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사고 뒤 아무도 없었다…도주에 블랙박스까지 조작

입력 2021.06.1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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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승자를 태우고 술을 마신 채 차를 몰다가 사고를 낸 30대 남성이 있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냈으니 순간적으로 덜컥 겁이 날 수는 있겠죠. 그런데 이 남성, 사고를 내자마자 동승자들과 함께 그대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과속한 사실을 숨기려고 운전한 차량 블랙박스까지 조작했습니다. 음주운전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인 이 남성,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 음주운전 사고 일행, 견인차 기사에게 뒤처리 맡기고 현장 빠져나가

사고가 난 건 지난 2018년 5월 밤 10시쯤이었습니다. 대학 교직원이던 37살 김 모 씨는 충남 아산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차에는 동료 직원과 평소 알고 지내던 대학원생 등 두명을 태운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편도 2차로에서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달리다가 중앙선을 넘어 차량 조수석 앞부분으로 가로등과 가로수를 연달아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함께 탄 대학원생은 전치 5주의 골절상을 입었고 동료 직원은 치아가 손상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도로에는 파손된 차량 파편이 어지럽게 뿌려졌고 가로수도 쓰러져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김 씨 일행은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견인차 기사에게 뒤처리를 부탁하고 현장을 빠져나갔습니다.


■ 과속 사실 숨기기 위해 차량 블랙박스 조작까지

사고 당시 동료 직원은 코피를 흘리는 정도의 상태였고 대학원생은 특별한 외상이 없었습니다.

김 씨는 이들을 데리고 택시를 탄 뒤 병원이 아닌 대학원생의 자취방으로 이동했고 여기에서 1시간 정도 머물다가 동승자들의 상처가 부어오르는 등 심상치 않자 그제야 함께 병원으로 갔습니다.

술을 마시고 과속까지 하다 사고를 낸 김 씨, 과속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고 사흘 뒤에는 지인을 찾아갔습니다.

차량 블랙박스 영상 조작을 부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해당 블랙박스에는 속도계가 반사돼서 운전석 앞 유리에 비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삭제해 편집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김 씨 지인은 부탁대로 블랙박스 영상을 조작했고 김 씨는 조작한 영상을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 1심 재판부, "도주치상 혐의는 무죄...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검찰은 김 씨를 도주치상과 사고 후 미조치,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했는데 1심 법원은 도주치상 혐의는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동승자들이 사고 당시 정신을 잃거나 특별한 외상을 입지 않았고 김 씨와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는 이유였습니다.

1심 법원은 사고 후 미조치와 증거인멸교사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했고 김 씨는 항소했습니다. 사고 수습을 하지 않았던 건 동승자들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서였다는 겁니다.

또 편집한 블랙박스 영상은 사본이고 수사기관에서 자신이 과속한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유죄로 판단된 다른 혐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항소심서 '도주치상' 대신 '도주차량 치상' 적용...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늘어

그러나 항소심은 오히려 1심에서 무죄로 인정한 도주치상 혐의 대신에 도주차량 혐의에 포함돼 있던 치상죄를 적용했습니다.

김 씨가 음주운전을 숨기려고 동승자들을 구호한다는 변명 아래 사고현장을 이탈했다고 본 겁니다. 사고 당시 동승자들이 스스로 병원에 가기 어려운 상태도 아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함께 탔던 대학원생은 법정 진술에서 김 씨가 음주운전으로 조사를 받을까 봐 겁이 났었다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사고 후 미조치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습니다.

또 김 씨가 수사기관에 블랙박스 원본을 분실했다고 주장하면서 조작된 사본을 제출한 점, 사고 당시 과속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객관적 자료인 블랙박스 영상을 조작한 점을 이유로 증거인멸교사도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는 최근 김 씨에게 1심보다 가중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혹 떼려다 혹 붙였다', 이럴 때 딱 맞는 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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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주 사고 뒤 아무도 없었다…도주에 블랙박스까지 조작
    • 입력 2021-06-16 16:20:22
    취재K

동승자를 태우고 술을 마신 채 차를 몰다가 사고를 낸 30대 남성이 있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냈으니 순간적으로 덜컥 겁이 날 수는 있겠죠. 그런데 이 남성, 사고를 내자마자 동승자들과 함께 그대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과속한 사실을 숨기려고 운전한 차량 블랙박스까지 조작했습니다. 음주운전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인 이 남성,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 음주운전 사고 일행, 견인차 기사에게 뒤처리 맡기고 현장 빠져나가

사고가 난 건 지난 2018년 5월 밤 10시쯤이었습니다. 대학 교직원이던 37살 김 모 씨는 충남 아산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차에는 동료 직원과 평소 알고 지내던 대학원생 등 두명을 태운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편도 2차로에서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달리다가 중앙선을 넘어 차량 조수석 앞부분으로 가로등과 가로수를 연달아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함께 탄 대학원생은 전치 5주의 골절상을 입었고 동료 직원은 치아가 손상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도로에는 파손된 차량 파편이 어지럽게 뿌려졌고 가로수도 쓰러져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김 씨 일행은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견인차 기사에게 뒤처리를 부탁하고 현장을 빠져나갔습니다.


■ 과속 사실 숨기기 위해 차량 블랙박스 조작까지

사고 당시 동료 직원은 코피를 흘리는 정도의 상태였고 대학원생은 특별한 외상이 없었습니다.

김 씨는 이들을 데리고 택시를 탄 뒤 병원이 아닌 대학원생의 자취방으로 이동했고 여기에서 1시간 정도 머물다가 동승자들의 상처가 부어오르는 등 심상치 않자 그제야 함께 병원으로 갔습니다.

술을 마시고 과속까지 하다 사고를 낸 김 씨, 과속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고 사흘 뒤에는 지인을 찾아갔습니다.

차량 블랙박스 영상 조작을 부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해당 블랙박스에는 속도계가 반사돼서 운전석 앞 유리에 비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삭제해 편집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김 씨 지인은 부탁대로 블랙박스 영상을 조작했고 김 씨는 조작한 영상을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 1심 재판부, "도주치상 혐의는 무죄...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검찰은 김 씨를 도주치상과 사고 후 미조치,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했는데 1심 법원은 도주치상 혐의는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동승자들이 사고 당시 정신을 잃거나 특별한 외상을 입지 않았고 김 씨와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는 이유였습니다.

1심 법원은 사고 후 미조치와 증거인멸교사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했고 김 씨는 항소했습니다. 사고 수습을 하지 않았던 건 동승자들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서였다는 겁니다.

또 편집한 블랙박스 영상은 사본이고 수사기관에서 자신이 과속한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유죄로 판단된 다른 혐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항소심서 '도주치상' 대신 '도주차량 치상' 적용...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늘어

그러나 항소심은 오히려 1심에서 무죄로 인정한 도주치상 혐의 대신에 도주차량 혐의에 포함돼 있던 치상죄를 적용했습니다.

김 씨가 음주운전을 숨기려고 동승자들을 구호한다는 변명 아래 사고현장을 이탈했다고 본 겁니다. 사고 당시 동승자들이 스스로 병원에 가기 어려운 상태도 아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함께 탔던 대학원생은 법정 진술에서 김 씨가 음주운전으로 조사를 받을까 봐 겁이 났었다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사고 후 미조치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습니다.

또 김 씨가 수사기관에 블랙박스 원본을 분실했다고 주장하면서 조작된 사본을 제출한 점, 사고 당시 과속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객관적 자료인 블랙박스 영상을 조작한 점을 이유로 증거인멸교사도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는 최근 김 씨에게 1심보다 가중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혹 떼려다 혹 붙였다', 이럴 때 딱 맞는 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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