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생존자]① “딸 살리려 손 놓았는데”…아물지 않는 유가족의 상처

입력 2021.06.28 (14:54) 수정 2021.07.0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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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23일 밤 부산 초량 제1지하차도에서 엄마는 딸을 잃었습니다.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구조됐지만 안타깝게도 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연관기사] 더 깊어진 ‘재난 생존자’들의 상처…보듬는 노력 필요 ('KBS 뉴스9' 2021.6.25)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18746

■ 지하차도 전광판 '낙뢰 주의' 문구만…

바다나 계곡도 아닌, 평소 자주 이용하던 지하차도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지하차도에 진입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도로가 침수되긴 했지만 운전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고 출입 통제도 없었습니다. KBS가 유가족으로부터 제공 받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당시 입구의 전광판에는 '낙뢰 사고 주의' 문구만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초량 제1 지하차도 침수 사고 당일 블랙박스 영상초량 제1 지하차도 침수 사고 당일 블랙박스 영상

앞선 차량 여러 대가 지하차도로 향했고 당연히 따라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깊숙이 들어가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수위가 급격히 불어났고 겨우 차에서 나와보니 턱 밑까지 물이 차올라있었습니다.

■ '너라도 살아라 손 놓았지만...' 구조는 늦어지고

차에서 빠져나올 때부터 딸은 휴대폰으로 연신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지하차도 코앞에 119 안전센터와 경찰서가 있었지만 구조는 기약 없이 늦어졌습니다.

결국 딸과 함께 물살을 헤치고 출구를 향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지하차도의 길이는 175m, 중간부터 걸어나갔다고 해도 짧지 않은 거리입니다. 수위가 점점 높아졌고 물살은 파도처럼 거세졌습니다. 이러다가 물 속에 딸을 끌고 들어갈 것 같아서 너라도 살아라 하면서 손을 놓았습니다.

딸은 수영을 하니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엄청난 빗물이 지하차도의 출입구와 양쪽 보행로에서 쏟아져 내렸습니다. 터널 속 최대 수위는 2.5m에 이르렀고 결국 물살은 모녀의 생과 사를 갈라놨습니다.

부산 초량 제1지하차도 침수 피해 유가족 김영일 씨부산 초량 제1지하차도 침수 피해 유가족 김영일 씨

'재난 생존자'인 엄마는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슬픔과 자책감에 오열하고 또 오열했습니다. 숨진 딸의 외삼촌이자 엄마의 동생인 김영일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나는 자기가 못 지켜주고 스물여덟 살 짜리 딸을 잃었으니까….
자기가 죽어야 잊혀지지, 잊혀지겠습니까?"


■ "차라리 한국에 안 들어왔으면…"

딸은 17살 때부터 엄마 품을 떠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김영일 씨는 "한창 젊은 나이에 세상을 재밌게 살고 그래야 하는데 너무 아깝다."면서 "차라리 한국에 안 들어왔으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시간을 되돌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재난생존자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 그 시간에 멈춰있습니다.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가족을 잃은 슬픔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고 이후 원인이 무엇인지, 누구의 책임인지 밝히는 일도 고스란히 유가족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 '재난생존자'의 깊어지는 상처, 손 잡아주길 바랐는데…

사고 발생 후 처음으로 초량 제1지하차도를 찾은 유가족들사고 발생 후 처음으로 초량 제1지하차도를 찾은 유가족들

침수 피해가 발생한 다음날 행안부 장관은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 자리에 부산시와 동구청의 공무원들도 함께했지만, 이들은 이날 유가족을 찾지 않았습니다.

사고 발생 나흘 뒤에야 변성완 당시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만났습니다. 권한대행은 "호우경보가 내려진 시점이 저녁 8시이고 매뉴얼 상 지하차도를 차단하게 돼있는데 못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보고만 받았을 뿐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모든 일을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소송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가족 김영일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 목숨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겁니까. 우리가 돈을 원합니까? 뭘 원합니까?
그냥 장례식장에 와서 유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손 잡아주기를 바랐습니다.
그게 큰 욕심입니까?"


조일환 씨의 형도 그 날 지하차도에 있었습니다. 형은 오랜만에 딸을 만나러 집으로 달려가던 길이었습니다. 부산시와 동구청 등 공무원들을 만난 자리에 조일환 씨도 함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다가 겨우 만났을 때도 정 해줄 수 있는 건 1,100만원이니까 알아서 해라, 소송 결과 나오는 대로 해줄게 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믿었던 정부잖아요. 일이 터지자 우리를 적으로 돌리고 만나려 하지 않고…. 저 사람들 입장에선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희는 목숨이 달린 거잖아요."


■"대통령님! 사람이 먼저죠? 맞죠?"

유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상기시키며 대통령에게 호소도 해봤지만, 지난해 7월 30일 게시판에 올라간 국민청원은 참여 인원 20만명을 넘지 못하면서 결국 한 달 뒤 마감됐습니다.

■ 공무원들의 과실 복합 작용한 '인재'

지난 4월 부산지검은 초량 제1지하차도 침수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침수가 예상되는 상황에도 재난 대응 계획에 따른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담당 공무원들의 과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인재"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무사안일과 안전 불감증으로 이미 침수 상태였던 지하차도에 피해자들이 진입하도록 '방치'했다는 건데요. 부산시 공무원 2명과 동구청 직원 9명 등 11명이 기소됐고 이 가운데 1명이 구속됐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사고 13일 전인 7월 10일에도 집중호우로 초량 제1지하차도가 침수됐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겁니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 그냥 넘어간 건데, 그날 시스템이 정비되기만 했어도 3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 유가족들 바람, "다시는 이런 사고 되풀이되지 않길"

초량 제1지하차도는 경부선 철도를 사이에 둔 부산 중앙대로와 충장대로를 연결하는 왕복 2차로입니다. 현장에 처음 갔을 때 취재진도 놀랐습니다. 저지대인데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움푹 꺼져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침수 피해가 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대비가 철저해야했습니다. 1966년 처음 만들어진 이 지하차도는 그동안 비가 많이 올 때마다 침수됐습니다. 행안부는 2019년 침수가 우려되는 전국의 지하차도를 대상으로 통제 기준을 마련했는데 초량 지하차도도 물론 포함돼있습니다.

뼈아픈 점은 또 있습니다. 부산에서는 이미 2014년 8월에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에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가 침수됐습니다. 할머니와 손녀가 차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숨졌습니다. 배수펌프가 작동하지 않은 가운데 금정산에서 빗물이 쏟아져내려 비극이 일어난 건데요.
부산시는 '제2의 우장춘로 지하차도 사고'를 예방하겠다며 부산 전역 지하차도의 배수펌프 용량을 늘려왔습니다. 하지만 비극은 6년만에 똑같이 재현되고 말았습니다.

조일환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로 끝나야 하는데 비슷한 사고가 또 발생하면 초량 지하차도 얘기가 수면 위로 올라올 거 아닙니까. 유가족 입장에서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런 일이 안 생기기를 바라거든요. 초량 지하차도 이후 그런 사고는 다시는 없었다. 공무원이든 우리 사회가 각성하고 반성하고 나아지는 계기가 됐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유가족들의 심정입니다. "


■ 예산이 걸림돌?…늦어지는 배수체계 개선 사업

유가족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름도 조마조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와 달리 지하차도에는 수위가 20cm를 넘으면 안내 방송과 함께 차의 진입을 자동으로 막는 시스템이 설치됐습니다. 그러나 배수체계 개선 사업은 늦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타당성 조사를 거쳐 2024년쯤 착공 예정인데 이후 최소 5년이 걸릴 전망입니다. 동구청은 예산이 걸림돌이라고 말합니다.


어두운 지하차도에서 대피를 안내해주는 유도선이나 유도등도 아직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여름 희생자들은 공통적으로 119에 신고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부산 시내가 물바다가 되면서 신고 전화가 폭주했고 결국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 건데요.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합니다.

재난 생존자들의 외침처럼 사람의 목숨 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는 비오는 날 지하차도를 지날 때에도 생존을 위해 '구명조끼'를 입어야할까요? 국민들이 안온한 일상 속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게, 재난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비해야 합니다.
최소한 예고된 재해로 인한 인명 피해는 더 이상 없어야겠습니다.

[연관기사] 나는 ‘재난 생존자’입니다…재난 이후 멈춰버린 시간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18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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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생존자]① “딸 살리려 손 놓았는데”…아물지 않는 유가족의 상처
    • 입력 2021-06-28 14:54:09
    • 수정2021-07-02 11:32:35
    취재K

지난해 7월 23일 밤 부산 초량 제1지하차도에서 엄마는 딸을 잃었습니다.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구조됐지만 안타깝게도 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연관기사] 더 깊어진 ‘재난 생존자’들의 상처…보듬는 노력 필요 ('KBS 뉴스9' 2021.6.25)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18746

■ 지하차도 전광판 '낙뢰 주의' 문구만…

바다나 계곡도 아닌, 평소 자주 이용하던 지하차도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지하차도에 진입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도로가 침수되긴 했지만 운전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고 출입 통제도 없었습니다. KBS가 유가족으로부터 제공 받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당시 입구의 전광판에는 '낙뢰 사고 주의' 문구만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초량 제1 지하차도 침수 사고 당일 블랙박스 영상
앞선 차량 여러 대가 지하차도로 향했고 당연히 따라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깊숙이 들어가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수위가 급격히 불어났고 겨우 차에서 나와보니 턱 밑까지 물이 차올라있었습니다.

■ '너라도 살아라 손 놓았지만...' 구조는 늦어지고

차에서 빠져나올 때부터 딸은 휴대폰으로 연신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지하차도 코앞에 119 안전센터와 경찰서가 있었지만 구조는 기약 없이 늦어졌습니다.

결국 딸과 함께 물살을 헤치고 출구를 향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지하차도의 길이는 175m, 중간부터 걸어나갔다고 해도 짧지 않은 거리입니다. 수위가 점점 높아졌고 물살은 파도처럼 거세졌습니다. 이러다가 물 속에 딸을 끌고 들어갈 것 같아서 너라도 살아라 하면서 손을 놓았습니다.

딸은 수영을 하니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엄청난 빗물이 지하차도의 출입구와 양쪽 보행로에서 쏟아져 내렸습니다. 터널 속 최대 수위는 2.5m에 이르렀고 결국 물살은 모녀의 생과 사를 갈라놨습니다.

부산 초량 제1지하차도 침수 피해 유가족 김영일 씨
'재난 생존자'인 엄마는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슬픔과 자책감에 오열하고 또 오열했습니다. 숨진 딸의 외삼촌이자 엄마의 동생인 김영일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나는 자기가 못 지켜주고 스물여덟 살 짜리 딸을 잃었으니까….
자기가 죽어야 잊혀지지, 잊혀지겠습니까?"


■ "차라리 한국에 안 들어왔으면…"

딸은 17살 때부터 엄마 품을 떠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김영일 씨는 "한창 젊은 나이에 세상을 재밌게 살고 그래야 하는데 너무 아깝다."면서 "차라리 한국에 안 들어왔으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시간을 되돌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재난생존자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 그 시간에 멈춰있습니다.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가족을 잃은 슬픔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고 이후 원인이 무엇인지, 누구의 책임인지 밝히는 일도 고스란히 유가족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 '재난생존자'의 깊어지는 상처, 손 잡아주길 바랐는데…

사고 발생 후 처음으로 초량 제1지하차도를 찾은 유가족들
침수 피해가 발생한 다음날 행안부 장관은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 자리에 부산시와 동구청의 공무원들도 함께했지만, 이들은 이날 유가족을 찾지 않았습니다.

사고 발생 나흘 뒤에야 변성완 당시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만났습니다. 권한대행은 "호우경보가 내려진 시점이 저녁 8시이고 매뉴얼 상 지하차도를 차단하게 돼있는데 못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보고만 받았을 뿐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모든 일을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소송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가족 김영일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 목숨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겁니까. 우리가 돈을 원합니까? 뭘 원합니까?
그냥 장례식장에 와서 유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손 잡아주기를 바랐습니다.
그게 큰 욕심입니까?"


조일환 씨의 형도 그 날 지하차도에 있었습니다. 형은 오랜만에 딸을 만나러 집으로 달려가던 길이었습니다. 부산시와 동구청 등 공무원들을 만난 자리에 조일환 씨도 함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다가 겨우 만났을 때도 정 해줄 수 있는 건 1,100만원이니까 알아서 해라, 소송 결과 나오는 대로 해줄게 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믿었던 정부잖아요. 일이 터지자 우리를 적으로 돌리고 만나려 하지 않고…. 저 사람들 입장에선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희는 목숨이 달린 거잖아요."


■"대통령님! 사람이 먼저죠? 맞죠?"

유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상기시키며 대통령에게 호소도 해봤지만, 지난해 7월 30일 게시판에 올라간 국민청원은 참여 인원 20만명을 넘지 못하면서 결국 한 달 뒤 마감됐습니다.

■ 공무원들의 과실 복합 작용한 '인재'

지난 4월 부산지검은 초량 제1지하차도 침수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침수가 예상되는 상황에도 재난 대응 계획에 따른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담당 공무원들의 과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인재"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무사안일과 안전 불감증으로 이미 침수 상태였던 지하차도에 피해자들이 진입하도록 '방치'했다는 건데요. 부산시 공무원 2명과 동구청 직원 9명 등 11명이 기소됐고 이 가운데 1명이 구속됐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사고 13일 전인 7월 10일에도 집중호우로 초량 제1지하차도가 침수됐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겁니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 그냥 넘어간 건데, 그날 시스템이 정비되기만 했어도 3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 유가족들 바람, "다시는 이런 사고 되풀이되지 않길"

초량 제1지하차도는 경부선 철도를 사이에 둔 부산 중앙대로와 충장대로를 연결하는 왕복 2차로입니다. 현장에 처음 갔을 때 취재진도 놀랐습니다. 저지대인데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움푹 꺼져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침수 피해가 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대비가 철저해야했습니다. 1966년 처음 만들어진 이 지하차도는 그동안 비가 많이 올 때마다 침수됐습니다. 행안부는 2019년 침수가 우려되는 전국의 지하차도를 대상으로 통제 기준을 마련했는데 초량 지하차도도 물론 포함돼있습니다.

뼈아픈 점은 또 있습니다. 부산에서는 이미 2014년 8월에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에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가 침수됐습니다. 할머니와 손녀가 차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숨졌습니다. 배수펌프가 작동하지 않은 가운데 금정산에서 빗물이 쏟아져내려 비극이 일어난 건데요.
부산시는 '제2의 우장춘로 지하차도 사고'를 예방하겠다며 부산 전역 지하차도의 배수펌프 용량을 늘려왔습니다. 하지만 비극은 6년만에 똑같이 재현되고 말았습니다.

조일환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로 끝나야 하는데 비슷한 사고가 또 발생하면 초량 지하차도 얘기가 수면 위로 올라올 거 아닙니까. 유가족 입장에서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런 일이 안 생기기를 바라거든요. 초량 지하차도 이후 그런 사고는 다시는 없었다. 공무원이든 우리 사회가 각성하고 반성하고 나아지는 계기가 됐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유가족들의 심정입니다. "


■ 예산이 걸림돌?…늦어지는 배수체계 개선 사업

유가족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름도 조마조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와 달리 지하차도에는 수위가 20cm를 넘으면 안내 방송과 함께 차의 진입을 자동으로 막는 시스템이 설치됐습니다. 그러나 배수체계 개선 사업은 늦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타당성 조사를 거쳐 2024년쯤 착공 예정인데 이후 최소 5년이 걸릴 전망입니다. 동구청은 예산이 걸림돌이라고 말합니다.


어두운 지하차도에서 대피를 안내해주는 유도선이나 유도등도 아직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여름 희생자들은 공통적으로 119에 신고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부산 시내가 물바다가 되면서 신고 전화가 폭주했고 결국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 건데요.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합니다.

재난 생존자들의 외침처럼 사람의 목숨 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는 비오는 날 지하차도를 지날 때에도 생존을 위해 '구명조끼'를 입어야할까요? 국민들이 안온한 일상 속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게, 재난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비해야 합니다.
최소한 예고된 재해로 인한 인명 피해는 더 이상 없어야겠습니다.

[연관기사] 나는 ‘재난 생존자’입니다…재난 이후 멈춰버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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