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식회동이냐 정상회담이냐…文 ‘도쿄 올림픽 참석’의 딜레마

입력 2021.07.0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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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3일 진행되는 일본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다, 참석하지 않는다, 언론 보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KBS 취재를 종합하면, 문 대통령의 방일을 두고 한일 외교당국이 협의를 진행 중인 건 사실이지만, 아직 참석이 확정된 건 아닙니다.

사정을 잘 아는 외교소식통은 "강창일 주일대사가 문 대통령 방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지만, 아직 경호나 의전과 관련한 실무적인 지침은 내려온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현재 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은 40~50%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

"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이 거의 0%에 가까웠지만, 한일 간 협의를 거치면서 40% 수준까지 올라섰다"며 " 일본의 강경했던 태도가 변해서, 방일 가능성이 조금 더 커졌다"고 이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어제(8일)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일본에 온다면) 외교상 정중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귀빈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미국 질 바이든 여사 밖에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일본이 문 대통령의 방일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어제(8일) 도쿄올림픽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어제(8일) 도쿄올림픽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 문 대통령 방일, 왜 결정을 못하나

올림픽 개막식을 불과 2주 앞두고도 방일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는 건, 결국 한국과 일본이 각자 원하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동상이몽인 셈이죠.

① 정상회담 형식과 내용에 대한 입장 차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까지 일본은 자연스러운 약식 회동을 해야 하며, 시간도 30분 이상은 할애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최소한의 시간과 격식이 필요하며, 정상회담에 1시간 정도는 할애해야 한다는 분위기입니다. 도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공식화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의 의전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②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 차

한일 간 당면한 가장 큰 현안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 차도 여전합니다.

일본은 정상회담을 하려면 한국이 이 두 문제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 진전된 해법을 가져오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일단 두 정상이 만나서 큰 틀에서 문제 해결에 합의하고, 고위급 협의체를 신설해 논의를 이어가자는 입장입니다. 우리 정부로선, 사법부 판결에 개입하는 해법을 마련하는 건 사실상 어렵기 때문입니다.



■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청와대의 속마음은?

애초에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건 '상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참석했기 때문에, 외교 관례상 문 대통령도 응당 답방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수출 규제,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등을 겪으며 한일 관계가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됐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음 정권에 넘겨주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일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한 정상회담으로, 대화의 물꼬는 터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의 구상에 여러 변수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상황 악화가 문제였는데, 사실 일본의 강경한 태도가 더 문제였습니다. 특히 지난달 G7 정상회의 때 약식 회동을 하기로 양국 정부가 합의했는데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끝내 응하지 않던 모습을 지켜보면서 청와대 분위기도 달라졌습니다.

문 대통령이 일본을 찾았다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모습이 비쳐지면 곤란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일본까지 찾아가서 스가 총리와 약식회동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외교 참사'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합의나 성과가 없이 돌아오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최근 여론조사 결과, 문 대통령이 일본을 갈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더 우세했던 것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때문에 청와대는 여전히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오늘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여전히, 한일 정상회담과 그 성과가 예견된다면 방일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방일 전제로 사전 준비는 계속…조만간 결정될 듯

물론 외교당국은 여전히 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전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일본 외교 당국과 협상을 지속하면서 우리의 요구를 최대한 관철시키겠단 의지입니다.

또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최근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시민단체와 간담회를 갖고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방일을 염두에 둔 사전 준비 차원 아니냔 분석도 나왔습니다.

이른바 '플랜 B'도 준비 중입니다. 끝내 일본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김부겸 국무총리나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방일하는 것도 가능한 카드입니다.

이르면 다음주 초반에는 문 대통령의 참석 여부가 결정될 것이란 관측들이 나오는 가운데, 도쿄올림픽 시계는 어느새 'D-14일'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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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식회동이냐 정상회담이냐…文 ‘도쿄 올림픽 참석’의 딜레마
    • 입력 2021-07-09 15:07:13
    취재K

오는 23일 진행되는 일본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다, 참석하지 않는다, 언론 보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KBS 취재를 종합하면, 문 대통령의 방일을 두고 한일 외교당국이 협의를 진행 중인 건 사실이지만, 아직 참석이 확정된 건 아닙니다.

사정을 잘 아는 외교소식통은 "강창일 주일대사가 문 대통령 방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지만, 아직 경호나 의전과 관련한 실무적인 지침은 내려온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현재 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은 40~50%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

"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이 거의 0%에 가까웠지만, 한일 간 협의를 거치면서 40% 수준까지 올라섰다"며 " 일본의 강경했던 태도가 변해서, 방일 가능성이 조금 더 커졌다"고 이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어제(8일)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일본에 온다면) 외교상 정중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귀빈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미국 질 바이든 여사 밖에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일본이 문 대통령의 방일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어제(8일) 도쿄올림픽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 문 대통령 방일, 왜 결정을 못하나

올림픽 개막식을 불과 2주 앞두고도 방일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는 건, 결국 한국과 일본이 각자 원하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동상이몽인 셈이죠.

① 정상회담 형식과 내용에 대한 입장 차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까지 일본은 자연스러운 약식 회동을 해야 하며, 시간도 30분 이상은 할애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최소한의 시간과 격식이 필요하며, 정상회담에 1시간 정도는 할애해야 한다는 분위기입니다. 도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공식화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의 의전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②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 차

한일 간 당면한 가장 큰 현안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 차도 여전합니다.

일본은 정상회담을 하려면 한국이 이 두 문제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 진전된 해법을 가져오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일단 두 정상이 만나서 큰 틀에서 문제 해결에 합의하고, 고위급 협의체를 신설해 논의를 이어가자는 입장입니다. 우리 정부로선, 사법부 판결에 개입하는 해법을 마련하는 건 사실상 어렵기 때문입니다.



■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청와대의 속마음은?

애초에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건 '상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참석했기 때문에, 외교 관례상 문 대통령도 응당 답방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수출 규제,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등을 겪으며 한일 관계가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됐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음 정권에 넘겨주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일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한 정상회담으로, 대화의 물꼬는 터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의 구상에 여러 변수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상황 악화가 문제였는데, 사실 일본의 강경한 태도가 더 문제였습니다. 특히 지난달 G7 정상회의 때 약식 회동을 하기로 양국 정부가 합의했는데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끝내 응하지 않던 모습을 지켜보면서 청와대 분위기도 달라졌습니다.

문 대통령이 일본을 찾았다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모습이 비쳐지면 곤란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일본까지 찾아가서 스가 총리와 약식회동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외교 참사'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합의나 성과가 없이 돌아오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최근 여론조사 결과, 문 대통령이 일본을 갈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더 우세했던 것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때문에 청와대는 여전히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오늘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여전히, 한일 정상회담과 그 성과가 예견된다면 방일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방일 전제로 사전 준비는 계속…조만간 결정될 듯

물론 외교당국은 여전히 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전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일본 외교 당국과 협상을 지속하면서 우리의 요구를 최대한 관철시키겠단 의지입니다.

또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최근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시민단체와 간담회를 갖고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방일을 염두에 둔 사전 준비 차원 아니냔 분석도 나왔습니다.

이른바 '플랜 B'도 준비 중입니다. 끝내 일본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김부겸 국무총리나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방일하는 것도 가능한 카드입니다.

이르면 다음주 초반에는 문 대통령의 참석 여부가 결정될 것이란 관측들이 나오는 가운데, 도쿄올림픽 시계는 어느새 'D-14일'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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