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로 뒤덮인 내 고향 구지도를 지켜주세요”

입력 2021.07.04 (09:00) 수정 2021.07.0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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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어새입니다. 독특한 모양의 까만 주걱 부리가 자랑인데, 이 부리로 얕은 물을 휘휘 '저어가며' 먹잇감을 포착합니다. 그래서 내 이름이 '저어새'에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내 친구들은 5,200여 마리뿐입니다. 20년 전 820여 마리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직 국제 멸종위기종입니다.

■ 저어새의 국내 최대 번식지 구지도…"목숨 걸고 날아와요"

우리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귀소 본능입니다. 태어난 곳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새끼를 낳고 싶어 하죠. 전 세계 번식 개체군의 90% 이상이 한국, 그것도 인천에서 번식합니다. 그 중에서도 대연평도 인근 무인도인 '구지도'를 가장 좋아해요.

그래서 지난 3월, 나는 다시 고향인 구지도로 날아왔습니다.

구지도는 멸종위기종 저어새의 국내 최대 번식지이자 지형경관이 우수해 ‘특정도서’로 지정돼 있다.구지도는 멸종위기종 저어새의 국내 최대 번식지이자 지형경관이 우수해 ‘특정도서’로 지정돼 있다.

사실 우리가 인천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아요. 홍콩과 타이완에서 겨울을 나고 1,500~2,000km를 날아와야 하는데, 목숨을 건 비행이죠.

중간기착지가 없는 서해를 건너는 게 제일 위험해요. 최소 15시간을 꼬박 날아야 하고, 맞바람이 불면 그야말로 사투가 벌어집니다. 많게는 21만 번의 날갯짓이 필요해요.

서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는 친구들도 있고, 1~2살의 어린 저어새들은 번식지까지 오지 못해 중간기착지나 월동지에서 머무르기도 한답니다.

■ 구지도에 저어새·괭이갈매기보다 많은 것은?

이렇게 목숨을 걸고 이곳으로 오는 이유는, 우리 고향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내 고향 '구지도'가 변하고 있습니다. 해양 쓰레기로 뒤덮이고 있어요. 통발이나 부표, 그물 같은 어구들도 있고요. 플라스틱 생수병, 부탄가스 통, 신발 등등 종류도 다양해요.

최근에는 글쎄 커다란 냉장고도 떠밀려왔어요. 엄청나죠?

구지도에서 발견된 각종 쓰레기. 생수병과 어구, 냉장고까지 다양하다.구지도에서 발견된 각종 쓰레기. 생수병과 어구, 냉장고까지 다양하다.

우리와 함께 구지도에 사는 괭이갈매기들은 종종 낮은 곳에 둥지를 트는데, 요즘은 쓰레기 더미 사이에 둥지를 만들기도 해요. 섬이 온통 쓰레기니까요.

제가 살짝 들여다보니, 스티로폼 조각이나 노끈 등도 물어다 둥지를 만들더라고요. 그러다 삼키기도 할텐데, 정말 큰일이에요. 이제는 구지도에 우리 새들보다 쓰레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물 사이, 어구 사이에 둥지를 튼 흔적들. 밧줄, 스티로폼 조각들이 둥지 재료로 섞여 있다.그물 사이, 어구 사이에 둥지를 튼 흔적들. 밧줄, 스티로폼 조각들이 둥지 재료로 섞여 있다.

■ 정박 시설 없어 쓰레기 수거 어려워…"전용 선박 필요"

그러다 보니 섬 곳곳에 죽거나 다친 친구들도 많이 보여요. 넘치는 쓰레기는 새들에게 위협이 되니까요. 1년에 한두 차례 인천시와 옹진군에서 정화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한 번 할 때마다 5톤 정도의 쓰레기가 나온다고 해요.

그나마도 자주 할 수가 없습니다. 구지도는 무인도라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접근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죠.

인천시는 올해 99억 원을 투입해 7,000톤의 해양 쓰레기 수거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인도에 이처럼 방치되는 해양 쓰레기는 관리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상황이에요.

상시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하려면, 접안이 가능하고 침적된 쓰레기를 끌어올리는 장비를 갖춘 전용 선박이 필요한데, 한 척을 건조 하는 데만 140억 원이 든다고 해요. 그것도 2척은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 "내 고향 구지도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당신의 지구를 지키세요"

나와 친구 저어새들은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고향을 찾을 겁니다. 내가 태어나고, 엄마에게 먹이 찾는 법을 배우고, 친구들과 비행을 하며 자란 곳이니까요. 그런 내 고향 구지도가 쓰레기 섬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구지도에 방치된 쓰레기들이 잘게 부서지고 쪼개져 어쩌면 당신의 식탁 위로 올라갈지 몰라요. 내 고향 구지도를 지키는 일은, 그래서 저어새들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내 고향 구지도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당신의 식탁을, 당신의 지구를 지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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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기로 뒤덮인 내 고향 구지도를 지켜주세요”
    • 입력 2021-07-04 09:00:23
    • 수정2021-07-04 20:30:18
    취재K

나는 저어새입니다. 독특한 모양의 까만 주걱 부리가 자랑인데, 이 부리로 얕은 물을 휘휘 '저어가며' 먹잇감을 포착합니다. 그래서 내 이름이 '저어새'에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내 친구들은 5,200여 마리뿐입니다. 20년 전 820여 마리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직 국제 멸종위기종입니다.

■ 저어새의 국내 최대 번식지 구지도…"목숨 걸고 날아와요"

우리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귀소 본능입니다. 태어난 곳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새끼를 낳고 싶어 하죠. 전 세계 번식 개체군의 90% 이상이 한국, 그것도 인천에서 번식합니다. 그 중에서도 대연평도 인근 무인도인 '구지도'를 가장 좋아해요.

그래서 지난 3월, 나는 다시 고향인 구지도로 날아왔습니다.

구지도는 멸종위기종 저어새의 국내 최대 번식지이자 지형경관이 우수해 ‘특정도서’로 지정돼 있다.
사실 우리가 인천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아요. 홍콩과 타이완에서 겨울을 나고 1,500~2,000km를 날아와야 하는데, 목숨을 건 비행이죠.

중간기착지가 없는 서해를 건너는 게 제일 위험해요. 최소 15시간을 꼬박 날아야 하고, 맞바람이 불면 그야말로 사투가 벌어집니다. 많게는 21만 번의 날갯짓이 필요해요.

서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는 친구들도 있고, 1~2살의 어린 저어새들은 번식지까지 오지 못해 중간기착지나 월동지에서 머무르기도 한답니다.

■ 구지도에 저어새·괭이갈매기보다 많은 것은?

이렇게 목숨을 걸고 이곳으로 오는 이유는, 우리 고향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내 고향 '구지도'가 변하고 있습니다. 해양 쓰레기로 뒤덮이고 있어요. 통발이나 부표, 그물 같은 어구들도 있고요. 플라스틱 생수병, 부탄가스 통, 신발 등등 종류도 다양해요.

최근에는 글쎄 커다란 냉장고도 떠밀려왔어요. 엄청나죠?

구지도에서 발견된 각종 쓰레기. 생수병과 어구, 냉장고까지 다양하다.
우리와 함께 구지도에 사는 괭이갈매기들은 종종 낮은 곳에 둥지를 트는데, 요즘은 쓰레기 더미 사이에 둥지를 만들기도 해요. 섬이 온통 쓰레기니까요.

제가 살짝 들여다보니, 스티로폼 조각이나 노끈 등도 물어다 둥지를 만들더라고요. 그러다 삼키기도 할텐데, 정말 큰일이에요. 이제는 구지도에 우리 새들보다 쓰레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물 사이, 어구 사이에 둥지를 튼 흔적들. 밧줄, 스티로폼 조각들이 둥지 재료로 섞여 있다.
■ 정박 시설 없어 쓰레기 수거 어려워…"전용 선박 필요"

그러다 보니 섬 곳곳에 죽거나 다친 친구들도 많이 보여요. 넘치는 쓰레기는 새들에게 위협이 되니까요. 1년에 한두 차례 인천시와 옹진군에서 정화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한 번 할 때마다 5톤 정도의 쓰레기가 나온다고 해요.

그나마도 자주 할 수가 없습니다. 구지도는 무인도라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접근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죠.

인천시는 올해 99억 원을 투입해 7,000톤의 해양 쓰레기 수거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인도에 이처럼 방치되는 해양 쓰레기는 관리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상황이에요.

상시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하려면, 접안이 가능하고 침적된 쓰레기를 끌어올리는 장비를 갖춘 전용 선박이 필요한데, 한 척을 건조 하는 데만 140억 원이 든다고 해요. 그것도 2척은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 "내 고향 구지도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당신의 지구를 지키세요"

나와 친구 저어새들은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고향을 찾을 겁니다. 내가 태어나고, 엄마에게 먹이 찾는 법을 배우고, 친구들과 비행을 하며 자란 곳이니까요. 그런 내 고향 구지도가 쓰레기 섬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구지도에 방치된 쓰레기들이 잘게 부서지고 쪼개져 어쩌면 당신의 식탁 위로 올라갈지 몰라요. 내 고향 구지도를 지키는 일은, 그래서 저어새들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내 고향 구지도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당신의 식탁을, 당신의 지구를 지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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