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중국 ‘죽음의 레이스’ 역시 ‘인재’…당서기는 자살, 27명 문책

입력 2021.06.13 (09:41) 수정 2021.06.1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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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간쑤성 바이인시 징타이현 황하스린 산악 마라톤 대회 (출처: 바이두)중국 간쑤성 바이인시 징타이현 황하스린 산악 마라톤 대회 (출처: 바이두)
지난 달 22일, 21명의 마라토너가 목숨을 잃은 중국 간쑤성(甘肃省) 바이인시(白银市) 징타이현(景泰县)에서 발생한 제4회 황하스린 100km 산악 마라톤 대회 사고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중국 간쑤성 합동조사단  기자회견,  6월 11일 (출처 : 바이두)중국 간쑤성 합동조사단 기자회견, 6월 11일 (출처 : 바이두)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레이스'...'총체적 관리 부실에 예견된 사고'

사고가 발생한 이후 간쑤성 위원회와 지방정부는 관련 기관들로 구성된 합동조사반을 꾸렸습니다.

10여 차례에 걸쳐 현장을 답사하고 대회 관계자 360여 명을 면담한 데 이어 각종 문서와 자료 800여 부를 열람해 대회 준비와 사건 경위, 현장 구조 상황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11일 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선 사고 당일 '날씨'를 꼽았습니다.

사고 당일 5월 22일 아침 9시 마라톤 대회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마라톤 대회는 5km 마라톤과 21km 산악 마라톤, 100km 산악 마라톤 등
세 개 대회가 함께 열렸습니다.
5km와 20km 대회는 오전에 모두 끝났지만 사고는 100km 산악 마라톤 대회에서 발생했습니다.

100km 산악 마라톤 (출처: AFP)100km 산악 마라톤 (출처: AFP)
100km 산악 마라톤 대회가 오후로 접어들면서 기온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수은주는 영상 4도에 불과했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한 바람에 우박, 진눈깨비가 몰아쳐 체감온도가 영하 5도에서 영하 3도에 불과했습니다.

생존한 한 선수는 "손가락 10개가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며 당시 날씨가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극한의 날씨가 이어졌지만, 대회 참가 선수들은 반바지에 반소매의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바람막이 등 조금이나마 추위에 맞설 장비는 전혀 갖추지 못했습니다.

산악 마라톤 대회 참가 선수들 (출처: 바이두)산악 마라톤 대회 참가 선수들 (출처: 바이두)
날씨도 문제지만 대회 주최 측인 직위원회 측의 '운영부실'과 '응급대응'이 더 큰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합동조사반은 대회가 열리기 전 대회 주최측인 바이인시와 징타이현 등이 기상당국으로 부터 강풍과 악천후가 예상된다는 기상정보를 통보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대회 중단이나 연기를 고려하지 않았고 선수들에게 방풍과 보온 장비를 갖추게 하고 의료장비와 인력을 추가 투입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했지만 이에 대한 대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부분 마라톤 코스가 해발 1,000미터가 넘고, 일부 구간은 해발이 2,230미터에 달하는 험준한 고지대에서 열리는 대회였는데도 돌발상황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대회 주최측이 기상정보와 대회 특성을 고려해 선수들에게 장비를 갖추라고 하거나 대회 자체를 열지 않았다면 대형 인명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통신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사고 당시 상황 파악이나 구조에도 허점이 드러났습니다.

밤샘 구조활동을 벌이는 구조대 (출처: 바이두)밤샘 구조활동을 벌이는 구조대 (출처: 바이두)
조난사고를 당한 선수들이 위치가 파악이 안되면서 사고 당일 오후부터 이어진 구조 수색 작업은 밤을 새웠고 다음 날 오전 9시 마지막 희생자가 발견될 때까지 21시간 동안 계속됐습니다.

대회 현장에 배치된 의료인력과 구조인력도 불충분해 양치기 목동 등 인근 마을 주민 100명이 총동원돼 선수들을 구조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여기에다 사고 당일 낮 12시부터 선수들의 구조 요청이 접수돼 구조되고 출동했고 오후 2시 10분쯤 대부분 선수들이 경기를 포기했지만, 대회 주최측은 경기 중단 선언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여성 선수는 출발 후 12시간이 다 된 밤 8시 40분에야 경기를 멈췄는데 그때까지
대회 관계자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사고가 일어났으니 경기를 중단하라는 통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대회 주최측의 대회 조직·관리·운영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응급 구조상황에 대한 대처와 체계도 부실했다고 합동조사반은 지적했습니다.

이 같은 부실한 대회 운영에 경기에 참여했던 172명의 선수 가운데 21명이 쓰러졌고 이들 대부분은 극한의 추위를 견디다 못해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27명 엄중 문책...당서기 '자살', 원인 조사중

간쑤성 합동조사반은 이번 사고 발생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회를 주최하거나 협찬한 간쑤성과 바이인시, 징타이현 등 16개 기관, 27명에 대해 엄중 문책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 가운데 5명은 이미 체포돼 사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회를 주최한 바이인시 위원회 당서기와 시장, 부시장은 엄중경고나 일정기간 승진이 제한되는 문책을 받았고 징타이현 현장은 해임됐습니다.

징타이현 서기 리쭈어비  (출처: 바이두)징타이현 서기 리쭈어비 (출처: 바이두)
그런데 문책 대상에 포함된 징타이현 당서기인 올해 57살인 리쭈어비(李作璧)가 간쑤성 합동조사단의 결과 발표를 이틀 앞두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지난 9일 한 남성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는데 이 남성이 리 서기라고
밝혔습니다.

타살 혐의는 없으며 정확한 사망원인을 조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방 정부의 고위층인 당서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

간쑤성 바이인시 징타이현 산악 마라톤 대회 개막식, 5월 22일 (출처: 바이두)간쑤성 바이인시 징타이현 산악 마라톤 대회 개막식, 5월 22일 (출처: 바이두)
리 서기는 지난달 산악 마라톤 대회 개막식에 참석했던 인물로, 사상 초유의 사고 발생과 이에 따른 관계기관의 조사 그리고 이후 문책 등을 우려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산악 마라톤' 등 고위험 스포츠 전면 중지

간쑤성 합동조사반은 마라톤 대회 사고 사망자 유가족들과 협의가 끝났고 부상자 1명은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고 직후 사망자 유가족들은 보험과 자연재해구호보험금 등 1인당 95만 위안, 우리 돈 1억 6천여만 원의 보상금을 제시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고 발생 초기 많은 유가족들은 보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원인 규명과 관련자 문책을 요구했는데 이후 이곳 현지 언론에서는 더 이상 유가족들에 대한 후속 기사를 찾아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간쑤성 바이인시 징타이현 산악 마라톤 대회  (출처:바이두)간쑤성 바이인시 징타이현 산악 마라톤 대회 (출처:바이두)
간쑤성 산악 마라톤 대회 이후 중국에서 열리려던 수십여 개의 각종 마라톤 대회가 줄줄이 취소됐습니다.

최근 중국 내 스포츠를 총괄하는 국가체육총국은 통지문에서 산악 마라톤 등 고위험 스포츠에 대해 잠정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언제 다시 대회를 열 수 있는지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21명의 목숨을 앗아가 세계 마라톤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될 이번 간쑤성 산악 마라톤 사고.

'무사안일주의', '형식주의', '관료주의'가 한데 어우러져 총체적으로 만들어낸 전형적인 '인재'로 결론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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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중국 ‘죽음의 레이스’ 역시 ‘인재’…당서기는 자살, 27명 문책
    • 입력 2021-06-13 09:41:30
    • 수정2021-06-13 17:38:33
    특파원 리포트
중국 간쑤성 바이인시 징타이현 황하스린 산악 마라톤 대회 (출처: 바이두)지난 달 22일, 21명의 마라토너가 목숨을 잃은 중국 간쑤성(甘肃省) 바이인시(白银市) 징타이현(景泰县)에서 발생한 제4회 황하스린 100km 산악 마라톤 대회 사고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중국 간쑤성 합동조사단  기자회견,  6월 11일 (출처 : 바이두)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레이스'...'총체적 관리 부실에 예견된 사고'

사고가 발생한 이후 간쑤성 위원회와 지방정부는 관련 기관들로 구성된 합동조사반을 꾸렸습니다.

10여 차례에 걸쳐 현장을 답사하고 대회 관계자 360여 명을 면담한 데 이어 각종 문서와 자료 800여 부를 열람해 대회 준비와 사건 경위, 현장 구조 상황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11일 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선 사고 당일 '날씨'를 꼽았습니다.

사고 당일 5월 22일 아침 9시 마라톤 대회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마라톤 대회는 5km 마라톤과 21km 산악 마라톤, 100km 산악 마라톤 등
세 개 대회가 함께 열렸습니다.
5km와 20km 대회는 오전에 모두 끝났지만 사고는 100km 산악 마라톤 대회에서 발생했습니다.

100km 산악 마라톤 (출처: AFP)100km 산악 마라톤 대회가 오후로 접어들면서 기온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수은주는 영상 4도에 불과했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한 바람에 우박, 진눈깨비가 몰아쳐 체감온도가 영하 5도에서 영하 3도에 불과했습니다.

생존한 한 선수는 "손가락 10개가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며 당시 날씨가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극한의 날씨가 이어졌지만, 대회 참가 선수들은 반바지에 반소매의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바람막이 등 조금이나마 추위에 맞설 장비는 전혀 갖추지 못했습니다.

산악 마라톤 대회 참가 선수들 (출처: 바이두)날씨도 문제지만 대회 주최 측인 직위원회 측의 '운영부실'과 '응급대응'이 더 큰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합동조사반은 대회가 열리기 전 대회 주최측인 바이인시와 징타이현 등이 기상당국으로 부터 강풍과 악천후가 예상된다는 기상정보를 통보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대회 중단이나 연기를 고려하지 않았고 선수들에게 방풍과 보온 장비를 갖추게 하고 의료장비와 인력을 추가 투입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했지만 이에 대한 대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부분 마라톤 코스가 해발 1,000미터가 넘고, 일부 구간은 해발이 2,230미터에 달하는 험준한 고지대에서 열리는 대회였는데도 돌발상황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대회 주최측이 기상정보와 대회 특성을 고려해 선수들에게 장비를 갖추라고 하거나 대회 자체를 열지 않았다면 대형 인명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통신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사고 당시 상황 파악이나 구조에도 허점이 드러났습니다.

밤샘 구조활동을 벌이는 구조대 (출처: 바이두)조난사고를 당한 선수들이 위치가 파악이 안되면서 사고 당일 오후부터 이어진 구조 수색 작업은 밤을 새웠고 다음 날 오전 9시 마지막 희생자가 발견될 때까지 21시간 동안 계속됐습니다.

대회 현장에 배치된 의료인력과 구조인력도 불충분해 양치기 목동 등 인근 마을 주민 100명이 총동원돼 선수들을 구조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여기에다 사고 당일 낮 12시부터 선수들의 구조 요청이 접수돼 구조되고 출동했고 오후 2시 10분쯤 대부분 선수들이 경기를 포기했지만, 대회 주최측은 경기 중단 선언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여성 선수는 출발 후 12시간이 다 된 밤 8시 40분에야 경기를 멈췄는데 그때까지
대회 관계자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사고가 일어났으니 경기를 중단하라는 통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대회 주최측의 대회 조직·관리·운영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응급 구조상황에 대한 대처와 체계도 부실했다고 합동조사반은 지적했습니다.

이 같은 부실한 대회 운영에 경기에 참여했던 172명의 선수 가운데 21명이 쓰러졌고 이들 대부분은 극한의 추위를 견디다 못해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27명 엄중 문책...당서기 '자살', 원인 조사중

간쑤성 합동조사반은 이번 사고 발생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회를 주최하거나 협찬한 간쑤성과 바이인시, 징타이현 등 16개 기관, 27명에 대해 엄중 문책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 가운데 5명은 이미 체포돼 사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회를 주최한 바이인시 위원회 당서기와 시장, 부시장은 엄중경고나 일정기간 승진이 제한되는 문책을 받았고 징타이현 현장은 해임됐습니다.

징타이현 서기 리쭈어비  (출처: 바이두)그런데 문책 대상에 포함된 징타이현 당서기인 올해 57살인 리쭈어비(李作璧)가 간쑤성 합동조사단의 결과 발표를 이틀 앞두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지난 9일 한 남성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는데 이 남성이 리 서기라고
밝혔습니다.

타살 혐의는 없으며 정확한 사망원인을 조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방 정부의 고위층인 당서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

간쑤성 바이인시 징타이현 산악 마라톤 대회 개막식, 5월 22일 (출처: 바이두)리 서기는 지난달 산악 마라톤 대회 개막식에 참석했던 인물로, 사상 초유의 사고 발생과 이에 따른 관계기관의 조사 그리고 이후 문책 등을 우려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산악 마라톤' 등 고위험 스포츠 전면 중지

간쑤성 합동조사반은 마라톤 대회 사고 사망자 유가족들과 협의가 끝났고 부상자 1명은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고 직후 사망자 유가족들은 보험과 자연재해구호보험금 등 1인당 95만 위안, 우리 돈 1억 6천여만 원의 보상금을 제시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고 발생 초기 많은 유가족들은 보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원인 규명과 관련자 문책을 요구했는데 이후 이곳 현지 언론에서는 더 이상 유가족들에 대한 후속 기사를 찾아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간쑤성 바이인시 징타이현 산악 마라톤 대회  (출처:바이두)간쑤성 산악 마라톤 대회 이후 중국에서 열리려던 수십여 개의 각종 마라톤 대회가 줄줄이 취소됐습니다.

최근 중국 내 스포츠를 총괄하는 국가체육총국은 통지문에서 산악 마라톤 등 고위험 스포츠에 대해 잠정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언제 다시 대회를 열 수 있는지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21명의 목숨을 앗아가 세계 마라톤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될 이번 간쑤성 산악 마라톤 사고.

'무사안일주의', '형식주의', '관료주의'가 한데 어우러져 총체적으로 만들어낸 전형적인 '인재'로 결론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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