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테이프로 묶고 식용유 뿌리고…유족들 “왜 신상공개 안 하냐” 오열

입력 2021.07.23 (13:54) 수정 2021.07.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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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A 군(16)의 주택 곳곳에 식용유로 추정되는 기름이 곳곳에 뿌려진 모습숨진 A 군(16)의 주택 곳곳에 식용유로 추정되는 기름이 곳곳에 뿌려진 모습

지난 18일 제주시 조천읍 주택에서 발생한 중학생 피살 사건 현장.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쾌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집 내부에는 식용유로 추정되는 기름이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 숨진 A 군(16)의 방과 책상, 안방, 마루, 벽, 거울 등 곳곳에 식용유로 추정되는 액체가 묻어있었다.

유족은 "살해범이 나중에 불을 지르려 했던 것 같다"고 흐느꼈다.

A 군의 방에는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브랜드 운동화가 있었다. 책상에는 중학교 과학과 가정기술 책, 학교에서 보내온 '알리는 말씀' 등이 놓여있었다. A 군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노트에는 수학 문제 풀이과정이 적혀 있었다.

A 군은 여느 또래와 같은 10대 중학생이었다.

숨진 A 군의 책상에 놓여진 교과서들숨진 A 군의 책상에 놓여진 교과서들

숨진 A 군이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들숨진 A 군이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들

책상 밑에는 가족사진이 버려져 있었다. 사진에는 A 군과 A 군의 모친, 살해 피의자 백 씨 등이 찍혀 있었다. 침대 옆에는 범인이 당시 A 군의 휴대폰을 부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보였다.

A 군의 모친은 사건 당일 오후 2시 15분쯤 아들과 마지막으로 전화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백 씨와 공범 김 모 씨는 이날 오후 3시 16분쯤 주택에 침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A 군의 모친은 이날 오후 4시쯤 재차 전화했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숨진 A 군 방에서 발견된 부서진 휴대폰 파편숨진 A 군 방에서 발견된 부서진 휴대폰 파편

취재진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 범행이 발생한 2층 다락방 현장을 확인했다. A 군은 이곳에서 온몸에 멍이 든 채 손과 발 등에 청테이프가 묶인 채로 발견됐다.

부검결과 사인은 목 졸림에 의한 질식사로 드러났다.

범행이 발생한 다락방 매트에선 저항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유족은 다 뜯겨나간 매트를 보며 "범행을 당하다 고통스러워 손톱으로 짓누른 흔적"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재차 의사를 물었고, 유족은 공개해도 된다는 뜻을 밝혔다.


범행 현장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경찰이 신상공개를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유족은 말했다. 유족은 "도대체 얼마나 잔인해야 공개를 하는 것이냐. 아무 죄도 없는 아들을 상대로 범행이 이뤄졌다"고 목 놓아 울었다.

제주경찰청은 지난 21일 내부 논의 끝에 신상공개위원회 자체를 열지 않기로 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하거나, 피의자가 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피의자의 얼굴이나 성명, 나이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신상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재범방지,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 한해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당시 제주경찰청은 "경찰청 신상공개 지침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신상정보 공개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볼 수 없어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잔인성과 공공의 이익 부분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족은 "신상을 공개할 것인지 말지는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서 판단할 문제인데, 위원회 자체를 열지 않았다"며 "범행의 잔인성보다 피해자가 아무 죄 없는 아동인 점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숨진 A 군의 방에는 졸업장과 상장, 어렸을 적 엄마와 찍은 사진 등도 놓여있었다. 유족은 "A 군의 장례식장에 같은 중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다 같이 참석해 A 군의 마지막 길을 함께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A 군에 쓴 편지를 다 보고 가라며 관에 함께 붙여 보냈다"고 흐느꼈다.

주택 외부에는 잘려나간 가스 배관 등이 발견됐다. A 군의 모친은 지난 2일 새벽 백 씨로부터 폭행당하고, 지갑과 휴대폰 등을 빼앗겨 경찰에 신고했다. 이튿날 주택 외부에 있는 가스 배관 한 곳이 잘려나가고, 다른 한 곳의 가스 밸브까지 열려 있어 재차 신고했다.

지난 5일에는 주택에 백 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침입해 방충망을 모두 제거한 것으로 보고 추가 신고도 했다.

주택 외부에서 누군가 파손한 가스 배관주택 외부에서 누군가 파손한 가스 배관

경찰은 백 씨의 소행으로 보고 백 씨를 잡기 위해 차량 이동 내역과 CCTV 등을 설치해 수사를 벌여왔지만, A 군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주택에서 빠져나와 외부로 나오는 길. 주택 편지함에는 A 군의 친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하얀 종이가 담겨 있었다. 메모에는 '사랑한다 OO(A 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족은 재차 취재진에게 살해 피의자들의 신상공개와 엄벌을 요구했다.

한편 경찰은 백 씨가 앙심을 품고 전 연인의 아들인 A 군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범행동기를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주택 뒤편으로 몰래 침입하고, 범행 전 장갑 등을 준비한 점 등을 근거로 계획 범행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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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23 13:54:37
    • 수정2021-07-23 13:55:42
    취재K
숨진 A 군(16)의 주택 곳곳에 식용유로 추정되는 기름이 곳곳에 뿌려진 모습
지난 18일 제주시 조천읍 주택에서 발생한 중학생 피살 사건 현장.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쾌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집 내부에는 식용유로 추정되는 기름이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 숨진 A 군(16)의 방과 책상, 안방, 마루, 벽, 거울 등 곳곳에 식용유로 추정되는 액체가 묻어있었다.

유족은 "살해범이 나중에 불을 지르려 했던 것 같다"고 흐느꼈다.

A 군의 방에는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브랜드 운동화가 있었다. 책상에는 중학교 과학과 가정기술 책, 학교에서 보내온 '알리는 말씀' 등이 놓여있었다. A 군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노트에는 수학 문제 풀이과정이 적혀 있었다.

A 군은 여느 또래와 같은 10대 중학생이었다.

숨진 A 군의 책상에 놓여진 교과서들
숨진 A 군이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들
책상 밑에는 가족사진이 버려져 있었다. 사진에는 A 군과 A 군의 모친, 살해 피의자 백 씨 등이 찍혀 있었다. 침대 옆에는 범인이 당시 A 군의 휴대폰을 부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보였다.

A 군의 모친은 사건 당일 오후 2시 15분쯤 아들과 마지막으로 전화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백 씨와 공범 김 모 씨는 이날 오후 3시 16분쯤 주택에 침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A 군의 모친은 이날 오후 4시쯤 재차 전화했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숨진 A 군 방에서 발견된 부서진 휴대폰 파편
취재진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 범행이 발생한 2층 다락방 현장을 확인했다. A 군은 이곳에서 온몸에 멍이 든 채 손과 발 등에 청테이프가 묶인 채로 발견됐다.

부검결과 사인은 목 졸림에 의한 질식사로 드러났다.

범행이 발생한 다락방 매트에선 저항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유족은 다 뜯겨나간 매트를 보며 "범행을 당하다 고통스러워 손톱으로 짓누른 흔적"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재차 의사를 물었고, 유족은 공개해도 된다는 뜻을 밝혔다.


범행 현장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경찰이 신상공개를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유족은 말했다. 유족은 "도대체 얼마나 잔인해야 공개를 하는 것이냐. 아무 죄도 없는 아들을 상대로 범행이 이뤄졌다"고 목 놓아 울었다.

제주경찰청은 지난 21일 내부 논의 끝에 신상공개위원회 자체를 열지 않기로 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하거나, 피의자가 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피의자의 얼굴이나 성명, 나이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신상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재범방지,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 한해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당시 제주경찰청은 "경찰청 신상공개 지침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신상정보 공개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볼 수 없어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잔인성과 공공의 이익 부분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족은 "신상을 공개할 것인지 말지는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서 판단할 문제인데, 위원회 자체를 열지 않았다"며 "범행의 잔인성보다 피해자가 아무 죄 없는 아동인 점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숨진 A 군의 방에는 졸업장과 상장, 어렸을 적 엄마와 찍은 사진 등도 놓여있었다. 유족은 "A 군의 장례식장에 같은 중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다 같이 참석해 A 군의 마지막 길을 함께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A 군에 쓴 편지를 다 보고 가라며 관에 함께 붙여 보냈다"고 흐느꼈다.

주택 외부에는 잘려나간 가스 배관 등이 발견됐다. A 군의 모친은 지난 2일 새벽 백 씨로부터 폭행당하고, 지갑과 휴대폰 등을 빼앗겨 경찰에 신고했다. 이튿날 주택 외부에 있는 가스 배관 한 곳이 잘려나가고, 다른 한 곳의 가스 밸브까지 열려 있어 재차 신고했다.

지난 5일에는 주택에 백 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침입해 방충망을 모두 제거한 것으로 보고 추가 신고도 했다.

주택 외부에서 누군가 파손한 가스 배관
경찰은 백 씨의 소행으로 보고 백 씨를 잡기 위해 차량 이동 내역과 CCTV 등을 설치해 수사를 벌여왔지만, A 군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주택에서 빠져나와 외부로 나오는 길. 주택 편지함에는 A 군의 친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하얀 종이가 담겨 있었다. 메모에는 '사랑한다 OO(A 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족은 재차 취재진에게 살해 피의자들의 신상공개와 엄벌을 요구했다.

한편 경찰은 백 씨가 앙심을 품고 전 연인의 아들인 A 군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범행동기를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주택 뒤편으로 몰래 침입하고, 범행 전 장갑 등을 준비한 점 등을 근거로 계획 범행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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