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상태에서 성폭행 당한 뒤 추락 사고’…누구의 책임?

입력 2021.06.17 (14:09) 수정 2021.06.1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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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건과 무관한 자료사진입니다해당 사건과 무관한 자료사진입니다

■ 술자리에서 만난 남녀…성범죄 피해와 추락사고로 이어졌다

지난 2019년 초, 20대 남녀인 A씨와 B씨가 전북 전주의 한 대학교 근처 술집에서 만났습니다.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이뤄진 일명 '합석'. 다른 일행들과 함께 새벽 1시쯤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새벽 4시까지 이어졌고, 두 사람은 만취했습니다.

이 때 여성 B씨가 갑자기 술집이 있는 1층에서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를 지켜본 남성 A씨는 B씨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러다 3층에서 B씨를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범행은 3층 복도에서 여자 화장실로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B씨는 여자 화장실 창문으로 빠져나가다 건물 베란다 7.5미터 높이에서 떨어졌습니다.

골절 등 전치 8주의 중상을 입었습니다.

■ 1심 재판부 "성범죄 가해와 피해자 상해에 인과관계 있다"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전주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징역 6년을 선고했습니다.

준강간이라는 범행과 피해자의 상해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봤는데, 피고인 A씨가 위험을 피하는 과정에서 상해 입을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화장실 내부에 조명이 꺼져 어두웠고 창문 밖에만 빛이 보이는 상황이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만취한 피해자로서는 창문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형법 제299조 (준강간, 준강제추행)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하는 행위

제301조 (강간 등 상해·치상)
강간·강제추행 등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

A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만취한 피해자 B씨가 창문을 출입문으로 착각하고 넘어져 땅으로 추락한 것이라면 본인의 준강간 범행으로 빚어진 일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준강간은 인정하지만, 추락으로 빚어진 부상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 2심 재판부 "추락사고는 성폭행 가해자 책임 아니다"


항소심(2심) 재판부인 광주고법 전주재판부는 당시 피해자 B씨의 상태와 범행 상황을 보여주는 CCTV 기록을 주목했습니다.

또,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찾아 검증기일도 열었습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당시 B씨가 술자리 대화 중에 만취 영향으로 자주 횡설수설했다는 주변 목격자 진술이 있었고, 최면수사에서도 여자 화장실에서 바깥으로 나가려는 상황으로 착각했다고 말하는 등 A씨의 범행과 관계없이 창문을 출입문으로 헷갈렸다는 진술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CCTV 기록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A씨가 B씨를 끌어안고 여자 화장실로 데려간 뒤 1분 30초 만에 밖으로 나왔고, 다시 1분 30초 뒤에 A씨와 다른 사람과 함께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B씨는 A씨가 밖에 나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이에 추락했습니다.

법원은 "만취한 B씨의 의식이 일시적 혹은 본능적이든 간에 회복됐다고 보기에 시간이 짧고 A씨가 이를 예상하기에도 부족했다"고 해석했습니다.

결국 항소심에서는 수사 기관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인과관계와 피고인의 예견 가능성’을 인정하기가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A씨가 B씨의 추락 사실을 안 뒤 친구에게 알리고 소방, 경찰에 신고한 상황도 참작했습니다.

■ 징역 6년에서 3년으로 감형…최종 판단은 대법원이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준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은 유죄 판단을 했지만 치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해 징역 3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1심의 징역 6년에서 3년이나 감형된 것입니다.

항소심에서 1심 선고 결과가 뒤바뀌자 검찰은 상고했습니다.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우연한 술자리 만남에서 시작된 성범죄 그리고 추락 사고. 대법원이 시시비비를 어떻게 가려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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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취 상태에서 성폭행 당한 뒤 추락 사고’…누구의 책임?
    • 입력 2021-06-17 14:09:54
    • 수정2021-06-17 15:30:28
    취재K
해당 사건과 무관한 자료사진입니다
■ 술자리에서 만난 남녀…성범죄 피해와 추락사고로 이어졌다

지난 2019년 초, 20대 남녀인 A씨와 B씨가 전북 전주의 한 대학교 근처 술집에서 만났습니다.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이뤄진 일명 '합석'. 다른 일행들과 함께 새벽 1시쯤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새벽 4시까지 이어졌고, 두 사람은 만취했습니다.

이 때 여성 B씨가 갑자기 술집이 있는 1층에서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를 지켜본 남성 A씨는 B씨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러다 3층에서 B씨를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범행은 3층 복도에서 여자 화장실로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B씨는 여자 화장실 창문으로 빠져나가다 건물 베란다 7.5미터 높이에서 떨어졌습니다.

골절 등 전치 8주의 중상을 입었습니다.

■ 1심 재판부 "성범죄 가해와 피해자 상해에 인과관계 있다"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전주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징역 6년을 선고했습니다.

준강간이라는 범행과 피해자의 상해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봤는데, 피고인 A씨가 위험을 피하는 과정에서 상해 입을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화장실 내부에 조명이 꺼져 어두웠고 창문 밖에만 빛이 보이는 상황이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만취한 피해자로서는 창문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형법 제299조 (준강간, 준강제추행)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하는 행위

제301조 (강간 등 상해·치상)
강간·강제추행 등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

A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만취한 피해자 B씨가 창문을 출입문으로 착각하고 넘어져 땅으로 추락한 것이라면 본인의 준강간 범행으로 빚어진 일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준강간은 인정하지만, 추락으로 빚어진 부상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 2심 재판부 "추락사고는 성폭행 가해자 책임 아니다"


항소심(2심) 재판부인 광주고법 전주재판부는 당시 피해자 B씨의 상태와 범행 상황을 보여주는 CCTV 기록을 주목했습니다.

또,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찾아 검증기일도 열었습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당시 B씨가 술자리 대화 중에 만취 영향으로 자주 횡설수설했다는 주변 목격자 진술이 있었고, 최면수사에서도 여자 화장실에서 바깥으로 나가려는 상황으로 착각했다고 말하는 등 A씨의 범행과 관계없이 창문을 출입문으로 헷갈렸다는 진술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CCTV 기록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A씨가 B씨를 끌어안고 여자 화장실로 데려간 뒤 1분 30초 만에 밖으로 나왔고, 다시 1분 30초 뒤에 A씨와 다른 사람과 함께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B씨는 A씨가 밖에 나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이에 추락했습니다.

법원은 "만취한 B씨의 의식이 일시적 혹은 본능적이든 간에 회복됐다고 보기에 시간이 짧고 A씨가 이를 예상하기에도 부족했다"고 해석했습니다.

결국 항소심에서는 수사 기관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인과관계와 피고인의 예견 가능성’을 인정하기가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A씨가 B씨의 추락 사실을 안 뒤 친구에게 알리고 소방, 경찰에 신고한 상황도 참작했습니다.

■ 징역 6년에서 3년으로 감형…최종 판단은 대법원이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준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은 유죄 판단을 했지만 치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해 징역 3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1심의 징역 6년에서 3년이나 감형된 것입니다.

항소심에서 1심 선고 결과가 뒤바뀌자 검찰은 상고했습니다.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우연한 술자리 만남에서 시작된 성범죄 그리고 추락 사고. 대법원이 시시비비를 어떻게 가려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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