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써 갚겠다’는 성추행 가해자 메시지…사과일까, 협박일까?

입력 2021.06.24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성추행 가해자 '석달 만에 갑자기' 증거인멸 우려로 구속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에서 처음으로 '피고인'신분이 된 사람은 장 모 중사입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 모 중사를 강제 추행한 혐의 등으로 지난 21일 구속기소 됐습니다.

장 중사는 소속 부대(공군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에 성추행사건이 신고된 3월 3일 이후 계속 불구속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 중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후(5월 22일)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5월 31일), 국방부 장관 지시로 국방부 검찰단이 수사를 맡은 다음 날(6월 2일), 장 중사는 곧바로 군복을 입은 채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으로 구인됐습니다.

그리고 영장실질심사 시작 2시간 30분 만에 구속됐습니다. 법원이 밝힌 구속영장 발부 사유는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 였습니다.

사건 발생 석 달 만에 가해자를 구속하면서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를 들었는데요. 석 달이라는 시간은 증거를 인멸하려고 들자면 너무나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요?

사건 발생 초기에는 증거 인멸 우려가 없었다고 판단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장 모 중사가 지난 2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들어서고 있다.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장 모 중사가 지난 2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증거인멸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한 군사경찰

23일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기자들에게 그동안 수사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초동 수사 당시 장 중사에 대해 불구속 결정이 이뤄진 경위를 질문했습니다.

초동수사를 맡은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대대를 수사한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 (장 중사가 피해자에게) 2차례 사과하는 문자나 이런 것을 보냈다는 것을 사과로 인식했던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2차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정도라고 판단이 안 됐고, 그런 것으로 봤을 때는 도주 우려나 증거 인멸 부분은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요. 불구속 방향을 판단할 때 통상 군 검사와 의견 조율을 하는데 그런 의견을 들어서 종합적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담당 수사관의 진술을 저희(조사본부)가 확인했습니다."

같은 피의자를 두고도 20비행단 군사경찰·20비행단 군 검찰과 국방부 검찰단이 '도주 우려와 증거 인멸' 여부를 달리 판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로 다른 사건 기록이라도 본 걸까요?


■ 성추행 가해자가 보낸 문자메시지...사과일까, 협박일까?

수사 주체가 바뀌니 달라진 점은 또 있습니다. 20비행단 군사경찰이 '사과'의 의미로 판단했다는 문자메시지, 석 달 뒤에는 장 중사가 재판에 넘겨질 때 혐의가 추가된 사유가 됐습니다.

지난 18일 열린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는 피해자 이 중사의 유족도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문자메시지에 대한 언급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수사심의위는 "장 중사의 일부 행위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보복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심의 의견을 냈습니다.

국방부 검찰단도 21일 장 중사를 구속기소 하면서 강제추행치상 혐의 외에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협박 등)을 공소사실에 적시했습니다.

피해자 이 모 중사의 유족은 지난 2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장 중사가 집에 도착한 우리 딸에게 '잘못했다. 죽음으로써 사과하고 죽음으로써 빌겠다'라고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압력 문자를 넣었어요. 우리 딸은 상관에게 연락해서 울면서 '이렇게 극단적인 문자를 보내서 무서워 죽겠습니다'라고 했어요"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당시 늦은 밤 문자를 받고 놀란 이 중사는 다음 날 아침에 '장 중사의 생존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상관에게 요청해 상관이 장 중사의 집을 찾아가는 일도 벌어졌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3월 22일, 검사에게 탄원서도 보냈습니다(4월 20일 전후 전달된 것으로 최근 국방부가 밝힘).

이 탄원서에도 "장 중사가 늦은 밤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내 심리적으로 압박했다...가해자의 협박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 가해자 조사도 하기 전에 내려진 '불구속' 결정...외압 없었나

규명 하여야 할 부분은 또 있습니다. 장 중사에 대한 불구속 결정이 과연 '용서를 비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 하나로 이뤄졌을까 하는 점입니다.

20비행단 군사경찰대대 수사계장은 3월 5일 피해자 조사를 토대로 3월 8일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중앙수사대에 최초 참고보고서를 보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장 중사에 대한 '불구속 의견'이 담겨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장 중사에 대한 첫 조사는 3월 17일 이뤄졌습니다. 가해자 조사를 하기 전에 불구속 결정이 이뤄진 셈입니다.

군 법무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구속영장에 대한 실질적 권한은 소속 대대장과 경찰대대장에 있습니다. 불구속으로 합의한 것 아닌지, 외압이 있었는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20비행단 군사경찰의 부실수사 의혹과 관련해 지난 15일 20비행단 군사경찰대대에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국방통합데이터센터 등을 압수 수색을 해서 수사관계자들의 PC, 군 웹메일, 통신사실 확인 자료 등을 확보해 분석했습니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외압 여부 판단을 위해 위병소 출입일지, 학연과 지연 관계까지 분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20비행단 군사경찰대대에서 입건된 사람은 지금까지 없습니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수사가 부실했다고 하는 부분은 여러 가지 확인을 했다"면서도 "수사가 부실한 것이 과연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하기에 고의성과 구성요건에 해당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소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건데, 25일 열리는 4차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심의위원들의 의견도 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죽음으로써 갚겠다’는 성추행 가해자 메시지…사과일까, 협박일까?
    • 입력 2021-06-24 07:00:35
    취재K

■성추행 가해자 '석달 만에 갑자기' 증거인멸 우려로 구속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에서 처음으로 '피고인'신분이 된 사람은 장 모 중사입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 모 중사를 강제 추행한 혐의 등으로 지난 21일 구속기소 됐습니다.

장 중사는 소속 부대(공군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에 성추행사건이 신고된 3월 3일 이후 계속 불구속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 중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후(5월 22일)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5월 31일), 국방부 장관 지시로 국방부 검찰단이 수사를 맡은 다음 날(6월 2일), 장 중사는 곧바로 군복을 입은 채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으로 구인됐습니다.

그리고 영장실질심사 시작 2시간 30분 만에 구속됐습니다. 법원이 밝힌 구속영장 발부 사유는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 였습니다.

사건 발생 석 달 만에 가해자를 구속하면서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를 들었는데요. 석 달이라는 시간은 증거를 인멸하려고 들자면 너무나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요?

사건 발생 초기에는 증거 인멸 우려가 없었다고 판단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장 모 중사가 지난 2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증거인멸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한 군사경찰

23일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기자들에게 그동안 수사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초동 수사 당시 장 중사에 대해 불구속 결정이 이뤄진 경위를 질문했습니다.

초동수사를 맡은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대대를 수사한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 (장 중사가 피해자에게) 2차례 사과하는 문자나 이런 것을 보냈다는 것을 사과로 인식했던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2차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정도라고 판단이 안 됐고, 그런 것으로 봤을 때는 도주 우려나 증거 인멸 부분은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요. 불구속 방향을 판단할 때 통상 군 검사와 의견 조율을 하는데 그런 의견을 들어서 종합적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담당 수사관의 진술을 저희(조사본부)가 확인했습니다."

같은 피의자를 두고도 20비행단 군사경찰·20비행단 군 검찰과 국방부 검찰단이 '도주 우려와 증거 인멸' 여부를 달리 판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로 다른 사건 기록이라도 본 걸까요?


■ 성추행 가해자가 보낸 문자메시지...사과일까, 협박일까?

수사 주체가 바뀌니 달라진 점은 또 있습니다. 20비행단 군사경찰이 '사과'의 의미로 판단했다는 문자메시지, 석 달 뒤에는 장 중사가 재판에 넘겨질 때 혐의가 추가된 사유가 됐습니다.

지난 18일 열린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는 피해자 이 중사의 유족도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문자메시지에 대한 언급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수사심의위는 "장 중사의 일부 행위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보복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심의 의견을 냈습니다.

국방부 검찰단도 21일 장 중사를 구속기소 하면서 강제추행치상 혐의 외에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협박 등)을 공소사실에 적시했습니다.

피해자 이 모 중사의 유족은 지난 2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장 중사가 집에 도착한 우리 딸에게 '잘못했다. 죽음으로써 사과하고 죽음으로써 빌겠다'라고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압력 문자를 넣었어요. 우리 딸은 상관에게 연락해서 울면서 '이렇게 극단적인 문자를 보내서 무서워 죽겠습니다'라고 했어요"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당시 늦은 밤 문자를 받고 놀란 이 중사는 다음 날 아침에 '장 중사의 생존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상관에게 요청해 상관이 장 중사의 집을 찾아가는 일도 벌어졌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3월 22일, 검사에게 탄원서도 보냈습니다(4월 20일 전후 전달된 것으로 최근 국방부가 밝힘).

이 탄원서에도 "장 중사가 늦은 밤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내 심리적으로 압박했다...가해자의 협박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 가해자 조사도 하기 전에 내려진 '불구속' 결정...외압 없었나

규명 하여야 할 부분은 또 있습니다. 장 중사에 대한 불구속 결정이 과연 '용서를 비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 하나로 이뤄졌을까 하는 점입니다.

20비행단 군사경찰대대 수사계장은 3월 5일 피해자 조사를 토대로 3월 8일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중앙수사대에 최초 참고보고서를 보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장 중사에 대한 '불구속 의견'이 담겨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장 중사에 대한 첫 조사는 3월 17일 이뤄졌습니다. 가해자 조사를 하기 전에 불구속 결정이 이뤄진 셈입니다.

군 법무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구속영장에 대한 실질적 권한은 소속 대대장과 경찰대대장에 있습니다. 불구속으로 합의한 것 아닌지, 외압이 있었는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20비행단 군사경찰의 부실수사 의혹과 관련해 지난 15일 20비행단 군사경찰대대에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국방통합데이터센터 등을 압수 수색을 해서 수사관계자들의 PC, 군 웹메일, 통신사실 확인 자료 등을 확보해 분석했습니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외압 여부 판단을 위해 위병소 출입일지, 학연과 지연 관계까지 분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20비행단 군사경찰대대에서 입건된 사람은 지금까지 없습니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수사가 부실했다고 하는 부분은 여러 가지 확인을 했다"면서도 "수사가 부실한 것이 과연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하기에 고의성과 구성요건에 해당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소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건데, 25일 열리는 4차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심의위원들의 의견도 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