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 멈춘’ 섬진강 사람들…원인도 보상도 ‘제자리’

입력 2021.06.23 (21:35) 수정 2021.06.2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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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제 곧 장마철입니다.

그런데 1년 전 내린 비로 삶터와 일터를 잃은 사람들은 지금도 지난해 여름에 시간이 멈춰 있습니다.

폭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사람 탓이었는지, 주민들은 알고 싶지만, 원인은 여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오정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8월 8일, 83살 노인은 허리춤 위로 밀려드는 물을 맨발로 헤쳐 피했습니다.

[장순규/수해민 : "저기서 터졌어, 물이. 여기 둑이 조금 높잖아. 그리 못 가고 우리 집으로 바로 들어와 버렸어."]

흙탕을 씻어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한 달 50만 원으로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형편에 다시 이전 삶을 꾸릴 수 없었던 겁니다.

["(아직 축축하네요.) 이걸 내가 깔았고, 스티로폼 깔아서 안 말라서 그렇지."]

위로금과 재난지원금 4백만 원을 받았지만, 바닥을 뜯어 보일러를 고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장순규/수해민 : "돈이 있어야 이걸 고지. 밑에 걸. 못 고쳤어, 이걸."]

비료 한 포대가 아쉬워, 떠내려간 걸 주워놨는데 지금까지 못 쓰고 있습니다.

["(작년 퇴비인 거예요?) 저 멀리 가있는 것까지 찾아오고."]

딸기와 수박을 키웠던 농부도 땅을 놀리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 네 동을 다시 지으려면 자기부담금 2천4백만 원 정도가 필요한데, 두 해째 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김종민/수해민 : "없는 상황에서 하우스를 짓지 못하죠. (가족 생계는 어떻게.) 힘들고 막막하죠. 헤어나올 순 없고 참..."]

집을 고치고 농사를 짓기 위해 보상을 먼저 요구해봤지만, 정부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제방이 왜 무너졌는지, 댐 방류 탓인지, 제방이 약했는지, 제방 턱이 낮았던 건지,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빨리 원인을 밝히면 되는데, 하세월입니다.

정부 수해조사위는 주민대표를 뺐다가 파행됐고, 그렇게 원인 조사를 맡길 곳을 정하는 데만 넉 달을 썼습니다.

올 봄에 나올 거라던 중간 결과는 또 미뤄지고 있습니다.

물난리 뒤 정부가 빠른 조사와 대책을 약속했지만 원인 규명도, 합당한 보상도 어느 하나 단 한 걸음 나아가지 못한 채 또다시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KBS 뉴스 오정현입니다.

촬영기자:안광석/그래픽: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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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에 멈춘’ 섬진강 사람들…원인도 보상도 ‘제자리’
    • 입력 2021-06-23 21:35:02
    • 수정2021-06-23 22:02:28
    뉴스9(전주)
[앵커]

이제 곧 장마철입니다.

그런데 1년 전 내린 비로 삶터와 일터를 잃은 사람들은 지금도 지난해 여름에 시간이 멈춰 있습니다.

폭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사람 탓이었는지, 주민들은 알고 싶지만, 원인은 여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오정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8월 8일, 83살 노인은 허리춤 위로 밀려드는 물을 맨발로 헤쳐 피했습니다.

[장순규/수해민 : "저기서 터졌어, 물이. 여기 둑이 조금 높잖아. 그리 못 가고 우리 집으로 바로 들어와 버렸어."]

흙탕을 씻어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한 달 50만 원으로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형편에 다시 이전 삶을 꾸릴 수 없었던 겁니다.

["(아직 축축하네요.) 이걸 내가 깔았고, 스티로폼 깔아서 안 말라서 그렇지."]

위로금과 재난지원금 4백만 원을 받았지만, 바닥을 뜯어 보일러를 고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장순규/수해민 : "돈이 있어야 이걸 고지. 밑에 걸. 못 고쳤어, 이걸."]

비료 한 포대가 아쉬워, 떠내려간 걸 주워놨는데 지금까지 못 쓰고 있습니다.

["(작년 퇴비인 거예요?) 저 멀리 가있는 것까지 찾아오고."]

딸기와 수박을 키웠던 농부도 땅을 놀리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 네 동을 다시 지으려면 자기부담금 2천4백만 원 정도가 필요한데, 두 해째 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김종민/수해민 : "없는 상황에서 하우스를 짓지 못하죠. (가족 생계는 어떻게.) 힘들고 막막하죠. 헤어나올 순 없고 참..."]

집을 고치고 농사를 짓기 위해 보상을 먼저 요구해봤지만, 정부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제방이 왜 무너졌는지, 댐 방류 탓인지, 제방이 약했는지, 제방 턱이 낮았던 건지,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빨리 원인을 밝히면 되는데, 하세월입니다.

정부 수해조사위는 주민대표를 뺐다가 파행됐고, 그렇게 원인 조사를 맡길 곳을 정하는 데만 넉 달을 썼습니다.

올 봄에 나올 거라던 중간 결과는 또 미뤄지고 있습니다.

물난리 뒤 정부가 빠른 조사와 대책을 약속했지만 원인 규명도, 합당한 보상도 어느 하나 단 한 걸음 나아가지 못한 채 또다시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KBS 뉴스 오정현입니다.

촬영기자:안광석/그래픽: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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