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삶의 전부”…죽음 앞에 담담했던 전 대법관 자연으로 돌아가다

입력 2021.07.13 (07:01) 수정 2021.07.1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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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훈(1946~2021)이홍훈(1946~2021)


"내 하루는 나머지 삶의 전부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루를 못 넘기고 그날을 못 넘기면 죽는 거거든요. 오늘도 살아있구나.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지,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출발하고 이렇게 같이 지내니까 좋아요."

이홍훈 전 대법관이 지난 11일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5세. 요즘으로 치면 좀 아쉽다는 소리가 나올 법한 연배입니다.

1977년 법관에 임용된 뒤 꾸준히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판결을 내놓아 '사법부 내 재야'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대법관을 지냈습니다. 2006년 당시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관심을 갖고 판결을 해 왔고 이를 통해 대법원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고 대법관이 된 뒤 이 소신을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4월 '4대강 사업 집행정지 신청 사건' 기각 때였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신청을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지만 주심이던 그는 국책 사업도 적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내 화제를 불러왔습니다.

"(제 생각을) 역사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후대에 4대강 사업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데 그때 대법원은 무엇을 했느냐고 할 때 대법원이 이렇게 고민하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정성을 들이고 열심히 기록 검토도 했지요."
-SBS 뉴스 [그사람] 낡은 차 타고 귀향한 대법관…'어른'이었다(2020.08.22.)

이홍훈 대법관 퇴임식(2011.05.31.)이홍훈 대법관 퇴임식(2011.05.31.)

그는 2011년 대법관을 마지막으로 법복을 벗었습니다. 퇴임사 마지막 줄에 '대법관'이 아닌 '법관 이홍훈'이라고 쓰고서 낡은 승용차를 타고 고향인 전북 고창으로 향했습니다. 이후 10년간 자신이 태어난 집 앞 고향 땅을 일구어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그 사이 그의 몸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7년 담도암에 걸려 담도를 제거했습니다. 암은 간으로 전이돼 간도 잘라냈습니다. 수술하면 80%는 2년 이상 연명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그는 담담했습니다.



고인은 하루가 삶의 전부라고 여기고 날마다 정원 일을 하며 면역 요법을 병행했습니다. 정원을 가꾸며 치유의 힘을 얻었다면서 4년 가까이 암과 동행했습니다.

고인이 세상에 머무르던 마지막 1년여를 KBS가 다큐멘터리로 찍었습니다. 법관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소신 있는 판결을 한 그는 인간으로서 두려움에 떨지 않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오늘(13일) 자신이 가꾼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고향 선영에서 영면했습니다.

※프로그램 바로가기 다큐 인사이트 ‘아버지의 정원’(2021.05.06 방영)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P47lK_a9K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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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가 삶의 전부”…죽음 앞에 담담했던 전 대법관 자연으로 돌아가다
    • 입력 2021-07-13 07:01:09
    • 수정2021-07-13 08:25:57
    취재K
이홍훈(1946~2021)

"내 하루는 나머지 삶의 전부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루를 못 넘기고 그날을 못 넘기면 죽는 거거든요. 오늘도 살아있구나.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지,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출발하고 이렇게 같이 지내니까 좋아요."

이홍훈 전 대법관이 지난 11일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5세. 요즘으로 치면 좀 아쉽다는 소리가 나올 법한 연배입니다.

1977년 법관에 임용된 뒤 꾸준히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판결을 내놓아 '사법부 내 재야'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대법관을 지냈습니다. 2006년 당시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관심을 갖고 판결을 해 왔고 이를 통해 대법원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고 대법관이 된 뒤 이 소신을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4월 '4대강 사업 집행정지 신청 사건' 기각 때였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신청을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지만 주심이던 그는 국책 사업도 적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내 화제를 불러왔습니다.

"(제 생각을) 역사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후대에 4대강 사업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데 그때 대법원은 무엇을 했느냐고 할 때 대법원이 이렇게 고민하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정성을 들이고 열심히 기록 검토도 했지요."
-SBS 뉴스 [그사람] 낡은 차 타고 귀향한 대법관…'어른'이었다(2020.08.22.)

이홍훈 대법관 퇴임식(2011.05.31.)
그는 2011년 대법관을 마지막으로 법복을 벗었습니다. 퇴임사 마지막 줄에 '대법관'이 아닌 '법관 이홍훈'이라고 쓰고서 낡은 승용차를 타고 고향인 전북 고창으로 향했습니다. 이후 10년간 자신이 태어난 집 앞 고향 땅을 일구어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그 사이 그의 몸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7년 담도암에 걸려 담도를 제거했습니다. 암은 간으로 전이돼 간도 잘라냈습니다. 수술하면 80%는 2년 이상 연명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그는 담담했습니다.



고인은 하루가 삶의 전부라고 여기고 날마다 정원 일을 하며 면역 요법을 병행했습니다. 정원을 가꾸며 치유의 힘을 얻었다면서 4년 가까이 암과 동행했습니다.

고인이 세상에 머무르던 마지막 1년여를 KBS가 다큐멘터리로 찍었습니다. 법관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소신 있는 판결을 한 그는 인간으로서 두려움에 떨지 않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오늘(13일) 자신이 가꾼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고향 선영에서 영면했습니다.

※프로그램 바로가기 다큐 인사이트 ‘아버지의 정원’(2021.05.06 방영)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P47lK_a9K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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