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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주차장 성폭행 사건…법원은 왜 무죄를 선고했나
입력 2021.07.01 (10:56) 취재K

■ 20대 男 성폭행 무죄 증거는 'ㅋㅋㅋ'

지난해 법원이 제주에서 발생한 '공영주차장 성폭행 사건'의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후 '성폭행 무죄 증거는 ㅋㅋㅋ'라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26살 A 씨는 2019년 9월 제주시 모 공영주차장에서 술에 취한 후배의 신체를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성폭행하려다 미수(준강간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가 사건 이후 피고인에게 'ㅋㅋㅋㅋ에후. 오빠 영상 앨범에만 있던 거 맞지?' 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점 등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준강간'이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 여부와 피고인이 이를 인식하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고의성'이 중요한 쟁점이 되는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겁니다.

결국, A 씨는 휴대전화로 신체를 촬영한 행위에 대해서만 성폭력처벌법 위반죄(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습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는데요. 최근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A 씨의 준강간미수죄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A 씨에게는 또다시 무죄를 선고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준강간미수는 맞지만…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최근 준강간미수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A 씨의 항소심에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공소사실과 판결문 기록을 살펴보면, 도내 모 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사건 발생 당일 제주시 모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셨는데요.

당시 피해자는 10시간 넘게 아르바이트를 한 뒤 밤 11시쯤 술자리에 참석했고, 3차에 걸쳐 새벽 4시까지 술자리를 이어갔습니다. 이후 피해자는 자신의 차가 세워진 공영주차장으로 향합니다.

A 씨는 피해자를 따라 조수석에 탑승해 피해자의 이름을 서너 번 부른 뒤 신체를 만지고, 뒷좌석으로 옮겨 재차 추행하며 동영상을 촬영합니다. 이후 A 씨는 중간에 편의점에서 콘돔을 구매한 뒤 성관계를 시도했는데, 동영상 촬영 소리에 깬 피해자가 거부하며 항의해 미수에 그칩니다.

앞선 설명대로 A 씨 측은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준강간'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피해자가 성관계 행위를 인식하고 동의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더라도 그 행위의 위험성이 있으면 처벌할 수 있는 '불능미수'를 적용해 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형법 제27조는 실행의 수단이나 대상의 착오로 인해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찰과 재판부 모두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성립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8도 16002)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외에도 A 씨와 피해자가 과거 후배들과 한 차례 술을 마신 적이 있을 뿐 단둘이 술을 마시거나 만난 적이 없는 점, 피해자가 A 씨에게 호감을 갖고 있거나 호감을 나타내는 언행을 했다고 보이지 않는 점,

사건 직후 왜 동영상을 찍었냐며 항의한 점, 피해자가 제 3자에게 목격되거나 CCTV에 촬영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영주차장에서 일출시각에 가까운 새벽 시간에 성관계를 결심하거나 이를 실행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점, A 씨가 피해자가 의식이 없는 것을 알고 동영상을 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 그런데 왜 무죄?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죄는 인정되지만, 검찰의 공소사실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겁니다.

재판부는 검찰 공소사실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불능미수'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아야 하는데, 기본적인 사실 관계가 다르게 기재됐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공소장 변경절차를 거치지 않고 다르게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준강간의 고의에 대한 증명이 없다고 본 원심(1심) 판단은 잘못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은 정당하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정리하면,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아 무죄를 선고했다는 겁니다.

검찰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광주고검 제주지부 측은 '대법원 2003도 1366' 판례를 들어 "공소장이 변경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적정절차에 의한 신속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형사소송의 목적에 비추어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것"이라며 "법원이 직권으로 범죄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공소제기의 취지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명료하지 못한 경우라면 법원이 검사에게 석명권을 행사해 그 취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대법원 2017도 3448' 판례까지 들어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석명권은 법원이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 검사와 변호인, 당사자들에게 법률적ㆍ사실적인 사항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입증을 촉구하는 권한을 말합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 역시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동일할 때 받아들여 질 수 있고, 법원에 공소장변경 요구 의무도 없다는 입장입니다.

검찰 측은 "1심에서는 법리를 오인하고, 2심에서는 범죄가 성립된다고 해놓고 무죄를 내렸다"며 선고 결과가 아쉽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검찰이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결론은 대법원에서 판가름 날 전망입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습니다.

피해자는 또 다시 긴 시간 법의 판단을 기다려야 합니다.
  • 공영주차장 성폭행 사건…법원은 왜 무죄를 선고했나
    • 입력 2021-07-01 10:56:50
    취재K

■ 20대 男 성폭행 무죄 증거는 'ㅋㅋㅋ'

지난해 법원이 제주에서 발생한 '공영주차장 성폭행 사건'의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후 '성폭행 무죄 증거는 ㅋㅋㅋ'라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26살 A 씨는 2019년 9월 제주시 모 공영주차장에서 술에 취한 후배의 신체를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성폭행하려다 미수(준강간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가 사건 이후 피고인에게 'ㅋㅋㅋㅋ에후. 오빠 영상 앨범에만 있던 거 맞지?' 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점 등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준강간'이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 여부와 피고인이 이를 인식하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고의성'이 중요한 쟁점이 되는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겁니다.

결국, A 씨는 휴대전화로 신체를 촬영한 행위에 대해서만 성폭력처벌법 위반죄(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습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는데요. 최근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A 씨의 준강간미수죄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A 씨에게는 또다시 무죄를 선고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준강간미수는 맞지만…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최근 준강간미수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A 씨의 항소심에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공소사실과 판결문 기록을 살펴보면, 도내 모 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사건 발생 당일 제주시 모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셨는데요.

당시 피해자는 10시간 넘게 아르바이트를 한 뒤 밤 11시쯤 술자리에 참석했고, 3차에 걸쳐 새벽 4시까지 술자리를 이어갔습니다. 이후 피해자는 자신의 차가 세워진 공영주차장으로 향합니다.

A 씨는 피해자를 따라 조수석에 탑승해 피해자의 이름을 서너 번 부른 뒤 신체를 만지고, 뒷좌석으로 옮겨 재차 추행하며 동영상을 촬영합니다. 이후 A 씨는 중간에 편의점에서 콘돔을 구매한 뒤 성관계를 시도했는데, 동영상 촬영 소리에 깬 피해자가 거부하며 항의해 미수에 그칩니다.

앞선 설명대로 A 씨 측은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준강간'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피해자가 성관계 행위를 인식하고 동의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더라도 그 행위의 위험성이 있으면 처벌할 수 있는 '불능미수'를 적용해 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형법 제27조는 실행의 수단이나 대상의 착오로 인해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찰과 재판부 모두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성립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8도 16002)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외에도 A 씨와 피해자가 과거 후배들과 한 차례 술을 마신 적이 있을 뿐 단둘이 술을 마시거나 만난 적이 없는 점, 피해자가 A 씨에게 호감을 갖고 있거나 호감을 나타내는 언행을 했다고 보이지 않는 점,

사건 직후 왜 동영상을 찍었냐며 항의한 점, 피해자가 제 3자에게 목격되거나 CCTV에 촬영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영주차장에서 일출시각에 가까운 새벽 시간에 성관계를 결심하거나 이를 실행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점, A 씨가 피해자가 의식이 없는 것을 알고 동영상을 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 그런데 왜 무죄?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죄는 인정되지만, 검찰의 공소사실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겁니다.

재판부는 검찰 공소사실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불능미수'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아야 하는데, 기본적인 사실 관계가 다르게 기재됐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공소장 변경절차를 거치지 않고 다르게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준강간의 고의에 대한 증명이 없다고 본 원심(1심) 판단은 잘못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은 정당하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정리하면,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아 무죄를 선고했다는 겁니다.

검찰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광주고검 제주지부 측은 '대법원 2003도 1366' 판례를 들어 "공소장이 변경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적정절차에 의한 신속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형사소송의 목적에 비추어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것"이라며 "법원이 직권으로 범죄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공소제기의 취지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명료하지 못한 경우라면 법원이 검사에게 석명권을 행사해 그 취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대법원 2017도 3448' 판례까지 들어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석명권은 법원이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 검사와 변호인, 당사자들에게 법률적ㆍ사실적인 사항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입증을 촉구하는 권한을 말합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 역시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동일할 때 받아들여 질 수 있고, 법원에 공소장변경 요구 의무도 없다는 입장입니다.

검찰 측은 "1심에서는 법리를 오인하고, 2심에서는 범죄가 성립된다고 해놓고 무죄를 내렸다"며 선고 결과가 아쉽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검찰이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결론은 대법원에서 판가름 날 전망입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습니다.

피해자는 또 다시 긴 시간 법의 판단을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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