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그물에 꽁꽁 묶여 다리도 잘리고…바다거북의 수난

입력 2021.07.13 (10:18) 수정 2021.07.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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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동물들이 버려진 바다 그물에 걸려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지중해에서 큰 향유고래가 그물에 휘감긴 채 발견돼 구조되기도 하는 등, 폐그물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환경 문제이기도 한데요.

제주에서도 최근 보호종 바다거북이 폐그물에 뒤엉켰다가 구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푸른바다거북 구출기'

지난달 말, 제주시 구좌읍 월정해수욕장. 세화리 주민 이서연 씨는 같은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동료 교사들과 바닷가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썰물로 물이 빠진 해변 한쪽에서 커피를 마시던 이 씨 일행은 어딘가에서 '파닥파닥'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들의 눈에 들어온 건, 쓰레기와 뒤엉킨 커다란 폐그물 뭉치였습니다.

이서연 씨 일행이 폐그물에 칭칭 감겨 움직이지 못하는 바다거북을 구출하고 있다.이서연 씨 일행이 폐그물에 칭칭 감겨 움직이지 못하는 바다거북을 구출하고 있다.

'물고기가 잡혔나?' 하는 생각에 소리가 나는 그물을 들춰보니, 그 안에는 그물에 꽁꽁 걸려 옴짝달싹 못 하는 보호종 '푸른바다거북'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바닷물이 모두 빠진 너럭바위 해변 한가운데에서 결박된 채 누워있는 바다거북은 한눈에 봐도 축 늘어져,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해경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어요. 그냥 빨리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생명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어린이집 선생님들. 때마침 이 씨가 자신의 차 트렁크에 '가위'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매년 봄철, 고사리를 꺾으러 다닐 때 쓰는 가위였습니다.

폐그물이 바다거북 몸에 딱 붙어 감겨 있는 탓에, 거북의 몸에 상처를 내지 않으려면 세심한 가위질이 필요했습니다. '어부의 딸'로 자랐던 동료 교사가 바다거북을 세심하게 만지며, 그물을 조금씩 끊어내기 시작했습니다.

3명이 함께 합심해 그물 제거 작전을 펼치기를 수 시간 째. 마침내 바다거북의 몸체를 꽁꽁 묶고 있던 그물 뭉치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서연 씨 일행이 폐그물에 칭칭 감겨 움직이지 못하는 바다거북을 구출하고 있다.이서연 씨 일행이 폐그물에 칭칭 감겨 움직이지 못하는 바다거북을 구출하고 있다.

쓰레기에 뒤엉킨 그물을 걷어내자, 바싹 말라 축 늘어진 푸른바다거북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거북이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탈진한 거북이를 위해 이 씨 일행은 부랴부랴 해변에 굴러다니는 빈 생수병을 주워다가, 멀리서 바닷물을 길어왔습니다. 바다거북의 몸에 바닷물을 뿌려주길 스무 번가량. 그제야 바다거북이 목을 쭉 내밀더니, 입을 뻐끔거리며 바닷물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바다거북에게 생기가 조금씩 돌면서 이 씨 일행이 기쁨에 젖은 것도 잠시, 문제는 바다거북을 옮길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거북이를 구출할 때가 마침 썰물 때여서, 물가까지는 울퉁불퉁 걷기 어려운 바위 해변을 한참 걸어 내려가야 겨우 접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생명을 내버려 두고 떠나면 또다시 다치고, 혹여 목숨을 잃을까 봐 걱정됐던 이 씨 일행은 바닷물이 다시 차오를 때까지 거북이 곁에서 쪼그려 앉아 4시간을 더 기다렸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찾아오자 커다란 바위 틈새를 메울 정도로 밀물이 들어왔고, 마침내 이들은 거북이를 무사히 바다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거북의 몸을 물가 쪽을 향해 돌려주고 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쏜살같이, 아주 힘 있게 바다로 달려나가더라고요. 그걸 보며 우리 모두 울었어요."

당시 상황을 떠올리던 이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 폐그물에 걸려 '뚝' 잘린 다리…탈진한 붉은바다거북 구조돼

제주 해안에서 같은 이유로 바다거북이 구조된 건 처음이 아닙니다. 최근에도 보호종 붉은바다거북이 폐그물에 걸려 탈진한 채 발견돼, 제주해경에 의해 구조되는 일도 있었는데요.


제주해경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전 10시 25분쯤, 제주시 애월읍 한담해변 인근 해안을 순찰하던 한림파출소 순찰팀이 폐그물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거북을 발견했습니다.

발견 당시 이 거북은 왼쪽 앞다리가 절단된 상태였습니다. 등껍질에도 상처가 났고, 지쳐 움직임도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해경은 바다거북 몸이 마르지 않도록 바닷물을 뿌려주며, 거북의 몸을 칭칭 감고 있던 폐그물을 제거했습니다.

지난 11일 해경이 바다거북의 몸을 옭아매고 있던 폐어구를 끊어내 제거하고 있다. 제주해양경찰서 제공지난 11일 해경이 바다거북의 몸을 옭아매고 있던 폐어구를 끊어내 제거하고 있다. 제주해양경찰서 제공

폐그물에 다리가 절단되는 수난을 겪은 이 거북은 몸길이 70㎝, 너비 65㎝, 무게 30㎏ 정도인 보호 대상 해양생물 '붉은바다거북'이었습니다. 이 거북은 치료를 위해 해양동물 전문 구조·치료기관인 아쿠아플라넷 제주로 이송됐습니다.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대학 교수는 "거북이 가느다란 실로 이뤄진 어구에 감긴 채 헤엄쳐보려고 계속 발을 움직이다가 그물이 점점 꼬이면서 조여져서 결국 앞발이 절단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바다거북 사망 개체들을 보면, 대부분이 버려진 폐어구에 의한 사망이 급증하는 추세"라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올해 제주해경 관내에서 발견된 바다거북은 푸른바다거북 6마리, 붉은바다거북 2마리 등 모두 8마리에 달합니다. 버려지거나 유실된 폐어구에 걸려 죽거나, 다친 채 발견되는 해양동물 개체도 매년 적지 않은 실정입니다.

해양경찰은 "보호 대상 해양생물이 조업 중 그물에 걸렸거나 보호종 사체를 발견한 경우 해경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발견 후 신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해양 쓰레기'를 만들지 말고, 버리지도 않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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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13 10:18:41
    • 수정2021-07-13 10:25:55
    취재K

해양 동물들이 버려진 바다 그물에 걸려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지중해에서 큰 향유고래가 그물에 휘감긴 채 발견돼 구조되기도 하는 등, 폐그물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환경 문제이기도 한데요.

제주에서도 최근 보호종 바다거북이 폐그물에 뒤엉켰다가 구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푸른바다거북 구출기'

지난달 말, 제주시 구좌읍 월정해수욕장. 세화리 주민 이서연 씨는 같은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동료 교사들과 바닷가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썰물로 물이 빠진 해변 한쪽에서 커피를 마시던 이 씨 일행은 어딘가에서 '파닥파닥'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들의 눈에 들어온 건, 쓰레기와 뒤엉킨 커다란 폐그물 뭉치였습니다.

이서연 씨 일행이 폐그물에 칭칭 감겨 움직이지 못하는 바다거북을 구출하고 있다.
'물고기가 잡혔나?' 하는 생각에 소리가 나는 그물을 들춰보니, 그 안에는 그물에 꽁꽁 걸려 옴짝달싹 못 하는 보호종 '푸른바다거북'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바닷물이 모두 빠진 너럭바위 해변 한가운데에서 결박된 채 누워있는 바다거북은 한눈에 봐도 축 늘어져,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해경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어요. 그냥 빨리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생명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어린이집 선생님들. 때마침 이 씨가 자신의 차 트렁크에 '가위'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매년 봄철, 고사리를 꺾으러 다닐 때 쓰는 가위였습니다.

폐그물이 바다거북 몸에 딱 붙어 감겨 있는 탓에, 거북의 몸에 상처를 내지 않으려면 세심한 가위질이 필요했습니다. '어부의 딸'로 자랐던 동료 교사가 바다거북을 세심하게 만지며, 그물을 조금씩 끊어내기 시작했습니다.

3명이 함께 합심해 그물 제거 작전을 펼치기를 수 시간 째. 마침내 바다거북의 몸체를 꽁꽁 묶고 있던 그물 뭉치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서연 씨 일행이 폐그물에 칭칭 감겨 움직이지 못하는 바다거북을 구출하고 있다.
쓰레기에 뒤엉킨 그물을 걷어내자, 바싹 말라 축 늘어진 푸른바다거북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거북이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탈진한 거북이를 위해 이 씨 일행은 부랴부랴 해변에 굴러다니는 빈 생수병을 주워다가, 멀리서 바닷물을 길어왔습니다. 바다거북의 몸에 바닷물을 뿌려주길 스무 번가량. 그제야 바다거북이 목을 쭉 내밀더니, 입을 뻐끔거리며 바닷물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바다거북에게 생기가 조금씩 돌면서 이 씨 일행이 기쁨에 젖은 것도 잠시, 문제는 바다거북을 옮길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거북이를 구출할 때가 마침 썰물 때여서, 물가까지는 울퉁불퉁 걷기 어려운 바위 해변을 한참 걸어 내려가야 겨우 접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생명을 내버려 두고 떠나면 또다시 다치고, 혹여 목숨을 잃을까 봐 걱정됐던 이 씨 일행은 바닷물이 다시 차오를 때까지 거북이 곁에서 쪼그려 앉아 4시간을 더 기다렸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찾아오자 커다란 바위 틈새를 메울 정도로 밀물이 들어왔고, 마침내 이들은 거북이를 무사히 바다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거북의 몸을 물가 쪽을 향해 돌려주고 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쏜살같이, 아주 힘 있게 바다로 달려나가더라고요. 그걸 보며 우리 모두 울었어요."

당시 상황을 떠올리던 이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 폐그물에 걸려 '뚝' 잘린 다리…탈진한 붉은바다거북 구조돼

제주 해안에서 같은 이유로 바다거북이 구조된 건 처음이 아닙니다. 최근에도 보호종 붉은바다거북이 폐그물에 걸려 탈진한 채 발견돼, 제주해경에 의해 구조되는 일도 있었는데요.


제주해경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전 10시 25분쯤, 제주시 애월읍 한담해변 인근 해안을 순찰하던 한림파출소 순찰팀이 폐그물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거북을 발견했습니다.

발견 당시 이 거북은 왼쪽 앞다리가 절단된 상태였습니다. 등껍질에도 상처가 났고, 지쳐 움직임도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해경은 바다거북 몸이 마르지 않도록 바닷물을 뿌려주며, 거북의 몸을 칭칭 감고 있던 폐그물을 제거했습니다.

지난 11일 해경이 바다거북의 몸을 옭아매고 있던 폐어구를 끊어내 제거하고 있다. 제주해양경찰서 제공
폐그물에 다리가 절단되는 수난을 겪은 이 거북은 몸길이 70㎝, 너비 65㎝, 무게 30㎏ 정도인 보호 대상 해양생물 '붉은바다거북'이었습니다. 이 거북은 치료를 위해 해양동물 전문 구조·치료기관인 아쿠아플라넷 제주로 이송됐습니다.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대학 교수는 "거북이 가느다란 실로 이뤄진 어구에 감긴 채 헤엄쳐보려고 계속 발을 움직이다가 그물이 점점 꼬이면서 조여져서 결국 앞발이 절단된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바다거북 사망 개체들을 보면, 대부분이 버려진 폐어구에 의한 사망이 급증하는 추세"라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올해 제주해경 관내에서 발견된 바다거북은 푸른바다거북 6마리, 붉은바다거북 2마리 등 모두 8마리에 달합니다. 버려지거나 유실된 폐어구에 걸려 죽거나, 다친 채 발견되는 해양동물 개체도 매년 적지 않은 실정입니다.

해양경찰은 "보호 대상 해양생물이 조업 중 그물에 걸렸거나 보호종 사체를 발견한 경우 해경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발견 후 신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해양 쓰레기'를 만들지 말고, 버리지도 않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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