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을 길이 막혔다…‘당연한 권리’ 놓고 싸워야 하나?

입력 2021.07.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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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길 통행을 막고 있는 문마을 길 통행을 막고 있는 문

■ 어느 날, 마을 길이 막혔다

충남 금산의 한 마을과 국도를 잇는 길이 있습니다. 마을에서 국도로 나가는 가장 가까운 길입니다. 주민들은 10년 넘게 이 길을 이용했습니다. 길은 마을에서 한 화장품 회사를 지나 국도로 이어집니다.

길의 중간쯤 되는 길목에는 화장품 회사가 설치한 문이 있습니다. 1년 전부터 회사가 이 문을 잠그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은 마을 길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2km가량을 돌아서 나 있는 다른 길을 이용해 국도에 나가거나 마을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늦은 시간 귀가하는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주민들이 지나다니며 회사가 지저분해진다는 게 회사가 문을 잠근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회사는 외부인인 주민들이 24시간 회사 옆으로 통행하며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어렵다고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마치 주민들이 양해를 구해 회사 영내를 지나다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 안쪽에는 국유지가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소관의 도로부지입니다. 해당 부지는 앞선 사진에서 보듯 마을에서 회사 바깥으로 기다랗게 이어집니다.

이 땅은 엄연한 국유지이지만 사실상 사유지처럼 사용돼 왔습니다. 회사는 해당 부지에 선을 그어놓고 주차장으로 이용하거나 부지 일부에 석축을 쌓기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아예 통행조차 하지 말라며 문을 닫아 버린 겁니다.

주민들은 지난해 회사 측이 해당 국유지를 사겠다며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한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자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게 주민들 주장입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야생동물 출입을 막기 위해 문을 잠갔으며, 사람들의 출입을 막을 의도는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관할자치단체인 충남 금산군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습니다. 해당 도로부지를 불법 점유 상태 이전으로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 ‘회사 편’ 든 자치단체…“국유지 회복할 필요 없다”

하지만 자치단체는 ‘회사 편’이었습니다. 금산군이 주민들에게 공문으로 보낸 답변을 보면 ‘해당 국유지 도로를 회복할 실제 상의 필요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회사가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유는 2가지를 들었습니다. 원상회복 비용이 막대하고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원상회복이란 주차장과 석축을 쌓아두는 용도로 회사가 사용하고 있는 국유지를 본연의 상태로 돌리는 일을 뜻합니다. 불법 행위를 시정하는 일이지만 금산군은 여기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손실이 크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금산군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회사가 사용하며 잘 정비된 땅을 굳이 파헤칠 필요가 있겠냐”는 취지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인근 주민들의 피해가 크다는 건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당장 통행을 못 하는 주민들은 어쩌냐는 질문에 금산군 관계자는 “저희도 회사 측에 양보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답했습니다.

화장품 회사 측이 마을 길 문에 걸어둔 자물쇠화장품 회사 측이 마을 길 문에 걸어둔 자물쇠

■싸워서야 얻는 ‘당연한 권리’

금산군은 또 해당 국유지를 회사가 사실상 점유하게 되는 만큼 애초 인·허가 과정에서
“대체 도로를 만들도록 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인·허가 과정에 문제가 있던 거로 추정된다는 얘긴데요. 하지만 그 인·허가 역시 금산군이 내준 겁니다.

사측 편을 들던 금산군은 취재가 시작되자 회사 측의 불법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금산군은 “사측이 국유재산을 무단으로 점거한 행위에 대해 행정처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있던 문제를 이제 와 해결하겠다는 말을 믿고 기다리는 주민은 많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건 간단합니다. 마을 길 통행권과 국유지의 원상 회복입니다. 충남 금산 주민들은 이 당연한 권리를 싸우고 항의해야 얻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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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날 마을 길이 막혔다…‘당연한 권리’ 놓고 싸워야 하나?
    • 입력 2021-07-10 08:00:16
    취재K
마을 길 통행을 막고 있는 문
■ 어느 날, 마을 길이 막혔다

충남 금산의 한 마을과 국도를 잇는 길이 있습니다. 마을에서 국도로 나가는 가장 가까운 길입니다. 주민들은 10년 넘게 이 길을 이용했습니다. 길은 마을에서 한 화장품 회사를 지나 국도로 이어집니다.

길의 중간쯤 되는 길목에는 화장품 회사가 설치한 문이 있습니다. 1년 전부터 회사가 이 문을 잠그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은 마을 길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2km가량을 돌아서 나 있는 다른 길을 이용해 국도에 나가거나 마을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늦은 시간 귀가하는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주민들이 지나다니며 회사가 지저분해진다는 게 회사가 문을 잠근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회사는 외부인인 주민들이 24시간 회사 옆으로 통행하며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어렵다고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마치 주민들이 양해를 구해 회사 영내를 지나다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 안쪽에는 국유지가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소관의 도로부지입니다. 해당 부지는 앞선 사진에서 보듯 마을에서 회사 바깥으로 기다랗게 이어집니다.

이 땅은 엄연한 국유지이지만 사실상 사유지처럼 사용돼 왔습니다. 회사는 해당 부지에 선을 그어놓고 주차장으로 이용하거나 부지 일부에 석축을 쌓기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아예 통행조차 하지 말라며 문을 닫아 버린 겁니다.

주민들은 지난해 회사 측이 해당 국유지를 사겠다며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한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자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게 주민들 주장입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야생동물 출입을 막기 위해 문을 잠갔으며, 사람들의 출입을 막을 의도는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관할자치단체인 충남 금산군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습니다. 해당 도로부지를 불법 점유 상태 이전으로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 ‘회사 편’ 든 자치단체…“국유지 회복할 필요 없다”

하지만 자치단체는 ‘회사 편’이었습니다. 금산군이 주민들에게 공문으로 보낸 답변을 보면 ‘해당 국유지 도로를 회복할 실제 상의 필요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회사가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유는 2가지를 들었습니다. 원상회복 비용이 막대하고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원상회복이란 주차장과 석축을 쌓아두는 용도로 회사가 사용하고 있는 국유지를 본연의 상태로 돌리는 일을 뜻합니다. 불법 행위를 시정하는 일이지만 금산군은 여기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손실이 크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금산군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회사가 사용하며 잘 정비된 땅을 굳이 파헤칠 필요가 있겠냐”는 취지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인근 주민들의 피해가 크다는 건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당장 통행을 못 하는 주민들은 어쩌냐는 질문에 금산군 관계자는 “저희도 회사 측에 양보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답했습니다.

화장품 회사 측이 마을 길 문에 걸어둔 자물쇠
■싸워서야 얻는 ‘당연한 권리’

금산군은 또 해당 국유지를 회사가 사실상 점유하게 되는 만큼 애초 인·허가 과정에서
“대체 도로를 만들도록 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인·허가 과정에 문제가 있던 거로 추정된다는 얘긴데요. 하지만 그 인·허가 역시 금산군이 내준 겁니다.

사측 편을 들던 금산군은 취재가 시작되자 회사 측의 불법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금산군은 “사측이 국유재산을 무단으로 점거한 행위에 대해 행정처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있던 문제를 이제 와 해결하겠다는 말을 믿고 기다리는 주민은 많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건 간단합니다. 마을 길 통행권과 국유지의 원상 회복입니다. 충남 금산 주민들은 이 당연한 권리를 싸우고 항의해야 얻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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