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日 산사태 1주일…실종자 수는 왜 ‘고무줄’ 됐나?

입력 2021.07.10 (08:00) 수정 2021.07.1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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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오전 10시 반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아타미(熱海)시 이즈산(伊豆山) 지구.

'고오오오~'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산사태가 내리막 경사면을 따라 주택가를 덮쳤습니다.

토사 더미를 정통으로 맞은 집들이 마치 녹아 없어지듯 급류에 사라졌습니다.

시커먼 토사가 집과 전봇대와 자동차를 삼키는 장면을 보고 10년 전 동일본 대지진 때의 지진해일을 떠올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토사는 태평양과 맞닿은 수백 미터 앞 바다까지 흘렀고, 사망자 두 명은 당시 심정지 상태로 바다에서 발견됐습니다.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산사태는 7월 9일 기준 사망자 9명의 인명 피해를 낳았고, 지금도 경찰·소방·자위대원 1700여 명은 지금도 21명의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 일본의 대표 온천 휴양지, 시즈오카현 아타미시의 2019년 6월 모습(왼쪽 사진). 지난 3일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모습(오른쪽)       = 교도 연합뉴스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 일본의 대표 온천 휴양지, 시즈오카현 아타미시의 2019년 6월 모습(왼쪽 사진). 지난 3일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모습(오른쪽) = 교도 연합뉴스


■실종자 수는 '고무줄'

사고 당일이던 7월 3일 시즈오카현은 접수된 신고 등을 토대로 실종자는 약 20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4일 저녁 이 숫자는 147명이 됐습니다. 7배가 늘어난 것이죠. '갑자기 왜 이렇게 많아졌나'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피해가 크자, 시즈오카현과 아타미시가 피해 지역 주민기본대장(주민등록)을 펼쳐 한명 한명 체크했던 겁니다. 이 지역엔 215명이 살고 있는데 그 때까지 연락이 닿지 않은 사람이 147명이었습니다.

숫자는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이들로부터 하나 둘 씩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64명까지 줄어들었는데,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주민기본대장에는 휴대전화 번호 같은 게 적혀 있을리 없었기 때문에,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에게 당국이 먼저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결국 시즈오카현과 아타미시가 내린 '결단'은 64명의 이름과 성별을 공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당신들을 찾고 있으니 연락을 달라'는 것이었죠. 그 때가 5일 밤, 사고가 난지 이미 이틀 이상 지난 후였습니다.



■파악에 '우왕좌왕'

실종자로 추정되는 사람 수를 줄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수색 ·구조 활동에 시간과 인력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가 정확하지 않으면 100명이 할 일을 1000명이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타미 산사태 때 실종자 파악이 우왕좌왕 했던 이유는 뭘까요.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먼저 아타미시라는 지역엔 특수성이 있습니다. 일본 내 최대 온천 휴양지로, 휴가 때만 사람이 잠깐 와서 사는 '빈집'이 많았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카무라 씨가 피해지역 주민기본대장에 등록이 돼 있는데, 아타미 집 말고 도쿄에 있는 '원래 자기 집'에 당시 머물고 있었다면 '실종자'로 집계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실종자 수는 '실종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성명과 성별을 공표하면서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할 것이지 왜 이틀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한 뒤에 단행했을까요?

그건 지방자치단체가 소재 파악이 안 되는 사람의 실명과 성별 등을 신속하게 공표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입니다. 아무리 재해 상황이라도 지자체는 개인정보 공표에 '아, 이거 해도 되나?' 하며 눈치를 봅니다.

일본에도 물론 재해대책기본법이나 정부의 방재기본계획 같은 법령이 있지만, 실종자의 신상에 관한 공표를 할지 말지 판단은 자치단체가 알아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상당수 지자체가 개인정보 보호 조례에서 생명이나 재산 보호를 위해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어떤 경우가 해당되는지 모호하다고 닛케이는 전했습니다.


산사태가 휩쓸고 간 주택가에서 생존자·실종자를 찾는 구조대원들.                                                           =교도 연합뉴스산사태가 휩쓸고 간 주택가에서 생존자·실종자를 찾는 구조대원들. =교도 연합뉴스

■생명 보다 개인정보가 중요?

일본은 개인정보를 비교적 엄격하게 보호하는 나라 축에 속합니다.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명함을 보기가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인명을 구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생사 확인의 가장 확실한 수단인 휴대전화를 확인할 수 있는 행정시스템을 갖추지 않았거나, 실종자 이름을 공개하냐마냐 좌고우면 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이냐는 비판이 나올 법 합니다.

실제 2018년 7월 서일본 호우 당시 11개 광역자치단체에 걸쳐 27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났습니다. 그 중 하나인 오카야마현은 재해 발생한지 5일이나 지나서야 실종자 50여 명의 이름을 공표하는 결단(?)을 내렸는데, 이후 연락과 생사 확인이 이뤄지면서 수 일 만에 실종자는 3명으로 줄었습니다.

닛케이와 인터뷰한 니가타대의 스즈키 마사토모 교수(정보법 전공)는 "실종자 이름 공표는 구출 활동을 적절히 하는데 있어 장점이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름 공표에 관한 법적 근거가 애매해 대응에 당황하는 지자체가 많다"면서 "정부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통일된 지침을 나타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발생 일주일을 맞은 아타미 산사태는 '수년 간 진행된 벌목'과 '늦은 피난 경보' 등으로 이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방재 강국' 일본에 또 하나 풀어야할 숙제가 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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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日 산사태 1주일…실종자 수는 왜 ‘고무줄’ 됐나?
    • 입력 2021-07-10 08:00:15
    • 수정2021-07-10 10:10:20
    특파원 리포트

7월 3일 오전 10시 반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아타미(熱海)시 이즈산(伊豆山) 지구.

'고오오오~'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산사태가 내리막 경사면을 따라 주택가를 덮쳤습니다.

토사 더미를 정통으로 맞은 집들이 마치 녹아 없어지듯 급류에 사라졌습니다.

시커먼 토사가 집과 전봇대와 자동차를 삼키는 장면을 보고 10년 전 동일본 대지진 때의 지진해일을 떠올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토사는 태평양과 맞닿은 수백 미터 앞 바다까지 흘렀고, 사망자 두 명은 당시 심정지 상태로 바다에서 발견됐습니다.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산사태는 7월 9일 기준 사망자 9명의 인명 피해를 낳았고, 지금도 경찰·소방·자위대원 1700여 명은 지금도 21명의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 일본의 대표 온천 휴양지, 시즈오카현 아타미시의 2019년 6월 모습(왼쪽 사진). 지난 3일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모습(오른쪽)       = 교도 연합뉴스

■실종자 수는 '고무줄'

사고 당일이던 7월 3일 시즈오카현은 접수된 신고 등을 토대로 실종자는 약 20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4일 저녁 이 숫자는 147명이 됐습니다. 7배가 늘어난 것이죠. '갑자기 왜 이렇게 많아졌나'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피해가 크자, 시즈오카현과 아타미시가 피해 지역 주민기본대장(주민등록)을 펼쳐 한명 한명 체크했던 겁니다. 이 지역엔 215명이 살고 있는데 그 때까지 연락이 닿지 않은 사람이 147명이었습니다.

숫자는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이들로부터 하나 둘 씩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64명까지 줄어들었는데,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주민기본대장에는 휴대전화 번호 같은 게 적혀 있을리 없었기 때문에,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에게 당국이 먼저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결국 시즈오카현과 아타미시가 내린 '결단'은 64명의 이름과 성별을 공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당신들을 찾고 있으니 연락을 달라'는 것이었죠. 그 때가 5일 밤, 사고가 난지 이미 이틀 이상 지난 후였습니다.



■파악에 '우왕좌왕'

실종자로 추정되는 사람 수를 줄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수색 ·구조 활동에 시간과 인력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가 정확하지 않으면 100명이 할 일을 1000명이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타미 산사태 때 실종자 파악이 우왕좌왕 했던 이유는 뭘까요.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먼저 아타미시라는 지역엔 특수성이 있습니다. 일본 내 최대 온천 휴양지로, 휴가 때만 사람이 잠깐 와서 사는 '빈집'이 많았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카무라 씨가 피해지역 주민기본대장에 등록이 돼 있는데, 아타미 집 말고 도쿄에 있는 '원래 자기 집'에 당시 머물고 있었다면 '실종자'로 집계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실종자 수는 '실종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성명과 성별을 공표하면서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할 것이지 왜 이틀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한 뒤에 단행했을까요?

그건 지방자치단체가 소재 파악이 안 되는 사람의 실명과 성별 등을 신속하게 공표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입니다. 아무리 재해 상황이라도 지자체는 개인정보 공표에 '아, 이거 해도 되나?' 하며 눈치를 봅니다.

일본에도 물론 재해대책기본법이나 정부의 방재기본계획 같은 법령이 있지만, 실종자의 신상에 관한 공표를 할지 말지 판단은 자치단체가 알아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상당수 지자체가 개인정보 보호 조례에서 생명이나 재산 보호를 위해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어떤 경우가 해당되는지 모호하다고 닛케이는 전했습니다.


산사태가 휩쓸고 간 주택가에서 생존자·실종자를 찾는 구조대원들.                                                           =교도 연합뉴스
■생명 보다 개인정보가 중요?

일본은 개인정보를 비교적 엄격하게 보호하는 나라 축에 속합니다.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명함을 보기가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인명을 구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생사 확인의 가장 확실한 수단인 휴대전화를 확인할 수 있는 행정시스템을 갖추지 않았거나, 실종자 이름을 공개하냐마냐 좌고우면 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이냐는 비판이 나올 법 합니다.

실제 2018년 7월 서일본 호우 당시 11개 광역자치단체에 걸쳐 27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났습니다. 그 중 하나인 오카야마현은 재해 발생한지 5일이나 지나서야 실종자 50여 명의 이름을 공표하는 결단(?)을 내렸는데, 이후 연락과 생사 확인이 이뤄지면서 수 일 만에 실종자는 3명으로 줄었습니다.

닛케이와 인터뷰한 니가타대의 스즈키 마사토모 교수(정보법 전공)는 "실종자 이름 공표는 구출 활동을 적절히 하는데 있어 장점이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름 공표에 관한 법적 근거가 애매해 대응에 당황하는 지자체가 많다"면서 "정부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통일된 지침을 나타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발생 일주일을 맞은 아타미 산사태는 '수년 간 진행된 벌목'과 '늦은 피난 경보' 등으로 이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방재 강국' 일본에 또 하나 풀어야할 숙제가 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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