전체 기업이 빌린 돈 403조 원 중에 40.9%가 떼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여행 안 가고 식당 방문이 줄었는데, 이런 업종에 속한 회사가 '주의' 판정을 더 받았겠죠. 대출 비중으로 보면 지역 경제의 허리를 받치는 기계장비 업체나 조선업체가 빌린 돈이 많았다는 게 한은 분석입니다.

■'고위험 자영업자' 20만...8만 가구 늘었다

한은은 '자영업 고위험가구'도 지목했습니다.

'고위험'에 두 가지 기준을 세웠습니다. 소득대비 원리금 상환 규모를 말하는 DSR, 전체 자산 중에 빌린 돈을 말하는 DTA, 두 가지가 모두 위험 수준인 자영업자들을 '고위험'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자영업 고위험가구'는 지난해 12월 기준 19만 2천 가구로 집계됐습니다. 코로나 19가 시작되던 지난해 3월 10만 9천 가구였던 게 2배 가까이 증가한 셈입니다.

이들이 빌린 돈은 지난해 3월 말 38조 7천억 원에서 지난해 12월 말 76조 6천억 원으로 팽창했습니다.

지난해 자영업자 매출은 대부분 참담한 수준이었겠죠. 빌린 돈은 급증했는데, 이걸 갚을 여력은 줄면서 생긴 상황인 겁니다.

특히 '고위험 자영업자' 중에 중·저소득층 비중이 59%였습니다. 이들이 앞으로 '금융 정상화' 과정에서 우리 경제에서 발견될 가장 취약한 고리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확한 부실 규모, 알아야 할 때 됐다!

다시 '부실채권'으로 돌아갑니다.

역대 최저라는 부실채권 비율, 이것만 바라본다면 경제 금융 시스템이 지금 얼마나 부실한 지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게 됩니다.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인데, 이를 마주할 두 눈을 가리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요즘처럼 수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백신 접종 속도도 더 빨라진다면 느슨해져 있는 금융규제를 다시 조여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조인다면 앞에서 지적한 취약 고리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한숨은 더욱 높아질 겁니다.

차근차근 해결하는 게 금융당국이 할 일입니다. 맨 먼저 할 일은 정확하게 부실 규모를 측정하는 겁니다. 돈 빌린 사람들이 얼마나 못 갚는 건지, 이젠 알아야 할 때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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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 정상화’ 시계는 돌아가는데, ‘혼선’주는 지표
    • 입력 2021-06-06 07:02:03
    • 수정2021-06-06 11:37:48
    취재K
<strong>- 부실채권 비율 '역대 최저'...0.62%<br />- "오염된 지표"...금융건전성 파악 어려워 <br />- '한계 기업'·'자영업자'가 빌린 돈이 최대 취약 고리 <br /></strong><strong>- '금융 정상화' 코앞...부실 규모부터 정확히 알아야</strong>

빌려줬다가 떼일 확률이 높은 돈, 이걸 점잖게 말하면 '부실채권'이라고 합니다. 요즘 이게 정말 낮아졌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3월 말 기준으로 0.62%입니다.


부실채권 비율은 2018년 말에 0.97%이던 것이 2019년 말에 0.77%, 2020년 말에는 0.64%를 기록했습니다. 그게 0.62%까지 떨어졌습니다.

부실채권 비율이 낮아졌으니 지금 우리 금융 시스템은 견실한 걸까요? 코로나 19가 '없던' 시절보다도?

■'장밋빛' 부실채권 비율·연체율..."오염된 지표"

금융권에서 이 부실채권 비율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빌린 돈을 못 갚는 비율인 연체율도 마찬가지입니다. 3월 기준 0.28%, 지난해 12월에 이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 조치가 지속됐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대출이자 상환을 미뤄주고, 만기를 늘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코로나 19 사태 초기에 시행된 예외적인 규제 완화 조치는 하반기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그래서 '오염된 지표'라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우리 금융 시스템의 부실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부실채권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증가할수록 은행은 충격을 흡수할만한 돈을 더 모아둬야 합니다. 다른 기업이나 가계에 대출할 돈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정확한 부실 규모를 알 수는 없는 상태입니다. '혼선'이 오는 이유입니다.

■'금융 정상화'가 온다...풀어준 대출 조이기

우리 금융 시스템은 지금 코로나 19 출구전략을 찾고 있습니다.

초저금리 시대 속에 '돈의 힘'으로 온갖 자산 가격표를 새로 갈아치웠고, 그 아래로는 빌린 돈이 비정상적인 홍수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예외적인 규제 완화 조치도 조만간 '정상화'의 길을 밟을 겁니다. 유동성 홍수에 가려져 있던 우리 금융 시스템의 취약 고리가 그때 가서야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돈 못 갚을 기업 늘었다...40.9%

현재 가려져 있는 취약 고리로는 한계에 다다른 일부 기업과 자영업자가 꼽힙니다.

한국은행 3월 발표가 참고 거리입니다.

한은은 2,175개 상장 기업들에 기준치 3개를 제시했습니다. 이자보상배율, 차입금상환배율, 부채비율입니다. 이 기준치 중에 2개를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을 '주의 기업'으로 분류했습니다.


'주의 기업'이 빌린 돈의 비중, 이게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40.9%로 올랐습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전체 기업이 빌린 돈 403조 원 중에 40.9%가 떼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여행 안 가고 식당 방문이 줄었는데, 이런 업종에 속한 회사가 '주의' 판정을 더 받았겠죠. 대출 비중으로 보면 지역 경제의 허리를 받치는 기계장비 업체나 조선업체가 빌린 돈이 많았다는 게 한은 분석입니다.

■'고위험 자영업자' 20만...8만 가구 늘었다

한은은 '자영업 고위험가구'도 지목했습니다.

'고위험'에 두 가지 기준을 세웠습니다. 소득대비 원리금 상환 규모를 말하는 DSR, 전체 자산 중에 빌린 돈을 말하는 DTA, 두 가지가 모두 위험 수준인 자영업자들을 '고위험'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자영업 고위험가구'는 지난해 12월 기준 19만 2천 가구로 집계됐습니다. 코로나 19가 시작되던 지난해 3월 10만 9천 가구였던 게 2배 가까이 증가한 셈입니다.

이들이 빌린 돈은 지난해 3월 말 38조 7천억 원에서 지난해 12월 말 76조 6천억 원으로 팽창했습니다.

지난해 자영업자 매출은 대부분 참담한 수준이었겠죠. 빌린 돈은 급증했는데, 이걸 갚을 여력은 줄면서 생긴 상황인 겁니다.

특히 '고위험 자영업자' 중에 중·저소득층 비중이 59%였습니다. 이들이 앞으로 '금융 정상화' 과정에서 우리 경제에서 발견될 가장 취약한 고리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확한 부실 규모, 알아야 할 때 됐다!

다시 '부실채권'으로 돌아갑니다.

역대 최저라는 부실채권 비율, 이것만 바라본다면 경제 금융 시스템이 지금 얼마나 부실한 지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게 됩니다.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인데, 이를 마주할 두 눈을 가리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요즘처럼 수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백신 접종 속도도 더 빨라진다면 느슨해져 있는 금융규제를 다시 조여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조인다면 앞에서 지적한 취약 고리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한숨은 더욱 높아질 겁니다.

차근차근 해결하는 게 금융당국이 할 일입니다. 맨 먼저 할 일은 정확하게 부실 규모를 측정하는 겁니다. 돈 빌린 사람들이 얼마나 못 갚는 건지, 이젠 알아야 할 때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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