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中 코끼리와 성 소수자…극명한 대비가 보여주는 것은?

입력 2021.07.11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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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관영매체 CCTV를 틀면 거의 매일 빠짐없이 나오는 뉴스가 있습니다. 바로 코끼리떼 이동 소식입니다.

코끼리들은 지난해 3월 윈난성 시슈앙반나 지역에서 계속 북쪽을 향해 올라오는 중인데요.

중국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다른 곳에 자리를 잡으려고 무리가 이동을 하는 것이죠.

중국 윈난성을 이동 중인 코끼리 무리 (출처: 중국CCTV)중국 윈난성을 이동 중인 코끼리 무리 (출처: 중국CCTV)

그런데 중국 CCTV는 지난해 이동을 시작한 코끼리들의 하루하루를 지난 4월부터는 다큐멘터리 수준으로 보도하기 시작합니다.

'서식지가 망가져서 이동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가뭄으로 먹이가 없어서 이사하는 것이다.' 등 여러가지 분석도 이어졌습니다.

코끼리떼가 이동 중에 마을에서 곡식을 먹는 모습 (출처: 중국CCTV)코끼리떼가 이동 중에 마을에서 곡식을 먹는 모습 (출처: 중국CCTV)

6월 3일에는 코끼리 무리가 마을에 진입해서 마을의 곡식 창고를 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어떻게 창고에 들어와서 얼마나 먹어치웠는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코끼리떼가 누워서 낮잠을 자는 모습을 항공 촬영 보도 (출처: 중국CCTV)코끼리떼가 누워서 낮잠을 자는 모습을 항공 촬영 보도 (출처: 중국CCTV)

6월 8일에는 코끼리 무리가 누워서 자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모두 함께 누워 자는 건 새끼 코끼리를 보호하려는 것이라는 전문가의 말까지 인용했습니다.

윈난성 산림소방대는 코끼리 무리를 관찰하는 모니터링팀도 꾸렸습니다.

이동 중인 코끼리들을 열화상 드론 촬영한 모습 (출처: 중국CCTV)이동 중인 코끼리들을 열화상 드론 촬영한 모습 (출처: 중국CCTV)

드론을 띄우는 건 물론이고 야간에는 열화상 촬영도 하고 있습니다.

중국CCTV를 비롯해 펑파이 등 중국 매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코끼리들이 또 어디로 가서 무엇을 했는지 세세하게 알리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중국CCTV가 기자를 생방송으로 연결해 코끼리 관련 뉴스를 전하고 있다. (출처: 중국CCTV)지난 7일, 중국CCTV가 기자를 생방송으로 연결해 코끼리 관련 뉴스를 전하고 있다. (출처: 중국CCTV)

코끼리들의 대이동 모습이 흔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4월부터 무려 2,000여 건이 넘게 보도를 한다는 것 또한 흔치 않은 일입니다.

■코끼리는 매일 보도…성 수소자 뉴스는?

코끼리가 윈난성 유시시까지 이동해서 연못에서 목욕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7월 6일, 중국의 가장 인기 있는 소셜미디어 (SNS) 위챗에서는 갑자기 십여 개의 계정이 폐쇄됐습니다.


모두 대학생들과 비정부 단체들이 운영하는 성 소수자(LGBT) 관련 계정들입니다. 파악된 것만 14개입니다.

그동안 다양성과 양성 평등에 대해 알리고 미투 운동을 공개적으로 펼치는 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단체들입니다.

계정을 검색하자 "검색된 계정의 상태가 이상해서 표시할 수 없습니다."라거나 "계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왔는데요.

위챗 측은 계정 소유자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규정을 위반했다고만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관련 뉴스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계정이 사라졌다.'라든지 '중국 당국이 조치를 내렸다.'라는 등의 어떤 내용도 기사화되지 않은 겁니다.

보도를 한건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유일합니다.

그저 7월 6일 밤 중국 대학 내 성 소수자 모임 글들이 대대적으로 삭제됐고 위챗 계정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는 사실만 관련된 사람들에 의해 확인될 뿐입니다.

위챗을 운영하고 있는 텐센트 측은 이에 대한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성 소수자에 대해 '뜬금없는' 논평…왜?

중국 관영매체 후시진 편집장중국 관영매체 후시진 편집장

위챗에서 성 소수자 관련 계정들이 여럿 폐쇄된 다음 날,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은 논평을 하나 올립니다.

환구시보는 중국에 중요 사건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매체입니다.


계정 폐쇄 소식을 뉴스로 접하지 못한 대부분 중국인에게는 뜬금없는 논평입니다.

후 편집장은 "보수성은 필연적이고 합리성도 있다."라며 계정 폐쇄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뒤 "성 소수자들이 현 단계 중국에서 일종의 과시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적었습니다.

이 말은 성 소수자들이 현재 중국에서 과시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가 말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그런 생각과 행동을 뒤쫓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꾸짖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계정들이 폐쇄됐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직도 교재에는 '동성애 정신 장애'…"이번 일은 '표현의 자유' 억압"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에 따르면 중국의 성 소수자는 7,000만 명 정도입니다. 중국 인구의 5% 정도입니다.

1997년 풍기 문란 관련 범죄를 구체화시키면서 동성애는 제외됐지만, 중국에는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성전환자(LGBT)와 그 밖의 모든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한 대학 심리학 교재에는 지금도 '동성애는 정신적 장애'라는 표현이 들어있습니다.

차별을 시정하라고 소송을 냈던 20대 여성은 1, 2심 소송에서 모두 졌습니다.

중국의 성 소수자 행사 ‘상하이 프라이드’의 홈페이지중국의 성 소수자 행사 ‘상하이 프라이드’의 홈페이지

11년 동안 진행되어 온 중국의 대표적인 성 소수자 행사 '상하이 프라이드'는 지난해부터 전면 취소됐습니다.

앞으로 열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미국은 이번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국의) 성 소수자 학생 단체나 관련 비정부기구(NGO) 소셜미디어 계정 제한이 우려된다.……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네트워크 통제를 반대한다. 그런 일이 벌어진 곳이 중국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


한 마디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이번 계정 폐쇄가 중국 당국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은 결국 이들 계정이 유명 대학과 관련 있다는 점, 또 이들이 모여서 생각을 나누고 있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입니다.

쉽게 풀이해보자면 '배울 만큼 배운 젊은이들이 남과는 다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침묵시킨 겁니다.

같은 날 코끼리 무리가 몇 킬로미터를 이동했는지 널리 알려지는 동안 어떤 이들은 표현 공간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곳, 바로 오늘의 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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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中 코끼리와 성 소수자…극명한 대비가 보여주는 것은?
    • 입력 2021-07-11 07:04:16
    특파원 리포트

중국의 관영매체 CCTV를 틀면 거의 매일 빠짐없이 나오는 뉴스가 있습니다. 바로 코끼리떼 이동 소식입니다.

코끼리들은 지난해 3월 윈난성 시슈앙반나 지역에서 계속 북쪽을 향해 올라오는 중인데요.

중국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다른 곳에 자리를 잡으려고 무리가 이동을 하는 것이죠.

중국 윈난성을 이동 중인 코끼리 무리 (출처: 중국CCTV)
그런데 중국 CCTV는 지난해 이동을 시작한 코끼리들의 하루하루를 지난 4월부터는 다큐멘터리 수준으로 보도하기 시작합니다.

'서식지가 망가져서 이동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가뭄으로 먹이가 없어서 이사하는 것이다.' 등 여러가지 분석도 이어졌습니다.

코끼리떼가 이동 중에 마을에서 곡식을 먹는 모습 (출처: 중국CCTV)
6월 3일에는 코끼리 무리가 마을에 진입해서 마을의 곡식 창고를 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어떻게 창고에 들어와서 얼마나 먹어치웠는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코끼리떼가 누워서 낮잠을 자는 모습을 항공 촬영 보도 (출처: 중국CCTV)
6월 8일에는 코끼리 무리가 누워서 자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모두 함께 누워 자는 건 새끼 코끼리를 보호하려는 것이라는 전문가의 말까지 인용했습니다.

윈난성 산림소방대는 코끼리 무리를 관찰하는 모니터링팀도 꾸렸습니다.

이동 중인 코끼리들을 열화상 드론 촬영한 모습 (출처: 중국CCTV)
드론을 띄우는 건 물론이고 야간에는 열화상 촬영도 하고 있습니다.

중국CCTV를 비롯해 펑파이 등 중국 매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코끼리들이 또 어디로 가서 무엇을 했는지 세세하게 알리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중국CCTV가 기자를 생방송으로 연결해 코끼리 관련 뉴스를 전하고 있다. (출처: 중국CCTV)
코끼리들의 대이동 모습이 흔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4월부터 무려 2,000여 건이 넘게 보도를 한다는 것 또한 흔치 않은 일입니다.

■코끼리는 매일 보도…성 수소자 뉴스는?

코끼리가 윈난성 유시시까지 이동해서 연못에서 목욕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7월 6일, 중국의 가장 인기 있는 소셜미디어 (SNS) 위챗에서는 갑자기 십여 개의 계정이 폐쇄됐습니다.


모두 대학생들과 비정부 단체들이 운영하는 성 소수자(LGBT) 관련 계정들입니다. 파악된 것만 14개입니다.

그동안 다양성과 양성 평등에 대해 알리고 미투 운동을 공개적으로 펼치는 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단체들입니다.

계정을 검색하자 "검색된 계정의 상태가 이상해서 표시할 수 없습니다."라거나 "계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왔는데요.

위챗 측은 계정 소유자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규정을 위반했다고만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관련 뉴스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계정이 사라졌다.'라든지 '중국 당국이 조치를 내렸다.'라는 등의 어떤 내용도 기사화되지 않은 겁니다.

보도를 한건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유일합니다.

그저 7월 6일 밤 중국 대학 내 성 소수자 모임 글들이 대대적으로 삭제됐고 위챗 계정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는 사실만 관련된 사람들에 의해 확인될 뿐입니다.

위챗을 운영하고 있는 텐센트 측은 이에 대한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성 소수자에 대해 '뜬금없는' 논평…왜?

중국 관영매체 후시진 편집장
위챗에서 성 소수자 관련 계정들이 여럿 폐쇄된 다음 날,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은 논평을 하나 올립니다.

환구시보는 중국에 중요 사건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매체입니다.


계정 폐쇄 소식을 뉴스로 접하지 못한 대부분 중국인에게는 뜬금없는 논평입니다.

후 편집장은 "보수성은 필연적이고 합리성도 있다."라며 계정 폐쇄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뒤 "성 소수자들이 현 단계 중국에서 일종의 과시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적었습니다.

이 말은 성 소수자들이 현재 중국에서 과시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가 말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그런 생각과 행동을 뒤쫓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꾸짖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계정들이 폐쇄됐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직도 교재에는 '동성애 정신 장애'…"이번 일은 '표현의 자유' 억압"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에 따르면 중국의 성 소수자는 7,000만 명 정도입니다. 중국 인구의 5% 정도입니다.

1997년 풍기 문란 관련 범죄를 구체화시키면서 동성애는 제외됐지만, 중국에는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성전환자(LGBT)와 그 밖의 모든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한 대학 심리학 교재에는 지금도 '동성애는 정신적 장애'라는 표현이 들어있습니다.

차별을 시정하라고 소송을 냈던 20대 여성은 1, 2심 소송에서 모두 졌습니다.

중국의 성 소수자 행사 ‘상하이 프라이드’의 홈페이지
11년 동안 진행되어 온 중국의 대표적인 성 소수자 행사 '상하이 프라이드'는 지난해부터 전면 취소됐습니다.

앞으로 열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미국은 이번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국의) 성 소수자 학생 단체나 관련 비정부기구(NGO) 소셜미디어 계정 제한이 우려된다.……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네트워크 통제를 반대한다. 그런 일이 벌어진 곳이 중국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


한 마디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이번 계정 폐쇄가 중국 당국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은 결국 이들 계정이 유명 대학과 관련 있다는 점, 또 이들이 모여서 생각을 나누고 있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입니다.

쉽게 풀이해보자면 '배울 만큼 배운 젊은이들이 남과는 다른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침묵시킨 겁니다.

같은 날 코끼리 무리가 몇 킬로미터를 이동했는지 널리 알려지는 동안 어떤 이들은 표현 공간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곳, 바로 오늘의 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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