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비치 비장의 무기는 ‘유희관 서브’였다

입력 2021.06.1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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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오픈 우승을 차지한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의 숨겨진 무기가 있었다. 바로 '유희관 서브'다. 야구에서 느린 커브볼로 유명한 유희관의 '아리랑 볼'처럼 조코비치는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서브 속도를 극한으로 떨어뜨리는 이색 전략으로 메이저 대회 통산 19번째 우승을 챙길 수 있었다.

조코비치와 치치파스의 남자 단식 결승전을 지켜본 테니스팬들은 눈을 의심해야 했다. 한창 승부처인 4세트 중반 조코비치의 첫 서브 속도 115km가 측정 판에 기록된 것이다. 모두가 생각했다. 측정기가 고장 난 것 아닌가?

강한 서브가 생명인 남자 테니스 경기에서 보통 첫 서브는 200km 내외의 속도를 내는 법. 하지만 조코비치는 115km의,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테니스 동호인들이나 넣는 수준의 첫 서브를 시도한 셈이다.

그런데 이게 조코비치의 무서운 전략이었다. 치치파스의 리턴 리듬을 완전히 빼앗아 버린 '신의 한 수'였다는 분석. 인도 데이비스컵 대표팀 감독인 지샨 알리는 '인디언 익스프레스'에 실린 인터뷰에서 "서브 속도를 줄인 건 전략적 선택이었다. 게임 스코어 40-30 상황에서 조코비치는 150km의 첫 서브를 택했는데 사실 조코비치는 180~190km 첫 서브를 넣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치치파스가 리턴 포지션을 전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이 뜻하는 바는 '허허실실' 전법이다. 보통 프로 테니스에서 첫 서브는 빠른 속도로 꽂힌다. 이 때문에 서브를 받는 선수들은 베이스라인 넉넉히 뒤에서 받고, 또 첫 서브는 빠르기 때문에 수비적인 리턴 자세를 취한다. 첫 서브가 들어가지 않고, 세컨드 서브 차례가 될 때 비로소 공격적인 리턴을 준비한다. 즉 치치파스는 예상 밖의 느린 서브가 온다고 해도 쉽게 공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뜻이다.

지샨 알리 감독은 "첫 서브가 145~150km에 불과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첫 서브에서 공격적인 샷을 치기는 쉽지 않다. 일단 첫 서브가 150km로 올지, 180km로 올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세컨드 서브를 공격해 득점하는 건 쉽지만, 첫 서브의 경우는 그냥 넘겨서 랠리로 끌고 가는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공격성이 약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코비치가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 이런 '도박'을 감행한 이유는 또 있다. 그만큼 랠리, 그라운드 스트로크에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서브 에이스로 득점하지 않아도, 첫 서브 성공률을 높여 랠리 상황으로 끌고 갈 수만 있다면 치치파스를 제압할 수 있다는 계산이 확실했다.


우승의 가장 큰 고비라고 할 수 있는 5세트 4-3의 상황에서 조코비치는 첫 서브를 모두 성공시켰다. 133km-147km-170km-147km 순서였다. 모두 자신의 득점으로 연결시키면서 5-3까지 올라섰다. 만약 첫 서브를 무리해서 강하게 때렸다면 안 들어갈 확률이 높아지고 세컨드 서브에서 치치파스의 반격에 노출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속도로 치치파스를 제압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5-4의 상황에서 마지막 챔피언십 포인트는 보란 듯이 190km의 강서브를 터트려 치치파스의 전의를 완벽히 상실시켰다.

조코비치의 결승전 첫 서브의 평균 속도는 최종 175km로 집계됐다. 22살의 젊고 에너지 넘치는 치치파스(평균 186km)보다 훨씬 느린 서브를 구사했지만, 테니스 전략 전술의 달인 조코비치는 결국 투수 유희관처럼 '느림의 미학'으로 자신의 생애 최고 업적 가운데 하나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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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코비치 비장의 무기는 ‘유희관 서브’였다
    • 입력 2021-06-16 11:46:58
    스포츠K

프랑스오픈 우승을 차지한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의 숨겨진 무기가 있었다. 바로 '유희관 서브'다. 야구에서 느린 커브볼로 유명한 유희관의 '아리랑 볼'처럼 조코비치는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서브 속도를 극한으로 떨어뜨리는 이색 전략으로 메이저 대회 통산 19번째 우승을 챙길 수 있었다.

조코비치와 치치파스의 남자 단식 결승전을 지켜본 테니스팬들은 눈을 의심해야 했다. 한창 승부처인 4세트 중반 조코비치의 첫 서브 속도 115km가 측정 판에 기록된 것이다. 모두가 생각했다. 측정기가 고장 난 것 아닌가?

강한 서브가 생명인 남자 테니스 경기에서 보통 첫 서브는 200km 내외의 속도를 내는 법. 하지만 조코비치는 115km의,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테니스 동호인들이나 넣는 수준의 첫 서브를 시도한 셈이다.

그런데 이게 조코비치의 무서운 전략이었다. 치치파스의 리턴 리듬을 완전히 빼앗아 버린 '신의 한 수'였다는 분석. 인도 데이비스컵 대표팀 감독인 지샨 알리는 '인디언 익스프레스'에 실린 인터뷰에서 "서브 속도를 줄인 건 전략적 선택이었다. 게임 스코어 40-30 상황에서 조코비치는 150km의 첫 서브를 택했는데 사실 조코비치는 180~190km 첫 서브를 넣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치치파스가 리턴 포지션을 전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이 뜻하는 바는 '허허실실' 전법이다. 보통 프로 테니스에서 첫 서브는 빠른 속도로 꽂힌다. 이 때문에 서브를 받는 선수들은 베이스라인 넉넉히 뒤에서 받고, 또 첫 서브는 빠르기 때문에 수비적인 리턴 자세를 취한다. 첫 서브가 들어가지 않고, 세컨드 서브 차례가 될 때 비로소 공격적인 리턴을 준비한다. 즉 치치파스는 예상 밖의 느린 서브가 온다고 해도 쉽게 공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뜻이다.

지샨 알리 감독은 "첫 서브가 145~150km에 불과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첫 서브에서 공격적인 샷을 치기는 쉽지 않다. 일단 첫 서브가 150km로 올지, 180km로 올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세컨드 서브를 공격해 득점하는 건 쉽지만, 첫 서브의 경우는 그냥 넘겨서 랠리로 끌고 가는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공격성이 약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코비치가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 이런 '도박'을 감행한 이유는 또 있다. 그만큼 랠리, 그라운드 스트로크에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서브 에이스로 득점하지 않아도, 첫 서브 성공률을 높여 랠리 상황으로 끌고 갈 수만 있다면 치치파스를 제압할 수 있다는 계산이 확실했다.


우승의 가장 큰 고비라고 할 수 있는 5세트 4-3의 상황에서 조코비치는 첫 서브를 모두 성공시켰다. 133km-147km-170km-147km 순서였다. 모두 자신의 득점으로 연결시키면서 5-3까지 올라섰다. 만약 첫 서브를 무리해서 강하게 때렸다면 안 들어갈 확률이 높아지고 세컨드 서브에서 치치파스의 반격에 노출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속도로 치치파스를 제압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5-4의 상황에서 마지막 챔피언십 포인트는 보란 듯이 190km의 강서브를 터트려 치치파스의 전의를 완벽히 상실시켰다.

조코비치의 결승전 첫 서브의 평균 속도는 최종 175km로 집계됐다. 22살의 젊고 에너지 넘치는 치치파스(평균 186km)보다 훨씬 느린 서브를 구사했지만, 테니스 전략 전술의 달인 조코비치는 결국 투수 유희관처럼 '느림의 미학'으로 자신의 생애 최고 업적 가운데 하나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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