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카렌반군마저…멀어지는 미얀마 연방군의 꿈

입력 2021.06.11 (07:01) 수정 2021.06.1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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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내 최대 소수민족은 500만 카렌족이다. 72년째 독립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남부 국경 지대를 장악하고 있는 카렌민족해방군(KNLA)은 탱크는 물론 중화기로 무장한 수만 명의 병력을 갖고 있다.

전투가 시작되면 마을 이장이 곧바로 중대장으로 바뀌는 '군관 일치' 사회다. 기독교를 믿고 카렌어를 쓴다. 민족의 꿈은 오직 하나 '독립'이다.

카렌반군이 또 반 쿠데타 진영의 국민통합정부(NUG)와의 공식적인 연대를 거부했다. 국민참여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연방군인 시민방위군 (People's Defense Force) 창설에 큰 악재다.

KNU, 카렌민족해방군(KNLA)의 성명서 (9일) “카렌혁명 역사에 이어온 정의의 전선에서, 카렌족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고 있다. 미얀마 역사상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중요한 순간이다.  KNLA는 과거 NCA(평화협정)의 원칙을 분명하게 이행 할 것을 천명한다”KNU, 카렌민족해방군(KNLA)의 성명서 (9일) “카렌혁명 역사에 이어온 정의의 전선에서, 카렌족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고 있다. 미얀마 역사상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중요한 순간이다. KNLA는 과거 NCA(평화협정)의 원칙을 분명하게 이행 할 것을 천명한다”

인터넷매체 이라와디는 9일 "카렌민족해방군(KNLA)이 지난 2015년 체결된 NCA협정을 분명하게 준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얀마에서 독립투쟁을 해 온 8개 주요 소수민족 반군은 지난 2015년, 미얀마 정부와 교전을 중단하고 평화적 협상을 시작한다는 'NCA협정'을 체결했다.


카렌 반군 지도자들이 뜬금없이 이 협정을 명분으로 정부군과의 교전을 반대한다. 카렌반군의 '소 모뚜 사이 포'(Saw Mutu Sae Poe)사령관은 "지금은 전투보다 대화로 풀어나갈 때라고 밝혔다"

카렌반군 지도자인 ‘소 모뚜’ 사령관과 쿠데타 주역 민아웅 흘라잉 사령관. 2019년카렌반군 지도자인 ‘소 모뚜’ 사령관과 쿠데타 주역 민아웅 흘라잉 사령관. 2019년

거리에선 미얀마 시민들이 죽어가는데, 카렌반군 지도자는 왜 돌아섰을까?


이들 소수민족 반군과 국민통합정부가 함께 시민방위군을 만들어 쿠데타군부와 맞서는 계획이 통째로 흔들린다. 우리 언론보도만 보면 언제든 연방군이 힘을 모아 군부를 무너뜨릴 것 같지만...


사실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이유가 있다. 이들은 당초 '적'이였다. 우리와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카렌 반군, 집집마다 소형화기를 갖고 있다. 시민 누구든 전투에  참여할 수 있다. 그렇게 70년 넘게 독립투쟁을 해왔다.카렌 반군, 집집마다 소형화기를 갖고 있다. 시민 누구든 전투에 참여할 수 있다. 그렇게 70년 넘게 독립투쟁을 해왔다.

미얀마에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있다. 카렌과 카친, 로힝야,샨족 등 모두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종교도 다르다.


2차대전이 일어나자 주류인 버마족과 함께 이들 모두 독립을 위해 승부를 걸었다. 카렌족(기독교)이나 로힝야족(이슬람)은 영국군에 가담했다. 이들을 설득해 독립전선을 만든 사람이 '아웅산 장군'이다. 그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후 10년이 지나면 '소수민족의 독립'을 약속했다.

하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 협정을 맺은 뒤 얼마 후 '아웅산장군'이 암살당한다. 48년, 해방된 미얀마는 금새 군사정부에 넘어간다. 소수민족 독립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카렌민족해방군 등 소수민족들의 독립 투쟁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60년 넘게 지속된 군사정부가 끝나고, 2016년 비로소 미얀마에 '아웅산 수 치'가 이끄는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반군은 2015년 맺어진 NCA협정을 근거로 평화와 자치를 기대했다. 하지만 소수민족에 대한 자치 약속은 또 지켜지지 않았다.

미얀마 군부는 소수민족의 자치권 마저 위협했다(미얀마 광물의 대부분은 소수민족이 장악하고 있는 국경 산악지대에서 나온다). 탄압을 이어갔다. 탄압은 결국 2017년 로힝야족 집단 학살로 이어졌다.

강물로 떠내려온 로힝야족 시신들. 2017년 연합뉴스강물로 떠내려온 로힝야족 시신들. 2017년 연합뉴스

로힝야족 수만 명이 죽었다. 1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국제사회는 크게 분노했다.


그런데 이듬해 UN 진상조사위원회에 참석한 '아웅산 수치' 고문은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군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렇게 미얀마 민주세력과 소수민족이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완성됐다.

그 '아웅산 수 치' 고문의 국민통합 정부가 이번엔 군사쿠데타로 밀려났다. 지난 넉달동안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민 850여 명이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었다.


다급해진 국민통합정부가 다시 소수민족 반군에 손을 내밀었다. 72년만에 다시 함께 싸우자고 한다. 이 전선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두달쯤 전에 태국에서 오랫동안 카렌족과 무역을 해 온 한인 사업가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독립운동 하는데 일본 군부와 일본 민주진영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현재 반군 세력중에 국민통합정부(NUG)가 추진하는 시민방위군에 합류를 선언한 소수민족 반군은 서부 친주의 친국민전선(CNF)이 유일한다. 하지만 CNF의 군사력은 유명무실하다.


두번째로 큰 무장세력인 카친반군(KIA)은 연방군이 창설된다고 해도 카친(Kachin)지역내 지휘권은 카친반군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사실상 지휘권에 대한 거부다.

쿠데타 군부에 저항하기위해 '하나의 군대'를 만드는 계획은 쉽지 않아졌다. 하지만 국민통합정부(NUG)는 오늘도 강력한 저항과 연대의 메시지를 낸다. 그 NUG의 깃발을 들고, 오늘도 미얀마 청년들이 거리에서 총에 맞는다.

아라칸반군(AA)이  미얀마군 11명을 사살했다고 밝히며 노획한 무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이라와디아라칸반군(AA)이 미얀마군 11명을 사살했다고 밝히며 노획한 무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이라와디

백악관은 미얀마사태에 굳이 개입하고 싶지않다. 미 상원에서는 국민통합정부에게 과거 '로힝야족'학살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미국의 지원이 절실한 국민통합정부는 서둘러 로힝야족 주민들(60여 만 명이 군부의 학살을 피해 방글라데시에 피난중이다) 에게 투표권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지금 무슨 약속인들 못할까.

그러자 로힝야족이 살고있던 라카인주의 아라칸족 반군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미 ‘테드 류’ 상원의원의 트위터 “UN에 따르면 로힝야족 인종청소로 25,000명이 죽고 18,000명의 여성과 소녀들이 성폭행을 당했다. 과거 이 사건에 연루된 국민통합정부(NUG)는 이번에도 로힝야족을 포함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정책이 바뀔 때까지 NUG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미 ‘테드 류’ 상원의원의 트위터 “UN에 따르면 로힝야족 인종청소로 25,000명이 죽고 18,000명의 여성과 소녀들이 성폭행을 당했다. 과거 이 사건에 연루된 국민통합정부(NUG)는 이번에도 로힝야족을 포함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정책이 바뀔 때까지 NUG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외교적 해법은 더욱 희미해졌다. 6월 9일 중국 충칭에서 중국 외교부와 아세안(ASEAN) 10개국 외교장관이 만났다(사실상 중국이 부르니 달려갔다). 미얀마 군부의 외교장관도 참석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외교장관이 지난 아세안의 5개 합의를 무시한 미얀마 군부를 비판했다. 하지만 이 비난 역시 '왕이 외교부장'이 없는 별도의 장소에서 이뤄졌다.

쿠데타군부를 무너뜨리고 미얀마안에 수많은 소수민족이 평화로운 연방국가를 만드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것은 버마족의 생각일뿐. 다수 소수민족은 여전히 독립을 꿈꾼다.


한민족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래도 정의를 위해 함께 뭉쳐 싸우자'는 아웅산 장군의 외침은 72년이 지나 다시 이뤄질 수 있을까?

군부쿠데타에 맞서려는 반 쿠데타 진영 연대의 꿈이 멀어져간다. 미얀마 군정은 오늘 아웅산 장군의 딸에게 '부패혐의'를 추가했다. 다음 총선에서 '아웅 산 수치'나 그녀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없는 투표 용지를 원하는 미얀마 군부의 꿈은 실현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지난 8일, 카친주 시민들의 촛불 시위. 현수막에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라고 적혀 있다.지난 8일, 카친주 시민들의 촛불 시위. 현수막에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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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11 07:00:59
    • 수정2021-06-11 08:57:41
    특파원 리포트

미얀마내 최대 소수민족은 500만 카렌족이다. 72년째 독립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남부 국경 지대를 장악하고 있는 카렌민족해방군(KNLA)은 탱크는 물론 중화기로 무장한 수만 명의 병력을 갖고 있다.

전투가 시작되면 마을 이장이 곧바로 중대장으로 바뀌는 '군관 일치' 사회다. 기독교를 믿고 카렌어를 쓴다. 민족의 꿈은 오직 하나 '독립'이다.

카렌반군이 또 반 쿠데타 진영의 국민통합정부(NUG)와의 공식적인 연대를 거부했다. 국민참여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연방군인 시민방위군 (People's Defense Force) 창설에 큰 악재다.

KNU, 카렌민족해방군(KNLA)의 성명서 (9일) “카렌혁명 역사에 이어온 정의의 전선에서, 카렌족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고 있다. 미얀마 역사상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중요한 순간이다.  KNLA는 과거 NCA(평화협정)의 원칙을 분명하게 이행 할 것을 천명한다”
인터넷매체 이라와디는 9일 "카렌민족해방군(KNLA)이 지난 2015년 체결된 NCA협정을 분명하게 준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얀마에서 독립투쟁을 해 온 8개 주요 소수민족 반군은 지난 2015년, 미얀마 정부와 교전을 중단하고 평화적 협상을 시작한다는 'NCA협정'을 체결했다.


카렌 반군 지도자들이 뜬금없이 이 협정을 명분으로 정부군과의 교전을 반대한다. 카렌반군의 '소 모뚜 사이 포'(Saw Mutu Sae Poe)사령관은 "지금은 전투보다 대화로 풀어나갈 때라고 밝혔다"

카렌반군 지도자인 ‘소 모뚜’ 사령관과 쿠데타 주역 민아웅 흘라잉 사령관. 2019년
거리에선 미얀마 시민들이 죽어가는데, 카렌반군 지도자는 왜 돌아섰을까?


이들 소수민족 반군과 국민통합정부가 함께 시민방위군을 만들어 쿠데타군부와 맞서는 계획이 통째로 흔들린다. 우리 언론보도만 보면 언제든 연방군이 힘을 모아 군부를 무너뜨릴 것 같지만...


사실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이유가 있다. 이들은 당초 '적'이였다. 우리와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카렌 반군, 집집마다 소형화기를 갖고 있다. 시민 누구든 전투에  참여할 수 있다. 그렇게 70년 넘게 독립투쟁을 해왔다.
미얀마에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있다. 카렌과 카친, 로힝야,샨족 등 모두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종교도 다르다.


2차대전이 일어나자 주류인 버마족과 함께 이들 모두 독립을 위해 승부를 걸었다. 카렌족(기독교)이나 로힝야족(이슬람)은 영국군에 가담했다. 이들을 설득해 독립전선을 만든 사람이 '아웅산 장군'이다. 그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후 10년이 지나면 '소수민족의 독립'을 약속했다.

하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 협정을 맺은 뒤 얼마 후 '아웅산장군'이 암살당한다. 48년, 해방된 미얀마는 금새 군사정부에 넘어간다. 소수민족 독립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카렌민족해방군 등 소수민족들의 독립 투쟁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60년 넘게 지속된 군사정부가 끝나고, 2016년 비로소 미얀마에 '아웅산 수 치'가 이끄는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반군은 2015년 맺어진 NCA협정을 근거로 평화와 자치를 기대했다. 하지만 소수민족에 대한 자치 약속은 또 지켜지지 않았다.

미얀마 군부는 소수민족의 자치권 마저 위협했다(미얀마 광물의 대부분은 소수민족이 장악하고 있는 국경 산악지대에서 나온다). 탄압을 이어갔다. 탄압은 결국 2017년 로힝야족 집단 학살로 이어졌다.

강물로 떠내려온 로힝야족 시신들. 2017년 연합뉴스
로힝야족 수만 명이 죽었다. 1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국제사회는 크게 분노했다.


그런데 이듬해 UN 진상조사위원회에 참석한 '아웅산 수치' 고문은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군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렇게 미얀마 민주세력과 소수민족이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완성됐다.

그 '아웅산 수 치' 고문의 국민통합 정부가 이번엔 군사쿠데타로 밀려났다. 지난 넉달동안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민 850여 명이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었다.


다급해진 국민통합정부가 다시 소수민족 반군에 손을 내밀었다. 72년만에 다시 함께 싸우자고 한다. 이 전선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두달쯤 전에 태국에서 오랫동안 카렌족과 무역을 해 온 한인 사업가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독립운동 하는데 일본 군부와 일본 민주진영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현재 반군 세력중에 국민통합정부(NUG)가 추진하는 시민방위군에 합류를 선언한 소수민족 반군은 서부 친주의 친국민전선(CNF)이 유일한다. 하지만 CNF의 군사력은 유명무실하다.


두번째로 큰 무장세력인 카친반군(KIA)은 연방군이 창설된다고 해도 카친(Kachin)지역내 지휘권은 카친반군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사실상 지휘권에 대한 거부다.

쿠데타 군부에 저항하기위해 '하나의 군대'를 만드는 계획은 쉽지 않아졌다. 하지만 국민통합정부(NUG)는 오늘도 강력한 저항과 연대의 메시지를 낸다. 그 NUG의 깃발을 들고, 오늘도 미얀마 청년들이 거리에서 총에 맞는다.

아라칸반군(AA)이  미얀마군 11명을 사살했다고 밝히며 노획한 무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이라와디
백악관은 미얀마사태에 굳이 개입하고 싶지않다. 미 상원에서는 국민통합정부에게 과거 '로힝야족'학살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미국의 지원이 절실한 국민통합정부는 서둘러 로힝야족 주민들(60여 만 명이 군부의 학살을 피해 방글라데시에 피난중이다) 에게 투표권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지금 무슨 약속인들 못할까.

그러자 로힝야족이 살고있던 라카인주의 아라칸족 반군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미 ‘테드 류’ 상원의원의 트위터 “UN에 따르면 로힝야족 인종청소로 25,000명이 죽고 18,000명의 여성과 소녀들이 성폭행을 당했다. 과거 이 사건에 연루된 국민통합정부(NUG)는 이번에도 로힝야족을 포함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정책이 바뀔 때까지 NUG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외교적 해법은 더욱 희미해졌다. 6월 9일 중국 충칭에서 중국 외교부와 아세안(ASEAN) 10개국 외교장관이 만났다(사실상 중국이 부르니 달려갔다). 미얀마 군부의 외교장관도 참석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외교장관이 지난 아세안의 5개 합의를 무시한 미얀마 군부를 비판했다. 하지만 이 비난 역시 '왕이 외교부장'이 없는 별도의 장소에서 이뤄졌다.

쿠데타군부를 무너뜨리고 미얀마안에 수많은 소수민족이 평화로운 연방국가를 만드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것은 버마족의 생각일뿐. 다수 소수민족은 여전히 독립을 꿈꾼다.


한민족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래도 정의를 위해 함께 뭉쳐 싸우자'는 아웅산 장군의 외침은 72년이 지나 다시 이뤄질 수 있을까?

군부쿠데타에 맞서려는 반 쿠데타 진영 연대의 꿈이 멀어져간다. 미얀마 군정은 오늘 아웅산 장군의 딸에게 '부패혐의'를 추가했다. 다음 총선에서 '아웅 산 수치'나 그녀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없는 투표 용지를 원하는 미얀마 군부의 꿈은 실현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지난 8일, 카친주 시민들의 촛불 시위. 현수막에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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