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동맹 깃발 아래 포위’ vs ‘등 뒤를 노려라’…美·中 갈등 어디까지?

입력 2021.07.2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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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솔직해져 봅시다. 역사는 바꿀 수 없어요"

현지 시간으로 7월 28일 미국 국무부에서 한국과 일본을 담당하는 마크 램버트 부차관보가 한미일 3자 협력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 말입니다. 이어 "20세기에 일어난 잔혹 행위는 그 자체로 사실"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일본의 식민 통치 당시 한국에 했던 잔혹상들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결론은 역시 한일 간의 화해로 귀결됐습니다. "그런 사실들을 한 바구니에 담아 적절하게 다루되, 21세기에는 그 나라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들로 또 다른 바구니를 채우는 게 우리 실무자들의 일입니다".

한일 두 나라가 허락한다면 미국이 한일 협력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할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동맹재단 평화 컨퍼런스에서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부차관보(왼쪽에서 두번 째)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동맹재단 평화 컨퍼런스에서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부차관보(왼쪽에서 두번 째)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뚜렷한 목표는 모두가 알 듯 중국입니다.

램퍼트 부차관보는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쿼드(QUAD) 참여 여부를 "꼭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민주적 원칙을 옹호하는 다자 협의체가 계속 늘어날 거고, 그게 지금 미국이 할 일"이라면서, 이것이 겨냥하는 가장 큰 도전은 "시진핑 치하의 패권적이고 권위적인 중국"이라고 직접적으로 못박았습니다.

■ 외교안보 수장 총출동...中 에워싸는 미국형 포위 외교

미국은 스스로 언급한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 같은 전통의 동맹 말고도 중국에 맞서는 새로운 협력대상까지, 중국에 함께 날을 세워줄 친구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이번 주 미국 외교·안보 책임자들의 행보가 당장 눈에 띕니다. 모두 해외 출장 중인데, 공교롭게도 중국을 빙 둘러싼 나라들입니다.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과 일본, 몽골에 이어 7월 25~26일 중국 본토에서 극적 대화를 할 때쯤,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싱가폴,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 방문을 시작했습니다.

오스틴 장관에게는 넉 달 전 한국·일본·인도 방문에 이어 두 번째 해외 순방인데, 중국의 영향력이 강한 이 지역을 미국 쪽으로 묶어두려는 취지입니다. 특히 중국 영향력이 작지 않은 두테르테 대통령 치하 필리핀에 공을 들이겠다는 각오입니다.

동남아 현지에서 "남중국해 관련 근거 없는 중국의 주장에 맞설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베트남을 순방 중인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사진=오스틴 국방장관 트위터)베트남을 순방 중인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사진=오스틴 국방장관 트위터)

마지막으로 순방에 나선 블링컨 장관의 목적지는 인도와 쿠웨이트였는데, 하이라이트는 미국의 중국 견제 핵심기지 인도에서 망명정부를 세운 달라이 라마와 만난 것이었습니다.

불과 이틀 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셔먼 미국 부장관 면전에서 "중국의 영토 보전과 국가 주권을 침해하지 말라"며 신장-위구르, 홍콩과 함께 티베트를 거론했는데 정면으로 받아친 셈입니다.

미국 외교·안보 수장들의 이번 방문지는 지리적으로 중국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대륙국가 중국이 자국 영토를 벗어나 패권 영역을 확장하지 못하도록, 동맹과 협력체로 꽁꽁 포위하는 모양샙니다.

앞으로도 바쁩니다. 로이터 통신은 해리스 부통령이 8월 중 베트남, 싱가포르를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고, 9월에는 쿼드(Quad:미·일·호주·인도 4자 협의체)의 첫 대면회의가 예정돼 있습니다.

미·중 정상회담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는 G20까지 최대한 '우리 편'을 만드는 일정이 빼곡합니다.


■ '어디에나 구멍은 있다'...미국이 등 돌린 자리 파고드는 中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안방인 중국 톈진에 불러놓고 미국에 요구하는 개선사항을 줄줄이 언급했던 중국 역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등을 돌린 국가들을 재빨리 파고드는 전략이 눈에 띕니다.

미국과 마주 앉는 담판이 끝나자마자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타지키스탄에서 양자회담을 했습니다. 셔먼 부장관이 중국 일정을 마친 뒤 스위스로 건너가 러시아와 첫 핵 군축 회담을 하는 당일에 맞춰 만나 미국에 맞선 전략 협력 강화에 뜻을 모았습니다.

웨이 부장은 8월 중러 군사훈련에 쇼이구 장관을 초청하며 "우리는 현 국제정세 아래 이 만남이 기쁘지만 일부 국가는 마음에 안 들 것, 여기에 이 만남의 본질이 있다"고 했는데 일부 국가가 어디인지는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28일(현지 시간)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왼쪽)와 만난 중국 왕이 외교부장 (사진=CCTV)28일(현지 시간)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왼쪽)와 만난 중국 왕이 외교부장 (사진=CCTV)

이틀 전 셔먼과 담판을 치렀던 톈진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탈레반 대표단을 만난 것은 더욱 상징적 장면으로 꼽힙니다.

최근 미국이 소득 없이 20년 전쟁을 마감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철수한 데 대해 "미군 철수는 미국의 아프간 정책 실패의 상징"이라며 "중국은 아프간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재건에 더 많이 참여하겠다"고 스스로를 대안으로 칭했습니다.

7월 26일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방중 당시 미·중 양국이 갈등 포인트만 확인한 채 접점을 못 찾고 헤어진 것이 크게 기사화됐었지만, 장내 싸움 밖의 장외 공방은 더 치열합니다.

중국과 미국이 서로 면전에서, 또 뒤통수에서 세 규합에 총력을 다하는 모양새입니다.

■ 새 주미 중국대사는 '전사'..."독설가 대사가 더 다채로운 관계 만들 것"

주중 미국대사가 6개월째 공석인 가운데, 중국은 7월 29일 친강 외교부 부부장을 주미 중국대사로 임명했습니다.

2005~2010년은 물론, 시진핑 주석 집권 초기이자 미국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1~2014년 외교부 대변인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자국 입장을 옹호하고 미국을 비난하는 독설을 주저하지 않아 '전사'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외국이 공격하면 중국 외교관은 당연히 일어나 반격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시 주석의 신뢰가 깊다고 하지만 대미 외교 경험은 없습니다. 미국을 깊이 이해하는 대미 외교보다는 중국의 현재 강경한 입장을 효과적으로 미국 본토에서 전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춘 인사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였던 대니얼 러셀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 부소장의 평가 역시 "중국의 시스템은 외교적인 성과보다는 당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더 선호하는 상태인 것 같다"였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습니다.

신임 주미 중국대사로 부임한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부부장신임 주미 중국대사로 부임한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부부장

미국 공영 NPR은 "만약 친강이 오바마가 미국이 세계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을 때 화가 났었다면,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군사 강국 자리를 중국에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서 역시 기뻐할 것 같지 않다"며 "연극에 소질이 있는 독설가 중국 대사는 (미·중) 관계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말로는 협력 의사가 있다지만 아직까지는 긴장 요소만 갈수록 늘려가고 있는 미·중 관계의 단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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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동맹 깃발 아래 포위’ vs ‘등 뒤를 노려라’…美·中 갈등 어디까지?
    • 입력 2021-07-29 16:38:35
    특파원 리포트

"자, 솔직해져 봅시다. 역사는 바꿀 수 없어요"

현지 시간으로 7월 28일 미국 국무부에서 한국과 일본을 담당하는 마크 램버트 부차관보가 한미일 3자 협력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 말입니다. 이어 "20세기에 일어난 잔혹 행위는 그 자체로 사실"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일본의 식민 통치 당시 한국에 했던 잔혹상들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결론은 역시 한일 간의 화해로 귀결됐습니다. "그런 사실들을 한 바구니에 담아 적절하게 다루되, 21세기에는 그 나라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들로 또 다른 바구니를 채우는 게 우리 실무자들의 일입니다".

한일 두 나라가 허락한다면 미국이 한일 협력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할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동맹재단 평화 컨퍼런스에서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부차관보(왼쪽에서 두번 째)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뚜렷한 목표는 모두가 알 듯 중국입니다.

램퍼트 부차관보는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쿼드(QUAD) 참여 여부를 "꼭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민주적 원칙을 옹호하는 다자 협의체가 계속 늘어날 거고, 그게 지금 미국이 할 일"이라면서, 이것이 겨냥하는 가장 큰 도전은 "시진핑 치하의 패권적이고 권위적인 중국"이라고 직접적으로 못박았습니다.

■ 외교안보 수장 총출동...中 에워싸는 미국형 포위 외교

미국은 스스로 언급한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 같은 전통의 동맹 말고도 중국에 맞서는 새로운 협력대상까지, 중국에 함께 날을 세워줄 친구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이번 주 미국 외교·안보 책임자들의 행보가 당장 눈에 띕니다. 모두 해외 출장 중인데, 공교롭게도 중국을 빙 둘러싼 나라들입니다.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과 일본, 몽골에 이어 7월 25~26일 중국 본토에서 극적 대화를 할 때쯤,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싱가폴,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 방문을 시작했습니다.

오스틴 장관에게는 넉 달 전 한국·일본·인도 방문에 이어 두 번째 해외 순방인데, 중국의 영향력이 강한 이 지역을 미국 쪽으로 묶어두려는 취지입니다. 특히 중국 영향력이 작지 않은 두테르테 대통령 치하 필리핀에 공을 들이겠다는 각오입니다.

동남아 현지에서 "남중국해 관련 근거 없는 중국의 주장에 맞설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베트남을 순방 중인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사진=오스틴 국방장관 트위터)
마지막으로 순방에 나선 블링컨 장관의 목적지는 인도와 쿠웨이트였는데, 하이라이트는 미국의 중국 견제 핵심기지 인도에서 망명정부를 세운 달라이 라마와 만난 것이었습니다.

불과 이틀 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셔먼 미국 부장관 면전에서 "중국의 영토 보전과 국가 주권을 침해하지 말라"며 신장-위구르, 홍콩과 함께 티베트를 거론했는데 정면으로 받아친 셈입니다.

미국 외교·안보 수장들의 이번 방문지는 지리적으로 중국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대륙국가 중국이 자국 영토를 벗어나 패권 영역을 확장하지 못하도록, 동맹과 협력체로 꽁꽁 포위하는 모양샙니다.

앞으로도 바쁩니다. 로이터 통신은 해리스 부통령이 8월 중 베트남, 싱가포르를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고, 9월에는 쿼드(Quad:미·일·호주·인도 4자 협의체)의 첫 대면회의가 예정돼 있습니다.

미·중 정상회담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는 G20까지 최대한 '우리 편'을 만드는 일정이 빼곡합니다.


■ '어디에나 구멍은 있다'...미국이 등 돌린 자리 파고드는 中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안방인 중국 톈진에 불러놓고 미국에 요구하는 개선사항을 줄줄이 언급했던 중국 역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등을 돌린 국가들을 재빨리 파고드는 전략이 눈에 띕니다.

미국과 마주 앉는 담판이 끝나자마자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타지키스탄에서 양자회담을 했습니다. 셔먼 부장관이 중국 일정을 마친 뒤 스위스로 건너가 러시아와 첫 핵 군축 회담을 하는 당일에 맞춰 만나 미국에 맞선 전략 협력 강화에 뜻을 모았습니다.

웨이 부장은 8월 중러 군사훈련에 쇼이구 장관을 초청하며 "우리는 현 국제정세 아래 이 만남이 기쁘지만 일부 국가는 마음에 안 들 것, 여기에 이 만남의 본질이 있다"고 했는데 일부 국가가 어디인지는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28일(현지 시간)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왼쪽)와 만난 중국 왕이 외교부장 (사진=CCTV)
이틀 전 셔먼과 담판을 치렀던 톈진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탈레반 대표단을 만난 것은 더욱 상징적 장면으로 꼽힙니다.

최근 미국이 소득 없이 20년 전쟁을 마감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철수한 데 대해 "미군 철수는 미국의 아프간 정책 실패의 상징"이라며 "중국은 아프간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재건에 더 많이 참여하겠다"고 스스로를 대안으로 칭했습니다.

7월 26일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방중 당시 미·중 양국이 갈등 포인트만 확인한 채 접점을 못 찾고 헤어진 것이 크게 기사화됐었지만, 장내 싸움 밖의 장외 공방은 더 치열합니다.

중국과 미국이 서로 면전에서, 또 뒤통수에서 세 규합에 총력을 다하는 모양새입니다.

■ 새 주미 중국대사는 '전사'..."독설가 대사가 더 다채로운 관계 만들 것"

주중 미국대사가 6개월째 공석인 가운데, 중국은 7월 29일 친강 외교부 부부장을 주미 중국대사로 임명했습니다.

2005~2010년은 물론, 시진핑 주석 집권 초기이자 미국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1~2014년 외교부 대변인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자국 입장을 옹호하고 미국을 비난하는 독설을 주저하지 않아 '전사'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외국이 공격하면 중국 외교관은 당연히 일어나 반격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시 주석의 신뢰가 깊다고 하지만 대미 외교 경험은 없습니다. 미국을 깊이 이해하는 대미 외교보다는 중국의 현재 강경한 입장을 효과적으로 미국 본토에서 전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춘 인사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였던 대니얼 러셀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 부소장의 평가 역시 "중국의 시스템은 외교적인 성과보다는 당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더 선호하는 상태인 것 같다"였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습니다.

신임 주미 중국대사로 부임한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부부장
미국 공영 NPR은 "만약 친강이 오바마가 미국이 세계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을 때 화가 났었다면,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군사 강국 자리를 중국에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서 역시 기뻐할 것 같지 않다"며 "연극에 소질이 있는 독설가 중국 대사는 (미·중) 관계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말로는 협력 의사가 있다지만 아직까지는 긴장 요소만 갈수록 늘려가고 있는 미·중 관계의 단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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