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타이레놀 주세요” 말고 “해열진통제 주세요”

입력 2021.06.19 (08:02) 수정 2021.06.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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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 접종자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접종을 개시한 2월 말부터 현재까지 1,400만 명, 전체 인구의 27% 이상이 백신을 맞았습니다.

접종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탓이었을까요. 백신에 대한 불안이 좀 가라앉는가 했더니, 이제는 약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뒤 많은 사람들이 발열과 두통, 근육통 등 몸살을 앓았다고 얘기합니다. 이런 증상을 가라앉히려면 진통제가 도움이 되겠죠. 문제는 특정 약의 몸값이 비싸졌다는 겁니다.


■ 이해 돕겠다며 특정 약 이름 언급…타이레놀 '품귀'

백신을 맞으면 해열제를 먹어야 하느냐를 놓고 방역 당국이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이해를 돕겠다며 누구나 아는 '타이레놀' 을 언급했습니다. 이때, 해열제= 타이레놀이라는 공식이 생겨버렸습니다.

백신 접종을 하고 나면 발열이나 근육통 등의 증상들이 나타나면서 굉장히 불편하신 경우들이 있습니다. (중략) 참지 마시고 진통제, 특히 '타이레놀'이라고 하는 아세트아미노펜을 그래도 적극적으로 복용하시는 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3월 8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

약국에선 비명을, 소비자는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한 시민은 2천 원이었던 타이레놀이 6천 원이 됐다고 제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누군가 이 상황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게 화가 난다며, 제품명을 말한 정부의 안일함을 원망했습니다.

(타이레놀이) 2천 원 했던 기억이 있으니까 '얼마인데요' 물어봤더니 6천 원이라는 거예요. 그게 며칠 사이에 원재료 값이 올랐다고는 볼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성분만 얘기를 했으면 될텐데 타이레놀이라고 말하니까 우리같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타이레놀 먹어야 되나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잖아요.

기분이 엄청 나빴어요. 마스크 대란 일어났을 때도 힘들었는데, 전부 다 백신을 접종하니까 맞자라는 의미도 있었는데 이 틈을 이용해 가지고 이런 식으로 가격을 올리나 싶으니까 그날 너무 화가 났어요.

-제보자 A씨

약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안 그래도 익숙한 제품을 찾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부 발언 이후 아예 타이레놀만 산다고 호소했습니다. 타이레놀이 없어 동일 성분의 다른 제품을 설명하려 하면, 발길을 그냥 돌려버리는 게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해열진통제를 찾는 손님이 많아지자 전용 진열대를 만든 약국도 생겼습니다. 허지웅 약사는 "접종이 예정돼 있으면 '타이레놀부터 사서 먹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오셔서 설명하면 놀라는 경우가 많다"며 "설명을 해줘도 반신반의하시니까 전문가로서 자괴감도 들고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안타까웠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약국에서 제품 가격을 올려 판다는 제보에 대해서는 "제약회사와 직접 계약하지 않고 도매점에서 공급 받으면 물량에 따라 단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유통 경로에 따라 약국마다 가격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약사들의 어려움이 커지자, 대한약사회에서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정부에 공식 항의했습니다.

국민의 계속되는 지명구매에 일선 약국은 ‘동일성분 해열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셔도 된다’는 설명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타이레놀 공급사는 시중 유통 물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있고 이젠 현금으로 결제하지 않으면 제품을 주지 않겠다는 상황마저 발생하고 있다. 약국을 상대로 ‘타이레놀 사기꾼’이 등장하는 현실이 되었다.

-6월 11일 대한약사회 입장문


■ 정부 "타이레놀 공급량 500만 개 늘린다"

항의문이 발표된 지 몇 시간 뒤, 식약처는 부랴부랴 제약사 등과 협의해서 아세트아미노펜 제품 공급량을 늘리겠다고 나섰습니다. 마스크 대란 때 뒤늦게 공적마스크 등으로 대처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당장 다음 주까지 전국 약국에 타이레놀 500만 개가 입고될 예정이라고 하니,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습니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제약사로부터 공급받은 제품을 이번 주 초부터 전국 약국에 100개씩 풀고 있고 다음 주까지 500만 개가 공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도 회원사인 제약 회사에서 만드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제품을 최대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 "코로나19 불안·불신 속 올바른 정보 전달 우선"

현장 반응은 '글쎄'입니다. 허지웅 약사는 '이미 약국에 아세트아미노펜 제품은 충분히 있다"며 "특정 제품만 먹으면 된다는 인식을 바로잡는 게 정부의 역할 아니겠느냐"고 걱정했습니다.


박정신 약사는 "타이레놀은 진통제 중 하나의 상품일 뿐이고 거기에 들어가 있는 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이라며 "'해열진통제 주세요' 라고 말하면 약사가 왜 필요한지 등을 묻고 상담한 뒤 본인에게 맞는 제품을 권해줄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이미 정보가 각인된 상황에서 접종이 빠르게 진행되니까 특정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봤습니다.

강 사무총장은 "약품 효과 등을 빨리 검증하고 발표해서 국민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하는데 정부가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며 "납득할 만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함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제품 물량이 모자라니 물량을 더 풀고 이런 식으로만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한 상황에서 공식적인 정보에 대한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다 보니 맹신을 깨뜨리기 더 어렵다"며 "약을 사려는 사람이 '나는 어떤 환자군에 속하고 나는 어떤 약을 쓰면 되겠구나' 이해하도록 교육하고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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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타이레놀 주세요” 말고 “해열진통제 주세요”
    • 입력 2021-06-19 08:02:02
    • 수정2021-06-19 13:54:42
    취재후·사건후

코로나19 백신 접종자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접종을 개시한 2월 말부터 현재까지 1,400만 명, 전체 인구의 27% 이상이 백신을 맞았습니다.

접종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탓이었을까요. 백신에 대한 불안이 좀 가라앉는가 했더니, 이제는 약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뒤 많은 사람들이 발열과 두통, 근육통 등 몸살을 앓았다고 얘기합니다. 이런 증상을 가라앉히려면 진통제가 도움이 되겠죠. 문제는 특정 약의 몸값이 비싸졌다는 겁니다.


■ 이해 돕겠다며 특정 약 이름 언급…타이레놀 '품귀'

백신을 맞으면 해열제를 먹어야 하느냐를 놓고 방역 당국이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이해를 돕겠다며 누구나 아는 '타이레놀' 을 언급했습니다. 이때, 해열제= 타이레놀이라는 공식이 생겨버렸습니다.

백신 접종을 하고 나면 발열이나 근육통 등의 증상들이 나타나면서 굉장히 불편하신 경우들이 있습니다. (중략) 참지 마시고 진통제, 특히 '타이레놀'이라고 하는 아세트아미노펜을 그래도 적극적으로 복용하시는 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3월 8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

약국에선 비명을, 소비자는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한 시민은 2천 원이었던 타이레놀이 6천 원이 됐다고 제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누군가 이 상황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게 화가 난다며, 제품명을 말한 정부의 안일함을 원망했습니다.

(타이레놀이) 2천 원 했던 기억이 있으니까 '얼마인데요' 물어봤더니 6천 원이라는 거예요. 그게 며칠 사이에 원재료 값이 올랐다고는 볼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성분만 얘기를 했으면 될텐데 타이레놀이라고 말하니까 우리같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타이레놀 먹어야 되나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잖아요.

기분이 엄청 나빴어요. 마스크 대란 일어났을 때도 힘들었는데, 전부 다 백신을 접종하니까 맞자라는 의미도 있었는데 이 틈을 이용해 가지고 이런 식으로 가격을 올리나 싶으니까 그날 너무 화가 났어요.

-제보자 A씨

약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안 그래도 익숙한 제품을 찾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부 발언 이후 아예 타이레놀만 산다고 호소했습니다. 타이레놀이 없어 동일 성분의 다른 제품을 설명하려 하면, 발길을 그냥 돌려버리는 게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해열진통제를 찾는 손님이 많아지자 전용 진열대를 만든 약국도 생겼습니다. 허지웅 약사는 "접종이 예정돼 있으면 '타이레놀부터 사서 먹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오셔서 설명하면 놀라는 경우가 많다"며 "설명을 해줘도 반신반의하시니까 전문가로서 자괴감도 들고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안타까웠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약국에서 제품 가격을 올려 판다는 제보에 대해서는 "제약회사와 직접 계약하지 않고 도매점에서 공급 받으면 물량에 따라 단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유통 경로에 따라 약국마다 가격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약사들의 어려움이 커지자, 대한약사회에서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정부에 공식 항의했습니다.

국민의 계속되는 지명구매에 일선 약국은 ‘동일성분 해열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셔도 된다’는 설명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타이레놀 공급사는 시중 유통 물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있고 이젠 현금으로 결제하지 않으면 제품을 주지 않겠다는 상황마저 발생하고 있다. 약국을 상대로 ‘타이레놀 사기꾼’이 등장하는 현실이 되었다.

-6월 11일 대한약사회 입장문


■ 정부 "타이레놀 공급량 500만 개 늘린다"

항의문이 발표된 지 몇 시간 뒤, 식약처는 부랴부랴 제약사 등과 협의해서 아세트아미노펜 제품 공급량을 늘리겠다고 나섰습니다. 마스크 대란 때 뒤늦게 공적마스크 등으로 대처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당장 다음 주까지 전국 약국에 타이레놀 500만 개가 입고될 예정이라고 하니,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습니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제약사로부터 공급받은 제품을 이번 주 초부터 전국 약국에 100개씩 풀고 있고 다음 주까지 500만 개가 공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도 회원사인 제약 회사에서 만드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제품을 최대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 "코로나19 불안·불신 속 올바른 정보 전달 우선"

현장 반응은 '글쎄'입니다. 허지웅 약사는 '이미 약국에 아세트아미노펜 제품은 충분히 있다"며 "특정 제품만 먹으면 된다는 인식을 바로잡는 게 정부의 역할 아니겠느냐"고 걱정했습니다.


박정신 약사는 "타이레놀은 진통제 중 하나의 상품일 뿐이고 거기에 들어가 있는 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이라며 "'해열진통제 주세요' 라고 말하면 약사가 왜 필요한지 등을 묻고 상담한 뒤 본인에게 맞는 제품을 권해줄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이미 정보가 각인된 상황에서 접종이 빠르게 진행되니까 특정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봤습니다.

강 사무총장은 "약품 효과 등을 빨리 검증하고 발표해서 국민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하는데 정부가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며 "납득할 만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함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제품 물량이 모자라니 물량을 더 풀고 이런 식으로만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한 상황에서 공식적인 정보에 대한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다 보니 맹신을 깨뜨리기 더 어렵다"며 "약을 사려는 사람이 '나는 어떤 환자군에 속하고 나는 어떤 약을 쓰면 되겠구나' 이해하도록 교육하고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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