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한 곰’이 인간에 던진 숙제…보호시설 생기면 나아질까?

입력 2021.07.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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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사육장 탈출한 반달가슴곰…9년 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자체·환경 당국, ‘사살’ 비판 여론 일자 가능한 한 ‘생포’하기로…수색은 중단
해당 곰 사육 농가, 용인·여주 등 농장 2곳에서 곰 101마리 사육 중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새끼 35마리 불법 번식… 고발·과태료 처분만 10여 건
2024년 전남 구례에 곰 보호시설 생겨도 몰수·매입 등의 후속 조치 뒤따라야

곰이 탈출한 우리 옆에는 칸마다 2마리에서 4마리의 곰이 사육되고 있다.곰이 탈출한 우리 옆에는 칸마다 2마리에서 4마리의 곰이 사육되고 있다.

지난 6일 오전 10시 30분쯤 경기도 용인의 곰 사육농장에서 곰 두 마리가 탈출했다는 신고가 소방과 지자체, 환경 당국에 접수됐습니다. 한 마리는 수색 2시간여 만인 낮 12시 40분쯤 탈출한 농가로부터 400미터 가량 떨어진 야산에서 사살됐지만 다른 한 마리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2012년에 같은 농가에서 두 차례나 곰이 탈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두 사살됐지만 그 과정에서 한 마리는 등산객을 공격해 사람이 다치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9년이 지났고 ‘곰 탈출’이라는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지요.

탈출한 곰이 언제 잡힐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곳 용인과 여주 등 두 곳의 농장에 곰 100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농장주가 착각해 탈출한 곰이 두 마리가 아닌 한 마리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농장주는 없어진 곰이 두 마리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 “사살이 능사 아니다” 반발에 가능한 한 ‘생포’로 선회

사살된 곰은 체중 약 60kg의 3년생 정도로 추정된다.사살된 곰은 체중 약 60kg의 3년생 정도로 추정된다.

당일 수색작업에서 발견돼 사살된 곰은 수컷으로 체중이 약 60kg의 3년생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3년 정도면 새끼는 아니고 성체인데 자연 상태에서 같은 연령의 곰이라면 이보다 더 컸을 것입니다. 사육장에 살면서 개사료를 먹어서 그런지 막상 잡아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체구가 작았다고 수색작업에 나섰던 관계자가 취재진에게 전했습니다.

‘곰 탈출’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살’에 대한 비판과 안타까움이 나왔습니다. 동물자유연대 등 동물보호단체는 “사살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생명의 존엄성은 동물 역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곰이 탈출할 때마다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살’로 해결하는 방식에 제동을 건 것이지요.

용인시와 환경 당국은 논의 끝에 지난 8일 사살을 위한 수색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농장으로부터 반경 2km 주변에 곰을 유인하는 장치들을 놓고 열화상카메라를 설치해 곰을 해치지 않고 포획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곰에 대한 주의사항과 함께 곰을 목격했을 경우 적극적으로 신고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곰이 다시 나타나 포획 작업을 할 경우에도 나름의 원칙을 정했습니다. 민가에 내려와 사람을 공격하거나 위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사살하지 않고 가능한 한 생포한다는 방침입니다.

■ ‘탈출을 감행해야만’ 드러나는 곰 사육의 실태

앞선 글에서도 나왔지만 사살된 곰은 3년생가량으로 추정됩니다. 정부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웅담채취용 사육곰에 대해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그렇다면 2016년 이후에 새로 태어나는 곰은 없어야 합니다. 사살된 곰의 발육이 부실해 1,2년을 더한다 쳐도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농장에서 불법 번식된 곰으로 추정되는 대목입니다.

환경부에 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농장,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곰 35마리를 불법으로 증식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웅담 채취나 전시용의 목적이 아닌 식육 등의 이유로 동물보호단체 등에 고발돼 수차례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환경부로부터 시설개선 명령을 받고도 이행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 조치된 것까지 합하면 불법·지적사항은 10건을 훨씬 넘는다는 게 환경부 담당자의 말입니다.

해당 농장에서 사육 중인 곰. 체구를 볼 때 어린 개체로 추정된다.해당 농장에서 사육 중인 곰. 체구를 볼 때 어린 개체로 추정된다.

취재진이 농장을 찾은 당일은 낮 기온이 30도에 이르는 더운 날씨였습니다. 철창으로 둘러싸인 컨테이너마다 적게는 두 마리에서 네 마리의 곰이 안에 있었습니다. 한껏 열기를 머금어 뜨거워진 사육장이 이들에게 좋을 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러한 곰 가운데 일부는 우리 안을 반복해서 왔다갔다하는 정형행동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좁은 우리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이상행동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 2024년 곰 보호시설이 생기면 달라질까? …‘매입 예산’·‘사유재산’ 과제 남아

1980년대 초 농가 소득을 늘리겠다며 곰 사육이 한창 권장됐다가 5년도 되지 않아 수입 수출이 모두 금지됐습니다. 농가에서는 이미 사놓고 돈이 안 되는 곰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인 겁니다.

환경부도 이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기간 예산을 확보하고 공모사업을 거쳐 전남 구례에 2024년까지 자연상태의 야생 방사장과 의료시설 등을 갖춘 보호시설을 조성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2만여 제곱미터에 이르는 부지에 반달가슴곰 보호시설이 만들어지면 환경부는 농가와 협의해 사육곰을 단계적으로 보호시설로 옮겨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해결이 될까요?

사육농가로부터 곰을 매입하는 비용이 남아있습니다. 관련 예산도 확보해야 하고 동시에 농가와 가격 협상에서 서로 맞지 않을 수도 있어 2024년 이후에 사육장의 곰이 보호시설로 옮겨진다는 보장은 아직 없습니다.

현행법상 동물은 ‘물건’ 즉, 재산에 해당합니다. 보호시설로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곰 사육과 관련해 불법 사항이 적발된 농가의 곰에 대해서 ‘몰수 보전’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이 역시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법조계와 환경부의 설명입니다.


농장을 탈출한 곰, 그리고 사육장에 남아 있는 곰들은 조용하지만 그들의 생명을 내건 질문을 인간에게 던졌습니다.

사육곰이 탈출하면 사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사육곰의 환경과 동물의 존엄에 대해서 이제 우리가 그 대답을 할 차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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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출한 곰’이 인간에 던진 숙제…보호시설 생기면 나아질까?
    • 입력 2021-07-11 09:00:37
    취재K
<strong>사육장 탈출한 반달가슴곰…9년 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br />지자체·환경 당국, ‘사살’ 비판 여론 일자 가능한 한 ‘생포’하기로…수색은 중단<br />해당 곰 사육 농가, 용인·여주 등 농장 2곳에서 곰 101마리 사육 중<br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새끼 35마리 불법 번식… 고발·과태료 처분만 10여 건<br /></strong><strong>2024년 전남 구례에 곰 보호시설 생겨도 </strong><strong>몰수·매입 등의 후속 조치 뒤따라야</strong>
곰이 탈출한 우리 옆에는 칸마다 2마리에서 4마리의 곰이 사육되고 있다.
지난 6일 오전 10시 30분쯤 경기도 용인의 곰 사육농장에서 곰 두 마리가 탈출했다는 신고가 소방과 지자체, 환경 당국에 접수됐습니다. 한 마리는 수색 2시간여 만인 낮 12시 40분쯤 탈출한 농가로부터 400미터 가량 떨어진 야산에서 사살됐지만 다른 한 마리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2012년에 같은 농가에서 두 차례나 곰이 탈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두 사살됐지만 그 과정에서 한 마리는 등산객을 공격해 사람이 다치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9년이 지났고 ‘곰 탈출’이라는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지요.

탈출한 곰이 언제 잡힐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곳 용인과 여주 등 두 곳의 농장에 곰 100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농장주가 착각해 탈출한 곰이 두 마리가 아닌 한 마리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농장주는 없어진 곰이 두 마리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 “사살이 능사 아니다” 반발에 가능한 한 ‘생포’로 선회

사살된 곰은 체중 약 60kg의 3년생 정도로 추정된다.
당일 수색작업에서 발견돼 사살된 곰은 수컷으로 체중이 약 60kg의 3년생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3년 정도면 새끼는 아니고 성체인데 자연 상태에서 같은 연령의 곰이라면 이보다 더 컸을 것입니다. 사육장에 살면서 개사료를 먹어서 그런지 막상 잡아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체구가 작았다고 수색작업에 나섰던 관계자가 취재진에게 전했습니다.

‘곰 탈출’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살’에 대한 비판과 안타까움이 나왔습니다. 동물자유연대 등 동물보호단체는 “사살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생명의 존엄성은 동물 역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곰이 탈출할 때마다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살’로 해결하는 방식에 제동을 건 것이지요.

용인시와 환경 당국은 논의 끝에 지난 8일 사살을 위한 수색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농장으로부터 반경 2km 주변에 곰을 유인하는 장치들을 놓고 열화상카메라를 설치해 곰을 해치지 않고 포획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곰에 대한 주의사항과 함께 곰을 목격했을 경우 적극적으로 신고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곰이 다시 나타나 포획 작업을 할 경우에도 나름의 원칙을 정했습니다. 민가에 내려와 사람을 공격하거나 위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사살하지 않고 가능한 한 생포한다는 방침입니다.

■ ‘탈출을 감행해야만’ 드러나는 곰 사육의 실태

앞선 글에서도 나왔지만 사살된 곰은 3년생가량으로 추정됩니다. 정부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웅담채취용 사육곰에 대해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그렇다면 2016년 이후에 새로 태어나는 곰은 없어야 합니다. 사살된 곰의 발육이 부실해 1,2년을 더한다 쳐도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농장에서 불법 번식된 곰으로 추정되는 대목입니다.

환경부에 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농장,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곰 35마리를 불법으로 증식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웅담 채취나 전시용의 목적이 아닌 식육 등의 이유로 동물보호단체 등에 고발돼 수차례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환경부로부터 시설개선 명령을 받고도 이행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 조치된 것까지 합하면 불법·지적사항은 10건을 훨씬 넘는다는 게 환경부 담당자의 말입니다.

해당 농장에서 사육 중인 곰. 체구를 볼 때 어린 개체로 추정된다.
취재진이 농장을 찾은 당일은 낮 기온이 30도에 이르는 더운 날씨였습니다. 철창으로 둘러싸인 컨테이너마다 적게는 두 마리에서 네 마리의 곰이 안에 있었습니다. 한껏 열기를 머금어 뜨거워진 사육장이 이들에게 좋을 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러한 곰 가운데 일부는 우리 안을 반복해서 왔다갔다하는 정형행동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좁은 우리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이상행동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 2024년 곰 보호시설이 생기면 달라질까? …‘매입 예산’·‘사유재산’ 과제 남아

1980년대 초 농가 소득을 늘리겠다며 곰 사육이 한창 권장됐다가 5년도 되지 않아 수입 수출이 모두 금지됐습니다. 농가에서는 이미 사놓고 돈이 안 되는 곰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인 겁니다.

환경부도 이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기간 예산을 확보하고 공모사업을 거쳐 전남 구례에 2024년까지 자연상태의 야생 방사장과 의료시설 등을 갖춘 보호시설을 조성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2만여 제곱미터에 이르는 부지에 반달가슴곰 보호시설이 만들어지면 환경부는 농가와 협의해 사육곰을 단계적으로 보호시설로 옮겨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해결이 될까요?

사육농가로부터 곰을 매입하는 비용이 남아있습니다. 관련 예산도 확보해야 하고 동시에 농가와 가격 협상에서 서로 맞지 않을 수도 있어 2024년 이후에 사육장의 곰이 보호시설로 옮겨진다는 보장은 아직 없습니다.

현행법상 동물은 ‘물건’ 즉, 재산에 해당합니다. 보호시설로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곰 사육과 관련해 불법 사항이 적발된 농가의 곰에 대해서 ‘몰수 보전’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이 역시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법조계와 환경부의 설명입니다.


농장을 탈출한 곰, 그리고 사육장에 남아 있는 곰들은 조용하지만 그들의 생명을 내건 질문을 인간에게 던졌습니다.

사육곰이 탈출하면 사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사육곰의 환경과 동물의 존엄에 대해서 이제 우리가 그 대답을 할 차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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