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반달가슴곰 ‘오삼이’가 떠도는 이유는?

입력 2021.06.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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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전북 남원 도로에 나타난 반달가슴곰 ‘오삼이’ / 시청자 제공지난 4일, 전북 남원 도로에 나타난 반달가슴곰 ‘오삼이’ / 시청자 제공

■ 도로 가로막은 키 2m 곰

지난 4일 저녁 7시 반쯤, 전북 남원 도로에 '곰'이 나타났습니다. 이따금 출몰해 사람을 놀래는 멧돼지나 고라니가 아니고, 몸무게 180kg짜리 진짜 곰입니다. 도로는 사람 사는 마을과 불과 수백m 거리였습니다.

밭일을 마치고 집에 가던 70대 할머니 한 분과 마침 차를 끌고 그곳을 지나는 운전자가 곰을 봤고, 119에 곧장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곰 잡으러 출동한 소방대원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포획조가 오기 전 곰이 쓱하고 산속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다행히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한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오삼이' 또 너니?

이날 나타난 곰의 정체는 곧 드러났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이 종 복원을 위해 2015년 지리산에 풀어준 수컷 반달가슴곰, 코드 번호 'KM-53'이었습니다. 참고로 알파벳과 숫자는 '53번째로 한국에서 태어난(Korea), 수컷(Male)'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녀석 보통 유명한 게 아닙니다. 이름도 있습니다. '오삼이'는 2015년 1월 태어나, 그해 10월 방사되고부터 때마다 언론을 장식했습니다.

처음엔 '한배에서 난 동생과 지리산에서 살게 됐다' 정도의 무겁지 않은 기사였죠. 이후로는 무려 사건·사고 주인공으로 뉴스 헤드라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기삿거리가 된 '오삼이'의 기행은 다음과 같습니다.

KBS 뉴스 화면 / 2019. 6. 12.KBS 뉴스 화면 / 2019. 6. 12.

교통사고로 다쳐 병원으로 옮겨지는 오삼이 / KBS 뉴스 2018. 8. 27.교통사고로 다쳐 병원으로 옮겨지는 오삼이 / KBS 뉴스 2018. 8. 27.

■ 신대륙 찾아 모험하는 '콜럼버스 곰'

지리산에서 잘 살 줄 알았던 오삼이는 2017년 6월,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홀로 90km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으로 갔습니다.

다른 지리산 곰들은 활동 반경이 15km 정도이니, 오삼이는 확실히 특이합니다. 어쨌든 잡아다 지리산에 돌려놨는데, 오삼이는 그때마다 다시 수도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다 이듬해 2018년 5월 사달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세 번째' 수도산행에 나선 오삼이가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건너다 버스에 치인 겁니다. 12시간 대수술을 받고 건강해진 오삼이는 그토록 가고 싶어 한 수도산으로 갔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오삼이를 지리산이 아닌 수도산에 풀어주기로 했습니다.


■ 꿀 훔쳐 먹고 민폐…끝나지 않은 방랑 생활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오삼이의 모험기는 오래지 않아 '속편'이 또 나왔습니다.

2020년 6월, 이번엔 충북 영동입니다. 오삼이는 농부가 애써 가꾼 벌통 4개를 털어 꿀을 먹다 걸렸습니다. 그래도 이땐 꿀만 먹고 30km를 걸어 다시 수도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꿀맛을 못 잊었던 건지 충북 영동에 또 한 번 나타나 민폐를 끼칩니다. 벌통을 깨고 사라진 오삼이는 이번엔 수도산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전북 남원에 나타났고, 지금은 고향 지리산으로 스스로 돌아갔습니다.

김천시가 만든 ‘오삼이’ 캐릭터김천시가 만든 ‘오삼이’ 캐릭터

■ 김천시 "정성 다했는데"…오삼이 야속한 '아듀'

수도산에 터 잡고 살 줄 알았던 오삼이가 다시 방랑하고, 지난해 아예 옆집인 가야산으로 가 겨울잠을 자자 내심 아쉬워한 곳은 지자체인 경북 김천시였습니다.

수도산에 살던 당시 오삼이에 대한 관심 때문에, 김천시는 환경부와 함께 '반달가슴곰 공존협의체'까지 꾸려 서식지 안정을 위해 공을 들였습니다.

1,970만 원을 써 캐릭터도 만들어줬습니다. 시청에 오삼이 모형을 세우고 포토존까지 설치했는데, 오삼이는 수도산을 떠났습니다.

김천시 한 공무원은 "캐릭터 만들고 딱 그 뒤에 떠났네요. 정성이 부족했던 건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김천시는 올무 제거와 청소 같은 일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오삼이가 언제 또 수도산으로 돌아올지 몰라서입니다.


■ 오삼이는 왜 방랑곰이 됐을까?

오삼이가 왜 떠도는지, 다양한 의견이 나옵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마릿수가 늘어나면서 자연히 영역을 넓히는 거라고 분석했습니다.

지리산엔 지금껏 방사된 개체와 이들의 2세까지 모두 70마리 정도 반달곰이 야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아직은 지리산이 비좁지 않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 곰의 적정 개체 수를 78마리로 잡고 있습니다.

교미와 번식을 위해 떠돈다는 분석 역시 지리산에 암컷 개체가 많아 설득력이 높지 않습니다. 먹이 때문도 아닙니다. 지리산엔 곰이 좋아하는 도토리와 머루, 산딸기가 풍부합니다.

오삼이의 모험은 연구 대상이지만, 똑 부러지게 이유를 말하긴 아직 어렵습니다.

'백두대간을 탐험해 꿀을 훔쳐먹는' 모험담에, 곰을 큰 강아지 정도로 여기면 큰일 납니다. 반달가슴곰은 평소 성격이 포악하지 않고 사람을 먼저 피하는 특성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산속 먹이 사슬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입니다.

혹시 산에서 곰을 마주치면 "네가 오삼이니?" 묻지 않길 바랍니다. 먹이를 주거나 사진을 찍으려 가까이 가는 것도 절대 해선 안 될 일입니다. 소리를 질러 자극하거나 돌이나 물건을 던지는 것도 금물입니다.

전문가는 곰을 마주치면 뒷걸음으로 천천히 물러서 자리를 벗어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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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반달가슴곰 ‘오삼이’가 떠도는 이유는?
    • 입력 2021-06-24 07:00:35
    취재K
지난 4일, 전북 남원 도로에 나타난 반달가슴곰 ‘오삼이’ / 시청자 제공
■ 도로 가로막은 키 2m 곰

지난 4일 저녁 7시 반쯤, 전북 남원 도로에 '곰'이 나타났습니다. 이따금 출몰해 사람을 놀래는 멧돼지나 고라니가 아니고, 몸무게 180kg짜리 진짜 곰입니다. 도로는 사람 사는 마을과 불과 수백m 거리였습니다.

밭일을 마치고 집에 가던 70대 할머니 한 분과 마침 차를 끌고 그곳을 지나는 운전자가 곰을 봤고, 119에 곧장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곰 잡으러 출동한 소방대원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포획조가 오기 전 곰이 쓱하고 산속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다행히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한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오삼이' 또 너니?

이날 나타난 곰의 정체는 곧 드러났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이 종 복원을 위해 2015년 지리산에 풀어준 수컷 반달가슴곰, 코드 번호 'KM-53'이었습니다. 참고로 알파벳과 숫자는 '53번째로 한국에서 태어난(Korea), 수컷(Male)'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녀석 보통 유명한 게 아닙니다. 이름도 있습니다. '오삼이'는 2015년 1월 태어나, 그해 10월 방사되고부터 때마다 언론을 장식했습니다.

처음엔 '한배에서 난 동생과 지리산에서 살게 됐다' 정도의 무겁지 않은 기사였죠. 이후로는 무려 사건·사고 주인공으로 뉴스 헤드라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기삿거리가 된 '오삼이'의 기행은 다음과 같습니다.

KBS 뉴스 화면 / 2019. 6. 12.
교통사고로 다쳐 병원으로 옮겨지는 오삼이 / KBS 뉴스 2018. 8. 27.
■ 신대륙 찾아 모험하는 '콜럼버스 곰'

지리산에서 잘 살 줄 알았던 오삼이는 2017년 6월,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홀로 90km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으로 갔습니다.

다른 지리산 곰들은 활동 반경이 15km 정도이니, 오삼이는 확실히 특이합니다. 어쨌든 잡아다 지리산에 돌려놨는데, 오삼이는 그때마다 다시 수도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다 이듬해 2018년 5월 사달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세 번째' 수도산행에 나선 오삼이가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건너다 버스에 치인 겁니다. 12시간 대수술을 받고 건강해진 오삼이는 그토록 가고 싶어 한 수도산으로 갔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오삼이를 지리산이 아닌 수도산에 풀어주기로 했습니다.


■ 꿀 훔쳐 먹고 민폐…끝나지 않은 방랑 생활

그렇게 끝날 줄 알았던 오삼이의 모험기는 오래지 않아 '속편'이 또 나왔습니다.

2020년 6월, 이번엔 충북 영동입니다. 오삼이는 농부가 애써 가꾼 벌통 4개를 털어 꿀을 먹다 걸렸습니다. 그래도 이땐 꿀만 먹고 30km를 걸어 다시 수도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꿀맛을 못 잊었던 건지 충북 영동에 또 한 번 나타나 민폐를 끼칩니다. 벌통을 깨고 사라진 오삼이는 이번엔 수도산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전북 남원에 나타났고, 지금은 고향 지리산으로 스스로 돌아갔습니다.

김천시가 만든 ‘오삼이’ 캐릭터
■ 김천시 "정성 다했는데"…오삼이 야속한 '아듀'

수도산에 터 잡고 살 줄 알았던 오삼이가 다시 방랑하고, 지난해 아예 옆집인 가야산으로 가 겨울잠을 자자 내심 아쉬워한 곳은 지자체인 경북 김천시였습니다.

수도산에 살던 당시 오삼이에 대한 관심 때문에, 김천시는 환경부와 함께 '반달가슴곰 공존협의체'까지 꾸려 서식지 안정을 위해 공을 들였습니다.

1,970만 원을 써 캐릭터도 만들어줬습니다. 시청에 오삼이 모형을 세우고 포토존까지 설치했는데, 오삼이는 수도산을 떠났습니다.

김천시 한 공무원은 "캐릭터 만들고 딱 그 뒤에 떠났네요. 정성이 부족했던 건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김천시는 올무 제거와 청소 같은 일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오삼이가 언제 또 수도산으로 돌아올지 몰라서입니다.


■ 오삼이는 왜 방랑곰이 됐을까?

오삼이가 왜 떠도는지, 다양한 의견이 나옵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마릿수가 늘어나면서 자연히 영역을 넓히는 거라고 분석했습니다.

지리산엔 지금껏 방사된 개체와 이들의 2세까지 모두 70마리 정도 반달곰이 야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아직은 지리산이 비좁지 않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 곰의 적정 개체 수를 78마리로 잡고 있습니다.

교미와 번식을 위해 떠돈다는 분석 역시 지리산에 암컷 개체가 많아 설득력이 높지 않습니다. 먹이 때문도 아닙니다. 지리산엔 곰이 좋아하는 도토리와 머루, 산딸기가 풍부합니다.

오삼이의 모험은 연구 대상이지만, 똑 부러지게 이유를 말하긴 아직 어렵습니다.

'백두대간을 탐험해 꿀을 훔쳐먹는' 모험담에, 곰을 큰 강아지 정도로 여기면 큰일 납니다. 반달가슴곰은 평소 성격이 포악하지 않고 사람을 먼저 피하는 특성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산속 먹이 사슬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입니다.

혹시 산에서 곰을 마주치면 "네가 오삼이니?" 묻지 않길 바랍니다. 먹이를 주거나 사진을 찍으려 가까이 가는 것도 절대 해선 안 될 일입니다. 소리를 질러 자극하거나 돌이나 물건을 던지는 것도 금물입니다.

전문가는 곰을 마주치면 뒷걸음으로 천천히 물러서 자리를 벗어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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