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숲’ 사라진 ‘바다 숲’…새로운 처방전 나올까?

입력 2021.06.27 (09:02) 수정 2021.06.27 (11:1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보도 블록(사업)을 바다에도 하고 있었구나"

상당수 바다 숲에 해조류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폐사했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멀쩡한 보도 블록을 걷어내고, 다시 설치하는 것처럼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겠죠. 1,000개가 넘게 달린 댓글 대부분이 비슷했습니다.

[연관 기사][현장K] 수천억짜리 ‘바다 숲’들어가 보니…바닷속은 ‘구조물 무덤’? (2021.06.04. KBS 뉴스9)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02206

의문을 갖는 댓글도 많았습니다. 전문가들과 함께 했을 텐데 왜 이런 문제가 생겼냐는 겁니다. 10년 넘게 사업이 진행돼왔고, 예산이 3천억 원이나 들어갔는데도 말이죠.


전문가들이 그동안 지적을 안 했던 건 아닙니다. 4년 전 작성된 연구 자료를 보면 ▲연차별 물량 중심의 사업 추진 ▲대형 갈조류 중심의 사업 추진 ▲명확한 (기술) 적용 매뉴얼 부재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잠수부 A 씨는 "바다 속에서 진행되는 사업이라 관리 감독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육상에서 진행되는 사업이면 언제든 가서 확인하면 되는데, 바다는 그러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취재진도 이번 취재를 위해 사업지 좌표를 찾고, 확인하는 과정에 두 달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해역 특성 맞는 해조류 찾아 좋은 시기에 이식해야"

이 과정을 통해 확인한 문제점은 ▲해조류의 종류 ▲이식 시기입니다.

바다 숲은 생태계가 파괴되는 '바다 사막화'가 진행 중인 곳에 해조류를 이식하는 사업입니다. 당연히 이식한 해조류가 잘 정착해야 합니다. 그래야 포자를 뿌리고, 주변 암반에서 해조류가 다시 자라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이 부분부터 지적했습니다. 현재 바다 숲에 이식하는 해조류는 대부분 남해안 양식이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김형근 강릉원주대 해양자원육성학과 교수.김형근 강릉원주대 해양자원육성학과 교수.

양식장에선 보통 수심 1~2m 정도에서 기릅니다. 하지만 바다 숲은 평균 수심 12~15m 정도 되는 곳에 조성됩니다.

광합성이 어렵고 수온도 다른데다, 이식 해역마다 조류의 움직임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생존 확률이 낮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한국조류학회장을 지낸 김형근 강릉원주대 해양자원육성학과 교수는 "동, 서, 남해와 제주 모두 해역별 특성이 있다"면서 "국내 연안에 서식하는 해조류가 1천 종이 넘는만큼 다양한 해조류를 이식할 수 있도록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업에 참여했던 잠수부 A 씨는 "사업이 시작되는 3~4월쯤 여러 업체가 남해안에서 양식 해조류를 구해오는데, 사업 현장까지 가져오는 과정에서 손상되는 경우도 많다"면서 "운송 기술과 이식 기술이 부족한 업체도 꽤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 해조류는 보통 가을에 싹을 터서 다음 해 초여름에 포자를 뿌리기 때문에 이식 시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수온이 높지 않은 4월~6월, 9월~11월쯤에 이식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 시기를 11월부터 다음 해 봄으로 옮기자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여름철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고, 이식한 해조류가 잘 자랄 수 있는 생장 환경을 갖춘 시기라는 이유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환자를 수술할 건지, 소화제를 줄 건지, 아니면 두통약을 줄 건지 이런 처방전이 다양해야 하는데 (지금은) 처방전이 하나밖에 없다"면서 "그동안은 바다 숲 면적을 확대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기술 개발 등 질적인 부분에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해수부 "8월까지 '바다 숲 사업' 개선 방안 마련"

보도 이후 해양수산부는 차관 지시로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해수부는 우선 오는 29일 부산에서 바다 숲 사업 개선 방법을 모색하는 전문가 회의를 열 계획입니다.

이번 회의에는 해수부, 바다 숲 사업을 총괄하는 한국수산자원공단 관계자와 분야별 전문가 등 모두 15명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참석자들은 바다 숲에 이식하는 해조류의 종류, 이식 시기, 사후관리 시스템 등에 대해 전반적인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KBS가 보도에서 지적한 부분들입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앞으로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대안을 도출해, 오는 8월까지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해수부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해 갯벌 복원과 바다 숲 조성 등을 통해 온실가스를 이른바 '블루카본'으로 흡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육상의 '열대 숲'보다 '바다 숲'이 탄소 흡수력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 계획이 현실화하려면 망가져 가는 바다 숲을 지키고, 새롭게 조성하는 바다 숲 사업의 성공률을 높여야 합니다. 앞으로 해수부가 전문가 회의를 통해 내놓을 새로운 '처방전'은 무엇인지, 계속 취재해서 보도해드리겠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숲’ 사라진 ‘바다 숲’…새로운 처방전 나올까?
    • 입력 2021-06-27 09:02:49
    • 수정2021-06-27 11:12:45
    취재후·사건후

"보도 블록(사업)을 바다에도 하고 있었구나"

상당수 바다 숲에 해조류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폐사했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멀쩡한 보도 블록을 걷어내고, 다시 설치하는 것처럼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겠죠. 1,000개가 넘게 달린 댓글 대부분이 비슷했습니다.

[연관 기사][현장K] 수천억짜리 ‘바다 숲’들어가 보니…바닷속은 ‘구조물 무덤’? (2021.06.04. KBS 뉴스9)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02206

의문을 갖는 댓글도 많았습니다. 전문가들과 함께 했을 텐데 왜 이런 문제가 생겼냐는 겁니다. 10년 넘게 사업이 진행돼왔고, 예산이 3천억 원이나 들어갔는데도 말이죠.


전문가들이 그동안 지적을 안 했던 건 아닙니다. 4년 전 작성된 연구 자료를 보면 ▲연차별 물량 중심의 사업 추진 ▲대형 갈조류 중심의 사업 추진 ▲명확한 (기술) 적용 매뉴얼 부재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잠수부 A 씨는 "바다 속에서 진행되는 사업이라 관리 감독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육상에서 진행되는 사업이면 언제든 가서 확인하면 되는데, 바다는 그러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취재진도 이번 취재를 위해 사업지 좌표를 찾고, 확인하는 과정에 두 달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해역 특성 맞는 해조류 찾아 좋은 시기에 이식해야"

이 과정을 통해 확인한 문제점은 ▲해조류의 종류 ▲이식 시기입니다.

바다 숲은 생태계가 파괴되는 '바다 사막화'가 진행 중인 곳에 해조류를 이식하는 사업입니다. 당연히 이식한 해조류가 잘 정착해야 합니다. 그래야 포자를 뿌리고, 주변 암반에서 해조류가 다시 자라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이 부분부터 지적했습니다. 현재 바다 숲에 이식하는 해조류는 대부분 남해안 양식이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김형근 강릉원주대 해양자원육성학과 교수.
양식장에선 보통 수심 1~2m 정도에서 기릅니다. 하지만 바다 숲은 평균 수심 12~15m 정도 되는 곳에 조성됩니다.

광합성이 어렵고 수온도 다른데다, 이식 해역마다 조류의 움직임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생존 확률이 낮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한국조류학회장을 지낸 김형근 강릉원주대 해양자원육성학과 교수는 "동, 서, 남해와 제주 모두 해역별 특성이 있다"면서 "국내 연안에 서식하는 해조류가 1천 종이 넘는만큼 다양한 해조류를 이식할 수 있도록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업에 참여했던 잠수부 A 씨는 "사업이 시작되는 3~4월쯤 여러 업체가 남해안에서 양식 해조류를 구해오는데, 사업 현장까지 가져오는 과정에서 손상되는 경우도 많다"면서 "운송 기술과 이식 기술이 부족한 업체도 꽤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 해조류는 보통 가을에 싹을 터서 다음 해 초여름에 포자를 뿌리기 때문에 이식 시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수온이 높지 않은 4월~6월, 9월~11월쯤에 이식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 시기를 11월부터 다음 해 봄으로 옮기자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여름철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고, 이식한 해조류가 잘 자랄 수 있는 생장 환경을 갖춘 시기라는 이유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환자를 수술할 건지, 소화제를 줄 건지, 아니면 두통약을 줄 건지 이런 처방전이 다양해야 하는데 (지금은) 처방전이 하나밖에 없다"면서 "그동안은 바다 숲 면적을 확대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기술 개발 등 질적인 부분에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해수부 "8월까지 '바다 숲 사업' 개선 방안 마련"

보도 이후 해양수산부는 차관 지시로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해수부는 우선 오는 29일 부산에서 바다 숲 사업 개선 방법을 모색하는 전문가 회의를 열 계획입니다.

이번 회의에는 해수부, 바다 숲 사업을 총괄하는 한국수산자원공단 관계자와 분야별 전문가 등 모두 15명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참석자들은 바다 숲에 이식하는 해조류의 종류, 이식 시기, 사후관리 시스템 등에 대해 전반적인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KBS가 보도에서 지적한 부분들입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앞으로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대안을 도출해, 오는 8월까지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해수부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해 갯벌 복원과 바다 숲 조성 등을 통해 온실가스를 이른바 '블루카본'으로 흡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육상의 '열대 숲'보다 '바다 숲'이 탄소 흡수력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 계획이 현실화하려면 망가져 가는 바다 숲을 지키고, 새롭게 조성하는 바다 숲 사업의 성공률을 높여야 합니다. 앞으로 해수부가 전문가 회의를 통해 내놓을 새로운 '처방전'은 무엇인지, 계속 취재해서 보도해드리겠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