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반도체로 힘 실린 한미 경제협력…재계총수·외교차관 잇단 방미 배경은?

입력 2021.07.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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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 당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리 기업 CEO들을 호명하며 감사를 표하고 있다.지난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 당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리 기업 CEO들을 호명하며 감사를 표하고 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이 있은 지 50여 일 만에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을 비롯, 최태원 SK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각각 미국을 찾아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방미 시점도 비슷하고 목적도 비슷합니다. 한미정상회담 후속 조치 점검차원이 주된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 일까요?

먼저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현지시간 7월 21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포럼에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70년 전 정치적 동맹에서 진화된 새로운 동맹의 탄생을 보여줬다"며 "과학과 기술의 동맹"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에서 삼성, LG, SK, 현대가 회담의 중심에 있었고, 개인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도 했습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주최 제4차 한미 민관 합동 경제포럼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주최 제4차 한미 민관 합동 경제포럼

포럼에서 함께 기조연설을 맡은 마샤 버니캣 미 국무 경제성장·에너지·환경 담당 차관 대행 역시 "전기차 배터리에서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한미 간 경쟁력을 강화하고 견고한 관계를 구축하며 미래의 일자리를 창출할 기회를 본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버니켓 차관 대행이 특히 강조한 것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였습니다.

■ 기업 총수들의 잇단 출격 배경은?

우리 외교부에 앞서 한 발 먼저 미국을 찾아 한미정상회담 후속조치를 점검한 것은 재계 총수들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7월 셋째 주 워싱턴 D.C.와 SK 하이닉스 사업장을 방문했습니다.

미국을 전장으로 치러진 배터리 전쟁을 마무리한 최태원 회장은 이번 방문에서 한미 정상회담 당시 지나 러만도 미 상무부 장관 주최로 이뤄진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발표한 실리콘밸리 10억 달러 투자와 R&D 센터 설립 등에 대해 중간 이행 사항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미국을 찾아 앨라배마주의 기아차 공장을 돌아보고 디트로이트로 향합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를 현지에서 상산하기 위한 설비 확충, 그리고 수소,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을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모두 74억 달러(우리돈 8조 1천여 억원)을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SK와 현대차의 수장이 약속한 듯이 미국을 방문해 미국 상무부 인사들을 만나는 이유는 일단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들이 밝힌 투자 점검 등 사업상의 목적이 1차적입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백악관 명의로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방대한 분량의 공급망 복원력 점검 보고서를 내면서 한국 기업들의 투자 약속을 명시해놓기도 했습니다.

지나 러만도 상무부 장관이 직접 나서 이들에게 투자 상황을 묻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재계 CEO들의 방미는 당분간, 어쩌면 바이든 정부 내내 상당히 잦아질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많습니다.

■ 미국이 손내밀게 만든 '반도체, 배터리'


미국의 숱한 우방국 정상들이 줄을 서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2번째 정상회담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반도체와 배터리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전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자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메모리 칩을 직접 들고 흔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경제가 곧 안보다"라고 말하며 이 정부에서 경제 문제는 곧 안보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실제로 바이든 정부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 중 하나가 '공급망 복원'입니다.

전임자인 트럼프 대통령과 거의 비슷하리 만치 중국에 대해 경계를 높이며 미국 본위의 공급망을 복원시키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고 있는데요. 때문에 미국에선 삼성과 SK, 현대차 등 한국 굴지의 기업들이 한미 정상회담 당시 390억 달러 규모의 거액의 투자 발표를 하자 쌍수를 들고 환영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정상 합동 기자회견 자리에 삼성, 현대차, SK, LG의 최고경영자들을 불러 일일이 거명하며 일어서게 한 뒤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오미연 국장은 "미국도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 성명문은 그간의 한미관계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고 보인다"며 "이제 미국은 동맹국들의 협력이 없으면 무언가를 도모하기 어려워진 것이 현실인 만큼 한국 기업의 필요성이 실재화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 재계 역시 "서울만큼 워싱턴이 중요하다"

미국에게 한국 기업이 필요해진 만큼 한국 기업에게 역시 워싱턴이 중요해졌다고 기업들도 입을 모읍니다.
경제와 정치를 분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은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결정이 이뤄지는 곳을 주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 워싱턴이 세계 정치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면, 이제 경제와 안보가 한몸이 된 현실에서 - 특히 바이든 정부는 대중 견제 등을 목적으로 경제를 안보 프레임워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선 워싱턴 정가의 결정을 주시하게 되고, 결정에 한발 앞서 움직이기 위해선 결정의 주체인 워싱턴이 더 중요해진 겁니다.

■ 정부 주도 협력은 한계…'수출 규제' 경계 속 실무 차원 협의 뒷받침되어야

그런만큼 한국 기업의 CEO들이 앞으로도 계속 자주 올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제대로 투자한 만큼 성과를 내고, 과실을 챙기기 위해선 좀 더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입니다.

미국의 전 무역대표부 TPP 협상 수석 대표였던 바바라 와이셀은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이 국내 정책, 특히 일자리 창출에 집중돼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 뿐만 아니라 동맹국이나 파트너를 위해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 당시 미중 무역 분쟁에서 나타났듯이 수출규제가 이뤄질 경우 해당 품목을 생산하거나 수출하는 업체는 크게 피해를 입는 만큼 바이든 정부의 수출규제가 어떤 형식으로 나타날 지를 가늠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조언입니다.

우리 쪽에선 전반적인 운영의 틀은 정부의 태스크포스를 가져가되, 좀 더 세분화된 산업별로 민간 단위의 실무 워킹그룹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옵니다.

오미연 국장은 "정부의 역할과 기업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눠지기 쉽지 않고, 국가 안보라는 개념이 새로 들어가면서 안보와 상업적 이해관계를 동시에 충족시키 일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오 국장은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와 차별적인 모습을 보이며 일자리 창출을 해야하는 이른바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이 캐치프레이즈"라며 "개별 기업들이 각 주별로 서로 다른 산업 영역에서 실무단위로 조율할 것"을 제언했습니다.

미국이 중국과 반도체 패권 다툼을 벌이면서 한미 경제협력에 여느 때보다도 힘이 실려있습니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우리 정부가 적절한 정책 도구를 지원할 준비가 돼있을 경우에만 이같은 투자가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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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22 14:00:15
    특파원 리포트
지난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 당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리 기업 CEO들을 호명하며 감사를 표하고 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이 있은 지 50여 일 만에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을 비롯, 최태원 SK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각각 미국을 찾아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방미 시점도 비슷하고 목적도 비슷합니다. 한미정상회담 후속 조치 점검차원이 주된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 일까요?

먼저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현지시간 7월 21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포럼에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70년 전 정치적 동맹에서 진화된 새로운 동맹의 탄생을 보여줬다"며 "과학과 기술의 동맹"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에서 삼성, LG, SK, 현대가 회담의 중심에 있었고, 개인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도 했습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주최 제4차 한미 민관 합동 경제포럼
포럼에서 함께 기조연설을 맡은 마샤 버니캣 미 국무 경제성장·에너지·환경 담당 차관 대행 역시 "전기차 배터리에서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한미 간 경쟁력을 강화하고 견고한 관계를 구축하며 미래의 일자리를 창출할 기회를 본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버니켓 차관 대행이 특히 강조한 것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였습니다.

■ 기업 총수들의 잇단 출격 배경은?

우리 외교부에 앞서 한 발 먼저 미국을 찾아 한미정상회담 후속조치를 점검한 것은 재계 총수들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7월 셋째 주 워싱턴 D.C.와 SK 하이닉스 사업장을 방문했습니다.

미국을 전장으로 치러진 배터리 전쟁을 마무리한 최태원 회장은 이번 방문에서 한미 정상회담 당시 지나 러만도 미 상무부 장관 주최로 이뤄진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발표한 실리콘밸리 10억 달러 투자와 R&D 센터 설립 등에 대해 중간 이행 사항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미국을 찾아 앨라배마주의 기아차 공장을 돌아보고 디트로이트로 향합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를 현지에서 상산하기 위한 설비 확충, 그리고 수소,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을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모두 74억 달러(우리돈 8조 1천여 억원)을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SK와 현대차의 수장이 약속한 듯이 미국을 방문해 미국 상무부 인사들을 만나는 이유는 일단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들이 밝힌 투자 점검 등 사업상의 목적이 1차적입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백악관 명의로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방대한 분량의 공급망 복원력 점검 보고서를 내면서 한국 기업들의 투자 약속을 명시해놓기도 했습니다.

지나 러만도 상무부 장관이 직접 나서 이들에게 투자 상황을 묻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재계 CEO들의 방미는 당분간, 어쩌면 바이든 정부 내내 상당히 잦아질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많습니다.

■ 미국이 손내밀게 만든 '반도체, 배터리'


미국의 숱한 우방국 정상들이 줄을 서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2번째 정상회담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반도체와 배터리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전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자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메모리 칩을 직접 들고 흔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경제가 곧 안보다"라고 말하며 이 정부에서 경제 문제는 곧 안보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실제로 바이든 정부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 중 하나가 '공급망 복원'입니다.

전임자인 트럼프 대통령과 거의 비슷하리 만치 중국에 대해 경계를 높이며 미국 본위의 공급망을 복원시키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고 있는데요. 때문에 미국에선 삼성과 SK, 현대차 등 한국 굴지의 기업들이 한미 정상회담 당시 390억 달러 규모의 거액의 투자 발표를 하자 쌍수를 들고 환영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정상 합동 기자회견 자리에 삼성, 현대차, SK, LG의 최고경영자들을 불러 일일이 거명하며 일어서게 한 뒤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오미연 국장은 "미국도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 성명문은 그간의 한미관계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고 보인다"며 "이제 미국은 동맹국들의 협력이 없으면 무언가를 도모하기 어려워진 것이 현실인 만큼 한국 기업의 필요성이 실재화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 재계 역시 "서울만큼 워싱턴이 중요하다"

미국에게 한국 기업이 필요해진 만큼 한국 기업에게 역시 워싱턴이 중요해졌다고 기업들도 입을 모읍니다.
경제와 정치를 분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은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결정이 이뤄지는 곳을 주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 워싱턴이 세계 정치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면, 이제 경제와 안보가 한몸이 된 현실에서 - 특히 바이든 정부는 대중 견제 등을 목적으로 경제를 안보 프레임워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선 워싱턴 정가의 결정을 주시하게 되고, 결정에 한발 앞서 움직이기 위해선 결정의 주체인 워싱턴이 더 중요해진 겁니다.

■ 정부 주도 협력은 한계…'수출 규제' 경계 속 실무 차원 협의 뒷받침되어야

그런만큼 한국 기업의 CEO들이 앞으로도 계속 자주 올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제대로 투자한 만큼 성과를 내고, 과실을 챙기기 위해선 좀 더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입니다.

미국의 전 무역대표부 TPP 협상 수석 대표였던 바바라 와이셀은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이 국내 정책, 특히 일자리 창출에 집중돼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 뿐만 아니라 동맹국이나 파트너를 위해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 당시 미중 무역 분쟁에서 나타났듯이 수출규제가 이뤄질 경우 해당 품목을 생산하거나 수출하는 업체는 크게 피해를 입는 만큼 바이든 정부의 수출규제가 어떤 형식으로 나타날 지를 가늠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조언입니다.

우리 쪽에선 전반적인 운영의 틀은 정부의 태스크포스를 가져가되, 좀 더 세분화된 산업별로 민간 단위의 실무 워킹그룹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옵니다.

오미연 국장은 "정부의 역할과 기업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눠지기 쉽지 않고, 국가 안보라는 개념이 새로 들어가면서 안보와 상업적 이해관계를 동시에 충족시키 일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오 국장은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와 차별적인 모습을 보이며 일자리 창출을 해야하는 이른바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이 캐치프레이즈"라며 "개별 기업들이 각 주별로 서로 다른 산업 영역에서 실무단위로 조율할 것"을 제언했습니다.

미국이 중국과 반도체 패권 다툼을 벌이면서 한미 경제협력에 여느 때보다도 힘이 실려있습니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우리 정부가 적절한 정책 도구를 지원할 준비가 돼있을 경우에만 이같은 투자가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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