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어머니 간병 스트레스에 아버지 폭행·사망…유족은 “선처” 탄원

입력 2021.06.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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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 뇌출혈 모친 홀로 병 수발…간병 안 돕는 부친 폭행

A 씨는 지난해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지난해 초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의 병 수발을 들기 위해서였습니다.

A 씨의 어머니는 치매와 허리디스크, 폐암 등을 함께 앓아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었습니다. A 씨는 어머니의 간호를 전담하다시피 했습니다.

A 씨의 아버지는 가정 불화로 원룸에서 혼자 살다가 지난해 하반기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를 간병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지난해 10월, 아버지가 어머니의 병 간호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가 나 아버지를 때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도움을 주지 않았고, A 씨는 지난해 11월 아버지를 둔기 등으로 다시 폭행했습니다.

그날 A 씨의 아버지는 다발성 늑골 골절 등에 따른 호흡 장애 등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 아들 "사망 예상 못 했다…술 마셔 심신 미약" 주장

검찰은 A 씨를 존속상해치사·존속폭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현행 형법 제259조는 직계존속을 다치게 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존속상해치사)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A 씨는 재판에서 "아버지를 둔기 등으로 폭행했지만 가슴이나 옆구리를 때린 사실은 없고, 아버지의 사망 원인은 늑골 골절로 인한 호흡곤란이므로 폭행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면서, 폭행 때 "아버지가 숨질 수 있다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는 또 "범행 당시 음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며 이른바 '심신미약'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법원 "폭행·사망 인과관계 인정…심신미약 불인정"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는 지난 24일 A 씨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고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의 폭행과 아버지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아버지가 A 씨 주장대로 늑골 골절 등에 따른 호흡곤란만으로 숨진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피하 출혈로 인한 속발성 쇼크와 뇌출혈이 함께 작용해 사망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속발성 쇼크는 전신에 가해진 다수의 광범위한 외력에 의한 것으로 보이고, 아버지에게는 얼굴을 비롯한 신체 전반에서 산발적이고 여러 번에 걸쳐 지속적으로 가해진 가격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다수의 크고 작은 손상들이 발견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범행 당시 정황을 고려하면 폭행으로 아버지가 숨질 수 있다는 것을 A 씨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의 심신미약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어머니의 병 간호로 인한 스트레스가 높은 상태였고, 이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알코올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었으며, 범행 당시에도 술을 마신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면서도,

범행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A 씨의 진술 등을 근거로 들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설령 A 씨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법원의 재량으로 감경을 결정할 수 있는 사유이지 반드시 감경해야 하는 사유도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최저형' 징역 5년 선고…"스트레스 끝 우발적 범행, 유족 선처 고려"

재판부는 그러나 A 씨에게 법정형의 최저형인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A씨가 직장까지 그만두고 치매, 허리디스크, 폐암, 뇌출혈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모친을 장기간 부양하여 온 반면 아버지는 이를 전혀 돕지 않았다"면서 "혼자서 어머니의 병간호를 전담하다시피 하던 중 신체적·정신적으로 매우 지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유족들도 이런 사정을 감안해 A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서 선처를 탄원하고 있고, 어머니의 주치의를 비롯한 지인들도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재판은 검찰과 A 씨의 항소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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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어머니 간병 스트레스에 아버지 폭행·사망…유족은 “선처” 탄원
    • 입력 2021-06-26 09:01:28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 뇌출혈 모친 홀로 병 수발…간병 안 돕는 부친 폭행

A 씨는 지난해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지난해 초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의 병 수발을 들기 위해서였습니다.

A 씨의 어머니는 치매와 허리디스크, 폐암 등을 함께 앓아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었습니다. A 씨는 어머니의 간호를 전담하다시피 했습니다.

A 씨의 아버지는 가정 불화로 원룸에서 혼자 살다가 지난해 하반기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를 간병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지난해 10월, 아버지가 어머니의 병 간호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가 나 아버지를 때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도움을 주지 않았고, A 씨는 지난해 11월 아버지를 둔기 등으로 다시 폭행했습니다.

그날 A 씨의 아버지는 다발성 늑골 골절 등에 따른 호흡 장애 등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 아들 "사망 예상 못 했다…술 마셔 심신 미약" 주장

검찰은 A 씨를 존속상해치사·존속폭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현행 형법 제259조는 직계존속을 다치게 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존속상해치사)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A 씨는 재판에서 "아버지를 둔기 등으로 폭행했지만 가슴이나 옆구리를 때린 사실은 없고, 아버지의 사망 원인은 늑골 골절로 인한 호흡곤란이므로 폭행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면서, 폭행 때 "아버지가 숨질 수 있다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는 또 "범행 당시 음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며 이른바 '심신미약'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법원 "폭행·사망 인과관계 인정…심신미약 불인정"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는 지난 24일 A 씨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고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의 폭행과 아버지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아버지가 A 씨 주장대로 늑골 골절 등에 따른 호흡곤란만으로 숨진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피하 출혈로 인한 속발성 쇼크와 뇌출혈이 함께 작용해 사망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속발성 쇼크는 전신에 가해진 다수의 광범위한 외력에 의한 것으로 보이고, 아버지에게는 얼굴을 비롯한 신체 전반에서 산발적이고 여러 번에 걸쳐 지속적으로 가해진 가격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다수의 크고 작은 손상들이 발견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범행 당시 정황을 고려하면 폭행으로 아버지가 숨질 수 있다는 것을 A 씨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의 심신미약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어머니의 병 간호로 인한 스트레스가 높은 상태였고, 이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알코올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었으며, 범행 당시에도 술을 마신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면서도,

범행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A 씨의 진술 등을 근거로 들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설령 A 씨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법원의 재량으로 감경을 결정할 수 있는 사유이지 반드시 감경해야 하는 사유도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최저형' 징역 5년 선고…"스트레스 끝 우발적 범행, 유족 선처 고려"

재판부는 그러나 A 씨에게 법정형의 최저형인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A씨가 직장까지 그만두고 치매, 허리디스크, 폐암, 뇌출혈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모친을 장기간 부양하여 온 반면 아버지는 이를 전혀 돕지 않았다"면서 "혼자서 어머니의 병간호를 전담하다시피 하던 중 신체적·정신적으로 매우 지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유족들도 이런 사정을 감안해 A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서 선처를 탄원하고 있고, 어머니의 주치의를 비롯한 지인들도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재판은 검찰과 A 씨의 항소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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