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쉬고 있는 모습.
폭염 경보가 내려진 지난 14일 정오. 경기도의 한 공사현장에 건설 노동자들이 누워서 쉬고 있는 모습입니다. 합판을 깔고 눕거나 각목 더미 위에서 눈을 붙입니다. 마땅히 쉴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건설사는 휴게시설로 컨테이너 한 개와 그늘막을 설치했지만, 식사 공간까지 겸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심 식사를 일찍 마친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 이곳에서 지친 몸을 누인다고 합니다.
인근 아파트 건설 현장들도 휴게 시설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는 곳곳에 그늘막이 설치됐지만,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후 3시부터 30분간의 새참 시간이 주어졌지만, 의자가 없다 보니 노동자들은 건축 자재에 쪼그려 앉아 간식을 먹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늘막은 있는데 의자가 없는 아파트 건설현장의 휴게 공간
또 다른 아파트 공사 현장은 에어컨이 있는 휴게실까지 가려면 5분이나 걸어야 했습니다. 이용자들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임시방편으로 곳곳에 그늘막을 설치했지만, 작업자 규모를 고려하면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한 노동자는 “그늘막은 작업 중 잠깐 담배 한 대 피우는 공간일 뿐”이라며 “전체적으로 백 명 넘는 사람이 일하고 있는데 휴게 공간은 컨테이너 하나밖에 없어 매우 부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마련된 컨테이너 휴게실 내부 모습
■'유명무실' 휴게시설…건설사도 인정하는 느슨한 제도
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79조 |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사업주의 휴게시설 설치 의무가 명시돼 있습니다. 휴게시설은 인체에 해로운 분진이 나오는 장소나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장소와 격리돼야 한다는 기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휴게시설에 대한 기준은 없습니다. 또 이를 준수하지 않았을 때 제재 수단도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입니다. 사실상 사업자의 재량에 맡긴 셈입니다.
이러다 보니 건설업체조차 공간이 부족해 휴게시설을 설치하는 게 여의치 않다면서도, 제도 자체가 느슨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휴게시설 설치에 대한 내용은 있지만, 구체적인 시설 기준도 없고 처벌 조항도 없다.”라며 “어떻게 보면 공사 현장의 운영자에게 (휴게시설을 많이 설치하지 않아도 될) 여지를 준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폭염 경보가 내려진 지난 14일, 햇빛에 노출된 채 일하는 노동자들
■온열 질환 재해 48%가 건설 현장에서 발생…법 개정될까?
최근 5년 간(2016~2020년) 온열 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노동자는 156명입니다. 이 가운데 76명이 건설 현장 노동자로 집계됐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박종식 부연구위원은 “폭염으로부터 근로자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이와 함께 한창 더운 시간에 일하지 않도록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사업장의 휴게시설 설치 의무를 현행 규칙이 아닌 법률로 명시하는 방안을 내일(22일) 논의할 예정입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휴게시설의 구체적인 설비 기준을 정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도 부과하도록 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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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장에 합판 깔고 쪽잠…폭염에 방치된 건설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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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7-21 08:00:28
폭염 경보가 내려진 지난 14일 정오. 경기도의 한 공사현장에 건설 노동자들이 누워서 쉬고 있는 모습입니다. 합판을 깔고 눕거나 각목 더미 위에서 눈을 붙입니다. 마땅히 쉴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건설사는 휴게시설로 컨테이너 한 개와 그늘막을 설치했지만, 식사 공간까지 겸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심 식사를 일찍 마친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 이곳에서 지친 몸을 누인다고 합니다.
인근 아파트 건설 현장들도 휴게 시설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는 곳곳에 그늘막이 설치됐지만,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후 3시부터 30분간의 새참 시간이 주어졌지만, 의자가 없다 보니 노동자들은 건축 자재에 쪼그려 앉아 간식을 먹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다른 아파트 공사 현장은 에어컨이 있는 휴게실까지 가려면 5분이나 걸어야 했습니다. 이용자들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임시방편으로 곳곳에 그늘막을 설치했지만, 작업자 규모를 고려하면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한 노동자는 “그늘막은 작업 중 잠깐 담배 한 대 피우는 공간일 뿐”이라며 “전체적으로 백 명 넘는 사람이 일하고 있는데 휴게 공간은 컨테이너 하나밖에 없어 매우 부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명무실' 휴게시설…건설사도 인정하는 느슨한 제도
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79조 |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사업주의 휴게시설 설치 의무가 명시돼 있습니다. 휴게시설은 인체에 해로운 분진이 나오는 장소나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장소와 격리돼야 한다는 기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휴게시설에 대한 기준은 없습니다. 또 이를 준수하지 않았을 때 제재 수단도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입니다. 사실상 사업자의 재량에 맡긴 셈입니다.
이러다 보니 건설업체조차 공간이 부족해 휴게시설을 설치하는 게 여의치 않다면서도, 제도 자체가 느슨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휴게시설 설치에 대한 내용은 있지만, 구체적인 시설 기준도 없고 처벌 조항도 없다.”라며 “어떻게 보면 공사 현장의 운영자에게 (휴게시설을 많이 설치하지 않아도 될) 여지를 준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온열 질환 재해 48%가 건설 현장에서 발생…법 개정될까?
최근 5년 간(2016~2020년) 온열 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노동자는 156명입니다. 이 가운데 76명이 건설 현장 노동자로 집계됐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박종식 부연구위원은 “폭염으로부터 근로자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이와 함께 한창 더운 시간에 일하지 않도록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사업장의 휴게시설 설치 의무를 현행 규칙이 아닌 법률로 명시하는 방안을 내일(22일) 논의할 예정입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휴게시설의 구체적인 설비 기준을 정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도 부과하도록 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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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기자 hono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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