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한 차례’가 무형문화재?…국악단체 사람들 반발

입력 2021.07.2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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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문화재청에 삼백 개가 넘는 청원서가 접수됐습니다. 여러 국악 단체 구성원이 쓴 청원서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鼓法) 보유자로 지난 6월 ‘인정 예고’된 보유자 A 씨에 대한 의문과 우려가 담겨있었습니다(고법은 ‘판소리에서 북을 치는 기예’를 의미하며, 북을 치는 사람을 ‘고수’라 합니다.).

‘이번 무형문화재 선정 과정에서 다른 후보자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후보 A 씨가 인정 예고자로 선정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청원서의 요지입니다.

도대체 왜 문화재청의 보유자 검증 과정에 문제가 제기된 걸까요?


■ “정량적 채점 기준 납득 어려워”…‘완창 1회’ 지원자가 ‘50회’ 지원자들 제쳐

이번 고법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 과정에서 A 씨와 함께 심사 대상에 오른 이들은 모두 8명입니다. 이 가운데 A 씨와 나머지 2명이 1단계 전형을 통과했습니다.

문제가 제기된 부분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끝까지 전형에 올라간 나머지 후보 2명과 비교하면, A 씨의 정량적인 공연 실적과 성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입니다.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크게 두 부분입니다. 먼저 판소리 고법에 있어서 중요한 실적으로 평가되는 ‘완주 횟수’에서의 차이입니다.

이번 무형문화재 보유자에 지원하는 서류에는 최근 10년 동안의 이른바 전승 활동 실적을 내게 돼 있었습니다. 각 후보의 지원 서류를 확인해보니, 이 실적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A 씨의 최근 10년 동안 완주 실적은 ‘1회’뿐이었고, 제출한 부분 연주의 공연시간도 8분에서 50분 정도였습니다. 이에 반해, 나머지 후보 2명인 B 씨와 C 씨의 완주 실적은 각각 ‘51회’와 ‘33회’였습니다. C 씨의 경우 120분 정도 연주한 ‘1부/2부 연주’ 실적들도 부분 연주로 포함시킨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판소리 소리꾼에 맞춰 반주하는 고법은 크게 ‘부분 연주’와 ‘완주’로 구분됩니다. 부분 연주는 짧게는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연주를 하지만, 완주는 길게는 4시간 넘게 연주를 합니다.

게다가 완창·완주 횟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소리꾼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선택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즉, 완주 경험이 많은 고수는 긴 시간 동안 소리꾼의 호흡과 소리에 맞춰 북을 칠 수 있는 능력이 보장됐다고 보는 겁니다. 따라서 완주 횟수가 고수의 주요한 정량 기준으로 통용되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미미한 A 씨의 ‘수상 실적’도 의문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수상 실적이 전형 점수에 반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후보들이 업계에서 최고로 인정되는 ‘대통령상’이나 ‘국무총리상’을 모두 수상한 것에 반해, A 씨는 지역에서 수상한 ‘장려상’뿐입니다.


■ 알고 보니 연주 10회만 넘기면 최고점 부여…‘완주-부분’ 구분 없어

그렇다면 실제 전형 과정에서 문화재청의 실적 평가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문화재청이 진행했던 1, 2, 3단계 인정조사 자료와 심의 회의 속기록을 취재진이 확보해 확인해봤습니다.

지원 서류에서 제시했던 실적은 1단계 전형에서 ‘전승 활동 실적 점수’에 반영됐습니다. 그리고 해당 항목에서 만점을 받는 기준은 ‘10년 동안 10회 연주 횟수를 채우는 것’이었는데, 완주와 부분 연주에 차이를 두지 않았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완주 횟수가 1차례인 A 씨는 해당 항목에서 만점을 받았고, 1단계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심의 회의 때도 A 씨에 대한 완창 횟수에 대해 일부 위원이 의문을 제기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OOO 위원 : “문화재 종목에 해당하는 발표가 다소 부족하다. 완주로 고법 발표실적이 매우 미흡하다고 했어요.…냉정하게 평가를 하자만 국가문화재로 조금 미흡하지 않나”

OOO 위원 : “완창을 할 때는 정말 잘 치는 사람이 해요. (소리꾼) 누구나 부탁을 하죠. 그게 없다고 하는 것을 의뢰를 안 하는 것이에요.”

-무형문화재위원회 속기록(2021년 6월 11일)-

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 심의에 참여했던 유영대 전(前) 문화재위원도 이번 문화재청의 심의 과정이 의아하다고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유영대 전(前) 무형문화재위원유영대 전(前) 무형문화재위원

유 위원은 “해당 조건은 어떤 사람이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어야 하는지 지표를 명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기준은 완전히 잘못 설정됐다며, “고법 보유자의 조건은 모든 판소리 다섯 바탕소리를 혼자 다 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 지정 예고 기간 끝나…남은 건 무형문화재위원회 ‘최종 심의’

한편 문화재청은 완주와 구분연주를 구분하지 않고 기준을 설정한 이유에 대해 “조사단이 검토한 결과 완주와 부분연주 구분이 모호하고 객관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일부 고수들이 실제로는 전체 공연 가운데 한 마당 공연만 담당했으면서도 ‘완주’로 자료를 제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는 A 씨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는 A 씨

A 씨 역시 자신을 둘러싼 잡음에 대해서 인정하기 어렵다며 취재진에게 견해를 밝혔습니다. 실제 완창 횟수는 1차례가 아니라 더 많으며, 수도권과 달리 지역에는 애초에 공연 자체가 적기 때문에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대회 수상 실적이 미미한 것은 대회에 참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참여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은 가장 북을 잘 치는 사람을 뽑는 경연대회가 아니라, 전승 능력과 의지 등 많은 점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인정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밝혔습니다.

A 씨에 대한 지정 예고 기간은 이미 끝났습니다. 남은 건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최종 심의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A 씨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최종 지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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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주 한 차례’가 무형문화재?…국악단체 사람들 반발
    • 입력 2021-07-27 16:37:01
    취재K

이달 초, 문화재청에 삼백 개가 넘는 청원서가 접수됐습니다. 여러 국악 단체 구성원이 쓴 청원서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鼓法) 보유자로 지난 6월 ‘인정 예고’된 보유자 A 씨에 대한 의문과 우려가 담겨있었습니다(고법은 ‘판소리에서 북을 치는 기예’를 의미하며, 북을 치는 사람을 ‘고수’라 합니다.).

‘이번 무형문화재 선정 과정에서 다른 후보자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후보 A 씨가 인정 예고자로 선정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청원서의 요지입니다.

도대체 왜 문화재청의 보유자 검증 과정에 문제가 제기된 걸까요?


■ “정량적 채점 기준 납득 어려워”…‘완창 1회’ 지원자가 ‘50회’ 지원자들 제쳐

이번 고법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 과정에서 A 씨와 함께 심사 대상에 오른 이들은 모두 8명입니다. 이 가운데 A 씨와 나머지 2명이 1단계 전형을 통과했습니다.

문제가 제기된 부분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끝까지 전형에 올라간 나머지 후보 2명과 비교하면, A 씨의 정량적인 공연 실적과 성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입니다.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크게 두 부분입니다. 먼저 판소리 고법에 있어서 중요한 실적으로 평가되는 ‘완주 횟수’에서의 차이입니다.

이번 무형문화재 보유자에 지원하는 서류에는 최근 10년 동안의 이른바 전승 활동 실적을 내게 돼 있었습니다. 각 후보의 지원 서류를 확인해보니, 이 실적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A 씨의 최근 10년 동안 완주 실적은 ‘1회’뿐이었고, 제출한 부분 연주의 공연시간도 8분에서 50분 정도였습니다. 이에 반해, 나머지 후보 2명인 B 씨와 C 씨의 완주 실적은 각각 ‘51회’와 ‘33회’였습니다. C 씨의 경우 120분 정도 연주한 ‘1부/2부 연주’ 실적들도 부분 연주로 포함시킨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판소리 소리꾼에 맞춰 반주하는 고법은 크게 ‘부분 연주’와 ‘완주’로 구분됩니다. 부분 연주는 짧게는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연주를 하지만, 완주는 길게는 4시간 넘게 연주를 합니다.

게다가 완창·완주 횟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소리꾼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선택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즉, 완주 경험이 많은 고수는 긴 시간 동안 소리꾼의 호흡과 소리에 맞춰 북을 칠 수 있는 능력이 보장됐다고 보는 겁니다. 따라서 완주 횟수가 고수의 주요한 정량 기준으로 통용되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미미한 A 씨의 ‘수상 실적’도 의문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수상 실적이 전형 점수에 반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후보들이 업계에서 최고로 인정되는 ‘대통령상’이나 ‘국무총리상’을 모두 수상한 것에 반해, A 씨는 지역에서 수상한 ‘장려상’뿐입니다.


■ 알고 보니 연주 10회만 넘기면 최고점 부여…‘완주-부분’ 구분 없어

그렇다면 실제 전형 과정에서 문화재청의 실적 평가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문화재청이 진행했던 1, 2, 3단계 인정조사 자료와 심의 회의 속기록을 취재진이 확보해 확인해봤습니다.

지원 서류에서 제시했던 실적은 1단계 전형에서 ‘전승 활동 실적 점수’에 반영됐습니다. 그리고 해당 항목에서 만점을 받는 기준은 ‘10년 동안 10회 연주 횟수를 채우는 것’이었는데, 완주와 부분 연주에 차이를 두지 않았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완주 횟수가 1차례인 A 씨는 해당 항목에서 만점을 받았고, 1단계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심의 회의 때도 A 씨에 대한 완창 횟수에 대해 일부 위원이 의문을 제기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OOO 위원 : “문화재 종목에 해당하는 발표가 다소 부족하다. 완주로 고법 발표실적이 매우 미흡하다고 했어요.…냉정하게 평가를 하자만 국가문화재로 조금 미흡하지 않나”

OOO 위원 : “완창을 할 때는 정말 잘 치는 사람이 해요. (소리꾼) 누구나 부탁을 하죠. 그게 없다고 하는 것을 의뢰를 안 하는 것이에요.”

-무형문화재위원회 속기록(2021년 6월 11일)-

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 심의에 참여했던 유영대 전(前) 문화재위원도 이번 문화재청의 심의 과정이 의아하다고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유영대 전(前) 무형문화재위원
유 위원은 “해당 조건은 어떤 사람이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어야 하는지 지표를 명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기준은 완전히 잘못 설정됐다며, “고법 보유자의 조건은 모든 판소리 다섯 바탕소리를 혼자 다 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 지정 예고 기간 끝나…남은 건 무형문화재위원회 ‘최종 심의’

한편 문화재청은 완주와 구분연주를 구분하지 않고 기준을 설정한 이유에 대해 “조사단이 검토한 결과 완주와 부분연주 구분이 모호하고 객관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일부 고수들이 실제로는 전체 공연 가운데 한 마당 공연만 담당했으면서도 ‘완주’로 자료를 제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는 A 씨
A 씨 역시 자신을 둘러싼 잡음에 대해서 인정하기 어렵다며 취재진에게 견해를 밝혔습니다. 실제 완창 횟수는 1차례가 아니라 더 많으며, 수도권과 달리 지역에는 애초에 공연 자체가 적기 때문에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대회 수상 실적이 미미한 것은 대회에 참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참여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은 가장 북을 잘 치는 사람을 뽑는 경연대회가 아니라, 전승 능력과 의지 등 많은 점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인정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밝혔습니다.

A 씨에 대한 지정 예고 기간은 이미 끝났습니다. 남은 건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최종 심의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A 씨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최종 지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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