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국의 민낯 드러난 마이애미 아파트 붕괴참사

입력 2021.06.30 (10:38) 수정 2021.06.3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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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지 40년 됐다는 12층 아파트가 10여 초 만에 무너진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사고가 난 지 22시간, 만 하루가 가까이 됐을 무렵이었습니다. 마이애미에는 허리케인이 다가오면서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운전하는 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벼락이 수시로 내리칠 때마다 무너진 철골과 콘크리트 잔해들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참혹한 현장이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재난 트라우마.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도 세월호 참사로 죽어가던 이들의 묵숨을 구하기 위해선 골든타임 - 사고 발생 후 72시간- 이 절실하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현장에 도착한 취재진은 '설마' 했습니다.

"설마 미국이 72시간 동안 저걸 못 치울까."
"설마 미국이 골든타임 동안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할까."

그런데 그 설마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붕괴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하나같이 화가 나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 아침부터 서 있었는데, 돌을 실어서 나오는 트럭 한 대를 못 봤어! 이건 구조가 아니야!"

실제로 그랬습니다. 취재진이 붕괴 현장에 머물렀던 사흘 내내 붕괴 현장에서는 붕괴 잔해물을 실은 트럭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잔해를 치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만큼 작업 속도가 더뎠다는 겁니다. 한 시간은 갰다가 한 시간은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구조물 잔해 위에서 일하던 구조대원들은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고, 생존 신호도 탐지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하에 지지대를 만들어 진입한 대원들은 퍼붓는 폭우에 추가 붕괴 위험이 높아지면서 철수해야했습니다.

작전은 위에서 돌을 들어올리며 구하고, 밑에서 지하로 진입하면서 구하는 것이었는데 둘 다 첫날부터 이미 실패한 겁니다.

■잡히지 않은 불길...사흘 내내 시커먼 하늘

속도를 늦춘 건 폭우 만이 아니었습니다. 붕괴 현장에서 발생할 원인 모를 화재는 좀처럼 불길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도착한 6월 24일 밤은 그나마 괜찮았습니다. 살수차 한 대가 계속해서 물을 쏟아부으며 불길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패착이었습니다.

4시간 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보니 시커먼 연기가 더 심하게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불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략 불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구조작업을 시작하다보니, 불길은 그 사이에 더 타올랐습니다. 아파트 내장재, 가구, 자동차, 그리고 수많은 전선들이 뒤엉켜 일대는 시커멓게 변했습니다.

마이애미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현지시간 25일마이애미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현지시간 25일

사고 이틀째,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습니다. 살수차 한 대로는 어림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현장에 더 이상의 살수차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한 대로 계속해서 물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인근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써야 했습니다. 유독가스가 너무 심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취재기자의 옷에는 시커먼 검댕이 가득이었습니다. 그저 현장에 서 있기만 했을 뿐이었는데도요.

사고 사흘째, 이제는 불길이 잡혔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 시장은 "불이 어디서 나고 있는 지, 얼마만한 규모인 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였다면 살수차 1대가 아니라 다른 방법을 써봤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늦었지만요.

■연방정부 아래 플로리다, 그 아래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

사고가 난 곳은 마이애미 데이드라는 카운티입니다. 플로리다 주의 큰 도시는 올랜도, 마이애미, 탬파, 잭슨빌 정도이니 마이애미 데이드는 그보다 작은 기초단체 격입니다. 마이애미 데이드 자체에 엄청난 소방력이 있을 리 없습니다. 플로리다주에서 전력으로 지원해야 했던 상황입니다.

플로리다 주지사는 공화당이고, 유명한 트럼프 지지자입니다. 플로리다주의 론 드샌티스 주지사는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마스크 착용, 자가격리 등과 관련해서 바이든 대통령과 여러 차례 각을 세웠던 인물이죠.

플로리다는 인구가 2천만 명이 넘습니다. 미국에서 인구가 세번째로 많은 주입니다. 멕시코만과 면해 있는 반도형 주여서 우리가 알고 있는 디즈니월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이 모두 이곳에 집결해있을 만큼 관광산업이 크게 발달해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주라고 해도 대형 재난 앞에선 연방정부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습니다. 붕괴 사고 직후 플로리다 드샌티스 주지사가 백악관에 어떻게 보고를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연방의 도움이 절실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고가 난 둘째날 시당국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며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붕괴 사고 둘쨋날까지 지지부진했던 구조 작업에 다소 속도가 붙었습니다. 사고 사흘째 새벽, 현장에는 연방재난관리청(FEMA) 로고가 붙은 버스가 여러 대 늘어섰고, 구조대원들 수도 늘어난 모습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매몰된 사망자 수도 늘었습니다. 그만큼 잔해더미를 치우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더 빨리 왔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50개 주가 합쳐진 연방국가로 주별 자치가 1순위라고 해도 FEMA는 좀 더 빨리 왔어야 했습니다. 연방정부에 사람 내놓으라고 더 빨리 외쳤어야 했습니다. 언론보도를 보고 나서 대응하면 늦다는 걸 우리는 너무 많이 겪어봤는데 말이죠.

■비극적 참사... 지원은 신속히 전폭적으로, 현장은 되도록 늦게 가는 바이든

재난이 발생하면 대통령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우리나라와 달리 바이든은 아직 가지 않았습니다. 사고 발생한 지 일주일 째가 되는 오는 7월 1일에 방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난 지원은 신속하게, 이벤트성 현장방문은 최대한 늦게. 백악관의 속마음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물론 바이든 대통령도 재난 지원만 하고 '정치'를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현지시간 6월 29일 브리핑에서 "딘 크리스웰 미국 연방 재난관리청(FEMA)장이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접촉해 바이든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연방재난관리청과 연방수사국이 현장에서 사고를 수습하는 동시에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당장 재난 앞에서 구조와 복구에 연방 자원을 총동원해 돕겠다, 하지만 사고 조사는 우리 연방에서 철저하게 하겠다"는 메시지입니다.

■ '사망'을 언급하지 않는 언론...'증거'로 규명하는 언론

참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업태 중 하나가 언론일 겁니다. 때로는 경찰 병력보다 먼저 도착하기도 하니까요. 저는 이번에 대형참사 현장에 도착한 미국 언론들의 보도를 보며 2가지가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하나는 '죽음'을 성급하게 언급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랬을 것' 이라고 추정해 보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고 현장에 온 CNN 메인 앵커 앤더슨 쿠퍼. 미 전역 지상파와 케이블 뉴스 주요 앵커들이 현장에 총출동해 뉴스를 진행했다.사고 현장에 온 CNN 메인 앵커 앤더슨 쿠퍼. 미 전역 지상파와 케이블 뉴스 주요 앵커들이 현장에 총출동해 뉴스를 진행했다.

아직까지 매몰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자가 모두 생존이 파악된 건 아닌 상황에서 미국 언론은 먼저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최소 몇 명의 사망자"라는 표현을 주로 쓰고, "아직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말을 반드시 했습니다. 사고 현장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배회하고 있었고, 아마도 TV를 통해 보고 있을 가족, 친척, 친구들이 많았을 겁니다. 미국 언론들의 재난 보도 현장은 떠들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부실한 건축, 스티포롬 내장재, 허술한 관리감독, 지자체와 관리업체 간의 유착'

우리 언론에서 사고만 나면 쏟아지는 제목들입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지만 사전적으로 예단해서 보도해 온 것들입니다.

그런데 미국 언론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고 셋째날 뉴욕타임즈가 건물 컨설팅 업체의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하기 전까지는 섣부른 추정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존해서 보도했을 뿐입니다.

■"지금은 구조에 집중해야 할 때"

실종자 가족도, 시민들도, 언론들도 현장의 작업 속도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속이 타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소방대원들의 기를 꺾지 않았습니다.

"현장에 처음으로 구조하러 와 준 사람들, 자원봉사자들, 첫 응답자(first responder)들에게 고맙다"
는 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왜냐고 물었습니다. 왜 문제제기 하지 않냐고. 답은 간단했습니다. "지금은 구조에 집중해야 할 때니까."

현장에 있는 동안 실종자 가족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얼굴과 생김새를 한 사람들이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가족이었습니다. 어떤 부자는 엄마를, 아내를 잃었고, 어떤 모자는 아빠, 남편을 잃었습니다. 부디 생존자가 있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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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미국의 민낯 드러난 마이애미 아파트 붕괴참사
    • 입력 2021-06-30 10:38:51
    • 수정2021-06-30 10:39:37
    특파원 리포트

지은 지 40년 됐다는 12층 아파트가 10여 초 만에 무너진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사고가 난 지 22시간, 만 하루가 가까이 됐을 무렵이었습니다. 마이애미에는 허리케인이 다가오면서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운전하는 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벼락이 수시로 내리칠 때마다 무너진 철골과 콘크리트 잔해들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참혹한 현장이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재난 트라우마.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도 세월호 참사로 죽어가던 이들의 묵숨을 구하기 위해선 골든타임 - 사고 발생 후 72시간- 이 절실하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현장에 도착한 취재진은 '설마' 했습니다.

"설마 미국이 72시간 동안 저걸 못 치울까."
"설마 미국이 골든타임 동안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할까."

그런데 그 설마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붕괴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하나같이 화가 나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 아침부터 서 있었는데, 돌을 실어서 나오는 트럭 한 대를 못 봤어! 이건 구조가 아니야!"

실제로 그랬습니다. 취재진이 붕괴 현장에 머물렀던 사흘 내내 붕괴 현장에서는 붕괴 잔해물을 실은 트럭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잔해를 치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만큼 작업 속도가 더뎠다는 겁니다. 한 시간은 갰다가 한 시간은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구조물 잔해 위에서 일하던 구조대원들은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고, 생존 신호도 탐지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하에 지지대를 만들어 진입한 대원들은 퍼붓는 폭우에 추가 붕괴 위험이 높아지면서 철수해야했습니다.

작전은 위에서 돌을 들어올리며 구하고, 밑에서 지하로 진입하면서 구하는 것이었는데 둘 다 첫날부터 이미 실패한 겁니다.

■잡히지 않은 불길...사흘 내내 시커먼 하늘

속도를 늦춘 건 폭우 만이 아니었습니다. 붕괴 현장에서 발생할 원인 모를 화재는 좀처럼 불길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도착한 6월 24일 밤은 그나마 괜찮았습니다. 살수차 한 대가 계속해서 물을 쏟아부으며 불길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패착이었습니다.

4시간 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보니 시커먼 연기가 더 심하게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불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략 불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구조작업을 시작하다보니, 불길은 그 사이에 더 타올랐습니다. 아파트 내장재, 가구, 자동차, 그리고 수많은 전선들이 뒤엉켜 일대는 시커멓게 변했습니다.

마이애미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현지시간 25일
사고 이틀째,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습니다. 살수차 한 대로는 어림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현장에 더 이상의 살수차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한 대로 계속해서 물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인근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써야 했습니다. 유독가스가 너무 심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취재기자의 옷에는 시커먼 검댕이 가득이었습니다. 그저 현장에 서 있기만 했을 뿐이었는데도요.

사고 사흘째, 이제는 불길이 잡혔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 시장은 "불이 어디서 나고 있는 지, 얼마만한 규모인 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였다면 살수차 1대가 아니라 다른 방법을 써봤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늦었지만요.

■연방정부 아래 플로리다, 그 아래 마이애미 데이드 카운티

사고가 난 곳은 마이애미 데이드라는 카운티입니다. 플로리다 주의 큰 도시는 올랜도, 마이애미, 탬파, 잭슨빌 정도이니 마이애미 데이드는 그보다 작은 기초단체 격입니다. 마이애미 데이드 자체에 엄청난 소방력이 있을 리 없습니다. 플로리다주에서 전력으로 지원해야 했던 상황입니다.

플로리다 주지사는 공화당이고, 유명한 트럼프 지지자입니다. 플로리다주의 론 드샌티스 주지사는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마스크 착용, 자가격리 등과 관련해서 바이든 대통령과 여러 차례 각을 세웠던 인물이죠.

플로리다는 인구가 2천만 명이 넘습니다. 미국에서 인구가 세번째로 많은 주입니다. 멕시코만과 면해 있는 반도형 주여서 우리가 알고 있는 디즈니월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이 모두 이곳에 집결해있을 만큼 관광산업이 크게 발달해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주라고 해도 대형 재난 앞에선 연방정부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습니다. 붕괴 사고 직후 플로리다 드샌티스 주지사가 백악관에 어떻게 보고를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연방의 도움이 절실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고가 난 둘째날 시당국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며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붕괴 사고 둘쨋날까지 지지부진했던 구조 작업에 다소 속도가 붙었습니다. 사고 사흘째 새벽, 현장에는 연방재난관리청(FEMA) 로고가 붙은 버스가 여러 대 늘어섰고, 구조대원들 수도 늘어난 모습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매몰된 사망자 수도 늘었습니다. 그만큼 잔해더미를 치우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더 빨리 왔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50개 주가 합쳐진 연방국가로 주별 자치가 1순위라고 해도 FEMA는 좀 더 빨리 왔어야 했습니다. 연방정부에 사람 내놓으라고 더 빨리 외쳤어야 했습니다. 언론보도를 보고 나서 대응하면 늦다는 걸 우리는 너무 많이 겪어봤는데 말이죠.

■비극적 참사... 지원은 신속히 전폭적으로, 현장은 되도록 늦게 가는 바이든

재난이 발생하면 대통령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우리나라와 달리 바이든은 아직 가지 않았습니다. 사고 발생한 지 일주일 째가 되는 오는 7월 1일에 방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난 지원은 신속하게, 이벤트성 현장방문은 최대한 늦게. 백악관의 속마음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물론 바이든 대통령도 재난 지원만 하고 '정치'를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현지시간 6월 29일 브리핑에서 "딘 크리스웰 미국 연방 재난관리청(FEMA)장이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접촉해 바이든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연방재난관리청과 연방수사국이 현장에서 사고를 수습하는 동시에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당장 재난 앞에서 구조와 복구에 연방 자원을 총동원해 돕겠다, 하지만 사고 조사는 우리 연방에서 철저하게 하겠다"는 메시지입니다.

■ '사망'을 언급하지 않는 언론...'증거'로 규명하는 언론

참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업태 중 하나가 언론일 겁니다. 때로는 경찰 병력보다 먼저 도착하기도 하니까요. 저는 이번에 대형참사 현장에 도착한 미국 언론들의 보도를 보며 2가지가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하나는 '죽음'을 성급하게 언급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랬을 것' 이라고 추정해 보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고 현장에 온 CNN 메인 앵커 앤더슨 쿠퍼. 미 전역 지상파와 케이블 뉴스 주요 앵커들이 현장에 총출동해 뉴스를 진행했다.
아직까지 매몰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자가 모두 생존이 파악된 건 아닌 상황에서 미국 언론은 먼저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최소 몇 명의 사망자"라는 표현을 주로 쓰고, "아직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말을 반드시 했습니다. 사고 현장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배회하고 있었고, 아마도 TV를 통해 보고 있을 가족, 친척, 친구들이 많았을 겁니다. 미국 언론들의 재난 보도 현장은 떠들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부실한 건축, 스티포롬 내장재, 허술한 관리감독, 지자체와 관리업체 간의 유착'

우리 언론에서 사고만 나면 쏟아지는 제목들입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지만 사전적으로 예단해서 보도해 온 것들입니다.

그런데 미국 언론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고 셋째날 뉴욕타임즈가 건물 컨설팅 업체의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하기 전까지는 섣부른 추정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존해서 보도했을 뿐입니다.

■"지금은 구조에 집중해야 할 때"

실종자 가족도, 시민들도, 언론들도 현장의 작업 속도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속이 타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소방대원들의 기를 꺾지 않았습니다.

"현장에 처음으로 구조하러 와 준 사람들, 자원봉사자들, 첫 응답자(first responder)들에게 고맙다"
는 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왜냐고 물었습니다. 왜 문제제기 하지 않냐고. 답은 간단했습니다. "지금은 구조에 집중해야 할 때니까."

현장에 있는 동안 실종자 가족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얼굴과 생김새를 한 사람들이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가족이었습니다. 어떤 부자는 엄마를, 아내를 잃었고, 어떤 모자는 아빠, 남편을 잃었습니다. 부디 생존자가 있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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