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기자들Q] 무분별한 커뮤니티 보도…부끄러움 모르는 언론

입력 2021.07.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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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이 남녀갈등으로 둔갑했다. 얼마전 서울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짧은 바지를 입은 여성이 쓰러졌는데 주변 남성들이 아무도 돕지 않았다는 기사 이야기다. “괜히 도와주다 신체접촉을 하게 되면 성추행범으로 몰린다”라는 등 왜곡된 남녀 인식을 언급한 내용이 추천 댓글 상위권에 올랐다.

언론은 ‘핫팬츠’ ‘남성들 외면’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사실은 달랐다.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입장과 당시 119 신고자의 말을 종합하면 승객 모두가 나서서 도와주려고 했으며,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쓰러진 여성을 옮겼다. 의사라고 밝힌 남성 1명은 특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쓰러진 여성의 복장도 기사의 표현과는 달랐다.

7월3일 오후 5시50분쯤 서울 지하철 3호선 옥수역에서 압구정역으로 향하던 전동차 안에서 한 젊은 여성이 갑자기 쓰러졌다. 이후 이 여성은 압구정역 7-2 플랫폼 근처에 있는 의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떠났다.

■"기사는 쏟아지는데 확인 전화는 거의 없었어요"

여기까지는 기존 팩트체크 기사에 나왔던 내용들을 되짚어가며 사실 확인을 해내갔다. 이 다음부터는 취재과정에서 겪은 일이다.최초 보도를 한 <뉴스1>은 일부 보도에 나온 것처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게시판에서 시간과 장소도 없는 8줄짜리 글만 가지고 기사를 쓰진 않았다. 그러나, 교통공사에 연락했을 때 답변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다"였다.

그 다음에 10여 곳의 언론사에서 같은 보도가 이어졌다. 서울교통공사는 해당 언론사 기자들은 아예 확인 연락이 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일부 기자들에게 연락을 돌려봤다. "말씀드리기 어렵다" "사실 확인을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등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들은 누구에게 확인하고 기사를 쓴 것일까?

최초 보도 이후 유일하게 후속 확인 취재를 했다는 법률 전문 인터넷 뉴스인 <로톡뉴스>를 취재했다. 당시 온라인 회의창에 "유일하게 취재한 기자"라는 보고 내용에 눈에 띄였다. 사건에 대한 사실확인 기사와 이후 11명의 변호사를 상대로 댓글에서 많이 언급된 '성추행' 성립 가능성을 짚어본 후속 기사가 나갔다. <로톡뉴스>측은 "기사는 쏟아지는데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는 기자가 별로 없다고 해서 우리도 놀랐다"라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최초 보도 하루 뒤인 7월6일에 포털 사이트 '네이트 판'에 최초 119 신고자라는 글이 올라왔다. 최초 기사와는 전혀 다르게 남녀 모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내용이다. 신고자를 접촉해봤다. 기사는 30여 건이 쏟아졌는데 신고자가 연락을 받은 건 '3곳'이었다.


■대부분 인터넷 이슈 대응팀, 어떤 기사를 쓰나?

질문하는 기자들 Q는 서울교통공사에 확인 연락없이 최초 보도를 한 10여 곳 언론사 기자들의 부서를 조사했다. 거의 전부가 ‘인터넷 이슈 대응’ 부서였다. 이번 오보를 낸 기자들 가운데 6명은 올해 들어 1천 건이 넘는 기사를 썼다. 많게는 1,700여 건을 쓰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명인 SNS, 외국언론, 다른 언론사가 쓴 화제성 기사 등을 주 소재로 하루에 5~10건 넘게 기사를 쓴다. 현직 ‘인터넷 이슈 대응’ 부서 기자들도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언론 신뢰도나 매체 영향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부정적이다. 하지만 언론사들은 오히려 이런 불량 기사들을 ‘픽’해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문하는 기자들 Q>는 또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언론사 18곳을 대상으로 지난 3개월 동안 포털에서 조회 수 상위권을 기록한 10개 기사를 분석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의 게시글을 단순 인용해 남녀갈등을 유발하는 기사에 1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고, 94만에 이르는 페이지뷰를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 인용 보도....언론사와 기자들의 고민

현직 인터넷 이슈팀 기자들의 목소리도 들어봤다. "앉아서 커뮤니티와 SNS 보고 기사를 쓴다"라는 답변과 함께 "하루 5~10개의 기사 생산량" "커뮤니티 인용 보도는 자극적인 게 많아서 매체 브랜드 가치면에서도 좋을 게 없다"라는 공통된 답변이 돌아왔다.

"언론계에 대한 불신을 높일 것"이라는 회의적인 이야기와 함께 "취재해서 직접 기사를 쓰고 싶다"라는 자괴감이 느껴지는 답변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최근 디지털 위주로 조직개편을 한 경향신문은 '인터넷 이슈 대응팀'을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김정근 경향신문 미디어전략실장은 "그런 기사들이 조회수를 많이 올린다고 해도 팩트가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커뮤니티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버리는 게 과연 언론의 역할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김 실장도 "조회 수 경쟁에서 밀린 기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그거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무분별한 커뮤니티 보도, 부끄러움 모르는 언론>편은 25일(일) 밤 11시 35분 KBS 1TV에서 방송되는 <질문하는 기자들 Q>에서 방송됩니다. 서지영 KBS 기자가 진행하고 조수진 장신대 교양학부 미디어트랙 교수, 홍석우 KBS 기자가 출연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전한다.

'본방'을 놓치셨다면 KBS 홈페이지와 유튜브에서 다시 보실 수 있다.

▲ 프로그램 홈페이지 : news.kbs.co.kr/vod/program.do?bcd=0193#20210620&1
▲ 유튜브 계정 : www.youtube.com/c/질문하는기자들Q/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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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하는 기자들Q] 무분별한 커뮤니티 보도…부끄러움 모르는 언론
    • 입력 2021-07-24 10:00:39
    취재K

미담이 남녀갈등으로 둔갑했다. 얼마전 서울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짧은 바지를 입은 여성이 쓰러졌는데 주변 남성들이 아무도 돕지 않았다는 기사 이야기다. “괜히 도와주다 신체접촉을 하게 되면 성추행범으로 몰린다”라는 등 왜곡된 남녀 인식을 언급한 내용이 추천 댓글 상위권에 올랐다.

언론은 ‘핫팬츠’ ‘남성들 외면’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사실은 달랐다.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입장과 당시 119 신고자의 말을 종합하면 승객 모두가 나서서 도와주려고 했으며,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쓰러진 여성을 옮겼다. 의사라고 밝힌 남성 1명은 특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쓰러진 여성의 복장도 기사의 표현과는 달랐다.

7월3일 오후 5시50분쯤 서울 지하철 3호선 옥수역에서 압구정역으로 향하던 전동차 안에서 한 젊은 여성이 갑자기 쓰러졌다. 이후 이 여성은 압구정역 7-2 플랫폼 근처에 있는 의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떠났다.

■"기사는 쏟아지는데 확인 전화는 거의 없었어요"

여기까지는 기존 팩트체크 기사에 나왔던 내용들을 되짚어가며 사실 확인을 해내갔다. 이 다음부터는 취재과정에서 겪은 일이다.최초 보도를 한 <뉴스1>은 일부 보도에 나온 것처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게시판에서 시간과 장소도 없는 8줄짜리 글만 가지고 기사를 쓰진 않았다. 그러나, 교통공사에 연락했을 때 답변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다"였다.

그 다음에 10여 곳의 언론사에서 같은 보도가 이어졌다. 서울교통공사는 해당 언론사 기자들은 아예 확인 연락이 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일부 기자들에게 연락을 돌려봤다. "말씀드리기 어렵다" "사실 확인을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등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들은 누구에게 확인하고 기사를 쓴 것일까?

최초 보도 이후 유일하게 후속 확인 취재를 했다는 법률 전문 인터넷 뉴스인 <로톡뉴스>를 취재했다. 당시 온라인 회의창에 "유일하게 취재한 기자"라는 보고 내용에 눈에 띄였다. 사건에 대한 사실확인 기사와 이후 11명의 변호사를 상대로 댓글에서 많이 언급된 '성추행' 성립 가능성을 짚어본 후속 기사가 나갔다. <로톡뉴스>측은 "기사는 쏟아지는데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는 기자가 별로 없다고 해서 우리도 놀랐다"라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최초 보도 하루 뒤인 7월6일에 포털 사이트 '네이트 판'에 최초 119 신고자라는 글이 올라왔다. 최초 기사와는 전혀 다르게 남녀 모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내용이다. 신고자를 접촉해봤다. 기사는 30여 건이 쏟아졌는데 신고자가 연락을 받은 건 '3곳'이었다.


■대부분 인터넷 이슈 대응팀, 어떤 기사를 쓰나?

질문하는 기자들 Q는 서울교통공사에 확인 연락없이 최초 보도를 한 10여 곳 언론사 기자들의 부서를 조사했다. 거의 전부가 ‘인터넷 이슈 대응’ 부서였다. 이번 오보를 낸 기자들 가운데 6명은 올해 들어 1천 건이 넘는 기사를 썼다. 많게는 1,700여 건을 쓰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명인 SNS, 외국언론, 다른 언론사가 쓴 화제성 기사 등을 주 소재로 하루에 5~10건 넘게 기사를 쓴다. 현직 ‘인터넷 이슈 대응’ 부서 기자들도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언론 신뢰도나 매체 영향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부정적이다. 하지만 언론사들은 오히려 이런 불량 기사들을 ‘픽’해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문하는 기자들 Q>는 또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언론사 18곳을 대상으로 지난 3개월 동안 포털에서 조회 수 상위권을 기록한 10개 기사를 분석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의 게시글을 단순 인용해 남녀갈등을 유발하는 기사에 1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고, 94만에 이르는 페이지뷰를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 인용 보도....언론사와 기자들의 고민

현직 인터넷 이슈팀 기자들의 목소리도 들어봤다. "앉아서 커뮤니티와 SNS 보고 기사를 쓴다"라는 답변과 함께 "하루 5~10개의 기사 생산량" "커뮤니티 인용 보도는 자극적인 게 많아서 매체 브랜드 가치면에서도 좋을 게 없다"라는 공통된 답변이 돌아왔다.

"언론계에 대한 불신을 높일 것"이라는 회의적인 이야기와 함께 "취재해서 직접 기사를 쓰고 싶다"라는 자괴감이 느껴지는 답변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최근 디지털 위주로 조직개편을 한 경향신문은 '인터넷 이슈 대응팀'을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김정근 경향신문 미디어전략실장은 "그런 기사들이 조회수를 많이 올린다고 해도 팩트가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커뮤니티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버리는 게 과연 언론의 역할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김 실장도 "조회 수 경쟁에서 밀린 기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그거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무분별한 커뮤니티 보도, 부끄러움 모르는 언론>편은 25일(일) 밤 11시 35분 KBS 1TV에서 방송되는 <질문하는 기자들 Q>에서 방송됩니다. 서지영 KBS 기자가 진행하고 조수진 장신대 교양학부 미디어트랙 교수, 홍석우 KBS 기자가 출연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전한다.

'본방'을 놓치셨다면 KBS 홈페이지와 유튜브에서 다시 보실 수 있다.

▲ 프로그램 홈페이지 : news.kbs.co.kr/vod/program.do?bcd=0193#20210620&1
▲ 유튜브 계정 : www.youtube.com/c/질문하는기자들Q/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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