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① 그 자리는 누구를 위한 ‘배려’인가?

입력 2021.06.14 (14:45) 수정 2021.06.1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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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버스, 지하철 등 우리가 매일 같이 이용하는 대중 교통 수단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 잘 지켜지고 있는가의 단순 여부를 떠나서 '임산부 배려석'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함의들을 살펴보기 위해
오늘부터 3편의 기사를 연재합니다. 속단하지 마시고 끝까지 기사를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① 임산부 배려석, 그 자리는 누구를 위한 '배려'인가?
② 불편한 진실, 나는 배려하는데... '공정'의 문제
③ 대안은 뭐니? "핑크 라이트, 인형..."

핑크색의 임산부 배려석에 비임산부 승객이 앉아 있다. 임산부는 다른  승객의 배려로 임산부 배려석 옆에 앉게 됐다. 임산부의 가방에는 ‘임산부 먼저라는 뱃지’가 달려있었다.핑크색의 임산부 배려석에 비임산부 승객이 앉아 있다. 임산부는 다른 승객의 배려로 임산부 배려석 옆에 앉게 됐다. 임산부의 가방에는 ‘임산부 먼저라는 뱃지’가 달려있었다.



월요일, 일주일의 시작입니다.
주말에 쉬었다지만 몸은 늘 그렇듯 개운치 않습니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지만, 지하철엔 빈자리가 없습니다.

전동차 안에 들어서면 시선이 멈추는 곳이 있습니다. 10년 가까이 왕복 4시간에 육박하는 출퇴근 길에 터득한 건 임산부 배려석 옆 자리에 앉는 겁니다. 전동차 한량 당 50여 개 좌석 가운데 임산부 배려석은 2자리, 그 옆 자리가 '명당'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좀 여유 있게 앉을 수 있고, 임산부가 앉는다 해도 불필요한 싸움(?)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건장한 남성이 옆에 앉게 됐을 때 1~2초 안에 승부가 나는 그 어깨싸움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임산부 배려석 옆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너무 빤히 보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곁눈질로 그분들의 신발과 가방, 옷차림 등을 살펴봅니다. 굳이 얼굴까지 보지 않아도 성별과 나이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산부 먼저'라는 뱃지를 가방에 달은 임산부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보다는 비임산부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경우가 많습니다. 임산부라도 뱃지를 달지 않고 다닐 수 있습니다.

물론 제 경험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루 4시간 가까이 지하철 타는 사람의 경험이라면 횟수가 더해지면서 나름의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엔 임산부로 보기에는 힘든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서서 눈을 흘겨보아도 그런 분들의 특징은 잠을 자고(?) 있거나 아니면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돼 있어서 저의 소심한 행동은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그칠 뿐입니다.

그런데 '임산부 먼저'라는 뱃지를 가방에 단 임산부가 그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밀려왔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임산부는 가방을 가슴 앞으로 메고 있었고, 전동차가 흔들림에 따라 그 임산부 뱃지도 좌우로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한 분의 고개는 아래로 고정돼 있었습니다.

보다 못해 임산부 배려석 옆에 있던 한 승객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했고, 그 모습을 지켜본 저는 임산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임산부 배려석 옆 임산부'라는 왠지 서글픈 상황이 사진에 담기게 됐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짐작하신 대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던 분은 신도림역에 가서야 눈을 떴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승강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한 임산부가 임산부 관련 카페에 올린 글과 사진입니다. 지하철은 탔는데 젊은 남성이 딱 하니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한 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한 남성 승객에 대해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   (출처 : 임산부 관련 카페에서 갈무리)한 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한 남성 승객에 대해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 (출처 : 임산부 관련 카페에서 갈무리)

임산부 관련 카페 글 중에서...

"젊은 남자가 앉아있다가 슬그머니 내 배와 뱃지를 보더니, 분명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모른척하고 갑자기 눈 감고 자는 척하면서 다리를 떨었다. 단전에서부터 화가 차오르는 느낌... 아니 자는 척하는데 다리는 왜 떨음?? "

격하게 공감하는 댓글이 이어졌고, "저는 비켜달라고 해요", "저는 툭툭 건들고 뱃지를 얼굴에 들이밀어요." 등의 나름의 대응책도 제시됐습니다.

"내리면서 그 남자 귀에 속삭이세요. '임신 축하드려요'"라는 댓글엔 "이런 현실에 화났는데 댓글 보고 빵 터졌네요."라는 재댓글까지...

과연 임산부 배려석은 누구를 위한 배려일까요?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지하철 고객센터로 접수된 민원 중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한 민원은 8,771건으로 월평균 730여 건에 이릅니다.

임산부 배려석이 도입된 건 2013년 12월인데요. 도입된 지 7년이 넘고 다른 지역의 지하철에서도 확대 운영되고 있지만 정작 임산부 그들 스스로조차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임산부 배려석'.

인구보건복지협회 2020년 온라인 설문 / 임산부 1500명·일반인 1500명

"임산부 54.1%, 일상생활에서 타인으로부터 배려를 받지 못했다"

'임산부 배려석'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왜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지, '공정'의 관점에서
그리고 대안은 뭐가 있는지 앞으로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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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산부 배려석]① 그 자리는 누구를 위한 ‘배려’인가?
    • 입력 2021-06-14 14:45:31
    • 수정2021-06-14 15:22:21
    취재K
버스, 지하철 등 우리가 매일 같이 이용하는 대중 교통 수단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 잘 지켜지고 있는가의 단순 여부를 떠나서 '임산부 배려석'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함의들을 살펴보기 위해<br />오늘부터 3편의 기사를 연재합니다. 속단하지 마시고 끝까지 기사를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br /><br /><strong>① 임산부 배려석, 그 자리는 누구를 위한 '배려'인가?</strong><br />② 불편한 진실, 나는 배려하는데... '공정'의 문제<br />③ 대안은 뭐니? "핑크 라이트, 인형..."
핑크색의 임산부 배려석에 비임산부 승객이 앉아 있다. 임산부는 다른  승객의 배려로 임산부 배려석 옆에 앉게 됐다. 임산부의 가방에는 ‘임산부 먼저라는 뱃지’가 달려있었다.


월요일, 일주일의 시작입니다.
주말에 쉬었다지만 몸은 늘 그렇듯 개운치 않습니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지만, 지하철엔 빈자리가 없습니다.

전동차 안에 들어서면 시선이 멈추는 곳이 있습니다. 10년 가까이 왕복 4시간에 육박하는 출퇴근 길에 터득한 건 임산부 배려석 옆 자리에 앉는 겁니다. 전동차 한량 당 50여 개 좌석 가운데 임산부 배려석은 2자리, 그 옆 자리가 '명당'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좀 여유 있게 앉을 수 있고, 임산부가 앉는다 해도 불필요한 싸움(?)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건장한 남성이 옆에 앉게 됐을 때 1~2초 안에 승부가 나는 그 어깨싸움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임산부 배려석 옆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너무 빤히 보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곁눈질로 그분들의 신발과 가방, 옷차림 등을 살펴봅니다. 굳이 얼굴까지 보지 않아도 성별과 나이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임산부 먼저'라는 뱃지를 가방에 달은 임산부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보다는 비임산부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경우가 많습니다. 임산부라도 뱃지를 달지 않고 다닐 수 있습니다.

물론 제 경험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루 4시간 가까이 지하철 타는 사람의 경험이라면 횟수가 더해지면서 나름의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엔 임산부로 보기에는 힘든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서서 눈을 흘겨보아도 그런 분들의 특징은 잠을 자고(?) 있거나 아니면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돼 있어서 저의 소심한 행동은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그칠 뿐입니다.

그런데 '임산부 먼저'라는 뱃지를 가방에 단 임산부가 그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밀려왔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임산부는 가방을 가슴 앞으로 메고 있었고, 전동차가 흔들림에 따라 그 임산부 뱃지도 좌우로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한 분의 고개는 아래로 고정돼 있었습니다.

보다 못해 임산부 배려석 옆에 있던 한 승객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했고, 그 모습을 지켜본 저는 임산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임산부 배려석 옆 임산부'라는 왠지 서글픈 상황이 사진에 담기게 됐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짐작하신 대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던 분은 신도림역에 가서야 눈을 떴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승강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한 임산부가 임산부 관련 카페에 올린 글과 사진입니다. 지하철은 탔는데 젊은 남성이 딱 하니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한 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한 남성 승객에 대해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   (출처 : 임산부 관련 카페에서 갈무리)
임산부 관련 카페 글 중에서...

"젊은 남자가 앉아있다가 슬그머니 내 배와 뱃지를 보더니, 분명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모른척하고 갑자기 눈 감고 자는 척하면서 다리를 떨었다. 단전에서부터 화가 차오르는 느낌... 아니 자는 척하는데 다리는 왜 떨음?? "

격하게 공감하는 댓글이 이어졌고, "저는 비켜달라고 해요", "저는 툭툭 건들고 뱃지를 얼굴에 들이밀어요." 등의 나름의 대응책도 제시됐습니다.

"내리면서 그 남자 귀에 속삭이세요. '임신 축하드려요'"라는 댓글엔 "이런 현실에 화났는데 댓글 보고 빵 터졌네요."라는 재댓글까지...

과연 임산부 배려석은 누구를 위한 배려일까요?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지하철 고객센터로 접수된 민원 중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한 민원은 8,771건으로 월평균 730여 건에 이릅니다.

임산부 배려석이 도입된 건 2013년 12월인데요. 도입된 지 7년이 넘고 다른 지역의 지하철에서도 확대 운영되고 있지만 정작 임산부 그들 스스로조차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임산부 배려석'.

인구보건복지협회 2020년 온라인 설문 / 임산부 1500명·일반인 1500명

"임산부 54.1%, 일상생활에서 타인으로부터 배려를 받지 못했다"

'임산부 배려석'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왜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지, '공정'의 관점에서
그리고 대안은 뭐가 있는지 앞으로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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