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서 정화시설 갖춘 대형 화장실 흔적 발견

입력 2021.07.08 (09:00) 수정 2021.07.0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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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서 정화시설을 갖춘 150여 년 전 대형 화장실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문화재청은 오늘(8일) "경복궁 동궁 남쪽 지역에서 현대 정화조와 유사한 시설을 갖춘 대형 화장실 유구(遺構)가 확인됐다"며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습니다.

발굴된 화장실은 동궁과 관련된 하급 관리와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이 주로 이용했을 것으로 문화재청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과 가속 질량분석기(AMS)를 이용한 절대연대 분석, 토양층의 선후 관계 등으로 볼 때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 중건 당시 만들어져 20여 년간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화장실이 발굴된 동궁 권역의 건물들은 1868년(고종 5년)에 완공됐으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훼손됐습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발굴된 유구가 화장실이라는 사실은 <경복궁배치도>와 <궁궐지>의 기록으로 알 수 있었고, 발굴 유구의 토양에서 많은 양의 기생충 알과 오이, 가지, 들깨의 씨앗이 검출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화장실 구조는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로,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도록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돼 있습니다.

또 정화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入水口)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出水口) 2개가 있는데, 북쪽 입수구의 높이가 출수구보다 낮은 곳에 있으며,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분변의 발효를 빠르게 하고 부피를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화재청은 "분변에 섞여 있는 오수는 변에서 분리돼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됐고,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 구조는 현대식 정화조의 구조와 유사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문헌자료에 따르면 화장실 규모는 4~5칸으로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1인당 1일 분뇨량과 정화시설의 전체 용적량(16.22㎥)을 고려하면 하루 150여 명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배수 시설이 없는 화장실에 비해 약 5배 정도 많은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 소장은 "150여 년 전에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의 대형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이라며 "정화시설은 백제 때 왕궁시설인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됐지만, 물을 흘려보내 오염물을 정화시킨 뒤 외부로 배출하는 구조는 이전보다 월등히 발달된 기술"이라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 같은 분뇨 정화시설은 우리나라에만 있으며, 유럽과 일본의 경우에는 분뇨를 포함한 모든 생활하수를 함께 처리하는 시설이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정착됐고, 중국의 경우 집마다 분뇨를 저장하는 대형 나무통이 있었다고만 전해질 뿐"이라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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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에서 정화시설 갖춘 대형 화장실 흔적 발견
    • 입력 2021-07-08 09:00:26
    • 수정2021-07-08 11:37:46
    문화
경복궁에서 정화시설을 갖춘 150여 년 전 대형 화장실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문화재청은 오늘(8일) "경복궁 동궁 남쪽 지역에서 현대 정화조와 유사한 시설을 갖춘 대형 화장실 유구(遺構)가 확인됐다"며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습니다.

발굴된 화장실은 동궁과 관련된 하급 관리와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이 주로 이용했을 것으로 문화재청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과 가속 질량분석기(AMS)를 이용한 절대연대 분석, 토양층의 선후 관계 등으로 볼 때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 중건 당시 만들어져 20여 년간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화장실이 발굴된 동궁 권역의 건물들은 1868년(고종 5년)에 완공됐으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훼손됐습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발굴된 유구가 화장실이라는 사실은 <경복궁배치도>와 <궁궐지>의 기록으로 알 수 있었고, 발굴 유구의 토양에서 많은 양의 기생충 알과 오이, 가지, 들깨의 씨앗이 검출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화장실 구조는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로,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도록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돼 있습니다.

또 정화시설 내부로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入水口)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出水口) 2개가 있는데, 북쪽 입수구의 높이가 출수구보다 낮은 곳에 있으며,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분변의 발효를 빠르게 하고 부피를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화재청은 "분변에 섞여 있는 오수는 변에서 분리돼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됐고,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 구조는 현대식 정화조의 구조와 유사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문헌자료에 따르면 화장실 규모는 4~5칸으로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1인당 1일 분뇨량과 정화시설의 전체 용적량(16.22㎥)을 고려하면 하루 150여 명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배수 시설이 없는 화장실에 비해 약 5배 정도 많은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 소장은 "150여 년 전에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의 대형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이라며 "정화시설은 백제 때 왕궁시설인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됐지만, 물을 흘려보내 오염물을 정화시킨 뒤 외부로 배출하는 구조는 이전보다 월등히 발달된 기술"이라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 같은 분뇨 정화시설은 우리나라에만 있으며, 유럽과 일본의 경우에는 분뇨를 포함한 모든 생활하수를 함께 처리하는 시설이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정착됐고, 중국의 경우 집마다 분뇨를 저장하는 대형 나무통이 있었다고만 전해질 뿐"이라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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