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감기약 100알씩 사도 제지 안 했다” 약물 중독자의 고백

입력 2021.06.28 (12:26) 수정 2021.06.2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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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의 ‘2020년 마약류 범죄 백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마약 사범은 1만 8천 명이 넘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 적발 수인 ‘마약 범죄 계수’가 20명을 넘으면 ‘마약 확산’ 위험이 크다고 보는데요. 이미 우리나라도 이 수치가 ‘36명’을 넘어 선 겁니다.

마약은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이 마약 대용품으로 오남용되는 사례도 많습니다. 약물 중독자들을 만나 그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연관기사]
마약 대용품 된 감기약…팔면서 “많이는 먹지마”라는 약사 [2021.06.26.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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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처방 막으려 ‘이력조회’ 도입했지만…외면하는 의사들 [2021.06.26.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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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중독자 A 씨(좌)와 기자(우)약물 중독자 A 씨(좌)와 기자(우)

“감기약을 100알씩 살 이유가 없는데 약국은 아무 제지 없이 팔았다”

A 씨는 지인의 권유로 처음 마약을 접한 뒤 수렁에 빠졌습니다. 수사기관에 적발돼 수감 생활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유혹을 이기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어떤 사람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일반 의약품인 ‘특정 감기약’을 한 번에 많이 복용하면 몽롱한 상태와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동네 약국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해당 약을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A 씨는 “약국에 가서 편하게 약을 달라고 하니까 줬다.”라면서 “감기약을 100알씩 살 이유가 없는데, 약국에선 아무런 제지도 없이 팔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약물을 먹지 않으려고 여러 차례 결심했다가 실패하곤 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쉽게 돈 주고 구할 수 있으니깐 (약물 오남용을)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해당 감기약을 파는 약국 인근에서 발견된 알약만 빼고 버린 껍데기들해당 감기약을 파는 약국 인근에서 발견된 알약만 빼고 버린 껍데기들

■ 아이 있는 자리에서 약물 오남용하는 부부를 목격하기도 해

약물 오남용으로 정신적·신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A 씨는 어느 날 충격적인 장면도 봤다고 했습니다. 해당 감기약을 파는 약국 인근에서 한 부부가 아이까지 데려와 옆에 둔 채로, 그 약을 한 움큼씩 삼키던 모습이었습니다.

일부 약물 중독자만 약물을 오남용하는 줄 알았다는 A 씨는, 해당 가족의 모습을 보고 약물 오남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는 약물 오남용에 대한 1차적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A 씨는 “마약 중독자 스스로의 의지로는 참고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라며 의료진이 환자에 대한 책임감을 조금만 더 느낀다면 약물 오남용 상황은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그 가정이, 많은 사람들이 그걸로 인해서 중독되고 병들어가고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약사들이나 의사들이 경각심을 갖고 약들을 무분별하게 판매를 하거나 처방을 내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약물중독자 A 씨)

인터뷰 중인 약물 중독자 이 모 씨인터뷰 중인 약물 중독자 이 모 씨
“의사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약을 알게 해줘서”

의약품 오남용 문제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 의약품만의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독성 등의 부작용 때문에 의사가 깐깐하게 관리하도록 한 ‘전문 의약품’에도 오남용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천의 한 병원에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 이 모 씨는 약물 중독 환자입니다. 이 씨는 정신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을 먹다가 어느새 ‘약물 중독자’가 됐습니다.

처방된 약을 먹었다가 약물에 중독된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취재진에 질문에 그는 “한창 약을 많이 먹고 기분이 좋았을 때 의사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약을 알게 해줘서”라는 답변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씨가 알려준 OO 병원. 취재진에게 석 달 치의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했다. 이 진통제는 중독성이 강해 처음 처방할 때 7일 치 이내로만 처방하도록 식약처 가이드라인에 명시돼 있다.이 씨가 알려준 OO 병원. 취재진에게 석 달 치의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했다. 이 진통제는 중독성이 강해 처음 처방할 때 7일 치 이내로만 처방하도록 식약처 가이드라인에 명시돼 있다.

■ “오늘 은 어떤 약을 받으러 오셨을까요?”...차라리 그걸 몰랐더라면

이 씨는 지금도 의사 처방이 필요한 향정신성 약물, 마약류 의약품 등의 전문 의약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약물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상태인데도, 밖으로 나가거나 누군가에게 부탁하면 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OO 내과 같은 경우에는 제가 딱 들어가면 이런 말을 해요. ‘오늘은 어떤 약을 받으러 오셨을까요? 며칠 치 원하세요?’ 하고 전문 의약품을 줍니다. 아무 주의사항이 없어요”

“(의료진이) 처방을 되게 잘해주니까 그것 때문에 약물에 중독된 것도 억울한 면이 있죠. 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텐데, 차라리 그걸 몰랐더라면” (약물 중독자 이 모 씨)

이 씨는 퇴원할 경우 다시 약을 사 먹게 될까 봐 두렵다고 했습니다. 병원만 보면 다시 약을 타 먹고 싶은 충동이 인다고 했습니다. 의사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의료진이 돈벌이 위주로 약을 처방해주고, 남이 먹는 거니까 그냥 막 처방하는 거에 대해서 자제해줬으면 좋겠어요. 정말 자기 가족을 처방해준다는 생각으로 약을 처방해줬으면 좋겠어요.”
(약물 중독자 이 모 씨)

■ “의사가 처방한다고 안전한 약물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천영훈 의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천영훈 의사
전문가들은 ‘안전한 의약품’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중독치료 전문가인 천영훈 의사는 “의사에게 처방받는 약물 자체가 안전한 약물이 절대 아니다.”라면서 중독성과 의존성이 큰 약물이 아주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사들이 처방해줄 때도 환자들한테 명확한 경고를 해야 한다.”라면서 약물이 남용되거나 혹은 환자들이 약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지에 대해 의사들 스스로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천영훈 의사는 환자도 경각심을 가지고 본인이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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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감기약 100알씩 사도 제지 안 했다” 약물 중독자의 고백
    • 입력 2021-06-28 12:26:05
    • 수정2021-06-28 13:13:35
    취재후·사건후

대검찰청의 ‘2020년 마약류 범죄 백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마약 사범은 1만 8천 명이 넘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 적발 수인 ‘마약 범죄 계수’가 20명을 넘으면 ‘마약 확산’ 위험이 크다고 보는데요. 이미 우리나라도 이 수치가 ‘36명’을 넘어 선 겁니다.

마약은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이 마약 대용품으로 오남용되는 사례도 많습니다. 약물 중독자들을 만나 그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연관기사]
마약 대용품 된 감기약…팔면서 “많이는 먹지마”라는 약사 [2021.06.26. 뉴스 9]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19120&ref=A

무분별한 처방 막으려 ‘이력조회’ 도입했지만…외면하는 의사들 [2021.06.26. 뉴스 9]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19121&ref=A

약물 중독자 A 씨(좌)와 기자(우)
“감기약을 100알씩 살 이유가 없는데 약국은 아무 제지 없이 팔았다”

A 씨는 지인의 권유로 처음 마약을 접한 뒤 수렁에 빠졌습니다. 수사기관에 적발돼 수감 생활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유혹을 이기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어떤 사람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일반 의약품인 ‘특정 감기약’을 한 번에 많이 복용하면 몽롱한 상태와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동네 약국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해당 약을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A 씨는 “약국에 가서 편하게 약을 달라고 하니까 줬다.”라면서 “감기약을 100알씩 살 이유가 없는데, 약국에선 아무런 제지도 없이 팔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약물을 먹지 않으려고 여러 차례 결심했다가 실패하곤 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쉽게 돈 주고 구할 수 있으니깐 (약물 오남용을)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해당 감기약을 파는 약국 인근에서 발견된 알약만 빼고 버린 껍데기들
■ 아이 있는 자리에서 약물 오남용하는 부부를 목격하기도 해

약물 오남용으로 정신적·신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A 씨는 어느 날 충격적인 장면도 봤다고 했습니다. 해당 감기약을 파는 약국 인근에서 한 부부가 아이까지 데려와 옆에 둔 채로, 그 약을 한 움큼씩 삼키던 모습이었습니다.

일부 약물 중독자만 약물을 오남용하는 줄 알았다는 A 씨는, 해당 가족의 모습을 보고 약물 오남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는 약물 오남용에 대한 1차적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A 씨는 “마약 중독자 스스로의 의지로는 참고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라며 의료진이 환자에 대한 책임감을 조금만 더 느낀다면 약물 오남용 상황은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그 가정이, 많은 사람들이 그걸로 인해서 중독되고 병들어가고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약사들이나 의사들이 경각심을 갖고 약들을 무분별하게 판매를 하거나 처방을 내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약물중독자 A 씨)

인터뷰 중인 약물 중독자 이 모 씨 “의사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약을 알게 해줘서”

의약품 오남용 문제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 의약품만의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독성 등의 부작용 때문에 의사가 깐깐하게 관리하도록 한 ‘전문 의약품’에도 오남용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천의 한 병원에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 이 모 씨는 약물 중독 환자입니다. 이 씨는 정신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을 먹다가 어느새 ‘약물 중독자’가 됐습니다.

처방된 약을 먹었다가 약물에 중독된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취재진에 질문에 그는 “한창 약을 많이 먹고 기분이 좋았을 때 의사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약을 알게 해줘서”라는 답변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씨가 알려준 OO 병원. 취재진에게 석 달 치의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했다. 이 진통제는 중독성이 강해 처음 처방할 때 7일 치 이내로만 처방하도록 식약처 가이드라인에 명시돼 있다.
■ “오늘 은 어떤 약을 받으러 오셨을까요?”...차라리 그걸 몰랐더라면

이 씨는 지금도 의사 처방이 필요한 향정신성 약물, 마약류 의약품 등의 전문 의약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약물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상태인데도, 밖으로 나가거나 누군가에게 부탁하면 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OO 내과 같은 경우에는 제가 딱 들어가면 이런 말을 해요. ‘오늘은 어떤 약을 받으러 오셨을까요? 며칠 치 원하세요?’ 하고 전문 의약품을 줍니다. 아무 주의사항이 없어요”

“(의료진이) 처방을 되게 잘해주니까 그것 때문에 약물에 중독된 것도 억울한 면이 있죠. 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텐데, 차라리 그걸 몰랐더라면” (약물 중독자 이 모 씨)

이 씨는 퇴원할 경우 다시 약을 사 먹게 될까 봐 두렵다고 했습니다. 병원만 보면 다시 약을 타 먹고 싶은 충동이 인다고 했습니다. 의사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의료진이 돈벌이 위주로 약을 처방해주고, 남이 먹는 거니까 그냥 막 처방하는 거에 대해서 자제해줬으면 좋겠어요. 정말 자기 가족을 처방해준다는 생각으로 약을 처방해줬으면 좋겠어요.”
(약물 중독자 이 모 씨)

■ “의사가 처방한다고 안전한 약물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천영훈 의사 전문가들은 ‘안전한 의약품’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중독치료 전문가인 천영훈 의사는 “의사에게 처방받는 약물 자체가 안전한 약물이 절대 아니다.”라면서 중독성과 의존성이 큰 약물이 아주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사들이 처방해줄 때도 환자들한테 명확한 경고를 해야 한다.”라면서 약물이 남용되거나 혹은 환자들이 약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지에 대해 의사들 스스로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천영훈 의사는 환자도 경각심을 가지고 본인이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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