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기자들Q] 언론사는 ESG 행사 중…기업들 “제발 좀…”

입력 2021.06.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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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영문 첫 글자를 딴 용어인데요. 기업이 환경 보호와 사회 공헌, 투명한 지배구조를 추구해야 한다는 경영 원칙입니다. 이는 반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창출에만 몰두하는 기업은 앞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해외에선 이미 20여 년 전부터 기업의 ESG 정보가 투자 결정의 중요한 지표로 자리 잡았는데요. 그 흐름이 국내에도 미쳐 우리 코스피 상장사들도 2030년부턴 의무적으로 ESG 정보를 공시해야 합니다.

ESG 경영으로 체질개선을 해야 하는 기업들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죠. 구체적으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그런데 분주해진 건 기업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분위기를 일찌감치 간파한 일부 언론사들이 기업을 대상으로 한 각종 행사를 기획하며 ‘ESG 판’에 발을 들여놓고 있습니다.

■ 6개월간 25개 매체 30여 개 행사 잇따라

취재진이 포털사이트와 언론사 홈페이지 등에서 ESG 관련 행사들을 검색해보니 지난 12월부터 최근까지 25개 매체에서 30개가 넘는 행사를 개최했거나 개최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형태별로 보면 시상식이나 교육, 경영자문, 멤버십 서비스 등으로 다양했는데요. 포럼이 20여 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언론사 규모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다양한 언론사에서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ESG 전문매체도 생겼습니다.

한국경제신문 등 메이저 신문사들은 공신력과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해 학계와 경영 컨설팅 업체, 로펌 등 전문가 그룹과 협업하는 형태를 띠기도 합니다.

이들 언론사가 ESG 관련 행사를 기획한 이유는 뭘까요?

"지속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길을 모색"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통찰과 해법 제시"
"ESG 경영활동 방향 탐색"

ESG 경영으로 전환하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겠다는 게 행사를 기획한 언론사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취지입니다.

길잡이 역할을 해줄 누군가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언론사가 기획한 행사가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그로 인해 우리 기업이 지속 가능한 경영으로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겠죠.

그런데 기업 관계자들이 느끼는 실상은 많이 달랐습니다.

■ 200대 기업의 89% "ESG 행사 도움 안 되거나 확신 못 해"

광고주들의 권익보호 단체인 광고주협회가 지난달 국내 200대 기업 광고·홍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ESG 경영 전략 및 언론 관계 실태 조사'를 했는데요.

언론사의 ESG 관련 행사가 기업 ESG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5.3%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34%가 '도움 되는지 모르겠다'고 답해 전체 응답자의 89.3%가 언론사 ESG 행사의 효용성을 낮게 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반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50%)이 ESG 행사를 이유로 언론사로부터 광고·협찬비나 행사 참여를 요청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곽혁 한국광고주협회 상무는 이에 대해 "기업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는, 크게 도움 안 되는 행사들에 대해서 광고·협찬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ESG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다 보니까 언론사들 입장에서는 하나의 돈벌이의 장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진이 접촉한 다수의 기업 관계자들도 언론사의 ESG 행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냈습니다.

A기업 홍보 담당자
"워낙 업계 이슈니까 지금 딱 좋은 테마 아닙니까? 장사하기엔 대목이죠, 대목.
누군가 길을 보여주는 건 필요한 것 같은데 너무 중구난방이니까...
사실 언론사들이 이런 것 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B 기업 홍보 담당자
"(행사 협찬으로) 돈 얼마 내라 이거죠. 통신사도 있고 인터넷 매체도 있고
최근에 갑자기 매체들이 다 뛰어든 분위기에요."


■ '행사영업'에 시달리는 기자들도 곤혹

언론사의 '행사영업'에 동원되는 기자들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사가 행사를 기획하면 출입처 기자들을 동원해 기업과 관공서 등에 협찬·광고를 요구하는 일인데요.

취재진이 만난 한 경제매체 기자는 "언론사 주최 행사가 일부 필요한 면이 있다."라고 하면서도 "기자들이 사측의 행사영업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여러 언론사에서 진행해온 '포럼 장사'가 ESG 이슈에 맞춰 진화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행사영업에 시달리다 못해 기자 일을 그만둔 전직 기자 A 씨는 취재진에게 "기업 담당자와 술을 얼마나 자주, 많이 마셨느냐에 따라 영업 결과가 달라지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행사 협찬을 거부한 지자체장을 대상으로 '보복성 기사'를 쓴 적도 있다고 털어놨는데, 이런 이유로 기자생활 내내 자괴감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행사를 기획한 언론사들은 "좋은 취지"라고 하는데 행사의 대상이 되는 기업 관계자들은 물론 영업에 동원되는 기자들조차 다른 말을 하는 상황.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이번 주 <질문하는 기자들 Q>는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른 ESG에 일부 언론이 어떻게 뛰어들었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봅니다. 언론사와 기업, 기자, 관련 전문가들의 입장을 두루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대안도 모색해봅니다.

김솔희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조수진 장신대 교양학 미디어트랙 교수, 유현재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임주현·정아연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27일(일) 밤 10시 35분 KBS1TV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 다시 보기는 KBS 홈페이지유튜브 계정에서 가능합니다.
▲ 프로그램 홈페이지: news.kbs.co.kr/vod/program.do?bcd=0193#20210620&1
▲ 유튜브 계정 <질문하는 기자들 Q>: www.youtube.com/c/질문하는기자들Q/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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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하는기자들Q] 언론사는 ESG 행사 중…기업들 “제발 좀…”
    • 입력 2021-06-26 10:02:15
    취재K

‘ESG’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영문 첫 글자를 딴 용어인데요. 기업이 환경 보호와 사회 공헌, 투명한 지배구조를 추구해야 한다는 경영 원칙입니다. 이는 반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창출에만 몰두하는 기업은 앞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해외에선 이미 20여 년 전부터 기업의 ESG 정보가 투자 결정의 중요한 지표로 자리 잡았는데요. 그 흐름이 국내에도 미쳐 우리 코스피 상장사들도 2030년부턴 의무적으로 ESG 정보를 공시해야 합니다.

ESG 경영으로 체질개선을 해야 하는 기업들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죠. 구체적으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그런데 분주해진 건 기업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분위기를 일찌감치 간파한 일부 언론사들이 기업을 대상으로 한 각종 행사를 기획하며 ‘ESG 판’에 발을 들여놓고 있습니다.

■ 6개월간 25개 매체 30여 개 행사 잇따라

취재진이 포털사이트와 언론사 홈페이지 등에서 ESG 관련 행사들을 검색해보니 지난 12월부터 최근까지 25개 매체에서 30개가 넘는 행사를 개최했거나 개최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형태별로 보면 시상식이나 교육, 경영자문, 멤버십 서비스 등으로 다양했는데요. 포럼이 20여 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언론사 규모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다양한 언론사에서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ESG 전문매체도 생겼습니다.

한국경제신문 등 메이저 신문사들은 공신력과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해 학계와 경영 컨설팅 업체, 로펌 등 전문가 그룹과 협업하는 형태를 띠기도 합니다.

이들 언론사가 ESG 관련 행사를 기획한 이유는 뭘까요?

"지속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길을 모색"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통찰과 해법 제시"
"ESG 경영활동 방향 탐색"

ESG 경영으로 전환하기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겠다는 게 행사를 기획한 언론사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취지입니다.

길잡이 역할을 해줄 누군가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언론사가 기획한 행사가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그로 인해 우리 기업이 지속 가능한 경영으로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겠죠.

그런데 기업 관계자들이 느끼는 실상은 많이 달랐습니다.

■ 200대 기업의 89% "ESG 행사 도움 안 되거나 확신 못 해"

광고주들의 권익보호 단체인 광고주협회가 지난달 국내 200대 기업 광고·홍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ESG 경영 전략 및 언론 관계 실태 조사'를 했는데요.

언론사의 ESG 관련 행사가 기업 ESG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5.3%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34%가 '도움 되는지 모르겠다'고 답해 전체 응답자의 89.3%가 언론사 ESG 행사의 효용성을 낮게 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반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50%)이 ESG 행사를 이유로 언론사로부터 광고·협찬비나 행사 참여를 요청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곽혁 한국광고주협회 상무는 이에 대해 "기업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는, 크게 도움 안 되는 행사들에 대해서 광고·협찬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ESG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다 보니까 언론사들 입장에서는 하나의 돈벌이의 장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진이 접촉한 다수의 기업 관계자들도 언론사의 ESG 행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냈습니다.

A기업 홍보 담당자
"워낙 업계 이슈니까 지금 딱 좋은 테마 아닙니까? 장사하기엔 대목이죠, 대목.
누군가 길을 보여주는 건 필요한 것 같은데 너무 중구난방이니까...
사실 언론사들이 이런 것 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B 기업 홍보 담당자
"(행사 협찬으로) 돈 얼마 내라 이거죠. 통신사도 있고 인터넷 매체도 있고
최근에 갑자기 매체들이 다 뛰어든 분위기에요."


■ '행사영업'에 시달리는 기자들도 곤혹

언론사의 '행사영업'에 동원되는 기자들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사가 행사를 기획하면 출입처 기자들을 동원해 기업과 관공서 등에 협찬·광고를 요구하는 일인데요.

취재진이 만난 한 경제매체 기자는 "언론사 주최 행사가 일부 필요한 면이 있다."라고 하면서도 "기자들이 사측의 행사영업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여러 언론사에서 진행해온 '포럼 장사'가 ESG 이슈에 맞춰 진화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행사영업에 시달리다 못해 기자 일을 그만둔 전직 기자 A 씨는 취재진에게 "기업 담당자와 술을 얼마나 자주, 많이 마셨느냐에 따라 영업 결과가 달라지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행사 협찬을 거부한 지자체장을 대상으로 '보복성 기사'를 쓴 적도 있다고 털어놨는데, 이런 이유로 기자생활 내내 자괴감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행사를 기획한 언론사들은 "좋은 취지"라고 하는데 행사의 대상이 되는 기업 관계자들은 물론 영업에 동원되는 기자들조차 다른 말을 하는 상황.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이번 주 <질문하는 기자들 Q>는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른 ESG에 일부 언론이 어떻게 뛰어들었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봅니다. 언론사와 기업, 기자, 관련 전문가들의 입장을 두루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대안도 모색해봅니다.

김솔희 KBS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조수진 장신대 교양학 미디어트랙 교수, 유현재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임주현·정아연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27일(일) 밤 10시 35분 KBS1TV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질문하는 기자들 Q> 다시 보기는 KBS 홈페이지유튜브 계정에서 가능합니다.
▲ 프로그램 홈페이지: news.kbs.co.kr/vod/program.do?bcd=0193#20210620&1
▲ 유튜브 계정 <질문하는 기자들 Q>: www.youtube.com/c/질문하는기자들Q/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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