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쉴 곳 없는 소방관…‘회복지원차’ 전국에 고작 6대

입력 2021.07.23 (07: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해 8월, 경남 김해에서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해 8월, 경남 김해에서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

■ 폭염 속 잇따르는 소방관 '탈진'

경남에 폭염 특보가 내려진 지난 15일. 밀양의 한 폐기물 공장에 불이 났다는 신고가 119에 들어왔습니다. 현장과 가까운 무안119안전센터의 새내기 설희철 소방관은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진화작업을 벌였습니다. 무거운 장비에 1,000도가 넘는 화재 열기, 그리고 34도에 달하는 폭염까지. 땀으로 온몸이 젖은 설 소방관은 결국 쓰러졌습니다. 소방호스를 잡은 지 약 30분 만이었습니다.

지난 15일 경남 밀양 폐기물 처리 공장 화재 현장.지난 15일 경남 밀양 폐기물 처리 공장 화재 현장.

응급실로 이송된 설 소방관의 체온은 37.5도, 젖산 수치는 정상 수치의 2.5배. 열탈진이었습니다. 얼음조끼를 착용했는데도, 체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8월 경남 김해의 윤활유 보관창고 화재 현장에서는 폭염 속 진화작업을 하던 소방관 3명이 탈진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지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화재 진압 중 온열질환으로 병원에 이송된 소방관은 모두 17명입니다. 이 가운데 14명, 82%가 폭염특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통계에는 병원에 이송된 소방관만 포함돼 있어서, 실제 현장에서는 더 많은 대원이 온열질환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 복사열 최대 1,100도…잠시만 움직여도 땀 '뻘뻘'

소방관이 화재진압 장비를 착용하는 모습.소방관이 화재진압 장비를 착용하는 모습.

화재진압 때 소방관이 착용하는 장비는 방화복과 헬멧, 공기호흡기 등입니다. 기본 장비만 착용해도 30kg에 육박합니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장비를 착용한 뒤 20분 동안 물을 쏘는 훈련을 한 소방관의 체온을 직접 재봤습니다. 방화복 지퍼를 열자 열화상 카메라는 39도를 가리켰고, 햇볕에 달궈진 공기호흡기 온도는 40도를 넘었습니다.

20분 동안 방수 훈련을 마친 소방관의 체온.20분 동안 방수 훈련을 마친 소방관의 체온.

소방관들은 일반인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고온과 마주합니다. 중앙소방학교에서 진행한 연구를 보면 나무로 지은 건물에 불이 붙으면 최고 1,100도를 넘어서고, 철근콘크리트 건물은 900도 정도까지 온도가 오릅니다. 이 열기는 방화복으로 전달되고, 계속되는 진화작업에 내부에 열이 쌓이면 온열질환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 폭염에 쉴 곳 없는 소방관…'회복지원차' 전국에 고작 6대

지난해 10월 울산 고층 아파트 화재 현장.지난해 10월 울산 고층 아파트 화재 현장.

화재 현장 취재를 나가면 불이 난 현장 주변에 누워있는 소방관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린 뒤 또 불을 끄러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경남 김해 윤활유 창고 화재 때도 뜨거운 아스팔트에 앉아 쉬는 소방관들을 볼 수 있었고, 지난해 울산 고층아파트 화재 때도 열악한 휴식 현장이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화재 현장에는 쉴 공간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회복지원차'입니다. 버스나 트레일러를 개조해 화재 현장에서 편히 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차량으로, 프리미엄 버스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여기에는 소방관들에게 30분 이상 산소공급이 가능한 시스템과 공기청정기, 냉장고, 대형 TV 등이 설치됩니다.

소방청 버스형 ‘회복지원차’소방청 버스형 ‘회복지원차’

하지만 이 회복지원차는 중앙119구조본부에 4대, 서울과 대전소방본부에 각 1대씩 전국에 모두 6대밖에 없습니다. 이곳을 제외한 나머지 17개 지역 소방본부에는 회복지원차가 없습니다.

회복지원차가 없는 지역본부에서는 임시방편으로 구조지휘차나 행정차 등으로 사용되는 45인승 버스를 쓰고 있습니다. 좌석이 빽빽하게 들어찬 일반 버스와 다를 바가 없어서 방화복을 입고 쉬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또 공기 청정기나 산소공급시스템 등 편의 장비는 전혀 없습니다.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지역 소방본부 임시 회복지원차.편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지역 소방본부 임시 회복지원차.

지역 소방본부에 회복지원차가 없는 이유, 예산입니다. 당장 불을 끌 수 있는 설비에 예산이 집중되다 보니, 소방관 복지와 관련한 예산은 받지 못하는 겁니다. 울산 화재 이후 회복지원차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왔지만, 후속조치는 없었습니다.

"동료들이 무더운 날씨 때문에 탈진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는 과정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진압을 계속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잠시 교대하는 중에라도 그 시원한 공간에서 편히 좀 쉴 수 있고, 그런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해동부소방서 상동119안전센터 소방관

화염에 맞서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들을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호화로운 공간이 아닌, 화염과 폭염을 잠시나마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바라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폭염에 쉴 곳 없는 소방관…‘회복지원차’ 전국에 고작 6대
    • 입력 2021-07-23 07:01:29
    취재K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해 8월, 경남 김해에서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
■ 폭염 속 잇따르는 소방관 '탈진'

경남에 폭염 특보가 내려진 지난 15일. 밀양의 한 폐기물 공장에 불이 났다는 신고가 119에 들어왔습니다. 현장과 가까운 무안119안전센터의 새내기 설희철 소방관은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진화작업을 벌였습니다. 무거운 장비에 1,000도가 넘는 화재 열기, 그리고 34도에 달하는 폭염까지. 땀으로 온몸이 젖은 설 소방관은 결국 쓰러졌습니다. 소방호스를 잡은 지 약 30분 만이었습니다.

지난 15일 경남 밀양 폐기물 처리 공장 화재 현장.
응급실로 이송된 설 소방관의 체온은 37.5도, 젖산 수치는 정상 수치의 2.5배. 열탈진이었습니다. 얼음조끼를 착용했는데도, 체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8월 경남 김해의 윤활유 보관창고 화재 현장에서는 폭염 속 진화작업을 하던 소방관 3명이 탈진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지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화재 진압 중 온열질환으로 병원에 이송된 소방관은 모두 17명입니다. 이 가운데 14명, 82%가 폭염특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통계에는 병원에 이송된 소방관만 포함돼 있어서, 실제 현장에서는 더 많은 대원이 온열질환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 복사열 최대 1,100도…잠시만 움직여도 땀 '뻘뻘'

소방관이 화재진압 장비를 착용하는 모습.
화재진압 때 소방관이 착용하는 장비는 방화복과 헬멧, 공기호흡기 등입니다. 기본 장비만 착용해도 30kg에 육박합니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장비를 착용한 뒤 20분 동안 물을 쏘는 훈련을 한 소방관의 체온을 직접 재봤습니다. 방화복 지퍼를 열자 열화상 카메라는 39도를 가리켰고, 햇볕에 달궈진 공기호흡기 온도는 40도를 넘었습니다.

20분 동안 방수 훈련을 마친 소방관의 체온.
소방관들은 일반인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고온과 마주합니다. 중앙소방학교에서 진행한 연구를 보면 나무로 지은 건물에 불이 붙으면 최고 1,100도를 넘어서고, 철근콘크리트 건물은 900도 정도까지 온도가 오릅니다. 이 열기는 방화복으로 전달되고, 계속되는 진화작업에 내부에 열이 쌓이면 온열질환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 폭염에 쉴 곳 없는 소방관…'회복지원차' 전국에 고작 6대

지난해 10월 울산 고층 아파트 화재 현장.
화재 현장 취재를 나가면 불이 난 현장 주변에 누워있는 소방관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린 뒤 또 불을 끄러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경남 김해 윤활유 창고 화재 때도 뜨거운 아스팔트에 앉아 쉬는 소방관들을 볼 수 있었고, 지난해 울산 고층아파트 화재 때도 열악한 휴식 현장이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화재 현장에는 쉴 공간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회복지원차'입니다. 버스나 트레일러를 개조해 화재 현장에서 편히 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차량으로, 프리미엄 버스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여기에는 소방관들에게 30분 이상 산소공급이 가능한 시스템과 공기청정기, 냉장고, 대형 TV 등이 설치됩니다.

소방청 버스형 ‘회복지원차’
하지만 이 회복지원차는 중앙119구조본부에 4대, 서울과 대전소방본부에 각 1대씩 전국에 모두 6대밖에 없습니다. 이곳을 제외한 나머지 17개 지역 소방본부에는 회복지원차가 없습니다.

회복지원차가 없는 지역본부에서는 임시방편으로 구조지휘차나 행정차 등으로 사용되는 45인승 버스를 쓰고 있습니다. 좌석이 빽빽하게 들어찬 일반 버스와 다를 바가 없어서 방화복을 입고 쉬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또 공기 청정기나 산소공급시스템 등 편의 장비는 전혀 없습니다.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지역 소방본부 임시 회복지원차.
지역 소방본부에 회복지원차가 없는 이유, 예산입니다. 당장 불을 끌 수 있는 설비에 예산이 집중되다 보니, 소방관 복지와 관련한 예산은 받지 못하는 겁니다. 울산 화재 이후 회복지원차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왔지만, 후속조치는 없었습니다.

"동료들이 무더운 날씨 때문에 탈진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는 과정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진압을 계속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잠시 교대하는 중에라도 그 시원한 공간에서 편히 좀 쉴 수 있고, 그런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해동부소방서 상동119안전센터 소방관

화염에 맞서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들을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호화로운 공간이 아닌, 화염과 폭염을 잠시나마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