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에 ‘진입금지’ 쇠사슬…국립공원 앞두고 어깃장?

입력 2021.06.1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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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등산로. 최근 금정산 일부 토지  소유주가 도로를 통제하겠다고 담당 구청에 통보해 논란이 되고 있다.금정산 등산로. 최근 금정산 일부 토지 소유주가 도로를 통제하겠다고 담당 구청에 통보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5일, 부산 금정구청으로 한 통의 문서가 전달됐습니다. 수도권의 한 웨딩 업체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금정산 일대 일부 토지의 도로를 폐쇄한다는 내용입니다.

3장의 문서에는 안내문 시안 등이 그려져 있는데요. 가로 110cm, 세로 100cm 크기 안내문에는 '다음 달 31일부터 도로를 폐쇄한다'는 내용과 '사유지 내에 불법침범하거나 침입하는 자는 형법 제319조 및 제370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될 수도 있음을 알린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습니다.

안내문과 함께 길을 막기 위한 폭 300cm, 높이 100cm 규모의 쇠사슬 그림도 함께 달됐습니다.

■ 매년 3백만 명이 찾는 명소, 금정산…이례적 재산권 행사

방문객이 매년 3백만 명 가까이 찾는 금정산은 부산과 경남을 대표하는 명산입니다. 60.9㎢ 규모로 부산과 경남을 아우르며 길게 뻗어 있습니다. 그런데 금정산은 전체 84.5%가량이 사유지입니다. 이 사유지는 3천 명 넘는 소유자 명의로 잘게 쪼개져 있는데요.

땅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이른바 '대지주 빅 3'는 범어사와 주식회사 삼천리, 부산대학교입니다. 이 세 곳도 지난 수십 년간 재산권 행사를 위해 부산시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도로 폐쇄 등의 조치는 없었습니다.

부산시민과 산을 공유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인데, 그만큼 이번처럼 쇠사슬 등을 동원해 길을 막겠다고 통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수도권의 한 웨딩 업체가 금정구청에 전달한 문건. 안내문과 도로를 폐쇄하는 데 사용될 쇠사슬 그림이 그려져 있다.수도권의 한 웨딩 업체가 금정구청에 전달한 문건. 안내문과 도로를 폐쇄하는 데 사용될 쇠사슬 그림이 그려져 있다.

■ 불법채취·산림 훼손 방지 목적?

이 업체가 안내문을 통해 밝힌 도로 폐쇄 이유는 '임산물 불법채취와 산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업체 관계자는 취재진에 "토지를 20여 년 갖고 있는데 세금만 수억 원씩 내고 아무것도 쓸 수도 없다. 도로는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사용료도 못 받는다"며 "지주들이 많이 불만스러운 부분이라 (구청에)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 협의 중인 사항으로 도로 폐쇄는 아직 결정된 게 아니다"라며 "다음 주 금정구 관계자들과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해당 업체는 2012년 금정산에 꽃과 새를 테미로 한 공원인 '화조원'을 조성하겠다고 나섰던 업체입니다. 하지만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돌연 도로 폐쇄를 통보했는데, 이 때문에 재산권 행사가 막혀 도로 통제라는 최후의 수단을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또 지난 3월부터 다음 달까지 금정산 일대를 대상으로 국립공원 지정 타당성 조사 용역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멸종 위기종인 고리도롱뇽 서식이 확인되고, 그동안 금정산 국립공원화에 반대 목소리를 보였던 주민 일부가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것도 확인됐습니다.

금정산 국립공원화 사업이 활기를 띠는 상황에서 화조원 사업이 무산된 업체가 국립공원 사업에 어깃장을 부린다거나 도로 이용료나 보상 등을 바라고 도로 폐쇄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등산객이 금정산 등산로를 걷고 있다.등산객이 금정산 등산로를 걷고 있다.

■ 일방적 통보에도…부산시·구청 "대책 마땅찮아"

이 업체의 일방적 통보에도 부산시나 금정구청은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사유지인 만큼 소유주가 도로 폐쇄를 결정하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는 건데요.

해당 부지에 들어선 도로 일부는 차량이 돌아다닐 정도로 넓어 하루에도 수많은 등산객이 이용하는 길입니다. 특히 이 길이 통제되면 주변 다른 등산로까지 연쇄적으로 막힐 가능성이 큽니다. 주변에는 식당 20여 곳도 운영 중인데 도로가 폐쇄되면 식당 업주들이 입는 피해도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금정구청 관계자는 "우선 업체 측과 만나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협의해보겠다"고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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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정산에 ‘진입금지’ 쇠사슬…국립공원 앞두고 어깃장?
    • 입력 2021-06-17 10:19:18
    취재K
금정산 등산로. 최근 금정산 일부 토지  소유주가 도로를 통제하겠다고 담당 구청에 통보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5일, 부산 금정구청으로 한 통의 문서가 전달됐습니다. 수도권의 한 웨딩 업체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금정산 일대 일부 토지의 도로를 폐쇄한다는 내용입니다.

3장의 문서에는 안내문 시안 등이 그려져 있는데요. 가로 110cm, 세로 100cm 크기 안내문에는 '다음 달 31일부터 도로를 폐쇄한다'는 내용과 '사유지 내에 불법침범하거나 침입하는 자는 형법 제319조 및 제370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될 수도 있음을 알린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습니다.

안내문과 함께 길을 막기 위한 폭 300cm, 높이 100cm 규모의 쇠사슬 그림도 함께 달됐습니다.

■ 매년 3백만 명이 찾는 명소, 금정산…이례적 재산권 행사

방문객이 매년 3백만 명 가까이 찾는 금정산은 부산과 경남을 대표하는 명산입니다. 60.9㎢ 규모로 부산과 경남을 아우르며 길게 뻗어 있습니다. 그런데 금정산은 전체 84.5%가량이 사유지입니다. 이 사유지는 3천 명 넘는 소유자 명의로 잘게 쪼개져 있는데요.

땅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이른바 '대지주 빅 3'는 범어사와 주식회사 삼천리, 부산대학교입니다. 이 세 곳도 지난 수십 년간 재산권 행사를 위해 부산시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도로 폐쇄 등의 조치는 없었습니다.

부산시민과 산을 공유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인데, 그만큼 이번처럼 쇠사슬 등을 동원해 길을 막겠다고 통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수도권의 한 웨딩 업체가 금정구청에 전달한 문건. 안내문과 도로를 폐쇄하는 데 사용될 쇠사슬 그림이 그려져 있다.
■ 불법채취·산림 훼손 방지 목적?

이 업체가 안내문을 통해 밝힌 도로 폐쇄 이유는 '임산물 불법채취와 산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업체 관계자는 취재진에 "토지를 20여 년 갖고 있는데 세금만 수억 원씩 내고 아무것도 쓸 수도 없다. 도로는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사용료도 못 받는다"며 "지주들이 많이 불만스러운 부분이라 (구청에)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 협의 중인 사항으로 도로 폐쇄는 아직 결정된 게 아니다"라며 "다음 주 금정구 관계자들과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해당 업체는 2012년 금정산에 꽃과 새를 테미로 한 공원인 '화조원'을 조성하겠다고 나섰던 업체입니다. 하지만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돌연 도로 폐쇄를 통보했는데, 이 때문에 재산권 행사가 막혀 도로 통제라는 최후의 수단을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또 지난 3월부터 다음 달까지 금정산 일대를 대상으로 국립공원 지정 타당성 조사 용역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멸종 위기종인 고리도롱뇽 서식이 확인되고, 그동안 금정산 국립공원화에 반대 목소리를 보였던 주민 일부가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것도 확인됐습니다.

금정산 국립공원화 사업이 활기를 띠는 상황에서 화조원 사업이 무산된 업체가 국립공원 사업에 어깃장을 부린다거나 도로 이용료나 보상 등을 바라고 도로 폐쇄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등산객이 금정산 등산로를 걷고 있다.
■ 일방적 통보에도…부산시·구청 "대책 마땅찮아"

이 업체의 일방적 통보에도 부산시나 금정구청은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사유지인 만큼 소유주가 도로 폐쇄를 결정하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는 건데요.

해당 부지에 들어선 도로 일부는 차량이 돌아다닐 정도로 넓어 하루에도 수많은 등산객이 이용하는 길입니다. 특히 이 길이 통제되면 주변 다른 등산로까지 연쇄적으로 막힐 가능성이 큽니다. 주변에는 식당 20여 곳도 운영 중인데 도로가 폐쇄되면 식당 업주들이 입는 피해도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금정구청 관계자는 "우선 업체 측과 만나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협의해보겠다"고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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