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오픈런’해도 못 사는 초고가 시계…‘리셀샵’의 비밀은?

입력 2021.06.20 (07:05) 수정 2021.06.20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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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이나 새로 나온 '명품'을 사려면 백화점이 문을 열 때 뛰어가야 한다고 하죠. 소위 '오픈런'이라고 합니다.

5대 명품 시계로 불리고, 래퍼와 아이돌 등 연예인들이 차고 나와 인기를 얻고 있는 초고가 시계를 보기 위해, 저도 '오픈런'이란 걸 해봤습니다.


■ 백화점 문 열자마자 갔는데..."물건 없어"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곧장 해당 시계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줄이 길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에 뛰어갔는데 다행히 매장에는 직원만 있었습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시계를 보러왔다고 하자, 직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물건이 없습니다. ****(인기모델) 남성용 같은 경우는 앞에 진열된 다른 모델을 구매하셔야 구매하실 수 있는데, 이 모델 자체도 지금 전시돼있는 것 밖에 없어요. 그 외 제품은 재고만 있으면 구매가 가능하신데, 물건이 수시로 들어오는 건 아니어서요. 물건이 정말 없어서 웨이팅(대기 줄)이 없는 겁니다."



구경은 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것도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재고가 없다 보니 전시조차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나마 전시된 모델은 이미 예약이 된 시계인데 고객의 양해를 구하고 전시해놓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빨리 온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오픈런' 자체에 의미가 없는 겁니다.


■ 그런데, 그런 시계가 리셀샵에는 있다?

백화점 매장에 급히 갔던 건, 사실 제보를 하나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장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초고가 시계들이 중고 시계를 사고, 파는 '리셀샵'에서 활발히 유통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해당 리셀샵(Resell Shop) 사이트에 들어가 봤습니다.

동일한 브랜드의 시계 20여 개가 올라와 있는데 대부분 '품절'입니다. 올라와 있는 물품 중에는 '미사용품'이라고 적힌 것들도 여럿, 눈에 띕니다. 지금은 삭제됐지만, 해당 사이트에 인기모델의 시계가 '미사용'·'품절'로 올라와 있던 화면도 확보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제보자는, 해당 시계를 독점 수입하는 업체의 대표가 일부 제품을 리셀샵에 넘겨왔다고 말합니다.

"물건이 회사로 들어오기 전에 어떤 게 들어오는지 리스트가 먼저 오거든요. 그럼 (수입사) 대표가 이 중 인기모델을 선점해서 중고업자한테 알려주고, 업자가 고객을 확보하면 대표가 프리미엄을 붙여 팔아 차액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거래가 되는 거죠"

이 제보자는 또 "매장 직원들에게 시계를 팔지 말라고 한 뒤 대표가 결제하고 가져가는 방식으로 한 것으로도 알고 있다"며 "처음엔 500만 원 정도 차액을 얻었는데, 점점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매장 직원과 수입사 대표가 나눈 문자메시지 내용에도 이런 정황들이 드러납니다.

직원이 리셀샵에서 제품을 가지러 온다고 연락이 왔다고 하자, 대표는 '주면 된다.'라고 답합니다. 이외에도 직원이 결제가 필요한 금액을 이야기하면 대표가 일부 금액은 송금하고, 일부는 자신이 매장에 가서 현금으로 주겠다는 식의 대화도 오갑니다.

매장직원과 수입사 대표의 대화 내용을 그래픽으로 재구성매장직원과 수입사 대표의 대화 내용을 그래픽으로 재구성

실제로 수입사 대표가 정식 매장에서 시계를 결제한 영수증도 일부 입수했습니다. 영수증 하나당 결제금액이 수천만 원에 달합니다. 한두 번 정도 '지인 선물용'으로 구매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수준입니다.

제보자는 2019년부터 최근까지, 수입사 대표가 이런 식으로 90개 가까운 시계를 재판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리셀샵 대표 "인정하지만, 프리미엄(웃돈)은 거의 안 붙여"

이번엔 실제로 이 시계들이 리셀샵에서 팔린 게 맞는지 찾아가 물었습니다. 리셀샵 대표는 수입사 대표에게 제품을 받아 판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리셀샵 대표는 "대표가 매장에서 정상적으로 가격을 주고 구매한 것을 나한테 위탁한 것이다"라며 "프리미엄(웃돈)이라고 할 수 없는 미미한 수준으로 가격을 드렸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위탁 수수료 부분에 대한 것은 정상적으로 세금 신고를 했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그 회사(수입사)에 근무하다가 나왔는데, 대표와 둘이 상표 가치를 올리려고 그랬다."라며 "둘 다 대단한 큰 이익을 본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비단 이 브랜드만의 문제도 아니다."라며 "다른 브랜드에서는 직원들이 그렇게 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시계 업계에서 재판매 행위가 일반적이라는 겁니다.

재판매 행위 자체가 불법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식 매장에서도 구하기 어려워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의 웃돈이 붙어 중고시장에서 거래되는 시계를 수입사 대표가 웃돈을 붙여 리셀샵에 판 행위가 과연 적절한 걸까요?

법무법인 현성의 송준호 변호사는 "이런 공급자 때문에 소비자들은 그 시계를 얻기 위해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된다."라며 "정보적 우위를 가지고 시장의 가격 형성을 방해하는 행위이다 보니 공정거래법상 지위를 이용한 시장 교란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사회 승인 없이 이사는 회사와 거래를 할 수 없도록 한 상법상 이사의 자기거래를 위반했다고도 볼 수 있다."라며 "이런 행위가 알려지면 본사가 계약 해지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어, 배임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취재팀은 수입사 대표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해지만, 입장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수입사 대표는 현재 강남경찰서에 배임, 탈세 등의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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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오픈런’해도 못 사는 초고가 시계…‘리셀샵’의 비밀은?
    • 입력 2021-06-20 07:05:48
    • 수정2021-06-20 07:18:51
    취재후·사건후

한정판이나 새로 나온 '명품'을 사려면 백화점이 문을 열 때 뛰어가야 한다고 하죠. 소위 '오픈런'이라고 합니다.

5대 명품 시계로 불리고, 래퍼와 아이돌 등 연예인들이 차고 나와 인기를 얻고 있는 초고가 시계를 보기 위해, 저도 '오픈런'이란 걸 해봤습니다.


■ 백화점 문 열자마자 갔는데..."물건 없어"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곧장 해당 시계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줄이 길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에 뛰어갔는데 다행히 매장에는 직원만 있었습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시계를 보러왔다고 하자, 직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물건이 없습니다. ****(인기모델) 남성용 같은 경우는 앞에 진열된 다른 모델을 구매하셔야 구매하실 수 있는데, 이 모델 자체도 지금 전시돼있는 것 밖에 없어요. 그 외 제품은 재고만 있으면 구매가 가능하신데, 물건이 수시로 들어오는 건 아니어서요. 물건이 정말 없어서 웨이팅(대기 줄)이 없는 겁니다."



구경은 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것도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재고가 없다 보니 전시조차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나마 전시된 모델은 이미 예약이 된 시계인데 고객의 양해를 구하고 전시해놓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빨리 온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오픈런' 자체에 의미가 없는 겁니다.


■ 그런데, 그런 시계가 리셀샵에는 있다?

백화점 매장에 급히 갔던 건, 사실 제보를 하나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장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초고가 시계들이 중고 시계를 사고, 파는 '리셀샵'에서 활발히 유통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해당 리셀샵(Resell Shop) 사이트에 들어가 봤습니다.

동일한 브랜드의 시계 20여 개가 올라와 있는데 대부분 '품절'입니다. 올라와 있는 물품 중에는 '미사용품'이라고 적힌 것들도 여럿, 눈에 띕니다. 지금은 삭제됐지만, 해당 사이트에 인기모델의 시계가 '미사용'·'품절'로 올라와 있던 화면도 확보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제보자는, 해당 시계를 독점 수입하는 업체의 대표가 일부 제품을 리셀샵에 넘겨왔다고 말합니다.

"물건이 회사로 들어오기 전에 어떤 게 들어오는지 리스트가 먼저 오거든요. 그럼 (수입사) 대표가 이 중 인기모델을 선점해서 중고업자한테 알려주고, 업자가 고객을 확보하면 대표가 프리미엄을 붙여 팔아 차액을 가져가는 방식으로 거래가 되는 거죠"

이 제보자는 또 "매장 직원들에게 시계를 팔지 말라고 한 뒤 대표가 결제하고 가져가는 방식으로 한 것으로도 알고 있다"며 "처음엔 500만 원 정도 차액을 얻었는데, 점점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매장 직원과 수입사 대표가 나눈 문자메시지 내용에도 이런 정황들이 드러납니다.

직원이 리셀샵에서 제품을 가지러 온다고 연락이 왔다고 하자, 대표는 '주면 된다.'라고 답합니다. 이외에도 직원이 결제가 필요한 금액을 이야기하면 대표가 일부 금액은 송금하고, 일부는 자신이 매장에 가서 현금으로 주겠다는 식의 대화도 오갑니다.

매장직원과 수입사 대표의 대화 내용을 그래픽으로 재구성
실제로 수입사 대표가 정식 매장에서 시계를 결제한 영수증도 일부 입수했습니다. 영수증 하나당 결제금액이 수천만 원에 달합니다. 한두 번 정도 '지인 선물용'으로 구매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수준입니다.

제보자는 2019년부터 최근까지, 수입사 대표가 이런 식으로 90개 가까운 시계를 재판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리셀샵 대표 "인정하지만, 프리미엄(웃돈)은 거의 안 붙여"

이번엔 실제로 이 시계들이 리셀샵에서 팔린 게 맞는지 찾아가 물었습니다. 리셀샵 대표는 수입사 대표에게 제품을 받아 판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리셀샵 대표는 "대표가 매장에서 정상적으로 가격을 주고 구매한 것을 나한테 위탁한 것이다"라며 "프리미엄(웃돈)이라고 할 수 없는 미미한 수준으로 가격을 드렸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위탁 수수료 부분에 대한 것은 정상적으로 세금 신고를 했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그 회사(수입사)에 근무하다가 나왔는데, 대표와 둘이 상표 가치를 올리려고 그랬다."라며 "둘 다 대단한 큰 이익을 본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비단 이 브랜드만의 문제도 아니다."라며 "다른 브랜드에서는 직원들이 그렇게 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시계 업계에서 재판매 행위가 일반적이라는 겁니다.

재판매 행위 자체가 불법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식 매장에서도 구하기 어려워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의 웃돈이 붙어 중고시장에서 거래되는 시계를 수입사 대표가 웃돈을 붙여 리셀샵에 판 행위가 과연 적절한 걸까요?

법무법인 현성의 송준호 변호사는 "이런 공급자 때문에 소비자들은 그 시계를 얻기 위해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된다."라며 "정보적 우위를 가지고 시장의 가격 형성을 방해하는 행위이다 보니 공정거래법상 지위를 이용한 시장 교란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사회 승인 없이 이사는 회사와 거래를 할 수 없도록 한 상법상 이사의 자기거래를 위반했다고도 볼 수 있다."라며 "이런 행위가 알려지면 본사가 계약 해지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어, 배임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취재팀은 수입사 대표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해지만, 입장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수입사 대표는 현재 강남경찰서에 배임, 탈세 등의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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