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하고 싶은 심정”…소비 절벽에 화천 애호박 ‘산지 폐기’

입력 2021.07.28 (07:00) 수정 2021.07.2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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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농사 짓는 보람이 없어요. 허탈하죠"
- 애호박 전국 최대 주산지 화천, 213톤 산지폐기 진행

25일 화천읍 풍산리에서 재배한 애호박이 가차 없이 트랙터 바퀴에 갈려 나갔다.25일 화천읍 풍산리에서 재배한 애호박이 가차 없이 트랙터 바퀴에 갈려 나갔다.
농민들은 제 손으로 키운 애호박을 갈아엎으며 마른 눈물만 삼켰습니다.

트럭에 가득 실려 온 연둣빛 싱싱한 애호박들은 가차 없이 밭 위에 내동댕이쳐져 트랙터 바퀴에 갈려 나갔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소비절벽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하락

최근 강원 화천산 애호박이 산지에서 폐기됐습니다. 짧아진 장마와 폭염으로 인해 생산량은 증가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절벽이 원인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식당에 들어가는 애호박 물량이 급감했고 학교 등이 일찍 방학에 들어가면서 급식 납품도 뚝 끊겼습니다.

거기다 장마 기간이 짧아 기상 호조로 인해 애호박 출하량은 지난해에 비해 14% 증가했고 풍작으로 인해 가격은 43% 떨어졌습니다.

25일 강원 화천군 간동면 도송리에서 농민들이 애호박을 산지 폐기 하기 위해 트럭에서 바닥에 쏟아내리고 있다.25일 강원 화천군 간동면 도송리에서 농민들이 애호박을 산지 폐기 하기 위해 트럭에서 바닥에 쏟아내리고 있다.
■ 애호박 전국 최대 주산지 화천 213톤 폐기 진행

농협 강원지역본부는 농림축산식품부 승인 아래 22일부터 5일간 산지 폐기를 진행했습니다.

총 300톤의 산지 폐기 물량 중 화천군에 배정된 물량은 213톤으로 가장 많은데요. 화천군의 애호박은 주 출하 시기 전국 유통량의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강원지역 농가들은 코로나19로 애호박 판로가 막혀 가격이 폭락하자 300t 규모의 산지 폐기를 진행했다.강원지역 농가들은 코로나19로 애호박 판로가 막혀 가격이 폭락하자 300t 규모의 산지 폐기를 진행했다.
산지폐기 보상금은 8㎏ 1상자당 5,200원으로 사실상 겨우 손해를 면하는 정도입니다.

2018년에도 산지폐기를 한 적이 있지만 그때처럼 공급과잉 탓이 아닙니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수요가 줄어 판로가 막혀버렸습니다.

김상호(66) 풍산리 작목반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새벽 1 시 반에 일어나 잠도 못 자고 밥 먹을 시간 줄여가며 일하는데 농사짓는 보람도 없고 착잡하다”며 “날이 더워져 빨리 수확하지 않으면 호박이 누렇게 타들어 가는데, 호박처럼 내 속도 누렇게 타들어 간다.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하소연했습니다.

추가 폐기 막은 ‘화천 애호박의 기적’.. 전국서 112톤 주문 들어와

산지폐기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자 25일부터 26일 아침까지 하루 사이에 112톤의 애호박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화천군이 직영하는 농산물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1만 건의 주문이 접수됐으며, 우체국 쇼핑몰을 통해 배정된 4,000상자가 완판됐습니다.

거래된 8kg 기준 1만 4,000상자는 화천군에서 일주일간 가락동 시장에 출하하는 물량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26일 화천읍 신풍리 화천농협에서 8㎏들이 애호박 1,200상자가 트럭에 실려 배송되고 있다.26일 화천읍 신풍리 화천농협에서 8㎏들이 애호박 1,200상자가 트럭에 실려 배송되고 있다.
본격적인 배송이 시작된 26일 화천읍 신풍리의 화천농협 창고에서는 1차 택배 물량 1,200상자가 트럭에 실려 전국 소비자들의 식탁으로 출발했습니다.

일단 엄청난 규모의 주문은 확보했지만 배송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까지 화천산 애호박이 하룻밤 새 120톤씩 팔린 적이 없는 데다, 당일 수확한 물량만 당일 출하가 가능해 한 번에 대량 발송이 어렵기 때문인데요.

화천 스마트 마켓 관계자는 “주문이 몰려 소화 물량을 초과해 일단 구매 페이지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배송을 재촉하는 소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화천군과 농협, 재배 농가는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입니다.

풍산리 작목반장 김 씨는 "우리 작목반에 8가구 정도 되는데 아무리 코로나로 상황이 안 좋아도 서로 얼굴 보면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그래야 하는데... 먹고 살 생각이랑 이번 겨울 보낼 생각을 하니 웃음도 안 나오고 막막하기만 하다."라고 전했습니다.

2주간 연장된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등 코로나19 상황이 최대변수입니다. 거리두기 상황이 이어지면 식당이나 학교 급식에서 남은 애호박 출하량을 소비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산지 폐기와 소비로 사라진 물량이 전반적인 소비 진작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입니다.

'판로를 찾지 못해 밭에서 누렇게 타들어가는 호박을 보며 내 속도 누렇게 타들어 간다'는 농민의 말이 자꾸 머리속을 맴돕니다. 타들어가는 농민의 속을 달래줄 시원한 단비같은 반가운 소식, 예를 들어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어 식당 등이 정상 영업을 한다는 뉴스가 조만간 들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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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곡하고 싶은 심정”…소비 절벽에 화천 애호박 ‘산지 폐기’
    • 입력 2021-07-28 07:00:30
    • 수정2021-07-28 08:37:08
    취재K
- "농사 짓는 보람이 없어요. 허탈하죠"<br />- 애호박 전국 최대 주산지 화천, 213톤 산지폐기 진행<br />
25일 화천읍 풍산리에서 재배한 애호박이 가차 없이 트랙터 바퀴에 갈려 나갔다.농민들은 제 손으로 키운 애호박을 갈아엎으며 마른 눈물만 삼켰습니다.

트럭에 가득 실려 온 연둣빛 싱싱한 애호박들은 가차 없이 밭 위에 내동댕이쳐져 트랙터 바퀴에 갈려 나갔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소비절벽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하락

최근 강원 화천산 애호박이 산지에서 폐기됐습니다. 짧아진 장마와 폭염으로 인해 생산량은 증가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절벽이 원인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식당에 들어가는 애호박 물량이 급감했고 학교 등이 일찍 방학에 들어가면서 급식 납품도 뚝 끊겼습니다.

거기다 장마 기간이 짧아 기상 호조로 인해 애호박 출하량은 지난해에 비해 14% 증가했고 풍작으로 인해 가격은 43% 떨어졌습니다.

25일 강원 화천군 간동면 도송리에서 농민들이 애호박을 산지 폐기 하기 위해 트럭에서 바닥에 쏟아내리고 있다. ■ 애호박 전국 최대 주산지 화천 213톤 폐기 진행

농협 강원지역본부는 농림축산식품부 승인 아래 22일부터 5일간 산지 폐기를 진행했습니다.

총 300톤의 산지 폐기 물량 중 화천군에 배정된 물량은 213톤으로 가장 많은데요. 화천군의 애호박은 주 출하 시기 전국 유통량의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강원지역 농가들은 코로나19로 애호박 판로가 막혀 가격이 폭락하자 300t 규모의 산지 폐기를 진행했다. 산지폐기 보상금은 8㎏ 1상자당 5,200원으로 사실상 겨우 손해를 면하는 정도입니다.

2018년에도 산지폐기를 한 적이 있지만 그때처럼 공급과잉 탓이 아닙니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수요가 줄어 판로가 막혀버렸습니다.

김상호(66) 풍산리 작목반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새벽 1 시 반에 일어나 잠도 못 자고 밥 먹을 시간 줄여가며 일하는데 농사짓는 보람도 없고 착잡하다”며 “날이 더워져 빨리 수확하지 않으면 호박이 누렇게 타들어 가는데, 호박처럼 내 속도 누렇게 타들어 간다.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하소연했습니다.

추가 폐기 막은 ‘화천 애호박의 기적’.. 전국서 112톤 주문 들어와

산지폐기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자 25일부터 26일 아침까지 하루 사이에 112톤의 애호박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화천군이 직영하는 농산물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1만 건의 주문이 접수됐으며, 우체국 쇼핑몰을 통해 배정된 4,000상자가 완판됐습니다.

거래된 8kg 기준 1만 4,000상자는 화천군에서 일주일간 가락동 시장에 출하하는 물량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26일 화천읍 신풍리 화천농협에서 8㎏들이 애호박 1,200상자가 트럭에 실려 배송되고 있다. 본격적인 배송이 시작된 26일 화천읍 신풍리의 화천농협 창고에서는 1차 택배 물량 1,200상자가 트럭에 실려 전국 소비자들의 식탁으로 출발했습니다.

일단 엄청난 규모의 주문은 확보했지만 배송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까지 화천산 애호박이 하룻밤 새 120톤씩 팔린 적이 없는 데다, 당일 수확한 물량만 당일 출하가 가능해 한 번에 대량 발송이 어렵기 때문인데요.

화천 스마트 마켓 관계자는 “주문이 몰려 소화 물량을 초과해 일단 구매 페이지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배송을 재촉하는 소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화천군과 농협, 재배 농가는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입니다.

풍산리 작목반장 김 씨는 "우리 작목반에 8가구 정도 되는데 아무리 코로나로 상황이 안 좋아도 서로 얼굴 보면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그래야 하는데... 먹고 살 생각이랑 이번 겨울 보낼 생각을 하니 웃음도 안 나오고 막막하기만 하다."라고 전했습니다.

2주간 연장된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등 코로나19 상황이 최대변수입니다. 거리두기 상황이 이어지면 식당이나 학교 급식에서 남은 애호박 출하량을 소비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산지 폐기와 소비로 사라진 물량이 전반적인 소비 진작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입니다.

'판로를 찾지 못해 밭에서 누렇게 타들어가는 호박을 보며 내 속도 누렇게 타들어 간다'는 농민의 말이 자꾸 머리속을 맴돕니다. 타들어가는 농민의 속을 달래줄 시원한 단비같은 반가운 소식, 예를 들어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어 식당 등이 정상 영업을 한다는 뉴스가 조만간 들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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