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조원 ‘먹튀’해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가상화폐 시장?

입력 2021.06.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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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글로벌’이라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모집책으로 추정된 인물이 SNS에 올린 글입니다. 이 거래소에 투자한 덕에 ‘벤츠’를 샀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글을 보고 소액으로 해당 가상화폐 거래소에 투자했다고 말하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투자금이 모두 3조 8천억 원입니다. ‘브이글로벌’이라는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투자자 예치금을 들고 잠적한 사건의 피해 규모입니다.

3조 8천억 원은 수사기관에서 밝힌 규모입니다. 또 4년여간 전체 가상화폐 관련 범죄 피해액은 5조 5천억 원이라는 게 경찰청의 집계입니다.

전대미문의 사기 사건으로 불리는 ‘조희팔 사건’의 피해액이 공식적으로 2조 원, 실제로는 4~5조 원대에 이를 거라는 추정도 나옵니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자금 먹튀’ 사건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브이글로벌’ 사건은 경찰에서 70여 명을 입건해 수사 중이지만, 피해자들은 검거보다는 투자금 ‘회수’를 바라고 있습니다.

투자금 돌려받기가 어려운 탓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위장계좌’가 지목받고 있습니다.


■ 개인 계좌로 투자금 받은 거래소

‘브이글로벌’은 지난 4월 중순 이후 대담한 수법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때 일부 모집책들은 ‘브이글로벌’이라는 이름의 법인계좌가 아닌 타인 명의 계좌를 내밀어 투자금을 모았습니다.

회사 임직원 명의의 계좌였습니다. 투자자들에게는 “회사계좌가 잠깐 문제가 생겨서 그렇다, 우리는 신용을 먹고 사는 사람인데 당신을 속이겠냐” 등으로 회유하면서 안심하고 투자하라고 했습니다.

이 계좌로 들어간 돈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모릅니다. 아마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추적할만한 계좌에 대해선 경찰이 ‘기소 전 몰수’ 등을 신청해 피해금 회복에 활용하겠지만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돈까지 몰수할 수는 없습니다.


■‘먹튀’ 공통점은 ‘위장계좌’

‘브이글로벌’뿐 아니라 일부 거래소에서는 이 같은 위장계좌를 공공연히 쓰고 있다고 합니다. 해당 거래소 통장으로는 투자금을 모으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은행에서 계좌 거래 중지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엔 거래소 법인계좌가 아닌 특정 법무법인의 계좌로 입금하라는 거래소도 있다고 합니다. 법무법인 계좌로 투자금을 모으면, 역시 투자금을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일단 거래소 명의의 계좌가 아니면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래소에서 타인 계좌로 입금을 강요하면서 “잠시 거래소 계좌에 전산 오류가 생겨서”라는 식으로 둘러댄다면 더욱 의심해야 합니다.


■ 80대 피해자 만나봤더니...“코인은 뭔지도 몰라”

문 닫은 ‘브이글로벌’ 거래소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그 앞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80대 피해자를 만났습니다. 자신의 돈을 가로챈 인물을 찾아 직접 사무실로 온 겁니다.

80대 정 모 씨는 600만 원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정 씨가 입금한 계좌도 모집책의 ‘위장계좌’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집 보증금을 빼서 투자금을 넣었다는 게 정 씨의 이야기입니다.

정 씨에게 ‘코인’에 대해서 아는지 물었습니다. 정 씨는 “뭔지는 모르고, 컴퓨터 잘하는 사람이 돈 벌 수 있다고 해서 넣게 됐다”고만 말했습니다.


■ 금융당국, 위장계좌 단속 착수

금융당국은 정 씨같이 투자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피해자가 더 생기는 걸 가장 경계하고 있습니다. 원성이 쌓일수록 가상화폐 관리 주무 부처로 지정된 ‘금융위원회 책임론’이 제기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실명계좌를 써야 하는 9월 말부터는 예치금을 들고 잠적하는 사건이 거의 사라질 전망입니다. 문제는 그때까지 발생할 수 있는 이와 유사한 사건들입니다. 갑자기 소형 거래소가 투자자들의 예치금을 들고 잠적해도 손 쓰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단 당국의 움직임이 바빠졌습니다.

금융위는 이번 달부터 가상화폐 거래소의 위장계좌를 전수 조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거래소 명의로 되지 않은 통장으로 투자금을 받는다면 금융기관이 모두 당국에 신고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신고에 기댄 전수조사가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지는 지켜볼 대목입니다.

앞으로 9월까지 ‘브이글로벌’과 비슷한 사건이 또 나오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그나마 법인 명의 계좌로 투자금을 모은다면 거래소가 예치금을 들고 잠적하더라도 투자자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브이글로벌’ 사례처럼 위장계좌를 쓰기 시작한다면 철저히 의심해야 합니다. 내 투자금을 잃고도 어디로 은닉됐는지 행방도 못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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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 조원 ‘먹튀’해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가상화폐 시장?
    • 입력 2021-06-10 07:00:26
    취재K

‘브이글로벌’이라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모집책으로 추정된 인물이 SNS에 올린 글입니다. 이 거래소에 투자한 덕에 ‘벤츠’를 샀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글을 보고 소액으로 해당 가상화폐 거래소에 투자했다고 말하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투자금이 모두 3조 8천억 원입니다. ‘브이글로벌’이라는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투자자 예치금을 들고 잠적한 사건의 피해 규모입니다.

3조 8천억 원은 수사기관에서 밝힌 규모입니다. 또 4년여간 전체 가상화폐 관련 범죄 피해액은 5조 5천억 원이라는 게 경찰청의 집계입니다.

전대미문의 사기 사건으로 불리는 ‘조희팔 사건’의 피해액이 공식적으로 2조 원, 실제로는 4~5조 원대에 이를 거라는 추정도 나옵니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자금 먹튀’ 사건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브이글로벌’ 사건은 경찰에서 70여 명을 입건해 수사 중이지만, 피해자들은 검거보다는 투자금 ‘회수’를 바라고 있습니다.

투자금 돌려받기가 어려운 탓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위장계좌’가 지목받고 있습니다.


■ 개인 계좌로 투자금 받은 거래소

‘브이글로벌’은 지난 4월 중순 이후 대담한 수법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때 일부 모집책들은 ‘브이글로벌’이라는 이름의 법인계좌가 아닌 타인 명의 계좌를 내밀어 투자금을 모았습니다.

회사 임직원 명의의 계좌였습니다. 투자자들에게는 “회사계좌가 잠깐 문제가 생겨서 그렇다, 우리는 신용을 먹고 사는 사람인데 당신을 속이겠냐” 등으로 회유하면서 안심하고 투자하라고 했습니다.

이 계좌로 들어간 돈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모릅니다. 아마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추적할만한 계좌에 대해선 경찰이 ‘기소 전 몰수’ 등을 신청해 피해금 회복에 활용하겠지만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돈까지 몰수할 수는 없습니다.


■‘먹튀’ 공통점은 ‘위장계좌’

‘브이글로벌’뿐 아니라 일부 거래소에서는 이 같은 위장계좌를 공공연히 쓰고 있다고 합니다. 해당 거래소 통장으로는 투자금을 모으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은행에서 계좌 거래 중지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엔 거래소 법인계좌가 아닌 특정 법무법인의 계좌로 입금하라는 거래소도 있다고 합니다. 법무법인 계좌로 투자금을 모으면, 역시 투자금을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일단 거래소 명의의 계좌가 아니면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래소에서 타인 계좌로 입금을 강요하면서 “잠시 거래소 계좌에 전산 오류가 생겨서”라는 식으로 둘러댄다면 더욱 의심해야 합니다.


■ 80대 피해자 만나봤더니...“코인은 뭔지도 몰라”

문 닫은 ‘브이글로벌’ 거래소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그 앞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80대 피해자를 만났습니다. 자신의 돈을 가로챈 인물을 찾아 직접 사무실로 온 겁니다.

80대 정 모 씨는 600만 원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정 씨가 입금한 계좌도 모집책의 ‘위장계좌’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집 보증금을 빼서 투자금을 넣었다는 게 정 씨의 이야기입니다.

정 씨에게 ‘코인’에 대해서 아는지 물었습니다. 정 씨는 “뭔지는 모르고, 컴퓨터 잘하는 사람이 돈 벌 수 있다고 해서 넣게 됐다”고만 말했습니다.


■ 금융당국, 위장계좌 단속 착수

금융당국은 정 씨같이 투자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피해자가 더 생기는 걸 가장 경계하고 있습니다. 원성이 쌓일수록 가상화폐 관리 주무 부처로 지정된 ‘금융위원회 책임론’이 제기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실명계좌를 써야 하는 9월 말부터는 예치금을 들고 잠적하는 사건이 거의 사라질 전망입니다. 문제는 그때까지 발생할 수 있는 이와 유사한 사건들입니다. 갑자기 소형 거래소가 투자자들의 예치금을 들고 잠적해도 손 쓰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단 당국의 움직임이 바빠졌습니다.

금융위는 이번 달부터 가상화폐 거래소의 위장계좌를 전수 조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거래소 명의로 되지 않은 통장으로 투자금을 받는다면 금융기관이 모두 당국에 신고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신고에 기댄 전수조사가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지는 지켜볼 대목입니다.

앞으로 9월까지 ‘브이글로벌’과 비슷한 사건이 또 나오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그나마 법인 명의 계좌로 투자금을 모은다면 거래소가 예치금을 들고 잠적하더라도 투자자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브이글로벌’ 사례처럼 위장계좌를 쓰기 시작한다면 철저히 의심해야 합니다. 내 투자금을 잃고도 어디로 은닉됐는지 행방도 못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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