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기자들Q] 오보의 상처…‘주홍글씨’ 못 지우는 정정보도

입력 2021.06.1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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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보의 상처...주홍글씨 못 지우는 정정보도

"정정보도 받아봤자 별 소용없습니다. 또 기사를 쓸까 무섭기도 하고요. 기사가 나오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네요." 수화기 너머로 인터뷰를 거절한다는 음성이 또 들려왔습니다.

이 분들은 기사의 주요 내용이 진실과 달라 언론중재위원회나 재판을 거쳐 어렵게 '정정보도' 결정을 받았습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분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건 "오보 크기만큼 동일하게 정정보도를 해달라"는 겁니다. 피해를 증언한 세 사례의 경우는 모두 인터넷에서의 '단독' 기사였고, 사실 확인이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막상 내가 당해보니 알겠더라"라고 합니다.

제목도 바뀌지 않은 채 장문의 원래 기사가 남아있고, 말미에 짧게 '바로잡습니다'라고 나와봤자 최초 오보의 낙인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인색한 정정보도..."300자 미만이 74%"

'질문하는 기자들 Q'의 이번 회차 주제는 언론의 인색한 '정정보도' 관행입니다.

언론중재법 제2조에 따르면 ‘정정보도’는 내용의 일부나 전부가 진실이 아닌 기사를 고쳐서 보도하는 개념입니다. 제15조에는 같은 채널이나 지면 등 원래 보도와 같은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오보가 나면 고쳐서 원래 기사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게 잘 게재하라는 게 법의 취지입니다.

실제로 언론사들은 '정정보도'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질문하는 기자들 Q는 올해 1월부터 5개월 동안 10개 종합지와 3개 주요 경제지에 나온 '정정'이나 '반론'보도를 살펴봤습니다.

94건이 파악됐습니다. 이 가운데 74% 가량이 300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과에도 인색했습니다. 단 10건 만이 사과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59건은 자체 수정이 이뤄졌습니다. 자체 수정은 평균 3일이 소요됐고, 대부분 표기 오류 등 단순 실수였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이나 재판을 거친 35건의 기사는 최초 보도에서 정정이나 반론까지 30일에서 120일이 소요됐습니다. 백신 수급 문제 등 대부분 사회적 파장이 큰 기사들이었습니다. 최초 기사의 제목이 바뀌지 않는 경우도 여러 건 발견됐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공간에서 잘못된 기사가 곳곳에 퍼지는 2차 피해도 심각합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선 자극적인 제목으로 뽑아서 조회수를 올리는데 더 집중한다든지 하니까 피해 확산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며 "2차 피해가 훨씬 더 주홍글씨로 피해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정정을 잘 하는 게 언론인의 자존심"

질문하는 기자들 Q의 자문을 맡고 있는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우리 언론이 '정정보도'에 인색한 이유를 크게 4가지로 진단했습니다.

홍원식 교수의 분석

1. 하이에나 저널리즘 : "보도 대상이 약점을 보이면 비판의 명분을 앞세워 물어뜯는 보도 행태가 문제" "비판 목적만 강조하다보니 사실 확인 소홀....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피해자가 발생"
2. 낙인 찍지 말아야 : "언론사들이 선입견적으로 누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낙인을 찍어놓고 집중적으로 비판을 하다보니, 나중에 잘못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더라도 정정하지 않거나 반론 충분히 담지 않아"
3. 말뿐인 동일성 원칙 : "동일한 채널, 동일한 지면 통해 동일 효과 발생하는 정정보도가 법의 원칙....그런데 합의 과정에서 축소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
4. 과도한 '단독' 경쟁 : "언론사들이 단독 보도를 통해 상을 받는 건 자랑스럽게 생각...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치욕이라고 생각" "오보시 보도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를 한 뒤 대안 제시가 중요"

이러한 언론의 관행을 두고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기사 삭제권 등 여러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 교수의 결론은 언론인들의 직업적 자존심을 지키자는 것이었습니다.

홍 교수는 "오보에 대해 정정을 잘하는 건 자존심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 척도"라며 "소송이나 언론중재위원회 때문에 정정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전달하는 언론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는 오는 13일(일) 밤 10시 35분에 KBS 1TV에서 방송됩니다. 김솔희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홍석우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방송은 '질문하는 기자들 Q' 의 KBS 홈페이지와 유튜브 계정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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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하는기자들Q] 오보의 상처…‘주홍글씨’ 못 지우는 정정보도
    • 입력 2021-06-12 10:02:18
    취재K


■ 오보의 상처...주홍글씨 못 지우는 정정보도

"정정보도 받아봤자 별 소용없습니다. 또 기사를 쓸까 무섭기도 하고요. 기사가 나오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네요." 수화기 너머로 인터뷰를 거절한다는 음성이 또 들려왔습니다.

이 분들은 기사의 주요 내용이 진실과 달라 언론중재위원회나 재판을 거쳐 어렵게 '정정보도' 결정을 받았습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분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건 "오보 크기만큼 동일하게 정정보도를 해달라"는 겁니다. 피해를 증언한 세 사례의 경우는 모두 인터넷에서의 '단독' 기사였고, 사실 확인이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막상 내가 당해보니 알겠더라"라고 합니다.

제목도 바뀌지 않은 채 장문의 원래 기사가 남아있고, 말미에 짧게 '바로잡습니다'라고 나와봤자 최초 오보의 낙인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인색한 정정보도..."300자 미만이 74%"

'질문하는 기자들 Q'의 이번 회차 주제는 언론의 인색한 '정정보도' 관행입니다.

언론중재법 제2조에 따르면 ‘정정보도’는 내용의 일부나 전부가 진실이 아닌 기사를 고쳐서 보도하는 개념입니다. 제15조에는 같은 채널이나 지면 등 원래 보도와 같은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오보가 나면 고쳐서 원래 기사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게 잘 게재하라는 게 법의 취지입니다.

실제로 언론사들은 '정정보도'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질문하는 기자들 Q는 올해 1월부터 5개월 동안 10개 종합지와 3개 주요 경제지에 나온 '정정'이나 '반론'보도를 살펴봤습니다.

94건이 파악됐습니다. 이 가운데 74% 가량이 300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과에도 인색했습니다. 단 10건 만이 사과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59건은 자체 수정이 이뤄졌습니다. 자체 수정은 평균 3일이 소요됐고, 대부분 표기 오류 등 단순 실수였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이나 재판을 거친 35건의 기사는 최초 보도에서 정정이나 반론까지 30일에서 120일이 소요됐습니다. 백신 수급 문제 등 대부분 사회적 파장이 큰 기사들이었습니다. 최초 기사의 제목이 바뀌지 않는 경우도 여러 건 발견됐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공간에서 잘못된 기사가 곳곳에 퍼지는 2차 피해도 심각합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선 자극적인 제목으로 뽑아서 조회수를 올리는데 더 집중한다든지 하니까 피해 확산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며 "2차 피해가 훨씬 더 주홍글씨로 피해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정정을 잘 하는 게 언론인의 자존심"

질문하는 기자들 Q의 자문을 맡고 있는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우리 언론이 '정정보도'에 인색한 이유를 크게 4가지로 진단했습니다.

홍원식 교수의 분석

1. 하이에나 저널리즘 : "보도 대상이 약점을 보이면 비판의 명분을 앞세워 물어뜯는 보도 행태가 문제" "비판 목적만 강조하다보니 사실 확인 소홀....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피해자가 발생"
2. 낙인 찍지 말아야 : "언론사들이 선입견적으로 누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낙인을 찍어놓고 집중적으로 비판을 하다보니, 나중에 잘못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더라도 정정하지 않거나 반론 충분히 담지 않아"
3. 말뿐인 동일성 원칙 : "동일한 채널, 동일한 지면 통해 동일 효과 발생하는 정정보도가 법의 원칙....그런데 합의 과정에서 축소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
4. 과도한 '단독' 경쟁 : "언론사들이 단독 보도를 통해 상을 받는 건 자랑스럽게 생각...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치욕이라고 생각" "오보시 보도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를 한 뒤 대안 제시가 중요"

이러한 언론의 관행을 두고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기사 삭제권 등 여러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 교수의 결론은 언론인들의 직업적 자존심을 지키자는 것이었습니다.

홍 교수는 "오보에 대해 정정을 잘하는 건 자존심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 척도"라며 "소송이나 언론중재위원회 때문에 정정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전달하는 언론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는 오는 13일(일) 밤 10시 35분에 KBS 1TV에서 방송됩니다. 김솔희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홍석우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방송은 '질문하는 기자들 Q' 의 KBS 홈페이지와 유튜브 계정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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