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물병 들고 마당에서 훈련”…우여곡절 많았던 필리핀 역도 금메달

입력 2021.07.29 (16:58) 수정 2021.07.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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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스포츠 역사를 새로 쓴 '역도 영웅' 하이딜린 디아스(30). 그는 지난 26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55㎏급 A그룹 경기에서 합계 224kg을 들어 올리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이 메달의 의미는 남다릅니다. 필리핀이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1924년 이후 97년 만에 품에 안은 첫 금메달이기 때문입니다.

디아스의 도쿄올림픽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쾌적한 훈련장이 아닌 주택 마당에서 역기를 들어 올리며 금메달의 꿈을 꿨습니다.


■ 봉쇄령에 발 묶여 물병 들며 훈련…주택 마당에서 올림픽 준비

디아스는 지난해 2월 중국인 코치의 조언으로 말레이시아에 전지 훈련을 왔다가 발이 묶였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양국 봉쇄령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디아스는 쿠알라룸푸르에 머물렀고, 봉쇄령으로 체육관이 문을 닫은 기간에는 대나무 막대기 양 끝에 무거운 물병을 매달아 드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4월 봉쇄령 초기에 물병으로 연습하는 동영상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힘들지만, 마음속에 여전히 꿈을 품고 있다"라고 적으며 올림픽 메달을 향한 열망을 드러냈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말레이시아 말라카 외곽의 한 주택 마당에서 올림픽 출전 준비를 이어갔습니다.

97년 만의 금메달에는 말레이시아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디아스와 코치진은 아드함 바바 말레이시아 보건부 장관의 승인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해 도쿄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디아스가 금메달을 따내자 아드함 장관은 "나는 디아스와 코치들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도와준 책임자"라며 "내가 성공에 기여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성명을 냈습니다. 말레이시아 매체들도 "메달 획득에 아드함 장관이 한 몫 거들었다"며 관련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역도 인생'…역경 뚫고 목에 건 금메달

필리핀에서 단막극으로 제작되기도 한 디아스의 '역도 인생'에도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육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디아스는 어린 시절 가족을 위해 물 40리터를 지고 수백 미터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는 물통을 가볍게 들 방법을 찾다가 역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무 조각과 시멘트 덩어리 등을 들며 실력을 키운 디아스는 17살에 최연소로 필리핀 여자 역도 국가대표에 발탁됐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며 필리핀 여자 역도 선수 중 최초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고, 2012년 런던올림픽 출전 후 2014년엔 무릎 부상을 겪었습니다.

훈련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훈련 경비가 늘 부족해 대기업과 스포츠 후원가들을 찾아다니며 금전적인 지원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역도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2019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초를 겪었습니다. 자신의 물론 가족까지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습니다.

훈련 경비 지원을 호소하는 일도 어려워졌지만, 디아스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꿈을 이뤘습니다.


모든 시련을 이겨낸 디아스에게는 두둑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필리핀 정부와 몇몇 기업은 디아스에게 3천3백만 페소(한화 약 7억 5천만 원)의 포상금과 집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디아스는 금메달을 확정 지은 뒤 AFP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30살이고 점차 쇠락하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꿈이 이뤄졌다. 필리핀 청년들에게 '당신도 금메달을 꿈꿀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며 "그게 내가 시작하고 마침내 해낸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화면 출처 : ‘hidilyndiaz’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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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1-07-29 17: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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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스포츠 역사를 새로 쓴 '역도 영웅' 하이딜린 디아스(30). 그는 지난 26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55㎏급 A그룹 경기에서 합계 224kg을 들어 올리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이 메달의 의미는 남다릅니다. 필리핀이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1924년 이후 97년 만에 품에 안은 첫 금메달이기 때문입니다.

디아스의 도쿄올림픽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쾌적한 훈련장이 아닌 주택 마당에서 역기를 들어 올리며 금메달의 꿈을 꿨습니다.


■ 봉쇄령에 발 묶여 물병 들며 훈련…주택 마당에서 올림픽 준비

디아스는 지난해 2월 중국인 코치의 조언으로 말레이시아에 전지 훈련을 왔다가 발이 묶였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양국 봉쇄령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디아스는 쿠알라룸푸르에 머물렀고, 봉쇄령으로 체육관이 문을 닫은 기간에는 대나무 막대기 양 끝에 무거운 물병을 매달아 드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4월 봉쇄령 초기에 물병으로 연습하는 동영상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힘들지만, 마음속에 여전히 꿈을 품고 있다"라고 적으며 올림픽 메달을 향한 열망을 드러냈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말레이시아 말라카 외곽의 한 주택 마당에서 올림픽 출전 준비를 이어갔습니다.

97년 만의 금메달에는 말레이시아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디아스와 코치진은 아드함 바바 말레이시아 보건부 장관의 승인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해 도쿄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디아스가 금메달을 따내자 아드함 장관은 "나는 디아스와 코치들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도와준 책임자"라며 "내가 성공에 기여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성명을 냈습니다. 말레이시아 매체들도 "메달 획득에 아드함 장관이 한 몫 거들었다"며 관련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역도 인생'…역경 뚫고 목에 건 금메달

필리핀에서 단막극으로 제작되기도 한 디아스의 '역도 인생'에도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육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디아스는 어린 시절 가족을 위해 물 40리터를 지고 수백 미터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는 물통을 가볍게 들 방법을 찾다가 역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무 조각과 시멘트 덩어리 등을 들며 실력을 키운 디아스는 17살에 최연소로 필리핀 여자 역도 국가대표에 발탁됐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며 필리핀 여자 역도 선수 중 최초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고, 2012년 런던올림픽 출전 후 2014년엔 무릎 부상을 겪었습니다.

훈련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훈련 경비가 늘 부족해 대기업과 스포츠 후원가들을 찾아다니며 금전적인 지원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역도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2019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초를 겪었습니다. 자신의 물론 가족까지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습니다.

훈련 경비 지원을 호소하는 일도 어려워졌지만, 디아스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꿈을 이뤘습니다.


모든 시련을 이겨낸 디아스에게는 두둑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필리핀 정부와 몇몇 기업은 디아스에게 3천3백만 페소(한화 약 7억 5천만 원)의 포상금과 집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디아스는 금메달을 확정 지은 뒤 AFP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30살이고 점차 쇠락하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꿈이 이뤄졌다. 필리핀 청년들에게 '당신도 금메달을 꿈꿀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며 "그게 내가 시작하고 마침내 해낸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화면 출처 : ‘hidilyndiaz’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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