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녹취 요구’로 직무배제된 경찰…다른 사건 때도 “녹음 해와라”

입력 2021.07.22 (16:4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보자가 KBS 취재진과 인터뷰 하는 모습.제보자가 KBS 취재진과 인터뷰 하는 모습.

이른바 ‘가짜 수산업자’가 금품을 제공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에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사팀 일원이었던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A 경위가 가짜 수산업자 김 모 씨의 부하직원에게 ‘변호사와의 대화를 녹음해올 것’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었기 때문입니다. 서울경찰청은 A 경위를 수산업자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 수사업무에서 배제하고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A 경위가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지난해 다른 사건 수사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피의자에게 다른 사람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해올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입니다.

A 경위에게 녹음을 요구받았다는 제보자 B 씨를 만나봤습니다.


■ “녹음해 가지고 오라고 했죠? …비빌 언덕이 어디인지 잘 판단해라”

제보자 B 씨는 지난해 11월 경찰(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긴급체포됐습니다. 경찰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던 모 법무법인 사무장의 휴대전화를 B 씨가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증거은닉의 공범 혐의를 고지하며 B 씨를 체포했습니다.

체포된 B 씨는 경찰 조사를 받다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문제의 A 경위가 휴대전화 주인인 법무법인 사무장과의 통화를 녹음해오라고 요구했다는 겁니다.

B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A 경위가 (체포 조사를 마친 뒤) 나가서 법무법인 사무장의 녹취를 해와라. 그러면 너 보내주겠다. 아니면 증거은닉으로 해가지고….”라고 말했다며 “비빌 언덕이 어디인지 잘 판단하라고 수시로 얘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증거은닉 공범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B 씨는 경찰에서 풀려나자마자 고민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경찰 요구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경찰에 다시 불려간 B씨에게 A 경위는 타박하듯 말했다고 하는데요. B 씨는 이 자리에서 오간 대화를 녹음했고, 이 녹음 파일을 KBS에 제공했습니다.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A 경위는 “녹음해 가지고 오라고 했죠. 근데 휴대전화 다 깼죠?”라고 말합니다. B 씨가 억울하다고 연거푸 말하자 A 경위는 “내가 듣고 싶은 건, 고민해보세요. 본인이 진짜 보호 받으려면 형사가 뭘 듣고 싶어 하는 건지 고민해보시란 말이에요.”라고 강조합니다.

B 씨는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조사 자체가 협박이었고, 무섭고 떨렸다”며 큰 압박감을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 타인과의 대화 녹음 요구, 압박감 느꼈다면 ‘직권남용’ 가능성

대구고검장 출신의 김경수 KBS 자문변호사는 “수사기관 관계자가 피조사자를 상대로 타인과의 대화를 녹음해올 것을 요구하고, 피조사자가 압박감을 느꼈다면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협박 수준에 이르는 정도라면 강요죄에 해당할 소지도 있습니다.

형법
제123조(직권남용)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24조(강요) ①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김 변호사는 “당사자에게 증거 수집을 해오라는 것은 정당한 수사방법이 아니다”며 “수사관이 직접 사실을 확인해야지, 제3자 등을 이용해 수사하는 건 좋은 수사가 아니다. 수사 윤리에도 어긋나는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 A 경위 “일절 말 못해” … 수사종결권 가진 경찰 책임 커져

A 경위는 사실관계를 묻는 KBS 취재진에게 “일절 말할 수 없다”고만 전했습니다. 경찰은 취재진의 공식 질의에 “사실 관계를 파악해보겠다”고만 밝히고 있는 상태입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은 올해부터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습니다. 그만큼 책임과 권한이 더 커졌습니다.

김 변호사는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사건 수가 늘어났고, 업무가 과도하게 늘어난 점이 있다”면서도 “그동안 쉽고 편한 방법으로 수사해왔던 관습을 고치고, 원칙과 절차대로 진행하는 바람직한 수사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단독] ‘녹취 요구’로 직무배제된 경찰…다른 사건 때도 “녹음 해와라”
    • 입력 2021-07-22 16:49:30
    취재K
제보자가 KBS 취재진과 인터뷰 하는 모습.
이른바 ‘가짜 수산업자’가 금품을 제공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에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사팀 일원이었던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A 경위가 가짜 수산업자 김 모 씨의 부하직원에게 ‘변호사와의 대화를 녹음해올 것’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었기 때문입니다. 서울경찰청은 A 경위를 수산업자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 수사업무에서 배제하고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A 경위가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지난해 다른 사건 수사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피의자에게 다른 사람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해올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입니다.

A 경위에게 녹음을 요구받았다는 제보자 B 씨를 만나봤습니다.


■ “녹음해 가지고 오라고 했죠? …비빌 언덕이 어디인지 잘 판단해라”

제보자 B 씨는 지난해 11월 경찰(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긴급체포됐습니다. 경찰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던 모 법무법인 사무장의 휴대전화를 B 씨가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증거은닉의 공범 혐의를 고지하며 B 씨를 체포했습니다.

체포된 B 씨는 경찰 조사를 받다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문제의 A 경위가 휴대전화 주인인 법무법인 사무장과의 통화를 녹음해오라고 요구했다는 겁니다.

B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A 경위가 (체포 조사를 마친 뒤) 나가서 법무법인 사무장의 녹취를 해와라. 그러면 너 보내주겠다. 아니면 증거은닉으로 해가지고….”라고 말했다며 “비빌 언덕이 어디인지 잘 판단하라고 수시로 얘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증거은닉 공범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B 씨는 경찰에서 풀려나자마자 고민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경찰 요구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경찰에 다시 불려간 B씨에게 A 경위는 타박하듯 말했다고 하는데요. B 씨는 이 자리에서 오간 대화를 녹음했고, 이 녹음 파일을 KBS에 제공했습니다.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A 경위는 “녹음해 가지고 오라고 했죠. 근데 휴대전화 다 깼죠?”라고 말합니다. B 씨가 억울하다고 연거푸 말하자 A 경위는 “내가 듣고 싶은 건, 고민해보세요. 본인이 진짜 보호 받으려면 형사가 뭘 듣고 싶어 하는 건지 고민해보시란 말이에요.”라고 강조합니다.

B 씨는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조사 자체가 협박이었고, 무섭고 떨렸다”며 큰 압박감을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 타인과의 대화 녹음 요구, 압박감 느꼈다면 ‘직권남용’ 가능성

대구고검장 출신의 김경수 KBS 자문변호사는 “수사기관 관계자가 피조사자를 상대로 타인과의 대화를 녹음해올 것을 요구하고, 피조사자가 압박감을 느꼈다면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협박 수준에 이르는 정도라면 강요죄에 해당할 소지도 있습니다.

형법
제123조(직권남용)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24조(강요) ①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김 변호사는 “당사자에게 증거 수집을 해오라는 것은 정당한 수사방법이 아니다”며 “수사관이 직접 사실을 확인해야지, 제3자 등을 이용해 수사하는 건 좋은 수사가 아니다. 수사 윤리에도 어긋나는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 A 경위 “일절 말 못해” … 수사종결권 가진 경찰 책임 커져

A 경위는 사실관계를 묻는 KBS 취재진에게 “일절 말할 수 없다”고만 전했습니다. 경찰은 취재진의 공식 질의에 “사실 관계를 파악해보겠다”고만 밝히고 있는 상태입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은 올해부터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습니다. 그만큼 책임과 권한이 더 커졌습니다.

김 변호사는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사건 수가 늘어났고, 업무가 과도하게 늘어난 점이 있다”면서도 “그동안 쉽고 편한 방법으로 수사해왔던 관습을 고치고, 원칙과 절차대로 진행하는 바람직한 수사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