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도시 양봉’ 취지는 좋지만…이웃들 벌쏘임 피해 어쩌나

입력 2021.06.09 (08:01) 수정 2021.06.0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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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살 딸을 키우는 전서현 씨는 최근 아찔한 일을 겪었습니다. 지난달 31일 상추를 뜯으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벌에 머리를 쏘여 응급실 치료까지 받은 겁니다.

지난해부터 집안에 벌이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사고를 당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딸과 함께 옥상에서 물놀이를 즐겨 하던 전 씨는 그날 이후로는 옥상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 지난 4월 26일, 이상혁 씨가 운영하는 편의점에는 엄청난 벌떼가 몰려왔습니다. 너무 놀라 119에 신고했고, 소방관들이 2시간 넘게 벌을 수거한 뒤에야 영업을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중순에는 음료수를 고르던 손님 한 명이 벌에 목을 쏘이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 씨는 손님뿐 아니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도 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 주택가 한가운데서 '양봉'…법적 제재 없고 실태 파악도 어려워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빌라 옥상에는 꿀벌이 자라고 있습니다.

환경을 살리고 도시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이른바 '도시양봉'입니다. 도시는 농촌에 비해 농약의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꿀벌의 활동으로 도시에 꽃들이 많아지고 곤충과 소형 새들이 유입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취지인 만큼, 서울시나 각 자치구에서도 양봉 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서울 시내 공원과 자치구 텃밭 양봉장 등 24개소에 332통의 봉군이 있습니다.

30봉군 이하 소규모 양봉의 경우에는, 아예 양봉 농가로 등록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벌을 키울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양봉이 이뤄지고 있는지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장안동 옥상 사례도 이렇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양봉입니다. 이곳에서 벌을 치는 한 주민은 "취미인 동시에 건강 먹거리를 챙기기 위한 것"이라며 "순수 100% 자연 꿀을 직접 채취해서 먹으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양봉, 불법이 아닙니다.

소나 돼지, 닭과 같은 가축은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심에서 키울 수 없게 돼 있지만, 꿀벌은 그런 제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KBS가 만난 장안동의 양봉가도 "선량한 소시민의 입장에서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테두리 내에서, 취미에 걸맞은 몇 통을 가지고 내 건물, 내 옥상에서 순수하게 취미로 양봉하는 것뿐"이라며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웃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는 '교육'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학교나 학부모들이 벌의 속성이나 이로운 점, 어떤 경우 벌을 자극할 수 있는지 등을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필요"…배려와 상생 되새겨야

주성호 서울시 도시농업지원팀장은 도시양봉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주 팀장은 "여가와 취미로 어르신들이 양봉을 많이 하고 계신다"며 "벌은 꼭 필요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웃에게 피해가 없는 양봉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도의적·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조화롭게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난감한 상황"이라며 "연구를 통해 (주변 민가와) 어느 정도 이격을 해야 된다거나, 어떻게 설치를 해야 한다든가 등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신호철 동대문구 동물보호팀장도 최근 벌과 관련해 5~6건 정도의 민원이 접수됐다며 "지금은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우리가 이해와 설득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신 팀장은 "구청 입장에서는 강제적으로 철거시킬 수 있는 방도가 없다"며 "벌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쏘이면 위험하다는 얘기까지 했지만 대화가 잘 안 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A 편의점에서 이틀 동안 잡힌 꿀벌의 모습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A 편의점에서 이틀 동안 잡힌 꿀벌의 모습

벌에 쏘인 피해자 전소현 씨는 치료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경찰과 소방, 구청 등 여러 곳에 문의해봤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민사 소송 역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소송이 될 가능성이 커, 변호사로부터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더 낫다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이웃분쟁조정센터도 소개받았지만 상대가 대화할 의사가 없다 보니, 더 이상의 조정은 진행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 씨는 "(양봉가는) 저한테 계속 벌은 상생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말한다"며 "상생하며 살아가는 그 벌들이 이웃 주민한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본인만 모르시는 것 같다"고 호소했습니다.

사람과 벌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선, 결국 서로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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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09 08:01:09
    • 수정2021-06-09 14:13:15
    취재후·사건후

# 5살 딸을 키우는 전서현 씨는 최근 아찔한 일을 겪었습니다. 지난달 31일 상추를 뜯으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벌에 머리를 쏘여 응급실 치료까지 받은 겁니다.

지난해부터 집안에 벌이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사고를 당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딸과 함께 옥상에서 물놀이를 즐겨 하던 전 씨는 그날 이후로는 옥상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 지난 4월 26일, 이상혁 씨가 운영하는 편의점에는 엄청난 벌떼가 몰려왔습니다. 너무 놀라 119에 신고했고, 소방관들이 2시간 넘게 벌을 수거한 뒤에야 영업을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중순에는 음료수를 고르던 손님 한 명이 벌에 목을 쏘이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 씨는 손님뿐 아니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도 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 주택가 한가운데서 '양봉'…법적 제재 없고 실태 파악도 어려워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빌라 옥상에는 꿀벌이 자라고 있습니다.

환경을 살리고 도시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이른바 '도시양봉'입니다. 도시는 농촌에 비해 농약의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꿀벌의 활동으로 도시에 꽃들이 많아지고 곤충과 소형 새들이 유입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취지인 만큼, 서울시나 각 자치구에서도 양봉 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서울 시내 공원과 자치구 텃밭 양봉장 등 24개소에 332통의 봉군이 있습니다.

30봉군 이하 소규모 양봉의 경우에는, 아예 양봉 농가로 등록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벌을 키울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양봉이 이뤄지고 있는지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장안동 옥상 사례도 이렇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양봉입니다. 이곳에서 벌을 치는 한 주민은 "취미인 동시에 건강 먹거리를 챙기기 위한 것"이라며 "순수 100% 자연 꿀을 직접 채취해서 먹으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양봉, 불법이 아닙니다.

소나 돼지, 닭과 같은 가축은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심에서 키울 수 없게 돼 있지만, 꿀벌은 그런 제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KBS가 만난 장안동의 양봉가도 "선량한 소시민의 입장에서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테두리 내에서, 취미에 걸맞은 몇 통을 가지고 내 건물, 내 옥상에서 순수하게 취미로 양봉하는 것뿐"이라며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웃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는 '교육'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학교나 학부모들이 벌의 속성이나 이로운 점, 어떤 경우 벌을 자극할 수 있는지 등을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필요"…배려와 상생 되새겨야

주성호 서울시 도시농업지원팀장은 도시양봉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주 팀장은 "여가와 취미로 어르신들이 양봉을 많이 하고 계신다"며 "벌은 꼭 필요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웃에게 피해가 없는 양봉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도의적·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조화롭게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난감한 상황"이라며 "연구를 통해 (주변 민가와) 어느 정도 이격을 해야 된다거나, 어떻게 설치를 해야 한다든가 등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신호철 동대문구 동물보호팀장도 최근 벌과 관련해 5~6건 정도의 민원이 접수됐다며 "지금은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우리가 이해와 설득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신 팀장은 "구청 입장에서는 강제적으로 철거시킬 수 있는 방도가 없다"며 "벌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쏘이면 위험하다는 얘기까지 했지만 대화가 잘 안 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A 편의점에서 이틀 동안 잡힌 꿀벌의 모습
벌에 쏘인 피해자 전소현 씨는 치료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경찰과 소방, 구청 등 여러 곳에 문의해봤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민사 소송 역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소송이 될 가능성이 커, 변호사로부터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더 낫다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이웃분쟁조정센터도 소개받았지만 상대가 대화할 의사가 없다 보니, 더 이상의 조정은 진행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 씨는 "(양봉가는) 저한테 계속 벌은 상생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말한다"며 "상생하며 살아가는 그 벌들이 이웃 주민한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본인만 모르시는 것 같다"고 호소했습니다.

사람과 벌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선, 결국 서로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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