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안중근 의사 사촌이 마련한 손기정 ‘두부공장 축승회’

입력 2021.07.28 (10:55) 수정 2021.07.2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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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올림픽 경기장 외부에 전시돼있는 손기정 선수 동상.베를린 올림픽 경기장 외부에 전시돼있는 손기정 선수 동상.

■ 금메달 딴 그날, 베를린 두부 공장에서 열린 '축승회'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열린 이 날, 금메달은 손기정, 동메달은 남승룡 선수가 차지했습니다.

'왜 조선인이 두 명이나 마라톤에 출전했느냐'며 일본 대사관에서 노골적인 차별을 당했지만, 두 조선 청년은 결국 해냈습니다.

쾌거 당일 일본 측은 조선인이지만 일장기를 달고 뛴 두 사람을 위해 격려 자리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손기정·남승룡 선수는 몰래 베를린의 한 두부 공장으로 향했습니다.

몇 안 되는 현지 조선 교민들이 마련한 축하 파티 자리. 10명 정도가 모여 손기정·남승룡 선수의 쾌거를 축하했다고 합니다. 그 공장에서 만든 두부와 김치를 놓고 벌인 간소한 파티, 두부 공장 벽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 땅에서 태극기 봤던 감동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온몸에 뜨거운 전류가 흐르는 듯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잃었던 조국, 죽었던 조국의 얼굴을 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탄압과 감시의 눈을 피해 태극기가 살아 있듯 조선 민족도 살아 있다는 확신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 두부 공장의 주인은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 안봉근이었습니다.

안봉근이 살았던 베를린 칸트스트라세의 아파트. 리모델링은 됐지만 예전 건물 그대로라고 한다.안봉근이 살았던 베를린 칸트스트라세의 아파트. 리모델링은 됐지만 예전 건물 그대로라고 한다.

■ 두부 공장 경영하며 독립운동 후원

안중근 의사의 가족은 20여 명이 항일 운동가였다고 합니다. 안봉근도 그중 하나였지만 안타깝게도 알려진 게 많지 않습니다. 1920년 망명해 독일로 들어왔고, 드레스덴 박물관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지역 라디오 방송용으로 '한국으로 여행'이란 제목의 어린이 교육용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또 우리 전통 동화나 단편 소설 등을 소개하는 기사도 지역 신문에 게재했다고도 합니다.

그는 박물관 경영난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됩니다. 베를린에서 독일 여성을 만나 결혼해 세 자녀를 두었고 생계를 위해 두부 공장을 운영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두부 공장이 손기정·남승룡 선수를 초대해 '축승회'를 연 바로 그 두부 공장입니다.

안봉근의 두부 사업은 꽤 성공을 거뒀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온 수익으로 그는 독립운동을 후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안봉근은 두 조선 청년이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뒤 지역 신문사를 찾아가 "손기정과 남승룡은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라며 기사 정정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안봉근은 사촌형의 하얼빈 의거 이후 일제의 집중 감시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에서 그는 이름을 중국식인 Fonken Han(한봉근)으로 바꿨지만, 일본 영사관은 계속 그를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현재 안봉근 살았던 베를린 집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 집이 두부 공장을 겸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베를린 손기정 동상의 가슴엔 일장기 대신 태극기와 ‘382’라는 참가 번호가 새겨져 있다.베를린 손기정 동상의 가슴엔 일장기 대신 태극기와 ‘382’라는 참가 번호가 새겨져 있다.

■ 아직도 일본 국적 손기정

두부 공장 축하 파티는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에게 민족의식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됐음이 분명합니다. 이후 손기정은 자신이 일본 국적 선수로 돼 있는 것이 평생의 한(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한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자신이 금메달을 딴 바로 그날(8월 9일) 황영조가 우승하며 조금이나마 풀렸습니다.

손기정은 황영조의 가슴에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가, 경기장엔 기미가요가 아닌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며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는 공식적으로는 일본 국적 '손 키테이(Kitei Son)'입니다. 일본도 역대 일본인 금메달리스트를 소개하며 당연히 손기정을 포함시켰습니다.

1936년 당시 한국(조선)이란 나라는 없었고, 일본 국적으로 출전했으니 당연히 일본인이라는 겁니다.

국적이야 그렇다고 쳐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손기정의 이름을 여전히 일본식 이름인 Kitei Son으로 적어두고 있는 건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제국주의 일본에 강제 병합된 식민지 국민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그대로 놔둔다는 건 평화를 지향하는 올림픽 정신과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국제사회 정신에도 어긋나 보입니다.

최소한 한국 이름 병기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공식적으로 베를린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는 일본 국적의 ‘손키테이’다. (출처=IOC 웹페이지)공식적으로 베를린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는 일본 국적의 ‘손키테이’다. (출처=IOC 웹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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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28 10:55:29
    • 수정2021-07-28 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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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올림픽 경기장 외부에 전시돼있는 손기정 선수 동상.
■ 금메달 딴 그날, 베를린 두부 공장에서 열린 '축승회'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열린 이 날, 금메달은 손기정, 동메달은 남승룡 선수가 차지했습니다.

'왜 조선인이 두 명이나 마라톤에 출전했느냐'며 일본 대사관에서 노골적인 차별을 당했지만, 두 조선 청년은 결국 해냈습니다.

쾌거 당일 일본 측은 조선인이지만 일장기를 달고 뛴 두 사람을 위해 격려 자리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손기정·남승룡 선수는 몰래 베를린의 한 두부 공장으로 향했습니다.

몇 안 되는 현지 조선 교민들이 마련한 축하 파티 자리. 10명 정도가 모여 손기정·남승룡 선수의 쾌거를 축하했다고 합니다. 그 공장에서 만든 두부와 김치를 놓고 벌인 간소한 파티, 두부 공장 벽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 땅에서 태극기 봤던 감동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온몸에 뜨거운 전류가 흐르는 듯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잃었던 조국, 죽었던 조국의 얼굴을 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탄압과 감시의 눈을 피해 태극기가 살아 있듯 조선 민족도 살아 있다는 확신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 두부 공장의 주인은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 안봉근이었습니다.

안봉근이 살았던 베를린 칸트스트라세의 아파트. 리모델링은 됐지만 예전 건물 그대로라고 한다.
■ 두부 공장 경영하며 독립운동 후원

안중근 의사의 가족은 20여 명이 항일 운동가였다고 합니다. 안봉근도 그중 하나였지만 안타깝게도 알려진 게 많지 않습니다. 1920년 망명해 독일로 들어왔고, 드레스덴 박물관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지역 라디오 방송용으로 '한국으로 여행'이란 제목의 어린이 교육용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또 우리 전통 동화나 단편 소설 등을 소개하는 기사도 지역 신문에 게재했다고도 합니다.

그는 박물관 경영난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됩니다. 베를린에서 독일 여성을 만나 결혼해 세 자녀를 두었고 생계를 위해 두부 공장을 운영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두부 공장이 손기정·남승룡 선수를 초대해 '축승회'를 연 바로 그 두부 공장입니다.

안봉근의 두부 사업은 꽤 성공을 거뒀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온 수익으로 그는 독립운동을 후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안봉근은 두 조선 청년이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뒤 지역 신문사를 찾아가 "손기정과 남승룡은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라며 기사 정정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안봉근은 사촌형의 하얼빈 의거 이후 일제의 집중 감시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에서 그는 이름을 중국식인 Fonken Han(한봉근)으로 바꿨지만, 일본 영사관은 계속 그를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현재 안봉근 살았던 베를린 집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 집이 두부 공장을 겸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베를린 손기정 동상의 가슴엔 일장기 대신 태극기와 ‘382’라는 참가 번호가 새겨져 있다.
■ 아직도 일본 국적 손기정

두부 공장 축하 파티는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에게 민족의식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됐음이 분명합니다. 이후 손기정은 자신이 일본 국적 선수로 돼 있는 것이 평생의 한(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한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자신이 금메달을 딴 바로 그날(8월 9일) 황영조가 우승하며 조금이나마 풀렸습니다.

손기정은 황영조의 가슴에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가, 경기장엔 기미가요가 아닌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며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는 공식적으로는 일본 국적 '손 키테이(Kitei Son)'입니다. 일본도 역대 일본인 금메달리스트를 소개하며 당연히 손기정을 포함시켰습니다.

1936년 당시 한국(조선)이란 나라는 없었고, 일본 국적으로 출전했으니 당연히 일본인이라는 겁니다.

국적이야 그렇다고 쳐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손기정의 이름을 여전히 일본식 이름인 Kitei Son으로 적어두고 있는 건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제국주의 일본에 강제 병합된 식민지 국민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그대로 놔둔다는 건 평화를 지향하는 올림픽 정신과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국제사회 정신에도 어긋나 보입니다.

최소한 한국 이름 병기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공식적으로 베를린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는 일본 국적의 ‘손키테이’다. (출처=IOC 웹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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