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장도 못하는 위장수사관? 디지털 성범죄 수사 어떻게…

입력 2021.07.23 (13:32) 수정 2021.07.23 (13:3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오는 9월 디지털 성범죄를 적발하기 위해 '신분 위장 수사'가 처음 시행되지만, 정작 이에 필요한 가상의 신분증 발급은 불가능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행정안전부가 위장 수사에 활용할 가상의 주민등록증 발급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경찰청에 밝힌 겁니다.

경찰은 편집 프로그램으로 만든 가짜 신분증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위장 수사관의 보호 등 안전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신분증 요구했던 '박사' 조주빈…경찰 위장 수사 허용

위장 수사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도입됐습니다. 당시 경찰은 여러 건의 피해 사례를 확인하고도 범죄 증거를 수집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성 착취물 유포 현장을 채증하기 위해서는 조주빈이 운영하는 텔레그램에 잠입해야 했는데, 조주빈이 철저히 신분을 가려 입장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수사를 했던 유나겸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경감은 "신분 확인을 하지 않는다는 홍보 문구와 달리 갑자기 신분증을 요구했다"며, "수사팀은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 세미나에서 회고한 바 있습니다.

수사팀은 급히 지인을 설득해 그의 신분증을 전송했지만, 조주빈은 끝내 입장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현실적으로 아동 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 위장 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국민 청원도 제기됐습니다. 국회는 지난 2월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신분 위장 수사' 특례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제25조의2(아동ㆍ청소년대상 디지털 성범죄의 수사 특례)
② 사법경찰관리는 디지털 성범죄를 계획 또는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한정하여 수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부득이한 때에는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할 수 있다.
1.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문서, 도화 및 전자기록 등의 작성, 변경 또는 행사
2. 위장 신분을 사용한 계약ㆍ거래
3. 아동ㆍ청소년성착취물 또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제2항의 촬영물 또는 복제물의 소지, 판매 또는 광고


■ '가상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 발급 불가…포토샵으로 제작?

경찰청은 위장 수사 시행을 앞두고 즉각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문서, 전자기록 등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법률에 구체적인 절차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청은 지난달 행정안전부에 공문을 보내, 가상의 주민등록증 발급이 가능한지 의견을 요청했습니다. 행안부는 '불가능하다'고 구두로 답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현재의 주민등록관리시스템에서는 인구수를 초과한 가상의 주민등록번호를 생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주민등록 관련 법률에 근거 조항이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다른 신분증인, 가상의 운전면허증을 발급하는 방안도 고민했습니다. 운전면허증은 경찰청 교통국 소관 업무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현행 도로교통법상으로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위장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법 규정만 생겼을 뿐, 정부 내에서 어떻게 가상 신분증을 발급하고, 관리할 것인지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겁니다.

경찰은 결국, 수사팀이 편집 프로그램으로 신분증을 자제 제작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경찰은 국회 행정안전위원인 이영 의원실에 보낸 답변에서 "현재는 위장 수사관이 직접 또는 전문가 등의 협조를 받아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사진을 편집하거나 기기를 활용하여 운전면허증, 학생증 등 신분증을 제작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미국 '언더커버' 수사, 가상 운전면허증으로 은행 계좌도 개설

전문가들은 이미지를 편집해 임의로 만든 가짜 신분증은 정부 시스템에서 조회가 안 돼, 신분이 탄로 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조주빈은 사회복무요원에게 돈을 주고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한 바 있습니다.

장윤식 한림대 글로벌융합대학 정보법과학 교수는 "최우선 과제는 위장 수사관의 안전"이라며 "고도의 범죄자나 조직화, 국제화된 범죄자를 상대할 정도가 되려면 유효한 가상 신분증까지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또 "명목상의 신분이나 금융거래 신분을 발급하는 절차를 포함해, 위장 수사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위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른바 '언더커버' 수사가 활발한 미국은 주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가상의 운전면허증을 발급합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중요한 건 조회가 된다는 점"이라며, 이를 이용해 은행 계좌를 만들어 수사에 활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은 필요한 경우 위장 수사관의 과거 기록도 만들어 제공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은 현재 미국 FBI 사례 등을 참고해, 위장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작 중입니다. 또 법이 시행되는 9월 24일 전까지 위장 수사관을 선발해 관련 교육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위장 수사가 실효성 있게 이뤄지고, 수사관의 안전도 도모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이나 금융거래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단독] 위장도 못하는 위장수사관? 디지털 성범죄 수사 어떻게…
    • 입력 2021-07-23 13:32:04
    • 수정2021-07-23 13:32:42
    취재K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오는 9월 디지털 성범죄를 적발하기 위해 '신분 위장 수사'가 처음 시행되지만, 정작 이에 필요한 가상의 신분증 발급은 불가능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행정안전부가 위장 수사에 활용할 가상의 주민등록증 발급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경찰청에 밝힌 겁니다.

경찰은 편집 프로그램으로 만든 가짜 신분증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위장 수사관의 보호 등 안전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신분증 요구했던 '박사' 조주빈…경찰 위장 수사 허용

위장 수사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도입됐습니다. 당시 경찰은 여러 건의 피해 사례를 확인하고도 범죄 증거를 수집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성 착취물 유포 현장을 채증하기 위해서는 조주빈이 운영하는 텔레그램에 잠입해야 했는데, 조주빈이 철저히 신분을 가려 입장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수사를 했던 유나겸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경감은 "신분 확인을 하지 않는다는 홍보 문구와 달리 갑자기 신분증을 요구했다"며, "수사팀은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 세미나에서 회고한 바 있습니다.

수사팀은 급히 지인을 설득해 그의 신분증을 전송했지만, 조주빈은 끝내 입장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현실적으로 아동 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 위장 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국민 청원도 제기됐습니다. 국회는 지난 2월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신분 위장 수사' 특례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제25조의2(아동ㆍ청소년대상 디지털 성범죄의 수사 특례)
② 사법경찰관리는 디지털 성범죄를 계획 또는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한정하여 수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부득이한 때에는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할 수 있다.
1.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문서, 도화 및 전자기록 등의 작성, 변경 또는 행사
2. 위장 신분을 사용한 계약ㆍ거래
3. 아동ㆍ청소년성착취물 또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제2항의 촬영물 또는 복제물의 소지, 판매 또는 광고


■ '가상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 발급 불가…포토샵으로 제작?

경찰청은 위장 수사 시행을 앞두고 즉각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문서, 전자기록 등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법률에 구체적인 절차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청은 지난달 행정안전부에 공문을 보내, 가상의 주민등록증 발급이 가능한지 의견을 요청했습니다. 행안부는 '불가능하다'고 구두로 답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현재의 주민등록관리시스템에서는 인구수를 초과한 가상의 주민등록번호를 생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주민등록 관련 법률에 근거 조항이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다른 신분증인, 가상의 운전면허증을 발급하는 방안도 고민했습니다. 운전면허증은 경찰청 교통국 소관 업무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현행 도로교통법상으로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위장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법 규정만 생겼을 뿐, 정부 내에서 어떻게 가상 신분증을 발급하고, 관리할 것인지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겁니다.

경찰은 결국, 수사팀이 편집 프로그램으로 신분증을 자제 제작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경찰은 국회 행정안전위원인 이영 의원실에 보낸 답변에서 "현재는 위장 수사관이 직접 또는 전문가 등의 협조를 받아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사진을 편집하거나 기기를 활용하여 운전면허증, 학생증 등 신분증을 제작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미국 '언더커버' 수사, 가상 운전면허증으로 은행 계좌도 개설

전문가들은 이미지를 편집해 임의로 만든 가짜 신분증은 정부 시스템에서 조회가 안 돼, 신분이 탄로 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조주빈은 사회복무요원에게 돈을 주고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한 바 있습니다.

장윤식 한림대 글로벌융합대학 정보법과학 교수는 "최우선 과제는 위장 수사관의 안전"이라며 "고도의 범죄자나 조직화, 국제화된 범죄자를 상대할 정도가 되려면 유효한 가상 신분증까지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또 "명목상의 신분이나 금융거래 신분을 발급하는 절차를 포함해, 위장 수사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위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른바 '언더커버' 수사가 활발한 미국은 주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가상의 운전면허증을 발급합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중요한 건 조회가 된다는 점"이라며, 이를 이용해 은행 계좌를 만들어 수사에 활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은 필요한 경우 위장 수사관의 과거 기록도 만들어 제공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은 현재 미국 FBI 사례 등을 참고해, 위장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작 중입니다. 또 법이 시행되는 9월 24일 전까지 위장 수사관을 선발해 관련 교육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위장 수사가 실효성 있게 이뤄지고, 수사관의 안전도 도모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이나 금융거래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