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심부름 제대로 안 해?”…경비원 폭행한 입주민

입력 2021.07.2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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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을 수차례 폭행한 혐의를 받는 66살 남성 김 모 씨에 대한 1심 선고가 어제(22일) 열렸습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3단독(최선재 판사)은 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보호관찰과 함께 80시간의 사회봉사와 각 40시간의 알콜중독치료 강의와 폭력치료 강의 수강도 명령했습니다.

‘경비원 몽둥이 폭행사건’으로 잘 알려진 이 사건은 지난 2월 20일 발생했습니다.

김 씨는 당일 새벽 6시쯤 자신이 거주하는 노원구의 아파트 경비원 A씨를 자신의 집으로 호출한 뒤, 나무 몽둥이(홍두깨)로 A씨의 머리와 어깨 등을 때렸습니다. 김 씨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도망가는 A씨를 따라가 얼굴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A씨는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 알고보니 ‘상습범’…피해 경비원들 “술만 마시면 난폭해져”

그런데 이게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그 동안 수차례 경비원들을 때려 경찰에 신고된 것만 2017년에 2건, 2019년에 1건이었습니다. 피해 경비원 A씨에 대해서도 2년 전 이미 한 차례 폭행해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A씨가 처벌 불원서를 제출해 사건이 종결됐습니다.

피해 경비원은 2명 더 있습니다. 법원에 따르면 김 씨는 2020년 12월 아파트 경비원 휴게실에서 피해자 B가 사온 막걸리 제품이 ‘자신이 원하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이마를 때렸습니다. 2020년 8월에는 자신의 ‘손주 사진을 제대로 안 본다’는 이유로 다른 경비원 C씨도 폭행했습니다.

지난해 4월 열린 1차 공판에서 피해자들은 “김 씨가 술만 마시면 난폭해졌다”면서 “휴게실에 무단으로 찾아와 경비원들이 식사 중인 밥상을 뒤집어 엎은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 측은 “제기된 혐의를 모두 인정한다며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월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는 가해자 김 씨. (가운데 모자 쓴 남성)지난 2월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는 가해자 김 씨. (가운데 모자 쓴 남성)
■ 법원 “경비원 폭행 죄책 가볍지 않아”…가해자, 법정에서는 ‘깍듯’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경비원인 피해자들에게 특수상해 및 폭행의 범행을 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 “다만 피해자들의 상해 정도가 중하지는 않은 점, 피고인이 일부 피해자와 합의하고 합의금을 지급한 점, 벌금형을 초과하는 전과가 없는 점을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한다”고 집행유예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또 “피고인에게 재범 방지와 반성의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 사회봉사를 명령하는 만큼 성실히 응하길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법정에 나온 김 씨는 예의바른 모습이었습니다.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가 ‘판결에 불복할 경우 7일 안에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할 수 있다’고 안내하자 그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습니다. 선고가 끝난 뒤에는 ‘감사합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 故 최희석 경비원 사건에도 ‘갑질’ 피해 여전…열악한 고용환경이 문제

지난 4월 입주민의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리던 故 최희석 씨가 세상을 떠난 뒤 여러 해결 방안이 나왔지만, 경비원들은 여전히 갑질 피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대책이 공동주택관리규약에 노동자 괴롭힘 금지 조항을 의무적으로 넣게 한 건데, 강제수단이 없고 적용 대상이 한정적이어서 효용이 크지 않습니다.

문제는 경비원들의 열악한 고용 환경입니다. 고령의 나이에 취업은 어렵고, 한 달 단위 쪼개기 계약으로 내일 당장 잘릴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보니 주민들이 불합리한 요구를 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폭언이나 폭행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제 목소리를 내기가 힘듭니다. 경비원 대상 갑질을 해결하려면 초단기 계약 등 고용 불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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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걸리 심부름 제대로 안 해?”…경비원 폭행한 입주민
    • 입력 2021-07-23 06:02:08
    취재K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을 수차례 폭행한 혐의를 받는 66살 남성 김 모 씨에 대한 1심 선고가 어제(22일) 열렸습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3단독(최선재 판사)은 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보호관찰과 함께 80시간의 사회봉사와 각 40시간의 알콜중독치료 강의와 폭력치료 강의 수강도 명령했습니다.

‘경비원 몽둥이 폭행사건’으로 잘 알려진 이 사건은 지난 2월 20일 발생했습니다.

김 씨는 당일 새벽 6시쯤 자신이 거주하는 노원구의 아파트 경비원 A씨를 자신의 집으로 호출한 뒤, 나무 몽둥이(홍두깨)로 A씨의 머리와 어깨 등을 때렸습니다. 김 씨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도망가는 A씨를 따라가 얼굴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A씨는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 알고보니 ‘상습범’…피해 경비원들 “술만 마시면 난폭해져”

그런데 이게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그 동안 수차례 경비원들을 때려 경찰에 신고된 것만 2017년에 2건, 2019년에 1건이었습니다. 피해 경비원 A씨에 대해서도 2년 전 이미 한 차례 폭행해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A씨가 처벌 불원서를 제출해 사건이 종결됐습니다.

피해 경비원은 2명 더 있습니다. 법원에 따르면 김 씨는 2020년 12월 아파트 경비원 휴게실에서 피해자 B가 사온 막걸리 제품이 ‘자신이 원하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이마를 때렸습니다. 2020년 8월에는 자신의 ‘손주 사진을 제대로 안 본다’는 이유로 다른 경비원 C씨도 폭행했습니다.

지난해 4월 열린 1차 공판에서 피해자들은 “김 씨가 술만 마시면 난폭해졌다”면서 “휴게실에 무단으로 찾아와 경비원들이 식사 중인 밥상을 뒤집어 엎은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 측은 “제기된 혐의를 모두 인정한다며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월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는 가해자 김 씨. (가운데 모자 쓴 남성) ■ 법원 “경비원 폭행 죄책 가볍지 않아”…가해자, 법정에서는 ‘깍듯’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경비원인 피해자들에게 특수상해 및 폭행의 범행을 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 “다만 피해자들의 상해 정도가 중하지는 않은 점, 피고인이 일부 피해자와 합의하고 합의금을 지급한 점, 벌금형을 초과하는 전과가 없는 점을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한다”고 집행유예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또 “피고인에게 재범 방지와 반성의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 사회봉사를 명령하는 만큼 성실히 응하길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법정에 나온 김 씨는 예의바른 모습이었습니다.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가 ‘판결에 불복할 경우 7일 안에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할 수 있다’고 안내하자 그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습니다. 선고가 끝난 뒤에는 ‘감사합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 故 최희석 경비원 사건에도 ‘갑질’ 피해 여전…열악한 고용환경이 문제

지난 4월 입주민의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리던 故 최희석 씨가 세상을 떠난 뒤 여러 해결 방안이 나왔지만, 경비원들은 여전히 갑질 피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대책이 공동주택관리규약에 노동자 괴롭힘 금지 조항을 의무적으로 넣게 한 건데, 강제수단이 없고 적용 대상이 한정적이어서 효용이 크지 않습니다.

문제는 경비원들의 열악한 고용 환경입니다. 고령의 나이에 취업은 어렵고, 한 달 단위 쪼개기 계약으로 내일 당장 잘릴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보니 주민들이 불합리한 요구를 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폭언이나 폭행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제 목소리를 내기가 힘듭니다. 경비원 대상 갑질을 해결하려면 초단기 계약 등 고용 불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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