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랩] 대한민국 역사가 뒤바뀐 날, 풀지 못한 그날의 진실은?

입력 2021.06.26 (11:00) 수정 2021.06.26 (11:0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인 1949년 6월 26일.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은 자신이 머물던 경교장에서 암살당합니다.

많은 사람의 슬픔 속에 열린 재판에서 범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죠.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누가 뒤에서 도와주기라도 한 걸까요?

무기징역이었던 형이 3개월 만에 15년으로 감형되고, 1년 뒤 6·25전쟁과 함께 범인은 풀려납니다.

범인은 당시 34살이었던 포병 소위 안두희.

게다가 안두희는 대위로 초고속으로 진급도 합니다.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안두희가 형을 산 기간은 채 1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자 석연치 않게 끝난 김구 선생 암살 사건의 배후 조사가 시작됩니다.

안두희도 조사를 받았지만, 검찰은 이미 재판을 받았다는 이유로 놓아주죠.

배후를 밝힐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고, 안두희는 잠적하게 됩니다.

안두희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65년.

김구 선생님 암살범 추적자를 자처하던 곽태영이라는 청년이 안 씨를 습격한 사실이 알려지면 섭니다.

이때 안두희가 군납 사업으로 상류층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공분을 사기도 하죠.

두 번의 수술 끝에 살아난 안두희는 이름까지 바꾸며 다시 숨바꼭질에 들어갑니다.

20년 넘게 은거하던 안두희를 발견한 사람은 오랜 시간 안 씨를 추적하던 권중희 씨.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발견된 안 씨는 권 씨에게 몽둥이로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습니다.

하지만 안두희는 배후를 불라는 추적자의 추궁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안두희가 처음 입을 연 건 1992년, 10년 넘게 안 씨를 추적해오던 권중희 씨가 안 씨의 증언을 받아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관련 가능성에 대한 기자회견도 열며, 사건의 배후가 점점 드러나는 듯했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두희는 이날의 증언을 번복합니다. 권중희 씨 고문에 따른 허위자백이라며 모든 증언을 부정하죠.

1994년에는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도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때 안두희는 서 있기는커녕,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죠.

결국, 국회는 김구 선생 암살 사건을 당시 정권 차원의 범죄로 규정하고 진상 규명을 마무리합니다.

정권 차원의 범죄라고 하지만,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죠.

그로부터 2년 뒤, 안두희는 당시 버스 기사였던 박기서 씨에 의해 숨을 거둡니다. 안 씨를 그냥 죽게 놔둘 수 없다며, 정의봉이라 쓴 나무방망이로 안 씨의 머리를 때려 숨지게 하죠.

이렇게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자는 여든하나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빈소는 쓸쓸했죠.

안두희의 죽음으로 더는 밝히기 힘들어진 1949년 6월 26일의 진실, 과연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편집 남원석
디자인 이효정


https://youtu.be/TrE3xapxePc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크랩] 대한민국 역사가 뒤바뀐 날, 풀지 못한 그날의 진실은?
    • 입력 2021-06-26 11:00:09
    • 수정2021-06-26 11:06:05
    크랩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인 1949년 6월 26일.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은 자신이 머물던 경교장에서 암살당합니다.

많은 사람의 슬픔 속에 열린 재판에서 범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죠.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누가 뒤에서 도와주기라도 한 걸까요?

무기징역이었던 형이 3개월 만에 15년으로 감형되고, 1년 뒤 6·25전쟁과 함께 범인은 풀려납니다.

범인은 당시 34살이었던 포병 소위 안두희.

게다가 안두희는 대위로 초고속으로 진급도 합니다.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안두희가 형을 산 기간은 채 1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자 석연치 않게 끝난 김구 선생 암살 사건의 배후 조사가 시작됩니다.

안두희도 조사를 받았지만, 검찰은 이미 재판을 받았다는 이유로 놓아주죠.

배후를 밝힐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고, 안두희는 잠적하게 됩니다.

안두희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65년.

김구 선생님 암살범 추적자를 자처하던 곽태영이라는 청년이 안 씨를 습격한 사실이 알려지면 섭니다.

이때 안두희가 군납 사업으로 상류층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공분을 사기도 하죠.

두 번의 수술 끝에 살아난 안두희는 이름까지 바꾸며 다시 숨바꼭질에 들어갑니다.

20년 넘게 은거하던 안두희를 발견한 사람은 오랜 시간 안 씨를 추적하던 권중희 씨.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발견된 안 씨는 권 씨에게 몽둥이로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습니다.

하지만 안두희는 배후를 불라는 추적자의 추궁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안두희가 처음 입을 연 건 1992년, 10년 넘게 안 씨를 추적해오던 권중희 씨가 안 씨의 증언을 받아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관련 가능성에 대한 기자회견도 열며, 사건의 배후가 점점 드러나는 듯했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두희는 이날의 증언을 번복합니다. 권중희 씨 고문에 따른 허위자백이라며 모든 증언을 부정하죠.

1994년에는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도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때 안두희는 서 있기는커녕,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죠.

결국, 국회는 김구 선생 암살 사건을 당시 정권 차원의 범죄로 규정하고 진상 규명을 마무리합니다.

정권 차원의 범죄라고 하지만,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죠.

그로부터 2년 뒤, 안두희는 당시 버스 기사였던 박기서 씨에 의해 숨을 거둡니다. 안 씨를 그냥 죽게 놔둘 수 없다며, 정의봉이라 쓴 나무방망이로 안 씨의 머리를 때려 숨지게 하죠.

이렇게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자는 여든하나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빈소는 쓸쓸했죠.

안두희의 죽음으로 더는 밝히기 힘들어진 1949년 6월 26일의 진실, 과연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편집 남원석
디자인 이효정


https://youtu.be/TrE3xapxePc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