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도쿄올림픽 ‘1만 관중’의 비밀…묘수? 자충수?

입력 2021.06.24 (06:00) 수정 2021.06.2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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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橫浜)시에 있는 프로야구 경기장, 요코하마 마린 스타디움입니다. 지난 3월 30일 요코하마 DeNA와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경기 때 장면입니다.

이 경기장의 수용 정원은 약 3만 4천 명. 이날은 9천992명(29.4%)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관중석 3분의 1도 못 채운 셈이지만, 야구팬들이 선호하는 내야석은 거의 꽉 들어찬 모습입니다.

최근 도쿄올림픽 관중 상한선으로 경기장 정원의 50% 이내로, 최대 1만 명이 공식 결정됐습니다.

코하마 스타디움에서도 올림픽 야구와 소프트볼 경기가 열릴 예정입니다. 자칫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는 '도쿄올림픽 1만 관중', 이 결정 안에는 어떤 노림수가 있었던 걸까요?

하시모토 세이코(왼쪽) 일본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 회장과 토마스 바흐(오른쪽 화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6월 21일 도쿄에서 발언하고 있다.  〈도쿄=AP〉하시모토 세이코(왼쪽) 일본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 회장과 토마스 바흐(오른쪽 화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6월 21일 도쿄에서 발언하고 있다. 〈도쿄=AP〉

■ '도어 인 더 페이스' 효과

"원래는 '개최냐' '중지냐'의 문제였는데 '유(有) 관중'을 들고 나왔더니, 이제는 '관중을 입장시켜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대립 구도로 바뀌었어요. 이게 바로 '도어 인 더 페이스'입니다. 고도의 전략이죠."

일본 도쿄(東京)스포츠가 지난 19일 전한 도쿄올림픽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관계자의 말입니다. '도어 인 더 페이스'(Door in the face)은 일종의 설득 전략입니다. 처음부터 어려운 부탁을 해 거절을 당한 뒤 이후 쉬운 부탁을 하면 상대방이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핵심입니다.

일본 정부도 도쿄올림픽과 관련해 유사 전략을 쓰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앞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5월 28일 총리관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프로야구 등을 예로 들며 "(올림픽 관중에)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누가 봐도 이 발언을 하기에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올림픽 취소 여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고, 심지어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도쿄(東京) 등에 내려진 긴급사태 재연장 결정을 설명하는 회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유(有) 관중'으로 맞불을 놓은 전략은 여론 흐름을 돌리는 효과를 냈습니다. 이후 일본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관중 수용 여부'에 집중되면서 '대회 중지'를 요구했던 목소리는 서서히 관심 밖으로 밀려갔습니다.

실제로 보름 뒤인 6월 14일 공개된 일본 공영방송 NHK의 여론조사에서 '올림픽 취소' 응답은 31%로, 한 달 전(49%)보다 18%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반면에 '무관중 개최'는 23%에서 29%로, '관중 수 제한' 요구는 19%에서 32%로 급등했습니다. 프레임 자체가 바뀐 겁니다.

"결과적으로 '대회 중지'를 요구하고 있던 사람들이 지금은 '무(無) 관중'을 밀고 있어요. 처음부터 노린 건 아니었겠지만, 작전으로 치자면 아주 잘 먹혀든 거죠." (도쿄올림픽 조직위 관계자)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난 19일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 반대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이 'X' 표시의 머리띠와 마스크를 한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도쿄=로이터〉도쿄올림픽 개막식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난 19일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 반대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이 'X' 표시의 머리띠와 마스크를 한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도쿄=로이터〉

■ 경제효과 4.9% 감소

'유 관중 전략'은 여론을 반전시키는 데 이어 경제적 실리도 챙겼습니다.

도쿄도 내 올림픽 경기장은 27곳, 총 수용 인원은 34만 8천 100명입니다. 이 가운데 수용 정원이 2만 명을 넘어 '1만 명 상한'이 적용되는 곳은 국립 경기장과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등 2곳입니다.

일본 민간 노무라종합연구소(野村總硏)에 따르면 새로운 관중 규정을 적용했을 때 정원 대비 실제 수용 인원 비율은 39.1%가 됩니다.

다시 이 숫자를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전체에 적용하면 제한 없이 관중을 수용할 때에 견줘 경제 효과는 894억 엔(한화 9천162억 원)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불과 4.9% 감소입니다.

경기장에 관중을 들임으로써 나름대로 축제 분위기를 형성하고, 실물 경기를 자극하는 수준은 된다는 뜻입니다.


■ 스가, 총선 겨냥 승부수

도쿄올림픽 '유 관중 개최'가 결정된 것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하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아사히(朝日)신문은 스가 총리가 최근 측근 의원에게 "나는 승부를 걸었다"는 얘기를 반복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동안 스가 총리는 도쿄올림픽 관중 상한을 국내 대형 이벤트 인원 제한을 기준으로 결정한다는 태도를 보여왔는데, 지난 22일 온라인으로 열린 도쿄올림픽 관련 5자 협의에선 스가 총리가 그동안 제시한 입장이 관철되는 모양새였습니다.

스가 총리가 유 관중 올림픽 개최를 고집한 것은 올해 가을 자민당 총재 선거와 중의원 해산·총선거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인 대회로 연출하기 위해서는 만원 관중은 아니더라도 일부이라도 관중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감염증 전문가들이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는데도 관중 수용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7.23~9.5) 성공 개최 후 9월께 중의원 해산을 단행하고 총선거에서 승리해 연임에 성공한다는 게 스가 총리의 구상으로 전해졌습니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참가 선수들이 이용할 선수촌 내부가 6월 20일 공개됐다.  사진은 도쿄 주오(中央)구 하루미 지역에 들어선 선수촌 내의 빌리지 플라자 전경. 뒤쪽으로 선수촌 아파트가 보인다. 〈도쿄=교도통신〉도쿄올림픽·패럴림픽 참가 선수들이 이용할 선수촌 내부가 6월 20일 공개됐다. 사진은 도쿄 주오(中央)구 하루미 지역에 들어선 선수촌 내의 빌리지 플라자 전경. 뒤쪽으로 선수촌 아파트가 보인다. 〈도쿄=교도통신〉

■ 유 관중은 묘수? 자충수?

일본 정부의 '유 관중 방침'은 과연 묘수(妙手)일까요. 아니면 자충수(自充手)에 그칠까요.

이 방침은 낙관론에 근거하고 있지만, 올림픽 기간(7.23~8.8)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 관중 수용을 고집한 스가 총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역으로 거세질 수 있습니다.

스가 총리가 최근 "긴급사태가 재발령되면 국민의 안전과 안심을 최우선으로 '무관중 개최'도 불사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실제로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꼭 한 달 앞둔 23일, 도쿄에선 코로나19 감염자 619명이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같은 금요일 기준으로 1주 전과 비교해 118명 늘었습니다. 이로써 도쿄에선 나흘 연속으로 감염자 수가 전주 같은 요일을 웃돌았습니다.

코로나19 '5차 확산'의 전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도쿄신문은 국내 관중 입장을 허용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전문가들이 '무관중'을 제언했지만 무시당한 모양새가 됐다"고 지적했고, 아사히신문은 "이대로 강행하면 '코로나를 이겨낸 증거'가 되기는커녕 '독선과 폭주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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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도쿄올림픽 ‘1만 관중’의 비밀…묘수? 자충수?
    • 입력 2021-06-24 06:00:30
    • 수정2021-06-24 06:02:30
    특파원 리포트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橫浜)시에 있는 프로야구 경기장, 요코하마 마린 스타디움입니다. 지난 3월 30일 요코하마 DeNA와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경기 때 장면입니다.

이 경기장의 수용 정원은 약 3만 4천 명. 이날은 9천992명(29.4%)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관중석 3분의 1도 못 채운 셈이지만, 야구팬들이 선호하는 내야석은 거의 꽉 들어찬 모습입니다.

최근 도쿄올림픽 관중 상한선으로 경기장 정원의 50% 이내로, 최대 1만 명이 공식 결정됐습니다.

코하마 스타디움에서도 올림픽 야구와 소프트볼 경기가 열릴 예정입니다. 자칫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는 '도쿄올림픽 1만 관중', 이 결정 안에는 어떤 노림수가 있었던 걸까요?

하시모토 세이코(왼쪽) 일본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 회장과 토마스 바흐(오른쪽 화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6월 21일 도쿄에서 발언하고 있다.  〈도쿄=AP〉
■ '도어 인 더 페이스' 효과

"원래는 '개최냐' '중지냐'의 문제였는데 '유(有) 관중'을 들고 나왔더니, 이제는 '관중을 입장시켜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대립 구도로 바뀌었어요. 이게 바로 '도어 인 더 페이스'입니다. 고도의 전략이죠."

일본 도쿄(東京)스포츠가 지난 19일 전한 도쿄올림픽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관계자의 말입니다. '도어 인 더 페이스'(Door in the face)은 일종의 설득 전략입니다. 처음부터 어려운 부탁을 해 거절을 당한 뒤 이후 쉬운 부탁을 하면 상대방이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핵심입니다.

일본 정부도 도쿄올림픽과 관련해 유사 전략을 쓰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앞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5월 28일 총리관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프로야구 등을 예로 들며 "(올림픽 관중에)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누가 봐도 이 발언을 하기에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올림픽 취소 여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고, 심지어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도쿄(東京) 등에 내려진 긴급사태 재연장 결정을 설명하는 회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유(有) 관중'으로 맞불을 놓은 전략은 여론 흐름을 돌리는 효과를 냈습니다. 이후 일본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관중 수용 여부'에 집중되면서 '대회 중지'를 요구했던 목소리는 서서히 관심 밖으로 밀려갔습니다.

실제로 보름 뒤인 6월 14일 공개된 일본 공영방송 NHK의 여론조사에서 '올림픽 취소' 응답은 31%로, 한 달 전(49%)보다 18%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반면에 '무관중 개최'는 23%에서 29%로, '관중 수 제한' 요구는 19%에서 32%로 급등했습니다. 프레임 자체가 바뀐 겁니다.

"결과적으로 '대회 중지'를 요구하고 있던 사람들이 지금은 '무(無) 관중'을 밀고 있어요. 처음부터 노린 건 아니었겠지만, 작전으로 치자면 아주 잘 먹혀든 거죠." (도쿄올림픽 조직위 관계자)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난 19일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 반대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이 'X' 표시의 머리띠와 마스크를 한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도쿄=로이터〉
■ 경제효과 4.9% 감소

'유 관중 전략'은 여론을 반전시키는 데 이어 경제적 실리도 챙겼습니다.

도쿄도 내 올림픽 경기장은 27곳, 총 수용 인원은 34만 8천 100명입니다. 이 가운데 수용 정원이 2만 명을 넘어 '1만 명 상한'이 적용되는 곳은 국립 경기장과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등 2곳입니다.

일본 민간 노무라종합연구소(野村總硏)에 따르면 새로운 관중 규정을 적용했을 때 정원 대비 실제 수용 인원 비율은 39.1%가 됩니다.

다시 이 숫자를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전체에 적용하면 제한 없이 관중을 수용할 때에 견줘 경제 효과는 894억 엔(한화 9천162억 원)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불과 4.9% 감소입니다.

경기장에 관중을 들임으로써 나름대로 축제 분위기를 형성하고, 실물 경기를 자극하는 수준은 된다는 뜻입니다.


■ 스가, 총선 겨냥 승부수

도쿄올림픽 '유 관중 개최'가 결정된 것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하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아사히(朝日)신문은 스가 총리가 최근 측근 의원에게 "나는 승부를 걸었다"는 얘기를 반복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동안 스가 총리는 도쿄올림픽 관중 상한을 국내 대형 이벤트 인원 제한을 기준으로 결정한다는 태도를 보여왔는데, 지난 22일 온라인으로 열린 도쿄올림픽 관련 5자 협의에선 스가 총리가 그동안 제시한 입장이 관철되는 모양새였습니다.

스가 총리가 유 관중 올림픽 개최를 고집한 것은 올해 가을 자민당 총재 선거와 중의원 해산·총선거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인 대회로 연출하기 위해서는 만원 관중은 아니더라도 일부이라도 관중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감염증 전문가들이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는데도 관중 수용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7.23~9.5) 성공 개최 후 9월께 중의원 해산을 단행하고 총선거에서 승리해 연임에 성공한다는 게 스가 총리의 구상으로 전해졌습니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참가 선수들이 이용할 선수촌 내부가 6월 20일 공개됐다.  사진은 도쿄 주오(中央)구 하루미 지역에 들어선 선수촌 내의 빌리지 플라자 전경. 뒤쪽으로 선수촌 아파트가 보인다. 〈도쿄=교도통신〉
■ 유 관중은 묘수? 자충수?

일본 정부의 '유 관중 방침'은 과연 묘수(妙手)일까요. 아니면 자충수(自充手)에 그칠까요.

이 방침은 낙관론에 근거하고 있지만, 올림픽 기간(7.23~8.8)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 관중 수용을 고집한 스가 총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역으로 거세질 수 있습니다.

스가 총리가 최근 "긴급사태가 재발령되면 국민의 안전과 안심을 최우선으로 '무관중 개최'도 불사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실제로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꼭 한 달 앞둔 23일, 도쿄에선 코로나19 감염자 619명이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같은 금요일 기준으로 1주 전과 비교해 118명 늘었습니다. 이로써 도쿄에선 나흘 연속으로 감염자 수가 전주 같은 요일을 웃돌았습니다.

코로나19 '5차 확산'의 전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도쿄신문은 국내 관중 입장을 허용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전문가들이 '무관중'을 제언했지만 무시당한 모양새가 됐다"고 지적했고, 아사히신문은 "이대로 강행하면 '코로나를 이겨낸 증거'가 되기는커녕 '독선과 폭주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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