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학]② 사람이 떠난 대학엔 물고기만 남았다…‘폐교’ 그 이후

입력 2021.06.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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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미충원 사태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비수도권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우리 대학이 정말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교육부도 지난달 미충원율이 높고 재정 우려가 심각한 대학을 이른바 '한계대학'으로 지정해 폐교할 수 있다는 경고장을 보냈다. 하지만 '폐교'라는 선택지의 파급력은 만만치 않다.

지난 2017년 폐쇄 명령을 받은 강원도 동해시 한중대학교 부지. 교육용 자산이라 매각이 쉽지 않아 캠퍼스가 그대로 방치돼있다.지난 2017년 폐쇄 명령을 받은 강원도 동해시 한중대학교 부지. 교육용 자산이라 매각이 쉽지 않아 캠퍼스가 그대로 방치돼있다.

■물고기만 남은 대학…"돈 되는 건 다 가져가"

"와, 얘들 어떻게 있네. 나는 다 죽은 줄 알고, 이게 제일 가슴이 아프더라고…."

지난 13일, KBS 취재진과 함께 한중대학교 캠퍼스를 찾은 A교수가 연못에서 헤엄치는 금붕어를 보며 말했다. 한중대는 지난 2017년 교육부의 폐쇄 명령을 받은 후 문을 닫았고, 학교 건물과 캠퍼스는 폐허가 됐다.

한중대 행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A교수는 한중대 폐교 후 인근 대학으로 옮겼지만, 옮긴 학교 역시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곧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학교 연못을 바라보고 있는 A교수. A교수는 학내 연못에 살아있는 물고기를 보고 “다 죽은 줄 알고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학교 연못을 바라보고 있는 A교수. A교수는 학내 연못에 살아있는 물고기를 보고 “다 죽은 줄 알고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한중대 본관, 기숙사, 강의동 등 모든 건물의 입구는 나무판자로 가려져 있었다. 유리문을 깨고 낯선 이들이 드나들면서,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경영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B교수는 폐교 후 건물 안에서 절도가 이뤄진 현장을 목격했다. 누군가 태권도 연습장이 있던 건물의 천장을 뚫고 전선을 훔쳐간 것이다.

누군가 건물 유리 벽을 깨고 들어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누군가 건물 유리 벽을 깨고 들어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B교수는 "(전선) 절단도 놀랄 일인데, 건물 안에서 피복 작업까지 다 했더라"며 "건물이 파괴되는 것뿐만 아니라 범죄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학교 부지 인근을 산책하다 취재진과 마주친 한 주민은 "폐교된 뒤 무서워 밤에는 혼자 다니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동해시에 다시 대학 들어올 가능성은 '0'..지역 소멸의 풍경

한중대가 폐교되면서 강원도 동해시에는 대학이 사라졌다.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면서 한중대 건물 입구는 모두 나무 판자로 막혔다.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면서 한중대 건물 입구는 모두 나무 판자로 막혔다.

A교수는 지역 주민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한중대가 폐교되면서 20대 학생들은 도내 다른 대학으로 편입했지만, 늦은 나이 다시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들은 편입이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A교수는 "젊은 애들은 그나마 삼척으로라도 가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움직이기가 그렇다"며 "강릉이라고 해도 여기서 한 시간 이상 걸리는데, 오라고 해도 못 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동해시민이 동해시의 사업을 계획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도 문제다. A교수는 "동해시도 지자체인데 교수가 하나도 없다"며 "동해시청 공무원들도 인근 지역 대학에서 교수님들을 자문위원으로 모시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교수는 그러면서, "지금은 폐교한 지 2년밖에 없지만 앞으로 점점 더 여파가 보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2000년 이후 문을 닫은 대학교는 올해까지 모두 18곳으로, 1곳을 제외하고 모두 비수도권에 있는 사립대학이었다. 대부분 재단 비리가 불거지면서 수년에 걸쳐 내홍을 겪다 강제 폐교됐다.

■체불 임금만 수백 억대.."해고된 교직원은 생활고 시달려"

폐교 이후 교직원의 신분 보장과 임금 체불 문제도 심각하다. 한중대 비대위는 교직원 체불임금이 원금과 이자를 합해 6백억 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사립학교법과 사학진흥재단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 폐교 대학의 체불 임금을 국가가 선지급하고 학교 재산을 국가가 소유해 활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립재단의 비리에 따른 피해를 세금으로 구제해주는 것에 반발이 있을 수 있다'고 묻자, 비대위원 C씨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사학법인이 공교육을 담당했던 부분이 70% 이상"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하지 못했던 고등교육을 사학이 책임지고 해왔으니, 사학법인에서 모자라는 재정이 있다면 이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숙사로 올라가는 계단에 잡초가 우거져있다.기숙사로 올라가는 계단에 잡초가 우거져있다.

C씨는 "갑작스럽게 폐교가 돼서 직원들이 갑자기 생계가 막막해지고 생활고에 시달렸다"며, "이런 일은 우리 학교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일부 폐교는 불가피하지만…"전략적으로 폐교 최소화해야"

정부는 만 18세 학령인구가 앞으로 20년 이내엔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 속도에 따르면, 일부 대학의 폐교는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폐교는 마지막 선택지로 남겨두고, 최대한 지방의 교육 역량을 살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희성 연구원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학령인구 감소는 굉장히 큰 폭이기 때문에, 소위 '부실 운영됐다' 라고 하는 그런 대학 몇 개 대학을 문을 닫는다고 해서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며 "이번 기회에 정원 감축을 통해서 교육의 질을 올리려고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또, "대학은 초중등이나 유치원과는 달리 굉장히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들 대학을 폐교할 경우에 그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며 "폐교에 대한 부분을 전략적으로 주된 방향으로 가져가기보다는 최소화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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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대학]② 사람이 떠난 대학엔 물고기만 남았다…‘폐교’ 그 이후
    • 입력 2021-06-26 09:01:38
    취재K
대규모 미충원 사태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비수도권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우리 대학이 정말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교육부도 지난달 미충원율이 높고 재정 우려가 심각한 대학을 이른바 '한계대학'으로 지정해 폐교할 수 있다는 경고장을 보냈다. 하지만 '폐교'라는 선택지의 파급력은 만만치 않다.

지난 2017년 폐쇄 명령을 받은 강원도 동해시 한중대학교 부지. 교육용 자산이라 매각이 쉽지 않아 캠퍼스가 그대로 방치돼있다.
■물고기만 남은 대학…"돈 되는 건 다 가져가"

"와, 얘들 어떻게 있네. 나는 다 죽은 줄 알고, 이게 제일 가슴이 아프더라고…."

지난 13일, KBS 취재진과 함께 한중대학교 캠퍼스를 찾은 A교수가 연못에서 헤엄치는 금붕어를 보며 말했다. 한중대는 지난 2017년 교육부의 폐쇄 명령을 받은 후 문을 닫았고, 학교 건물과 캠퍼스는 폐허가 됐다.

한중대 행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A교수는 한중대 폐교 후 인근 대학으로 옮겼지만, 옮긴 학교 역시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곧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학교 연못을 바라보고 있는 A교수. A교수는 학내 연못에 살아있는 물고기를 보고 “다 죽은 줄 알고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한중대 본관, 기숙사, 강의동 등 모든 건물의 입구는 나무판자로 가려져 있었다. 유리문을 깨고 낯선 이들이 드나들면서,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경영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B교수는 폐교 후 건물 안에서 절도가 이뤄진 현장을 목격했다. 누군가 태권도 연습장이 있던 건물의 천장을 뚫고 전선을 훔쳐간 것이다.

누군가 건물 유리 벽을 깨고 들어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B교수는 "(전선) 절단도 놀랄 일인데, 건물 안에서 피복 작업까지 다 했더라"며 "건물이 파괴되는 것뿐만 아니라 범죄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학교 부지 인근을 산책하다 취재진과 마주친 한 주민은 "폐교된 뒤 무서워 밤에는 혼자 다니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동해시에 다시 대학 들어올 가능성은 '0'..지역 소멸의 풍경

한중대가 폐교되면서 강원도 동해시에는 대학이 사라졌다.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면서 한중대 건물 입구는 모두 나무 판자로 막혔다.
A교수는 지역 주민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한중대가 폐교되면서 20대 학생들은 도내 다른 대학으로 편입했지만, 늦은 나이 다시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들은 편입이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A교수는 "젊은 애들은 그나마 삼척으로라도 가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움직이기가 그렇다"며 "강릉이라고 해도 여기서 한 시간 이상 걸리는데, 오라고 해도 못 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동해시민이 동해시의 사업을 계획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도 문제다. A교수는 "동해시도 지자체인데 교수가 하나도 없다"며 "동해시청 공무원들도 인근 지역 대학에서 교수님들을 자문위원으로 모시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교수는 그러면서, "지금은 폐교한 지 2년밖에 없지만 앞으로 점점 더 여파가 보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2000년 이후 문을 닫은 대학교는 올해까지 모두 18곳으로, 1곳을 제외하고 모두 비수도권에 있는 사립대학이었다. 대부분 재단 비리가 불거지면서 수년에 걸쳐 내홍을 겪다 강제 폐교됐다.

■체불 임금만 수백 억대.."해고된 교직원은 생활고 시달려"

폐교 이후 교직원의 신분 보장과 임금 체불 문제도 심각하다. 한중대 비대위는 교직원 체불임금이 원금과 이자를 합해 6백억 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사립학교법과 사학진흥재단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 폐교 대학의 체불 임금을 국가가 선지급하고 학교 재산을 국가가 소유해 활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립재단의 비리에 따른 피해를 세금으로 구제해주는 것에 반발이 있을 수 있다'고 묻자, 비대위원 C씨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사학법인이 공교육을 담당했던 부분이 70% 이상"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하지 못했던 고등교육을 사학이 책임지고 해왔으니, 사학법인에서 모자라는 재정이 있다면 이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숙사로 올라가는 계단에 잡초가 우거져있다.
C씨는 "갑작스럽게 폐교가 돼서 직원들이 갑자기 생계가 막막해지고 생활고에 시달렸다"며, "이런 일은 우리 학교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일부 폐교는 불가피하지만…"전략적으로 폐교 최소화해야"

정부는 만 18세 학령인구가 앞으로 20년 이내엔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 속도에 따르면, 일부 대학의 폐교는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폐교는 마지막 선택지로 남겨두고, 최대한 지방의 교육 역량을 살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희성 연구원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학령인구 감소는 굉장히 큰 폭이기 때문에, 소위 '부실 운영됐다' 라고 하는 그런 대학 몇 개 대학을 문을 닫는다고 해서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며 "이번 기회에 정원 감축을 통해서 교육의 질을 올리려고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또, "대학은 초중등이나 유치원과는 달리 굉장히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들 대학을 폐교할 경우에 그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며 "폐교에 대한 부분을 전략적으로 주된 방향으로 가져가기보다는 최소화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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