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유예·벌금이 고작…“죽음의 무게가 다른가요?”

입력 2021.06.17 (14:38) 수정 2021.06.1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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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순규 씨의 아들 정석채 씨가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는 모습.故 정순규 씨의 아들 정석채 씨가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는 모습.

"아버지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데….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에게 이런 결과밖에 못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재판 결과를 듣고 나온 유족은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을 훔칠 새도 없이 기자회견장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아파하는 모습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빗속에서 이어진 30분 간의 기자회견에서, 재판에 참석했던 시민단체 등은 결과가 믿기지 않는지 재판 결과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담담하게 외칩니다.

"죽음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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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도 차별 있다는 거 아시나요?”…한 하청 노동자의 죽음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73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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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11172


■ 안전 관리자 등 피고인 모두 집행유예…업체는 천만 원 벌금형이 고작

지난 2019년 10월 부산 남구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故 정순규 씨의 1심 판결이 어제(16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 열렸습니다.

앞선 선고가 많아 인원을 제한하겠다며, 유가족 대부분을 내보낸 채로 재판은 진행됐습니다. 선고 두 번째 순서였던 정 씨의 사건은 바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피고인인 공사 관계자, 안전 관리자 등이 재판정에 30분 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도착한 이들에게 내려진 판결은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1년, 원청인 경동건설과 하청기업에는 각각 천만 원의 벌금이 전부였습니다. 검찰 구형 1년 6개월에 크게 못 미치는 판결에 유족 측은 즉각 항소 요청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 등을 보았을 때 하도급 공사라도 원청의 주의 의무가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또 "숨진 정 씨가 사다리를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부분에서는 분명 관리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현장에 목격자나 cctv가 없었던 점 등을 미루어 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업체 측이 제출한 ‘관리감독자 지정서’. 유족의 필적감정 의뢰 결과 불일치 판정이 나왔다.업체 측이 제출한 ‘관리감독자 지정서’. 유족의 필적감정 의뢰 결과 불일치 판정이 나왔다.

■ 조사 기관 마다 다른 사고 원인…재판서 위조 서류 제출하기도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지점은 경찰 조사와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조사 결과가 각각 달랐다는 점입니다. 최초 사망 지점과 추락 높이 등이 4m에서 2m까지 큰 차이를 보였고, 안전 난간 바깥으로 추락했는지, 또 작업 중 추락했는지도 모두가 다르게 봤습니다.

경찰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지만, 재판부는 재조사 명령 등이나 별도의 조치 없이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재판 결과도 사고 발생 이후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나왔는데요.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노동부 재조사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추가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재판 과정도 문제였습니다. 경동건설 측은 숨진 정 씨가 현장의 안전관리 감독자라며 '관리감독자 지정서'를 제출했습니다. 관리자가 스스로 안전을 책임지지 않았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유족이 필적감정을 의뢰한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부산운동본부가 재판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부산운동본부가 재판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나이가 많아서? 청년이 아니라서? …"죽음의 무게는 같다"

결국 이 과정에서 가장 고통받은 사람들은 유족입니다. 현장이 훼손되기 전 먼저 그 장소를 확인해야 했고, 대필 의뢰를 맡기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며 생업을 버리고 전국을 누벼야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달려 재판까지 왔지만 결국, 허망한 결과를 받아들고 말았습니다.

"죽음에도 차별이 있을까요. 우리 아버지가 나이가 많아서, 청년이 아니라서 주목받지 못하는 걸까요"

시민단체 등은 "이같은 사고가 벌어지고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비슷한 죽음을 반복해도 된다는 시그널과 같다"며 특히 "향토기업인 경동건설 측의 안일한 태도는 부산시민들의 안전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되풀이되는 이 죽음의 굴레에서 벗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눈물을 흘려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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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행유예·벌금이 고작…“죽음의 무게가 다른가요?”
    • 입력 2021-06-17 14:38:25
    • 수정2021-06-17 16:56:04
    취재K
故 정순규 씨의 아들 정석채 씨가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는 모습.
"아버지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데….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에게 이런 결과밖에 못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재판 결과를 듣고 나온 유족은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을 훔칠 새도 없이 기자회견장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아파하는 모습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빗속에서 이어진 30분 간의 기자회견에서, 재판에 참석했던 시민단체 등은 결과가 믿기지 않는지 재판 결과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담담하게 외칩니다.

"죽음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고.

[연관 기사]
“죽음에도 차별 있다는 거 아시나요?”…한 하청 노동자의 죽음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73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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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11172


■ 안전 관리자 등 피고인 모두 집행유예…업체는 천만 원 벌금형이 고작

지난 2019년 10월 부산 남구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故 정순규 씨의 1심 판결이 어제(16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 열렸습니다.

앞선 선고가 많아 인원을 제한하겠다며, 유가족 대부분을 내보낸 채로 재판은 진행됐습니다. 선고 두 번째 순서였던 정 씨의 사건은 바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피고인인 공사 관계자, 안전 관리자 등이 재판정에 30분 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도착한 이들에게 내려진 판결은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1년, 원청인 경동건설과 하청기업에는 각각 천만 원의 벌금이 전부였습니다. 검찰 구형 1년 6개월에 크게 못 미치는 판결에 유족 측은 즉각 항소 요청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 등을 보았을 때 하도급 공사라도 원청의 주의 의무가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또 "숨진 정 씨가 사다리를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부분에서는 분명 관리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현장에 목격자나 cctv가 없었던 점 등을 미루어 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업체 측이 제출한 ‘관리감독자 지정서’. 유족의 필적감정 의뢰 결과 불일치 판정이 나왔다.
■ 조사 기관 마다 다른 사고 원인…재판서 위조 서류 제출하기도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지점은 경찰 조사와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조사 결과가 각각 달랐다는 점입니다. 최초 사망 지점과 추락 높이 등이 4m에서 2m까지 큰 차이를 보였고, 안전 난간 바깥으로 추락했는지, 또 작업 중 추락했는지도 모두가 다르게 봤습니다.

경찰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지만, 재판부는 재조사 명령 등이나 별도의 조치 없이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재판 결과도 사고 발생 이후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나왔는데요.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노동부 재조사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추가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재판 과정도 문제였습니다. 경동건설 측은 숨진 정 씨가 현장의 안전관리 감독자라며 '관리감독자 지정서'를 제출했습니다. 관리자가 스스로 안전을 책임지지 않았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유족이 필적감정을 의뢰한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부산운동본부가 재판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나이가 많아서? 청년이 아니라서? …"죽음의 무게는 같다"

결국 이 과정에서 가장 고통받은 사람들은 유족입니다. 현장이 훼손되기 전 먼저 그 장소를 확인해야 했고, 대필 의뢰를 맡기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며 생업을 버리고 전국을 누벼야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달려 재판까지 왔지만 결국, 허망한 결과를 받아들고 말았습니다.

"죽음에도 차별이 있을까요. 우리 아버지가 나이가 많아서, 청년이 아니라서 주목받지 못하는 걸까요"

시민단체 등은 "이같은 사고가 벌어지고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비슷한 죽음을 반복해도 된다는 시그널과 같다"며 특히 "향토기업인 경동건설 측의 안일한 태도는 부산시민들의 안전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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