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앵커리지 2라운드’…미중 기싸움 거셌던 ‘톈진 회담’

입력 2021.07.2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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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중국 톈진에서 7월 26일 회견을 가졌다. (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중국 톈진에서 7월 26일 회견을 가졌다. (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의 방중은 시작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 들어 가장 고위직 외교당국자의 방중이고, 불꽃 설전을 벌였던 넉달 전 앵커리지 회담의 2라운드 성격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셔먼 부장관이 동북아 순방을 떠난 시점에도 방중 여부가 불투명했습니다. 미중 양측의 기싸움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 미중 톈진회담, 시작 전부터 기싸움 팽팽

셔먼 부장관이 이틀 일정으로 7월 25일 중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미중 양측의 기싸움은 상당했습니다.

왕이 외교부장은 파키스탄 외교장관과 24일 전략 대화를 한 뒤, "미국이 아직도 동등한 입장에서 다른 나라와 지내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면 중국이 국제사회와 함께 미국에게 가르쳐줄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외교 책임자가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셈입니다.

비슷한 시각 미국 고위당국자도 미중관계를 책임있게 관리하기 위한 가드레일과 한계선을 명확히 하는 것이 이번 회담의 목표라고 설명했습니다. 동시에 지속적인 경쟁이 충돌로 치닫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도 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26일  미중 회담에 나선 셰펑 중국 외교부 부부장(오른쪽).26일 미중 회담에 나선 셰펑 중국 외교부 부부장(오른쪽).

■ 깜깜이 상태로 시작한 톈진회담

미중 회담은 깜깜이 상태에서 시작됐습니다. 셔먼 부장관이 7월 25~26일 일정으로 방중해 회담이 텐진에서 열린다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외신들은 회의 관련 정보를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7월 26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전 11시) 무렵부터 관련 소식이 부분부분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중국측 대표인 셰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발언 내용이었습니다.

26일 미중 회담에 나선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26일 미중 회담에 나선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미중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 근본적 이유는 미국 일부 인사가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을 억눌러 이득을 얻으려한다" 등등의 발언이 마치 속보처럼 전해졌습니다.

중국 외교부가 홈페이지에 셰펑 부부장의 발언 내용만 5~6개 토막으로 잇달아 올리고 그같은 내용을 매체들이 경마식으로 보도하며 벌어진 일입니다.


중국 외교부는 미중 회담이 열리자마자 셰펑(谢锋) 부부장의 발언 요지를 단락으로 나눠 언론사가 속보를 올리 듯 잇달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중국 외교부는 미중 회담이 열리자마자 셰펑(谢锋) 부부장의 발언 요지를 단락으로 나눠 언론사가 속보를 올리 듯 잇달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 회담 당일 내내 중국측 입장만 전해져

이후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4시간을 넘긴 회담 뒤 관영 CCTV가 이 소식을 전했지만, 중국 기자들 앞에 선 셰펑 부부장의 인터뷰만 담겨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셰펑 부부장이 중국 유학생 비자 문제, 기업 제재 등 '불만 목록'을 전달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하지만 셔먼 부장관의 인터뷰나 미국측 입장은 듣기 어려웠습니다. 중국 매체만 보면 회의 시작 이후 거의 하루 종일 중국측 입장은 속보처럼 쏟아진 반면, 미국측 입장은 거의 밀봉되듯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과 셰펑 중국 외교부부장이 참석한 26일 미중 톈진회담.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과 셰펑 중국 외교부부장이 참석한 26일 미중 톈진회담.

물론 회담이 중국에서 열렸고 코로나19에 따른 취재진 접근이 제한된 측면은 있습니다. 셔먼-셰펑 회담 뒤 중국 왕이 외교부장과 셔먼 부장관의 회견이 곧바로 이어진 점도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이 쏠린 회담 당일, 일방의 입장만 거의 하루종일 전해진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중국이 '안방 회담'의 잇점을 최대한 살려 대내적 홍보의 기회로 활용하는 모습이 두드러졌습니다.


■ 왕이, 중국의 '체제·발전·주권' 존중 요구...셔먼, 미국과 동맹·파트너의 이익 강조

현지 시각 자정 무렵에야 왕이 부장과 셔먼 부장관의 발언 요지가 전해졌습니다. 우선 왕이 부장은 미국 측에 3대 마지노선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중국 외교부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중국 특색 사회의주의에 도전하거나 전복을 시도하지 마라.
둘째, 중국의 발전 과정을 방해하거나 중단하려 시도 마라.
셋째, 신장, 티벳, 홍콩, 타이완 등은 주권 문제이니 침범 마라.


요컨대, 중국의 체제, 경제 발전, 주권 등 3대 분야를 미국이 넘지 말아야할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웬디 셔먼 부장관의 발언은 미 국무부와 셔먼 부장관의 AP 통신 전화 인터뷰 등으로 전해졌습니다. 셔먼 부장관은 중국이 자국민의 생활 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국제 규범에 부합하고 다른 나라를 상처입히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지적, 요구했습니다.

첫째, 중국이 미국과 동맹, 파트너의 가치와 이익에 배치되는 행동을 하는 등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훼손하고 있다. 특히 홍콩과 신장, 타이완,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 상황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다.

둘째, 중국에 억류된 미국과 캐나다인 문제를 제기하고, 중국이 WHO의 코로나19 2차 조사를 불허한 사실을 우려한다.

셋째, 북한과 이란,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등 역내문제와 기후 위기, 마약 대응, 비핵화 등 관심 분야에 대한 협력이 필요하다.


■ '강 대 강' 대치 불구, '상호 요구' 확인 의미...대화 문 열어둬

각국 정부를 통해 나온 회담 내용만 보면 다시 한번 '강 대 강' 대치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회담 전부터 감지된 기싸움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중국측이 처음으로 미국에 불만 사항과 '레드라인' 목록을 건네며 이를 손상된 양국관계 회복의 조건으로 명확히 한 점은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 역시 자국과 동맹국의 이익 수호 의지를 밝힌 동시에 북한 문제 등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며 향후 대화의 문을 열어뒀습니다.

넉달 시차로 서로의 영토(앵커리지, 톈진)를 오가며 미중 최고위급 인사들이 양국의 현안을 정리했습니다. 향후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회담의 발판을 마련한 의미도 있습니다.

다만 이번 톈진 회담에서는 최고 지도자간 회담 가능성과 관련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고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습니다.

지난 3월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렸던 미중 고위급 회담. 미국측 블링컨 국무장관과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측 양제츠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2+2 형식의 회담을 가졌다.지난 3월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렸던 미중 고위급 회담. 미국측 블링컨 국무장관과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측 양제츠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2+2 형식의 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은 내용 외에도 몇가지 측면에서 이야기거리를 남겼습니다.

우선 의전 측면에서 셔먼 부장관의 중국측 상대가 누구인지를 둘러싼 기싸움이 느껴졌습니다.

미 국무부는 셔먼 부장관의 방중과 관련해 브리핑하면서 왕이 외교부장을 언급했을 뿐, 셰펑 부부장은 아예 거론도 하지 않았습니다.


■ 회담 상대·순방 동선·회담 장소...하나하나에 의미와 기싸움

반면 중국측은 셔먼과 셰펑이 실무 회담을 한 뒤, 왕이와 셔먼이 의례에 무게가 실린 만남을 갖도록 준비했습니다. 셰펑과의 만남은 회담, 왕이와의 만남은 회견이라며 이름부터 달리 불렀습니다.

셔먼의 주된 상대는 셰펑 부부장이고 왕이 부장은 한 급 위 주인이 손님을 맞아 예우하는 모습으로 보이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같은 기싸움의 발단은 미국과 중국의 제도 차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 외교의 대외적 1인자는 블링컨 국무장관이고 웬디 셔먼 부장관이 그 다음 차례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왕이 외교부장이 있지만, 정치 권력 서열상 양제츠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상급자입니다. 그렇다 보니 조금 애매해지는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국방 당국자 회담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미국 국방장관의 상대가 중국 국방부장이냐 아니면 그 보다 우위에 있는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냐 하는 것입니다.

중국 제도와 서구 국가의 제도가 일치하지 않다보니 생기는 현상입니다. 한국 통일부 장관의 상대를 북한측 통일전선부장으로 할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할지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일과 유사합니다.

셔먼 부장관은 방중 직전 한국, 일본, 몽골을 순방했다. 22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셔먼 부장관의 접견 모습  (사진=외교부).셔먼 부장관은 방중 직전 한국, 일본, 몽골을 순방했다. 22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셔먼 부장관의 접견 모습 (사진=외교부).

셔먼 부장관의 동선도 관심을 끌었습니다. 일본과 한국, 몽골을 차례로 방문한 뒤 톈진에 도착했습니다.

중국 인근의 대표적 군사 동맹국가인 한국과 일본을 먼저 방문하며 우방과의 유대를 다지고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몽골에서도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재확인하고 몽골 군 관계자도 만났습니다.

방중 기간 미국과 동맹 및 파트너의 이익과 가치관을 강조한 셔먼 부장관의 발언과 이같은 순방 동선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 전략을 드러내는 동시에 중국에 대한 압박의 의미가 있습니다.

회담 장소가 베이징이 아닌 톈진인 점은 코로나19 영향이 컸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한국, 러시아 등 주요국 외교장관과의 회담도 샤먼, 쿤밍 등 모두 베이징 바깥에서 열렸습니다. 중국은 수도 베이징의 방역에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 내년 초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러합니다.

톈진의 역사적 의미도 곰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이징 인근 톈진은 1858년 열강의 압력에 개항해 이후 9개 나라의 조계지가 됐던 땅입니다. 서구 열강의 중국 침략 기지로서 수모의 역사가 서려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서구 국가에게 결코 밀려서는 안되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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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앵커리지 2라운드’…미중 기싸움 거셌던 ‘톈진 회담’
    • 입력 2021-07-27 14:38:45
    특파원 리포트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중국 톈진에서 7월 26일 회견을 가졌다. (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의 방중은 시작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 들어 가장 고위직 외교당국자의 방중이고, 불꽃 설전을 벌였던 넉달 전 앵커리지 회담의 2라운드 성격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셔먼 부장관이 동북아 순방을 떠난 시점에도 방중 여부가 불투명했습니다. 미중 양측의 기싸움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 미중 톈진회담, 시작 전부터 기싸움 팽팽

셔먼 부장관이 이틀 일정으로 7월 25일 중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미중 양측의 기싸움은 상당했습니다.

왕이 외교부장은 파키스탄 외교장관과 24일 전략 대화를 한 뒤, "미국이 아직도 동등한 입장에서 다른 나라와 지내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면 중국이 국제사회와 함께 미국에게 가르쳐줄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외교 책임자가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셈입니다.

비슷한 시각 미국 고위당국자도 미중관계를 책임있게 관리하기 위한 가드레일과 한계선을 명확히 하는 것이 이번 회담의 목표라고 설명했습니다. 동시에 지속적인 경쟁이 충돌로 치닫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도 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26일  미중 회담에 나선 셰펑 중국 외교부 부부장(오른쪽).
■ 깜깜이 상태로 시작한 톈진회담

미중 회담은 깜깜이 상태에서 시작됐습니다. 셔먼 부장관이 7월 25~26일 일정으로 방중해 회담이 텐진에서 열린다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외신들은 회의 관련 정보를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7월 26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전 11시) 무렵부터 관련 소식이 부분부분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중국측 대표인 셰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발언 내용이었습니다.

26일 미중 회담에 나선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미중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 근본적 이유는 미국 일부 인사가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을 억눌러 이득을 얻으려한다" 등등의 발언이 마치 속보처럼 전해졌습니다.

중국 외교부가 홈페이지에 셰펑 부부장의 발언 내용만 5~6개 토막으로 잇달아 올리고 그같은 내용을 매체들이 경마식으로 보도하며 벌어진 일입니다.


중국 외교부는 미중 회담이 열리자마자 셰펑(谢锋) 부부장의 발언 요지를 단락으로 나눠 언론사가 속보를 올리 듯 잇달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 회담 당일 내내 중국측 입장만 전해져

이후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4시간을 넘긴 회담 뒤 관영 CCTV가 이 소식을 전했지만, 중국 기자들 앞에 선 셰펑 부부장의 인터뷰만 담겨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셰펑 부부장이 중국 유학생 비자 문제, 기업 제재 등 '불만 목록'을 전달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하지만 셔먼 부장관의 인터뷰나 미국측 입장은 듣기 어려웠습니다. 중국 매체만 보면 회의 시작 이후 거의 하루 종일 중국측 입장은 속보처럼 쏟아진 반면, 미국측 입장은 거의 밀봉되듯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과 셰펑 중국 외교부부장이 참석한 26일 미중 톈진회담.
물론 회담이 중국에서 열렸고 코로나19에 따른 취재진 접근이 제한된 측면은 있습니다. 셔먼-셰펑 회담 뒤 중국 왕이 외교부장과 셔먼 부장관의 회견이 곧바로 이어진 점도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이 쏠린 회담 당일, 일방의 입장만 거의 하루종일 전해진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중국이 '안방 회담'의 잇점을 최대한 살려 대내적 홍보의 기회로 활용하는 모습이 두드러졌습니다.


■ 왕이, 중국의 '체제·발전·주권' 존중 요구...셔먼, 미국과 동맹·파트너의 이익 강조

현지 시각 자정 무렵에야 왕이 부장과 셔먼 부장관의 발언 요지가 전해졌습니다. 우선 왕이 부장은 미국 측에 3대 마지노선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중국 외교부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중국 특색 사회의주의에 도전하거나 전복을 시도하지 마라.
둘째, 중국의 발전 과정을 방해하거나 중단하려 시도 마라.
셋째, 신장, 티벳, 홍콩, 타이완 등은 주권 문제이니 침범 마라.


요컨대, 중국의 체제, 경제 발전, 주권 등 3대 분야를 미국이 넘지 말아야할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웬디 셔먼 부장관의 발언은 미 국무부와 셔먼 부장관의 AP 통신 전화 인터뷰 등으로 전해졌습니다. 셔먼 부장관은 중국이 자국민의 생활 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국제 규범에 부합하고 다른 나라를 상처입히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지적, 요구했습니다.

첫째, 중국이 미국과 동맹, 파트너의 가치와 이익에 배치되는 행동을 하는 등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훼손하고 있다. 특히 홍콩과 신장, 타이완,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 상황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다.

둘째, 중국에 억류된 미국과 캐나다인 문제를 제기하고, 중국이 WHO의 코로나19 2차 조사를 불허한 사실을 우려한다.

셋째, 북한과 이란,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등 역내문제와 기후 위기, 마약 대응, 비핵화 등 관심 분야에 대한 협력이 필요하다.


■ '강 대 강' 대치 불구, '상호 요구' 확인 의미...대화 문 열어둬

각국 정부를 통해 나온 회담 내용만 보면 다시 한번 '강 대 강' 대치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회담 전부터 감지된 기싸움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중국측이 처음으로 미국에 불만 사항과 '레드라인' 목록을 건네며 이를 손상된 양국관계 회복의 조건으로 명확히 한 점은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 역시 자국과 동맹국의 이익 수호 의지를 밝힌 동시에 북한 문제 등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며 향후 대화의 문을 열어뒀습니다.

넉달 시차로 서로의 영토(앵커리지, 톈진)를 오가며 미중 최고위급 인사들이 양국의 현안을 정리했습니다. 향후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회담의 발판을 마련한 의미도 있습니다.

다만 이번 톈진 회담에서는 최고 지도자간 회담 가능성과 관련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고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습니다.

지난 3월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렸던 미중 고위급 회담. 미국측 블링컨 국무장관과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측 양제츠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2+2 형식의 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은 내용 외에도 몇가지 측면에서 이야기거리를 남겼습니다.

우선 의전 측면에서 셔먼 부장관의 중국측 상대가 누구인지를 둘러싼 기싸움이 느껴졌습니다.

미 국무부는 셔먼 부장관의 방중과 관련해 브리핑하면서 왕이 외교부장을 언급했을 뿐, 셰펑 부부장은 아예 거론도 하지 않았습니다.


■ 회담 상대·순방 동선·회담 장소...하나하나에 의미와 기싸움

반면 중국측은 셔먼과 셰펑이 실무 회담을 한 뒤, 왕이와 셔먼이 의례에 무게가 실린 만남을 갖도록 준비했습니다. 셰펑과의 만남은 회담, 왕이와의 만남은 회견이라며 이름부터 달리 불렀습니다.

셔먼의 주된 상대는 셰펑 부부장이고 왕이 부장은 한 급 위 주인이 손님을 맞아 예우하는 모습으로 보이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같은 기싸움의 발단은 미국과 중국의 제도 차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 외교의 대외적 1인자는 블링컨 국무장관이고 웬디 셔먼 부장관이 그 다음 차례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왕이 외교부장이 있지만, 정치 권력 서열상 양제츠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상급자입니다. 그렇다 보니 조금 애매해지는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국방 당국자 회담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미국 국방장관의 상대가 중국 국방부장이냐 아니면 그 보다 우위에 있는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냐 하는 것입니다.

중국 제도와 서구 국가의 제도가 일치하지 않다보니 생기는 현상입니다. 한국 통일부 장관의 상대를 북한측 통일전선부장으로 할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할지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일과 유사합니다.

셔먼 부장관은 방중 직전 한국, 일본, 몽골을 순방했다. 22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셔먼 부장관의 접견 모습  (사진=외교부).
셔먼 부장관의 동선도 관심을 끌었습니다. 일본과 한국, 몽골을 차례로 방문한 뒤 톈진에 도착했습니다.

중국 인근의 대표적 군사 동맹국가인 한국과 일본을 먼저 방문하며 우방과의 유대를 다지고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몽골에서도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재확인하고 몽골 군 관계자도 만났습니다.

방중 기간 미국과 동맹 및 파트너의 이익과 가치관을 강조한 셔먼 부장관의 발언과 이같은 순방 동선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 전략을 드러내는 동시에 중국에 대한 압박의 의미가 있습니다.

회담 장소가 베이징이 아닌 톈진인 점은 코로나19 영향이 컸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한국, 러시아 등 주요국 외교장관과의 회담도 샤먼, 쿤밍 등 모두 베이징 바깥에서 열렸습니다. 중국은 수도 베이징의 방역에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 내년 초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러합니다.

톈진의 역사적 의미도 곰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이징 인근 톈진은 1858년 열강의 압력에 개항해 이후 9개 나라의 조계지가 됐던 땅입니다. 서구 열강의 중국 침략 기지로서 수모의 역사가 서려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서구 국가에게 결코 밀려서는 안되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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